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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효령노인복지타운 탁구장에서 탁구를 지도했었다. 4개월 단위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인데, 수강 회원은 매회 12명으로 그 대상은 60세 이상인 탁구 초보자들이다. 그 중에는 80세가 넘은 분도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스트로크와 커트 등 탁구의 기초 기술을 가르쳤고, 서비스와 게임 요령에 대해서도 지도했다. 이들 회원 중에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분도 있다.
** 성춘님의 떡
하얀 벚꽃이 반겨주는 날이었다. 그날 레슨 주제는 커트이다. 맨 처음 레슨 상대자는 순현님, 인사를 막 나누었는데 내 옆구리를 찬찬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순현님의 손가락 끝을 따라 눈을 돌렸다. 조끼에 부착된 상표가 보인다. ‘오늘, 떡 얻어먹겠네요.’ 이렇게 농담 한다.
레슨은 순현님과 영욱님에 이어 기섭님, 종술님 차례로 진행되었다. 숙원님, 말례님, 용자님 세 분이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들어온다. 이분들의 레슨이 끝나기 전에 성춘님, 용례님, 복실님도 나타났다. 11시가 거의 되었을 때 레슨은 끝났다.
성춘님이 급하게 보자기를 풀었다.
“이리 오세요.”
탁구장에는 금새 웃음꽃이 번졌다. 탁구 회원 10여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에게 떡 한 조각씩 나누어 주고, 음로수도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옷을 뒤집어 입은 날에는 ‘떡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딱 맞았다. 이것을 핑계 삼아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이 후로도 탁구장에서 웃음꽃이 피게 한 사례가 몇 건 있다.
*** 숙원마마의 팥죽
그날도 복지관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선생님, 식권 사지 마세요.”
숙원 마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당시 TV 사극에서 숙원마마가 나왔다. 이름이 숙원이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효령타운에서는 1,500원이면 점심을 해결한다. 식단도 훌륭하다. 그런데 식권을 사지 말라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탁구회원들이 파크 골프장 주변의 정자로 모여든다. 거기에 숙원마마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남자분과 함께 있다. 자기 남편이라고 한다.
숙원마마가 탁구를 배우는 동안 그 남편이 팥죽을 가지고 온 것이다. 숙원마마는 교통사고로 한동안 탁구장에 못나왔다. 그런데 남편까지 동원해서 회원들에게 팥죽을 대접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고운 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도 좋은 야외에서 숙원마마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가득 담긴 팥죽을 먹는다. 회원들은 저마다 덕담을 한 마디씩 던진다. 그 수다가 파란 하늘로 흩어진다.
*** 정호님의 기정 떡과 영희님의 옥수수
7월의 마지막 수업 일이다. 정호님께서 기정 떡을 가져왔다. 아침 일찍, 첨단 자기 집을 출발하여 백운동까지 가서 떡을 샀다. 그리고 이곳 효령타운으로 가져왔다. 탁구용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다른 쪽에는 기정 떡 상자를 들었다. 그 수고가 눈물겹고 정성도 지극하다.
레슨은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그것이 끝났을 때 영희님이 다급하게 나간다. 바쁜 일이 있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에서는 정호님이 가져온 떡을 여자 회원들이 나누어 주고 음료수도 따라 준다. 푸짐하게도 가져왔다.
그러고 있는데, 영희님이 다시 들어온다. 손에 옥수수가 들려 있다.
탁구장에는 하하 호호 웃음꽃이 핀다. 타운의 교육 프로그램이 100개 정도 되지만 웃음꽃이 피는 프로그램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탁구뿐이다. 탁구를 치는 중에 만발한다. 잘 쳤으니 나이스(NICE)라고 웃고, 실수했으니 미스(MISS)라고 웃는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서로 마주보며 웃는 우정의 꽃이다.
회원 중에 간식을 가져오는 날에는 웃음꽃이 야외로까지 번진다. 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성춘님의 꽃은 봄에 피는 하얀 벚꽃이요, 숙원 마마의 꽃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이며, 정호님과 영희님의 꽃은 성하의 계절에 핀 노란 해바라기 꽃이다. 우정의 꽃을 피게 했던 이분들은 내가 탁구에서 손을 뗀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지만 이분들의 따뜻한 마음씨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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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각산의 봉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