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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이후 50일째 되는 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약속한 성령님이 오시는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셨던 그날은 초대교회가 시작된 날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때 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있듯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그리고 나는 성령을 믿으며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부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 예수님 십자가 못 박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6: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 할 것이라
성령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세미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성령님은 항상 우리 겉에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헬:파라클레토스)란 다른 사람을 변호하기위해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혼탁한 이 시대를 살아갈 때 우리는 전적으로 성령님 도우심을 의지해야합니다. 그러면 길을 안내해주시고 영적으로 궁핍하여 있으면 영적으로 부요함을 주시고 연약하여 넘어질려고 하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스코틀랜드의 설교가 R.프르스 목사님이 어느 날 설교시간이 되었는데 목사님이 안나오셔서 교회 비서가 찾아갔습니다. 밖에서 들어보니 말소리가 들리기에 목사님 `누구와 대화 중인가 보다, 생각하고는 조심스러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비서는 잠시 후 가보니 또 대화를 하고 있어서 가만히 엿들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안가시면 나도 안갑니다"하며 누군가에게 사정하는 것을 듣고는 비서는 너무 궁금하여 문을 살며시 열고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무릎을 꿇고 목사님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제가 준비는 다했지만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가시지 않으시면 저 혼자 갈 수 없습니다"하면서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기다리고 전적인 도우심을 구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성령강림의 역사가 마가요한 다락방에서 시작된 예루살렘교회는 성령님을 체험한 제자들이 회개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한 유대인들이 가슴을 치고 회개했습니다, 제가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교회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흥의 역사가 건강한 교회로 나타났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내적으로 유무상통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교제하고 떡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교회 외적으로는 양으로 부흥 성장하여 12명 제자의 수가 70명 120명 3000명 5000명 허다한 무리가 교회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만큼 성령님의 능력은 예루살렘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대형교회나 전세교회나 오직 모델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슬로건처럼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은혜가 있는 곳에 시험 또한 강하게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읽은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 은혜로운 초대교회에 참! 하나님은 너무 하신다 이런 마음이 들 정도도 매우 슬픈 부부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2000년 전 처음 초대교회가 세워진 후 사도들로 통해 복음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를 섬겼던 평신도 부부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어느 날 예루살렘 교회 안에 유무상통 나눔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소문을 들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 중에 바나바라고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 발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이런 바나바의 아름다운 섬김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우리도 바나바처럼 이웃을 돌아보자며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았습니다. 그만큼 이들 부부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이고 삽비라는 청옥인데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이름을 삽비라 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부부는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믿음으로 살아가는 부부였습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교회 앞에 땅 값을 바치려고 하는데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가 조용히 머리를 맞대고 “여보, 교회에 다 바치지 말고 일부분만 바칩시다. 그리고 난다음에 사도들이 물으면 이게 다입니다. 이렇게 말합시다.” 이렇게 거짓말을 꾸민 것입니다. 이제 부부가 입을 맞추고 아나니아가 베드로 앞에 땅 판 값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도 베드로님 땅을 판값을 내어놓습니다. 교회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 순간, 성령님이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시기를 “ 아나니아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이 다입니까?” “예, 이것이 다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가 이야기 합니다.... “아나니야 성도님!!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은 팔기전에도 당신 것이고 팔때도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다 바칠 수도 있고 적게 바칠 수도 있고 그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거짓말로 성령님을 속입니까?” 이 말을 하고 나자 주의 영이 아나니아를 심판하시고는 그만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죽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난리가 났어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교회 안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죽은 아나니아의 시체를 메고 장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3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부인인 삽비라가 이 사실을 모르고 어디에 있었는데 교회로 들어왔습니다.(7절)
이때 베드로 사도가 물었습니다. 정말로 당신들이 교회에 낸 헌금이 이것이 다 입니까? 삽비라는 영문도 모르고 똑같이 이야기 합니다. “예, 그것이 다입니다.” 아나니야가 거짓말을 했으면 부인이라도 정직해야 하는데, 기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부인 삽바라도 똑같이 남편과 입을 맞추었기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예, 그것이 다입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똑같이 이야기 합니다. 당신 두 사람이 성령을 속이기로 공모하고 꾀하여 거짓말을 했으니 당신 남편을 장례 지내고 온 그 사람들이 들어오니 당신도 죽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부인 삽비라도 죽어 사람들이 메고 나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본문 마지막 11절....... 초대교회 성도들이 크게 두려워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 앞에 헌금하고 죽었는데 이런 사건을 성경은 감추지 않고 소개하는 것일까? 부부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다가 발생한 일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죽음을 보아야 할까요?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3절 하반절에 “성령님을 속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성령님을 속었다고 했는데 그 출발점은 2절보면 ....그 값의 얼마를 감춘것에서 비롯됩니다. 즉 재물의 일부를 하나님 앞에 감추고 속인 것입니다. 여기 '감추었느냐‘ 감추었다 헬라어 원문대로 직역해보면 '자기 몫을 떼어놓았다'는 뜻입니다. 바치고자 했으면 먼저 다 바쳤어야 했는데 자기 몫을 떼어놓는 행위, 이것이 바로 감추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훔친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제 것을 훔친 것입니다. 제 물건을 가지고 시험 당하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소유인데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함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지적 했습니다.
4절.....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땅을 팔기 전에도 팔때도 당신 소유이기에 마음대로 해놓고 다 내어 놓았다고 하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탐심의 마음이 아나니아에게 생겼기 때문 ㅒㅎ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 하나님 앞에 드린 처음 동기는 좋았지만 막상 자기 손에 들어온 재물을 보니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구약성경 여호수아 7장에 아간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점령하여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다 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아간도 노략한 물건을 내어 놓고자 하는데 살펴보니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금덩어리 얼마나 좋게 보이겠습니까?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내 놓으면서 너무 좋아 금 하나를 취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금보다 값이 적은 은은 몰래 장막 밑에 감추었는데 은을 장막에 숨길 때 아간은 이미 하나님명령은 온데 간데 없고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성이 있습니다. 선악과 열매를 아담이 바라보는 순간 보암직 먹은직 탐스러운 마음이 순간에 작동하여 “선악과 먹지말라” 하는 하나님명령은 아담의 마음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나니아도 아간도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 물질이 아주 미미해도 시험 들 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 앞에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성도들이 드린 헌금에 대해 3개월에 한번 씩 제직회 때 회계가 계수하여 투명하게 보고해 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부터 QT 책 대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책 대금을 지출하면 성도님들이 1000원씩 그리고 2000원씩 저금통에 넣었습니다. 매주 나온 것이 아니기에 교회에 적은 책값을 넣지 못하고 교회 필요한 것 지출하면 제가 메모하여 두고 사용 했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이것도 공금이기에 투명하게 잘 쓰다가도 개인적인 용도로 쓰고 채울 때 메모해 두어야 하는데 적지 않고 지나가다 나중에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더 많이 넣은 것인지 적게 넣은 것인지 판단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바로 메모하지 않으므로 시험 들고 계수가 분명치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선한 일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이 일을 해서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얼마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얄팍한 마음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하는 선행을 시기 할 수도 있습니다.
탐심의 마음이 누구나 작용하기에 성경은 탐심을 무섭게 말합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미미한 적은 것이라도 탐심을 극복하고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드린 헌금으로 거룩한 명예를 사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 삽바라 부부는 하나님앞에 헌금 반을 바쳤으면서 다 바쳤다는 칭찬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지만 칭찬은 사람들로부터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은 하나님께도 아니요 성령님도 아니요 그리스도도 아니요, 오로지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자신을 나타내려고, 사람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씁니다...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섬기며 구제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회당이나 큰 거리에서 사람들이 들으려고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마6:5) 다 사람을 의식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제가 적아도 기도의 방법이 좀 어설프다 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이미 받은 상이 크고 귀한데 더 이상 내 이름이 이 땅에서 드러난다면 천국의 상이 빛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사람 앞에 칭찬을 받으려 했습니다. 근본 동기는 자기 자신이 목적이지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부부의 행위를 용납치 않으셨습니다.
또 한가지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한 몸이지만 서로를 위해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1절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값을 팔 때는 서로 의논 했습니다. 2절을 보면 사도들 앞에 헌금할 때는 일부는 감추고 일부만 헌금하고 땅값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남편이 하는 일을 뻔히 알고도 아내 삽비라는 모른 체 한 것입니다.
둘 중 한사람이라도 잘못을 지적했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여보, 그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소? 만류 했어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보면 6절에...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말입니다. 불의를 기뻐하면 한 몸 된 부부라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부부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부부일수록 서로를 확인하면서 하나님 앞에 잘못을 지적하면 아내도! 남편도! 인정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잘못했습니다. 이런 부부가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은혜롭고 행복한 부부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충만하여 건강하고 은혜로운 교회에 찬 물을 끼었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사건 앞에 11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리라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사건을 접하면서 아하! 그렇구나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 사건을 통해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위축 되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더욱 경건을 찾게 되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믿고 주께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예루살렘교회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살고, 겸손하게 살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님을 속이게 된다면 죽음이라는 심판도 있음을 가르쳐준 두려운 말씀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을 통하여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보혜사로 함께 하십니다. 은혜로운 길로 바르게 인도하신 성령님의 도우심도 있지만 어떤 때는 째찍으로 따끔하게 성령님 말씀하실 때 세미한 음성을 듣고 바른 길로 인도하심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