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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빗살무늬 토기와 민무늬 토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약 5,000년 전(서기전 3,000년 전)에 해안이나 하천 유역에 나타나는 빗살무늬 토기문화(櫛文土器文化)이다.
즉, 한강 유역 암사동(岩寺洞)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 유물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14C)을 이용한 측정 결과에 따르면, 약 5,000년 전의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빗살무늬 토기 시대 또는 즐문토기 시대(櫛文土器時代, Jeulmun pottery period)는 한반도의 고고학적인 시대 구분으로서 서기전 8,000년부터 서기전 1,500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인데,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 토기에 빗살과 같은 모양의 무늬가 발견되어 이것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초창기는 서기전 8,000년에서 서기전 6,000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토기로서는 남부에서 덧무늬 토기(隆起紋土器, 융기문토기)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겉면에 진흙띠를 덧대어 붙이거나 겉면을 맞집어 돋게하여 무늬를 만든 것이다.
덧무늬토기는 남쪽으로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 부산 동삼동 유적(사적 266호, 영도구)과 영선동 유적, 울산 우봉리 유적, 거창 임불리 유적, 양산 신암리, 통영 상노대도 등과 남부 지역과 양양 오산리 유적, 춘천 내평리 등 북부지방까지 남해안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일본 쓰시마 섬의 고시다카 유적(越高遺蹟)에서도 부산 동삼동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서기전 5,000~4,500년의 것으로 보이는 덧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전기는 서기전 6,000년부터 서기전 3,500년경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어로나 수렵을 하고, 움집에 반정주적인 생활을 했다. 후반기에는 대규모 패총을 볼 수 있다.
서기전 4,000년경에' 빗살무늬 토기'가 출현한다. 이것은 유라시아 북부 일대(핀란드,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동북부 등)에 퍼진 넓은 의미의 '빗살무늬토기(Comb ceramic)'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조몬 시대 전기에 일본 열도의 큐슈에서 난세이 제도까지 퍼진 '증전식 토기(曾畑式土器)'도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생각되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중기는 서기전 3,500년부터 서기전 2,000년경까지로 여겨진다. 잡곡 등의 재배가 시작되었지만, 중심은 어로나 수렵에 있었다고 추측된다.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유적(사적 제266호)은 이 시기의 조개더미 유적으로 1930년 초반 일본인들에 의한 소규모 발굴이 있었으며, 1962년~64년까지 미국인들에 의한 발굴이, 1969년~1971년은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발굴을 하였다. 이 시기에 빗살무늬 토기가 서해안의 내륙과 남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토기 시대의 후기는 서기전 2,000년부터 서기전 1,500년경까지로 추정된다. 내륙부의 거주가 증가하여 패총의 수가 줄어들고, 농업에 의존하는 생활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민무늬 토기의 초기(서기전 1,500~1,250년경)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소규모의 농경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빗살무늬 토기의 후기는 랴오닝의 샤자디안 하층문화와 거의 같은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이 시대의 것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빗살무늬 토기 후기 시대의 사람들은 점차 남쪽으로 이주하여 농경으로 전환된 민무늬 토기의 사람들로 바뀌어 갔다.
진주시 대평원 상촌리 유적이나 합천댐 수몰지구에서 발견된 거창군 임불리 유적 등이 이 시기의 유적으로서 발견되었다.
[그림 1]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시대(無文土器時代, Mumun pottery period)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서기전 1,500부터 서기전 300년경에 해당한다.
이 시대 토기의 전형적인 특징이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것이므로 민무늬 토기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민무늬 토기 시대는 빗살무늬 토기 시대에 이어지는 시대인데, 북방의 요하 유역에서 북한에 걸쳐 민무늬 토기와 대규모 주거시설, 고인돌 등이 함께 출현하고 있어서 민무늬 토기 문화의 원류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림 2] 민무늬 토기(진주시)
민무늬 토기 시대의 전기는 서기전 1,500년부터 서기전 850년으로 구분하는데, 농경 외에도 어로, 수렵, 채집 등이 병행되었으며, 농경에는 아직 석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큰 직사각형의 움집으로 된 취락이 영위되었으며, 주거에는 부뚜막이 여러 개 있는 경우가 있어, 여러 세대가 같이 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후반에는 취락이 대규모화되었으며, 취락마다 유력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기전 900년경에는 소형의 주거가 일반화되었고, 부뚜막이 아니라, 중앙에 난로와 같은 노가 파졌다. 고인돌과 부장품인 붉은칠 토기, 돌칼 등 민무늬 토기 시대를 통해서 종교, 장제의 특징이 이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민무늬 토기 시대의 중기는 서기전 850년부터 서기전 550년까지 분류하는데, 대규모 농경이 시작되었고, 사회의 계급과 분쟁이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 이남에서는 대규모 논도 만들어졌고, 수백 채 이상 되는 대규모 취락도 출현했다. 또 청동기가 출현하였고, 그 외에도 공예품 생산이 활발해져서 교역이나 지배 계층에 의한 분배도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기의 민무늬 토기 문화는 중부의 유적명을 따서 송국리 문화(松菊里 文化)(충남 부여군 초촌면)라고도 불리는데, 특히 중남부에서 발전하였으며, 남쪽 분포 범위는 제주도에서부터 시작하여 북부 큐슈에도 영향이 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기 후반(서기전 700~서기전 550년경)에는 에는 청동기가 부장품으로서 나타났는데, 청동기는 중국 동북부에 유래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시기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직접 제작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기 민무늬 토기 시대 후반에는 대규모 무덤이 존재하며, 특히 남해안 지역에는 다수의 고인돌이 만들어졌으며, 청동기, 비취, 돌칼, 붉은 칠 토기 등의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민무늬 토기 문화는 벼농사 문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전기 및 중기에는 벼농사가 주요 작물은 아니었다고 추측되는데, 현재까지 발해 연안에는 당시의 논농사 유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논 벼농사는 대륙이 아니라 황해 남쪽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북부에서는 보리, 밀, 잡곡 등이 재배되었다고 한다.
민무늬 토기 시대의 후기는 서기전 550년에서 서기전 300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환호집락이나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취락이 증가하는 것을 볼 때, 분쟁이 격렬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남해안 부분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데, 취락 수는 전 시대보다 줄어들고 있어 소수가 모여사는 현상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야요이 시대의 시작은 민무늬 토기 문화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부 큐슈에서는 민무늬 토기, 고인돌이나 독무덤 등 한반도 남부의 민무늬 토기 문화와 직접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민무늬 토기 시대 중기 또는 후기에 해당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민무늬 토기 시대 말기에는 철기가 출현하며, 주거에는 온돌용 아궁이(炉, 노)가 나타난다. 또 중기에 북방에서 전해진 비파형동검(랴오닝식 동검)의 영향 하에 세형동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야요이 시대의 동검, 동모(방패) 등의 기초가 되었다.
보통 민무늬 토기 시대의 말기에 철기가 출현하였다고 하지만, 토기 양식의 연속성을 중시해 기원 전후를 포함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서기전 300년경부터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철기도 이 시기를 경계로 한반도 남부에 보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사회적 변화를 중시한다면, 민무늬 토기 시대를 이 시기까지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민무늬 토기 시대의 유적은 아래와 같다.
-제천 황석리 유적: 충북 제천군 청풍면 황석리
-부여 송국리 유적: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울주 검단리 유적: 경남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여수 적량동 유적: 전남 여수시 적량동 상적 호남정유공장내
-속초 조양동 유적: 강원 속초시 조양동
-울산 반구대 유적: (국보 제 285호) 울산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고령 양전동 유적: (보물 제 605호) 경북 고령군 개진면
-진주 대평리 유적: 경남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