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침묵
- 여원 김영희 -
가난한 이의 마음은 더 가난하고
가진 자들이 무심히 던지는
눈빛에도 마음을 베인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은
여러 개의 진실을 전하고
감춰진 거짓은 천천히 읽힌다
마음의 수위를 더듬는 밤
멀어진 서로에게 미안해 한다
오늘은 햇빛이 드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야겠다
목단꽃 방석
- 여원 김영희 -
마루에 방석이 있으면
그날은 손님이 오신 것이다
엄마는 귀한 손님이 오시면
장롱에서 으레 방석을 내놓곤 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석이 보이면
뭔가 색다른 음식이 있고
가끔은 맛난 과일도
조금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혼자 집에 있는 날
방석 세 개를 꺼내 두 개를 쌓아 보았다
천천히 들여다 보니
풍성하고 큼직한 붉은 꽃이
수 놓아져 있었다
나비와 벌이 꽃송이에 입을 대고
목단꽃 방석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분주히 움직이던 엄마와
그 땐 눈물이 많으시던 할머니가
자꾸만 내게 알사탕을 입에 넣어주고
등을 다독이던 그 오래된 지난 날이
불안했던 낭만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할머니는 고향 땅에 잠들어 계시고
이젠 더 눈물이 많으신 엄마가
내게 웃으며 사랑을 말한다
꽃잎은 떨어지고 풀린 실 따라
나비도 날아가 버렸지만
푹신했던 목단꽃 방석은
가장 따듯한 순간으로 내게 머물러 있다
고향 동네
- 여원 김영희 -
창틀마다 구름이 걸려있다
해마다 그 자리에 어김없이 피는 꽃
햇빛 가득했던 마루는 한적하고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벽걸이 괘종시계는
경적을 울리며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책들처럼 쌓여있는 이야깃거리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생각한다
담장 아래 옹기종기 모여 핀 꽃들에게
분주하게 날아든 오후의 벌들이
이 동네 주인이다
시간의 행간을 비집고 일어서자
바람 한줄기 뒤따라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