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臥:엎드릴 와 薪:섶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섶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는다. 즉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딤을 비유함.
오나라는 손자병법으로 유병한 병법가 “손무”가 태어난 곳이다.
기원전 약 500 년 오나라왕 합려는 지금의 항주성 취리에서 월왕 구천에게 패하여 전사한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본국으로 돌아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섶 위에서 잠을 자고(와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옴
오왕 부차는 밤낮으로 군사를 훈련시켜 월나라를 향한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소식을 들은
구천은 대부 범려와 문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제 공격을 감행 하였다가 싸움에 크게 패하여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 으로 물러났으나 범려의 헌책에 따라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을 살려주었다.
포로가 된 구천 내외와 대부 범려 는 죽은 오왕 합려 의 무덤을 지기는 노비로 전락하여 본국을 떠나
오나라 에서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은 끝에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결정적인 귀국동기는 부차가 병을 앓아 누워있어 도저히 차도가 보이지 않자 구천이 직접 문병을
했다. 구천이 대왕의 변을 맛보고 싶다고 하여 부차는 변을 내어 주었다.
“대왕폐하 경하 드립니다
“한달 후면 병세가 낳아 저서 일어나실 겁니다”. 변의 맛을 보니 햇보리가 아직 익지 않아서
배탈이 난 것이오니 햇보리가 익을쯤 병세가 낳아지실 겁니다.
부차는 감동했다. 주위의 신하들을 불러놓고 ”경들 중 나의 변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시요?”
재상 백비는 “저희들은 차마 그리 못할 것 같습니다”.“대왕폐하 구천이 이제 충분히 반성하고
속국이 된다고 하오니 돌려보내 주시지요!”뇌물을 먹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충신 오자서는 간하였다 ”대항폐하 선왕이신 합려왕 의 유지를 잊었습니까?”원수가 코앞에 있는데
죽이지 않으시고 돌려 보내시려고 한다면 후일에는 반듯이 화가 미처 대왕께서 저리될 것이옵니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말에 화가났다. 대부 백비의 진언을 듣고 본국으로 돌려 보냈던 것이다.
구천은 돌아오자 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
으며(상담)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대부 문종과 범여는 오나라를 침공하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짰다. 속국으로서 월나라 에서 생산
되는 특급 목재를 오나라에 보내어 화려한 궁전을 짖게 만들었고, 젤세미인 인 서시와 정단을 부차에
게 보내어 충성심을 과시하였으며, 풍년이 들었다고 오나라 에서 생산된 최고의 쌀도 부차에게 보내
어 두 마음이 없음을 믿게 만들었다.
침어낙안 의유래: 물고기가 물에 비친 서시를 보고 부끄러워서 물속으로 숨고, 날아가는 기러기가
이들(서시와 정단)의 외모에 놀라 떨어진다. 그만큼 미색이 띄어나다 는 뜻임.
대부 범여는 이제 어느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보고, 구천에게 오왕 부차를 직접 문안하고 월나라가
이번엔 흉년이 들었다고 곡식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게 한다. 오자서가 말했다”대왕폐하! 이는 분명
구천이 전쟁준비를 위하여 곡식을 빌리려고 하니 이 기회에 죽여서 추후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요!”백비도 만만치 않았다. 갑론을박 끝에 부차는 속국의 백성들을 위하여 곡식을 내어었다,
다음해엔 월 나라가 풍년이 들어 다량의 씨앗을 오 나라에 바처왔다...
오왕 부차는 흡족했다.. 오자서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곡식을 내어 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하여 구천은 더욱 충성을 할테고… 이제는 오자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일마다
반대하니 선왕 때의 충신이 아닌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차후 오자서는 부차가 보낸
촉루검 으로 자결을 하는데…..
그러나 구천이 부차왕 에게 받친 다량의 씨앗은 보리가 열리지 않는 씨앗으로 일년후 추수때 수확이
되지 않아서 오나라의 백성들이 굶주림에 처하게 된다. 부차는 식량을 월나라에 요청하게 되지만…
아~~~ 때는 늦으리라… 12 년의 세월을 상담 하면서 오늘을 기다렸는데.. 어찌 식량을 내어 줄리가
있겠는가? 결국 7 년후 구천은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절강성 정하)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범여가 보낸 칼에 자결을
한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오월동주”는 오 나라와 월 나라는 같은배를 탄다. 즉 원수지간 이라도 어떤 목적이 있으면 의기
투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란 충신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백비 라는 간신에 귀가멀어 나라와 사직을
잃었지만, 월왕 구천은 범여와 문종”이 있었기에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 하지만 날으는 새가 없어지면 활을 부러 뜨리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을 삶아 먹는다고 했는가”
대부 범여는 떠나면서 친구인 문종에게 “구천은 고생은 함께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
할 수 없는 인물” 이라고 충고해 주었건만, 결국 문종은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다가 반역의 오해
을 받고 살해 되었고, 후에 한나라 때 한신도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 에게 토사구팽 되었으니 옛것을
거울로 삼으면 왕조의 교체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니 였음을 증명하여 주었다.
당나라 2 대왕 당태종 이세민은 충신인 위징이 죽고난뒤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의관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리로 거울을 만들었고, 옛것을 거울로 삼으면 왕조의 교체를
알수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정사의 득실을 알수 있다고 하더니, 오늘은 슬프게도 거울 하나를
잊어버렸구나” 라고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와신상담, 오월동주, 침어낙안, 토사구팽의 유래가 이 대강의 줄거리에서 유래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거 절대 뻥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