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장이 중학생이던 1980년에 대한민국의 맥주시장을 양분하던 동양맥주주식회사(현 오비맥주주식회사)와 조선맥주주식회사(현 하이트맥주주식회사)가 거의 동시에 체인점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OB베어스(프로야구단)의 곰 캐릭터를 앞세운 ‘OB베어’와 바이킹 캐릭터를 앞세운 ‘크라운비어’가 각각 그 것입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회사 모두 ‘목로주점’을 컨셉으로 잡았던 것 같습니다. 동네 어귀의 목 좋은 곳에 입지하여 샐러리맨들이 퇴근길에 별 부담 없이 들려 생맥주를 마실 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를 썼습니다. 인테리어도 목로주점에서 차용한 듯 작은 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앙부에 긴 목로(木櫨)를 두었습니다. 벽면에는 좁은 목판을 테이블 삼아 길게 이어 붙여 혼자 온 손님이라도 면벽수행(?)을 하며 남의 이목에 신경 안 쓰고 술을 마실 수 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게다가 생맥주는 500cc 한 잔에 380원, 안주는 봉지 땅콩, 봉지 멸치, 봉지 김 등 구멍가게에나 매달려 있음직한 것들을 개 당 100원씩에 팔았습니다. 맥주가 고급술로 인식되던 때라 상당한 파격이었습니다.
을지OB베어/을지로3가, 서울
OB베어는 현재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죽한 원통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유리잔을, 크라운비어는 배불뚝이 오크통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유리잔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500cc잔이 대세지만 당시만 해도 1,000cc잔이 대세이던 시절이라 500cc잔으로 주문을 하면 졸장부라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소영웅심을 표출하고픈 대장부라면 1,000c잔을 단숨에 비워야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갑판장도 소싯적에 종종 그 짓을 했었음을 고백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동네 생맥주집과 포장마차를 드나들었다나 뭐래나...암튼 그 덕분(?)에 당시의 사정을 이리 전달해 드릴 수 있으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잘 된 일일 수도(퍽!) -.,@ 죄송합니다.
을지OB베어/을지로3가, 서울
사진 출처 :친구인 준아빠블로그에서 훔쳐 왔습니다. 문제제기시 달팽이가 담을 넘어 가는 속도로 삭제하겠습니다.
갑판장이 아는 한 크라운비어는 이젠 노땅들의 추억 속에서나 존재할 뿐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습니다.(혹시 영업하는 곳이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하기사 1993년 발매한 하이트맥주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1998년에는 아예 사명까지 하이트맥주주식회사로 바뀐 마당에 이제 와서 크라운맥주나 크라운비어 타령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지만 OB베어는 그 흔적을 서울 한복판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을지로3가 속칭 노가리골목에 있는 OB베어(현재는 을지OB베어로 간판을 교체)가 36년이 지나도록 개업 당시와 그닥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창업주 강효근 씨(1927)는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여전히 출근을 하신답니다. 물론 주도권은 일을 거들던 딸에게 넘어 갔습니다만...
을지OB베어/을지로3가, 서울
사진 출처 : 친구인 준아빠블로그에서 훔쳐 왔습니다. 문제제기시 달팽이가 담을 넘어 가는 속도로 삭제하겠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을지OB베어’에 대해 좀 더 언급을 하겠습니다. 그 집에는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1980년 개업 때부터 있던 것들인데 (파란색 곰 캐릭터가 그려진)외부돌출간판과 외부전면간판(아쉽지만 작년에 새로 교체), 20리터들이 생맥주통을 통째로 넣고 냉장보관 하는 토출기(코브라)가 달린 냉장고(몇 년 전에 원래의 토출기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돼서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가장 구닥다리 토출기로 교체), 이 집의 역사만큼 오래된 생맥주잔들 등입니다. 이제는 닳고 닳아 예전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고, 또 이미 용도 폐기된 것들도 따로 잘 보관해 놓았답니다. 외부전면간판을 바꾼 이유는 작년에 오비맥주(주)에서 스몰비어 붐에 편승해 다시금 ‘OB베어’를 간판으로 내걸고 새롭게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에 차별성을 두기 위해 독자적으로 ‘을지OB베어’가 박힌 간판을 내걸었답니다.
을지OB베어는 독특한 운영방식으로도 유명합니다. 지금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지만 예전에는 오전 7시부터 문을 열고 영업을 했었습니다. 근처에는 밤을 새우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퇴근길 목축임을 위한 배려였답니다. 또 다들 급속냉각방식으로 시원한 생맥주를 뽑는데 이 집은 개업 당시의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장시간 냉장 보관한 생맥주를 손님께 제공합니다. 여러 조건을 감안해서 갑판장은 후자의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
을지OB베어/을지로3가, 서울
사진 출처 : 친구인 준아빠블로그에서 훔쳐 왔습니다. 문제제기시 달팽이가 담을 넘어 가는 속도로 삭제하겠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노맥(노가리에 맥주)의 원조집으로도 알려졌습니다. 1천원 짜리 왕노가리 한 마리만 있어도 생맥주 두어 잔 쯤은 거뜬히 마실 수 있습니다. 손님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일단 생맥주 한 잔에 노가리 한 마리가 기본입니다. 2015년의 서울 한복판에서 단돈 4천원으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더군다나 낮술도 가능하고 혼자서도 떳떳하게 출입을 할 수 있으니 거듭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을지삼합/을지OB호프, 서울
마지막으로 이 집을 이용하는 재밌는 팁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귀뜸 해주지 않은 매우 핫한 꿀팁입니다. 이 집(혹은 그 골목)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갑판장의 친구(준아빠)와 여사장님(따님)간에 통하는 은어가 있습니다. ‘삼합’과 ‘코스’가 바로 그 것입니다. 삼합은 이 집의 인기메뉴이자 그 친구가 좋아하는 안주여서 늘 주문하는 노가리, 멸치, 땅콩을 한꺼번에 달라고 할 때 쓰는 은어이고, 코스는 앞의 세 가지를 하나씩 천천히 달라고 할 때 쓰는 은어입니다. 이 은어가 정해지던 날, 그 역사적인 현장에 갑판장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지난 주 금요일 오후(2015년 3월 20일 오후 4시경)에 있었던 일이지만서도...끝!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김유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첫댓글 추억을 한 잔 마셨구만...ㅎㅎ
서울 구경 가야 할텐디 ~~~~~
에혀..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백리 밖이라 시름만 깊어지누만요.
날 버리고 간곳이 겨우 여기더냐? 한잔 생각나네...
내 형편엔 여기도 과분한데..
부산은 안가냐?
18일 간다.
@강구호 갑판장 하 모 원장이랑..
허 모 씨는 현지에서 접선하고..
음 다음주구먼 오키
12:10, 만수스시 3명 여약이라 한 자리 여유 있구만
열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