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다는 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길 것도 없다. 게다가 프로바둑계에서 많은 나이로 성적을 낸다는 건, 어린나이에 성적을 내는 것만큼이나 주목받을 수 있다. 예전부터 바둑계에선 나이 든 사람의 선전을 목격하는 경우 보통 '고목(枯木)에 꽃이 핀다'라며 상투적인 칭찬을 하곤 했다.
최근 프로기사의 전성기는 보통 20대 초반에서 후반에 걸쳐 있고, 좀 더 긴 경우 30대까지도 연장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본선에 진입하는 기사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서다. 따라서 2010년 현재 '고목'들의 평균나이도 매우 낮아졌다.
3월 22일 제6회 물가정보배 본선에 든 유창혁 9단(45, 66년생)과 김강근 6단(32, 79년생)은 단연 돋보였다. 10대에서 20대 중반에 걸친 본선진출 기사들중 최고(最古)의 노익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창혁 9단은 이영구 8단을 이겨 본선에 진출했다. 유창혁 9단과 이영구 8단의 대국은 22일 10시 30분부터 바둑TV에서 진행됐었다. TV 스튜디오에서 나온 유창혁 9단을 짧게 인터뷰 했다.
▲착수하는 유창혁 9단 - 예선결승을 스튜디오 대국으로 치렀다. 오랜만의 스튜디오 대국이라 좀 불편하진 않았나? "2층 대회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예선결승을 치르는 게 당연히 편하다. 스튜디오 대국을 원하는 기사는 그리 많지 않을 거다. 그러나 필요하면 해야한다. "
- 40대 기사로는 유일하다. 이번 본선 진출도 이 대회 최고령이 분명하다. 힘들지 않으신지? "속기라서 빨리 끝나니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다만 짧은 시간에 집중을 해야 하니까 나이든 쪽이 불리하다. 체력적으론 힘들지만 실수를 줄이는 면에선 장고가 더 편하다. 말했다시피 체력면에선 속기가 이익이다."
- 오늘 이영구 8단과의 바둑도 고비였던 것 같다. 해설자(김영삼 8단) 말로는 이영구 8단의 복기 표정을 보니까 역전을 시켰다가 다시 재역전을 당했다는 그런 느낌이라던데? "초반엔 내가 좋았다. 이영구 8단이 젊고 강하니까 그 형세판단이 옳을 것이다. 중앙쪽이 아주 찜찜했는데 이 8단이 너무 과하게 공격했다. 내쪽에 탄력이 있어서 공격받았지만 좋다고 생각했다. 잡으러 오지 않고 괴롭혔으면 오히려 내가 힘들었을 것이다."
- 유창혁 9단의 목표랄까? 역시 우승인가? "그렇다, 성적을 내기 위해 계속 노리고 있다. 우승도 하고 싶다. 요즘 어린 기사들만 중요 승부에 등장하지 않는가? 나이든 쪽에서도 좀 해줘야 한다. 나이든 쪽에서 해줘야 시니어 팬들도 좀 더 재미가 있지 않겠나? 하하"
○●... 김강근 6단, 유창혁 9단 빼곤 모두 후배다
▲물가정보배 예선결승, 왼쪽이 김강근 6단, 오른쪽이 안달훈 8단, 중앙에 머리를 짧게 민 강동윤 9단(홍성지 8단을 이겨 본선진출, 4월초 최철한 9단과의 맥심배 결승2국을 남겨 놓고 있다.) 김강근 6단은 안달훈 8단을 이겼다. 최근에 본선 진출한 걸 본 기억이 잘 없다. 간단한 복기를 끝내고 2층 대회장앞에서 대진표를 확인하는 김 6단에게 짧게 물었다.
- 오랜만의 본선진출인 것 같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얼굴이 벌겋다. "기분이라, 하하. 별 생각은 없다. 흥분했다기 보다는 얼굴이 잘 벌개지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2008년 이후론 본선진출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 이번 예선은 어땠나? "다 힘들었는데 최규병 9단과의 대국이 힘들었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역전이 됐다. 안달훈 8단과의 대국에선 안 8단이 대마를 노리다가 망했다. "
- 30대가 되보니 승부가 어떻게 변하는가? 이전 20대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글쎄, 이전보다 승부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부담도 별로 없고, 마음도 오히려 편하다. 워낙 잘두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렇게 된 거다. 요즘엔 박정환이 제일 잘 두는 거 같다. "
- 이번대회의 목표라면 "본선 방식이 한번에 떨어지는게 아니라 '더블 일리미네이션(두번지면 탈락)'방식으로 돼서 마음에 든다. 8강이 목표다.
- 16강 리그에 어떤 대국자와 한 조가 되면 좋겠는가(무작위 추첨임) "유사범님(유창혁 9단)이 같은 조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나머지는 전부 후배들이다."
○●.. 말.말.말 유창혁 9단과 이영구 8단의 대국은 인터넷에서 수순중계됐다. 베팅은 이영구 8단에게 더 몰렸다. 유창혁 9단이 승리하면서 곡소리가 높았다. 어느 인터넷 회원의 목소리. [대화명, 우샤인너트] : "영구 때문에 '알'됐다. 연구생한테 지고, 노장한테도 지고,"
이영구 8단이 BC카드배 통합예선에서 연구생 나현군에게 지고, 또 이번에 노장인 유창혁 9단에게 지고 해서 이영구 8단을 믿었다가 손해가 컸다는 말. '알'은 거의 다 잃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6기 한국물가정보배 프로기전은 지난 3월 17일 예선을 시작해 22일까지 본선진출자를 확정했다. 최고령자인 유창혁 9단을 비롯해, 박정환,홍성지,이영구,이세돌, 허영호, 박정근, 홍민표, 김승재, 김강근 이 16강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제6기부턴 2009년 삼성화재배에서 도입했던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이 국내대회 최초로 도입된다. 16명의 본선진출자는 4명씩 조를 나눠 3번의 회전에서 두명이 탈락하게 된다. 각조 선정은 무작위 추첨이다. 이전의 본선 풀리그 방식은 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각조의 2명은 총8명이 되고, 8강토너먼트로 결승진출자를 가리게 된다. 대진은 무작위 추첨이다. 결승은 3번기이며 우승상금은 500만원을 증액해 3000만원이다.
○●..본선시드명단 본선 시드 : 김지석, 이창호, 박영훈, 안형준 후원사 추천 : 원성진, 박지은
○●..예선결승대진 목진석 - 박정환 : 박정환(19일 대국) 강동윤 - 홍성지 : 강동윤(20일 대국) 유창혁 - 이영구 : 22일 10시반 인터넷중계 - 유창혁 승 (45) 이세돌 - 윤준상 : 22일 13시반 인터넷중계 - 이세돌 승 허영호 - 강유택 : 허영호 승 이원도 - 박정근 : 박정근 승 홍민표 - 김주호 : 홍민표 승 이현호 - 김승재 : 김승재 승 안달훈 - 김강근 : 김강근 승 (32) 최철한 - 상대미정 : 24일 이후
[취재 : 최병준, 박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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