|
|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물(행10:1-8)2016.12.18
사람의 뇌에는 기억장치가 있습니다. 소위 메모리 기능이지요. 그런데 메모리 기능이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지 않는 것은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냐면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은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은 무드셀라 증후군이란 것이 있거든요. 물론 좋지 않는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질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기억도 있고 좋지 않는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좋은 기억으로 오래남아 있는 사람도 있고, 좋지 않는 기억으로 잊혀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왕에 태어나서 살고 가는 인생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비록 내가 잠간동안 머물고 간곳이라도 흔적은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이웃에서 말입니다.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많은 기억들을 생산해 냅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입니다. 다만 어떤 기억으로 남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억에 남되 좋은 감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인드로 기억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 곁에는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16장을 보면 이름까지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천국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목숨까지 내놓고 충성하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있었고, 바울의 영원한 선교파트너 아볼로, 아들같이 여기던 디모데, 차디찬 감옥에서 같이 고난을 당했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바울의 편지를 대서해준 더디오, 재정을 맡아 수고하던 에라스도와 구아도, 그리고 디도, 마가, 누가, 뵈뵈, 아벨레, 아리스도불로 등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들에게까지 입으로 마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게 기억되는 인물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장 힘들어할 때 그의 곁을 떠나간 데마,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고 해까지 입힌 알렉산더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믿음을 파선하던 후메네오 같은 사람도 부정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인물로 기억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교회,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혹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일까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나는 어떤 사람일는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의 자녀된 백성들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드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민10:10).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시20:3). 우리의 체질과 진토임을 기억해주십니다(시103:14). 그리고 거룩한 말씀과 아브라함을 기억하십니다(시105:42). 또한 이사야 62:6절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기억하시고 당신께 드리는 제사와 제물을 기억하시며, 인간의 모든 속성들을 다 기억해 주십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기억하십니다. 좋은 것도 기억하시지만 죄악도 기억하십니다. 단지 회개한 죄는 기억치 아니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신8:18). 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창9:16).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출20:8).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주문하십니다(신24:22).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신16:3).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신8:2).
가끔씩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라고 갑자기 물으면 기억이 얼른 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금방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금방 기억이 납니다. 인간도 그리할진대 우리 하나님은 모든 자를 정확히 기억하십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유별나게 하나님이 칭찬하시며 기억하라고 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당하시기 전에 값비싼 향유와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한 여인의 헌신을 기념하라고 하십니다(마26:13).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지만 불과 두 렙 돈을 집어넣던 한 과부의 헌금을 기억하셨습니다(눅21:3).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면서도 애원하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기억하셨습니다(마15:28).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하던 거지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을 기억하셨습니다(막10:52). 자기 종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소연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기억하셨습니다(눅7:1-10). 그 외에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믿음의 종들은 성경에 수없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도 하나님이 기억해주신 인물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군대의 지휘관입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입은 축복받은 인물입니다. 구원받기로 선택받은 준비된 영혼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억되는 인물이 아니라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왜냐면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입기만 하면 교회의 회원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멤버가 될 수 있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입기만 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중에서도 고넬료처럼 특별히 기억되는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은 고넬료의 어떤 것을 기억해 주셨던 것일까요? 본문에서 우리는 고넬료의 세 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겸손한 고넬료, 기도하는 고넬료, 구제하는 고넬료입니다.
(1) 겸손을 기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겸손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고넬료는 당시 세계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이 유대 땅에 파견한 백부장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큰 소리를 치면서 로마의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 지역의 군대와 치안업무를 담당하면 됩니다. 로마의 고급장교라는 신분만으로 유대지역에서 꽤나 명예와 권세를 누리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안은 이방인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로마의 지휘관이 자기들이 지배하고 있는 민족의 종교를 받아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대단한 용기와 겸손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별히 로마군대는 자존심이 강한 군대입니다. 그런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고넬료의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가정을 이방인의 열매로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고넬료가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교만하게 거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받는 사람의 몫입니다. 믿음이라는 선물은 겸손한 자가 아니면 수납될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만 임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5절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넬료의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사실은 겸손한 가정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겸손의 직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의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넬료가 자기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기다리다가 베드로가 들어올 때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합니다. 물론 베드로의 사양으로 무산되었지만 얼마나 겸손한 자세입니까? 그만큼 겸손한 고넬료였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가정에 심방을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일가와 친척들을 초청하시나요? 친구들은요? 목회자에게 존경을 표하십니까? 그 때와 시대가 다르다고 변명하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시대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 자세의 차이입니다. 어찌보면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입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볼 때 세상을 호령하던 로마군대의 장교와 한낱 유대인들의 소수종교에 불과한 어부출신 베드로와의 신분자체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친히 그들의 만남을 주선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니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입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만난 목사님은 군목중위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장이었던 집사님이 자기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며 종교적인 행사에는 항상 자기를 상석에 앉게 한다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계급사회에서 결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
고넬료는 겸손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정도로 겸손한 자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겸손한 척 합니다. 겸손한 척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우리는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주의 종들과 백성들이 전혀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척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겸손한 자만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도에 아주 겸손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누구에게나 머리를 숙였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유독 왕의 하는 행동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체통없이 아무에게나 머리를 숙이느냐는 것입니다. “왕이시여, 왕은 이 나라의 지존이십니다. 머리는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요, 더구나 왕은 이 나라의 어비이십니다, 함부로 머리를 숙이시면 아니되옵니다”라고 간언을 드렸습니다. 왕은 그 신하의 말을 듣고 나서 고양이 해골과 말의 해골과 사람의 해골을 하나씩 주면서 시장에 가서 팔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람들은 고양이 해골은 집에 걸어두면 쥐가 없어진다고 하여 사갑니다. 말의 해골을 걸어두면 집안에 관절병이 없어진다며 사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해골은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사가는 사람도 없어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머리가 귀한 것은 그 머릿속에 착함과 의로움이 있어서 귀한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빈 해골은 말이나 고양이의 해골보다 훨씬 더 못하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만하지 마십시오. 절대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억해주십니다.
(2) 기도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기도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통로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아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피곤하다고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불과 몇 시간만 지나면 금방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전혀 딴사람으로 바뀌고 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연락을 드리고 보고를 드립니다. 그분의 소리를 경청합니다. 수시로 그분과 대화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 자체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변명치 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만사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반드시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감이 생깁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장벽이 쌓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멀리 떨어져 대화하지 않으면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루가 멀듯이 만나서 대화하면 결코 잊혀질 수 없습니다. 더욱 친밀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의 대화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했고, 피곤하기 때문에 더욱 기도했습니다. 역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뭔가 다릅니다. 그들은 바쁘기 때문에 기도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십일조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라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기억해주시는 것이 응답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억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기억은 친구인 셈입니다.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범사에 기도했으며, 히스기야도 병들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들도 위급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바쁘고 피곤한 일정 속에서 새벽기도로 하루를 열었고, 저녁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주님은 무시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이 기도였습니다. 범사에 하나님만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서 기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안에 나를 성전삼고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면 우리도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안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2절).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며, 제 구시 기도 중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고넬료를 하나님이 기억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억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3) 구제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구제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구제는 우리의 믿음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열매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창문이라면, 구제는 세상을 향한 창문입니다. 구제가 무엇일까요? 야고보1장2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애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구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구제를 물질로 한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돌아보는 것이 구제라면 기도하는 것도 구제요, 전도하는 것도 구제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구제를 통해서 세상과 교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뿐 아니라 세상과의 교제를 적극 원하고 계십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가난한 형제나 궁핍한 형제에게 손을 움켜쥐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복을 주시리라”(신15:10). 그분은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질 것이요,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제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2-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구제할 때 두 개의 기둥입니다. 구제의 동기와 방법입니다. 먼저 동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것인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제를 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구제의 동기가 불순하면 하나님은 절대 기억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방법은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즉, 나팔을 불지 말고 소리 소문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하는 것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기억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면 오히려 안하는 것만 못합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네방네 떠들고 난리입니다. 나팔을 불고 생색을 냅니다. 그러므로 구제는 조용하게 아주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했던 구제도 당신이 기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구제는 하나님이 기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구제했을까요? ‘많이 구제’(2절)했습니다. 한마디로 구제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요즘 현대인들은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지도 않을 뿐 아니라 관심을 주려고도 아니합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지 모릅니다. 어찌 보면 무척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회와 성도들은 무관심의 굴레를 벗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외로운 자, 힘들고 연약한 자, 병든 자, 낮은 자, 소외된 자를 외면치 마시고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와 성도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이 나를 기억해주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존귀하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요 행복한 일입니다. 때문에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신에게 겸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또한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마시고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기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입니다. 할렐루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