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아파트

[임대규]

삼풍아파트는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1973년 주한 미군용 임대 보증주택으로 지어졌다. 당시만 해도 주변이 거의 개발이 안돼 천혜의 자연 속에 둘러싸인 ‘전원아파트’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1990년 임대 보증기간이 끝나 미군들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내국인만이 살고 있다. 당시 시공사인 삼풍건설에 가구당 5천만~6천만 원씩의 임대 보증금을 주고 전세로 입주한 주민들은 예상치 못한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95년 삼풍건설 소유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였다. 그 여파로 삼풍건설은 부도를 맞았고 삼풍건설이 시공했던 이곳 또한 공개 처분이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전세금도 못 받고 길거리로 몰려날 뻔한 당시 주민들은 가까스로 주위의 도움을 얻어 5천만~6천만 원 정도의 추가 부담금을 내고 1997년 5월 소유권을 넘겨받게 됐다. 그렇게 홍역을 치룬 삼풍아파트는 35년 동안 주민들의 사랑받는 주거 공간으로 남아있다.

1970년대만 해도 아파트는 소수만의 공간이었고 ‘서구화의 상징’처럼 비쳤다. 그렇기에 당시 지어졌던 ‘외인 아파트’는 이국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2005년 현재, 외인 아파트는 대부분 허물어졌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구 두산동 삼풍아파트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외인 아파트로 아직 그 자리를 오롯이 지키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거주자가 모두 내국인으로 바뀌었지만 이국적인 아파트 모습은 여전히 눈에 띈다.

수성못 넘어 온통 하얗게 채색된 아파트 단지. 왠지 한국형 아파트와는 다른 느낌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점은 다른 아파트와 달리 건물들이 모두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주민 전성일(48)씨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같이 방향을 별로 안 따지기 때문에 북향 건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건물들이 산자락을 타고 층계 식으로 이어진다. 건물 1층은 다가구 주택처럼 높이 2.7m 정도의 주차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덕분에 아파트 주 도로는 널찍한 편.

54평 형인 전씨 집 내부로 직접 들어가 봤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드넓게 펼쳐진다. 다른 아파트에 비해 거실이 무척 크다. 거실 가운데로 이어지는 통로는 호텔 복도처럼 쭉 연결돼 방문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전씨는 “붙박이장이 많아 문이 6개이지만 실상 방은 3개”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각각의 방이 ??다. 주방을 지나자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뒷문이 하나 더 있다. 또한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이웃 간에 소통을 위해 이웃과 통하는 문까지 설치되어 있다.

주민 송방호(57)씨는 아파트 주위 환경이 환상적이라고 자랑했다. 특히 목련과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봄이면 아파트 전체는 꽃 세상으로 변한다고 한다. 송씨는 “건물이 좀 낡아서 그렇지 주위 자연환경이 너무 좋아 평생 살고 싶은 곳”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건물 옆에는 아파트 준공 때부터 심어진 35년 된 나무들이 모양 좋게 뻗어있다. 전씨는 “주변이 수목으로 둘러싸여 공기가 맑으면서도 도심 어느 곳보다 조용하다"라고 했다. 인근에 수성못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홍삼열(50)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아파트 감리를 미국 사람들이 직접 했기 때문에 건물 자체가 무척 튼튼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웃사촌

“지난해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걸 봤어요. 너무 고마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삼풍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2동 231호에 사는 석재현(34`사진)씨.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을 돕다 중국 당국에 잡혀 감옥생활을 했던 사진작가 겸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다.

그는 지난해 3월까지 14개월 동안 정겨운 아파트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2003년 1월 탈북 동포들의 한국행을 돕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14개월 동안이나 옥고를 치러야 했다.

2000년부터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의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는 그는 2001년 당시 취재를 하다 아직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던 탈북자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석씨는 “취재를 위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탈북자들을 돕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게 되었다”라고 술회했다.

그러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갖은 고생을 한 것. 석씨는 “제가 중국에서 감옥 생활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파트 주민들이 구명운동도 펼쳤다고 들었다”라고 고마워했다.

석씨는 이곳에 사는 게 더없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수목으로 둘러싸여 한적하고 무척이나 조용하다는 것. 무엇보다 가구수가 적어 주민들 간의 정이 살아 있다고 한다.

----------------------------------------------------------------------------------------

]"재건축하게 해 달라"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 하더라도 35년의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삼풍아파트 건물 곳곳에는 그 흔적이 역력했다.

주민 진소현(61`여)씨는 “비오는 날에는 빗물이 새고 배수 파이프는 녹이 슬어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오는 정도”라고 한숨을 내쉰다. 이렇기 때문에 주민들은 하루빨리 아파트 재건축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유원지 시설 지구로 묶여 있어 재건축이 어렵다는 것. 사정은 이렇다. 1973년 준공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주택 단지로 결정되어 있어 아파트 건립이나 재건축이 가능했다. 하지만 1979년 도시계획 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이 제정돼 유원지 내에는 주택단지가 들어설 수 없도록 법령이 바뀌면서 이곳은 느닷없이 녹지로 용도가 변경되어버렸다.

주민 조동제(64)씨는 “당시만 해도 미군들이 살고 있어 법이 바뀌는 데 별로 개의치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차피 임대 기한이 끝나면 이사 나가야 했던 미군들이었기에 그런 문제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1990년 임대 기간이 끝나면서 미군들을 뒤이어 입주한 주민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시공사 삼풍건설이 조씨는 “입주할 당시 재건축이 가능한 줄 알았다”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도시계획 변경을 줄기차게 대구시에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부지 자체를 대구시가 매입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로 도시계획 변경에 계속 난색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재정난 등을 이유로 부지 매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진씨는 “대구시에선 오래 전부터 이곳을 단계적으로 매입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

수성못 삼풍아파트 공원구역 해제

'공원 구역 해제' 숙원 해결

"집 손 못대 불편했는데…"

주거환경 개선 길 열려 환호

/사진=박진관기자

대구시 수성구 수성랜드 맞은편 삼풍아파트 전경.

수성못을 바라보는 삼풍아파트(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929의 1) 주민들은 요즘 기대에 차 있다.

'공원구역 해제'라는 숙원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최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삼풍아파트 부지(2만3천140㎡)를 자연녹지에서 1종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했다. 이달 중 확정고시만 남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삼풍아파트 부지에 4층 이하의 건축물이 새로 지어질 수 있게 됐다. 건폐율은 20%에서 60%, 용적률은 100%에서 200%로 확대됐다.

주민들은 "그동안 자연녹지로 묶여있는 바람에 노후한 아파트를 전혀 고치지 못했다"며 "불편했던 생활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대구시의 결정을 환영했다.

삼풍아파트 입주자모임 총무인 이종식씨(66)는 "수도관이 낡아 녹물이 나와도 손을 댈 수 없었는데 용도변경으로 깨끗한 집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풍아파트는 원래 주한미군 임대보증주택사업의 하나로 건설된 아파트이다. 삼풍건설이 미 국방성과 계약을 맺고 1973년 12월 완공했다. 90년말까지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머물면서 삼풍아파트는 '외국인아파트'로 불렸다.

6개동 72가구로 이뤄진 삼풍아파트는 90년 12월부터 일반인에게 임차됐다. 삼풍아파트의 소유권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삼풍건설의 부도로 97년 입주민들에게 넘어갔다.

수성구청측은 "입주민들이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면서 공원구역에서 해제해 달라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며 "이번 용도변경은 주민불편 해소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삼풍아파트 부지가 용도변경됐지만, 당장 재건축사업이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층 이하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사업성이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삼풍아파트 입주자모임측도 "재건축사업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 모두 집을 깨끗하게 리모델링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또다시 용도변경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지만, 수성못 일대의 환경을 생각하면 그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규모 재건축사업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