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약사암
일시 : 2022.06.16(목) 10시,
참가 : 동명강공수 봉창문김상문 월봉김영부 산해김재일 석당나종만 춘강박남용 아석양수랑 월전윤상윤 밝뫼윤정남 춘산이용 환 서정정원길 등 11명
불참 : 가산장휘부(가족 모임) 송헌최문수(당분간 쉼)
회 비 : 0원
지 출 : 88,000원(김치찌개 11)
잔 액 : 0원
이월잔액 : 533,000원
총 잔액 : 445,000원
부곡정에는 9명(강공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등)이 모였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2명(김상문 정원길)이 합류하였다.
우리는 10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내가 맨 먼저 입을 열었다.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였다.
우리 마을에는 제주양씨 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리 마을 출신 종씨 제주양씨 유격공(학포공파) 24세 양재수(梁在洙, 35년생, 순천사범, 연서산업개발(주)회장)라는 분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상경하여 크게 성공한 분이다. 그 분이 지난 6월 14일(화) 금의환향하여 귀향행사를 하였다. 1)선조님 산소에 성묘하기 2)참가자 점심 대접 3)녹차 시음행사 체험 4)참가자 위로 등이었다.
며칠 전 제주양씨 유격공(학포공파) 보성종회 28세 종손녀 양충남(梁忠男, 53년생, 녹차 연구가) 질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 계신 재수(在洙) 대부님이 고향을 방문하여 입보성조(入寶城祖) 응자덕(應字德, 제주양씨 유격공 학포공파 12세) 선조님의 산소에 성묘를 할 것인데 그날 동참해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 기꺼이 그 행사에 동참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날이 되어 6월 14일(화) 10시에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가신동에 있는 우리 문중 제각(祭閣)으로 갔다.
거기에서 재수(在洙)대부와 그분의 아들 삼형제 중 장남 광회씨(光會, 62년생, 延世大, 연서산업개발주 대표이사)와 장손 승준(承俊), 그리고 차남 태회씨(汰會, 64년생, 高麗大, (주)비상교육 CP & CEO)와 손자 승민(承旻), 그리고 삼남 원회씨(圓會, 66년생, 中央大, (주)한빛에듀대표이사)와 손녀 등 7인이 도착하여, 간단히 수인사(修人事)를 나누고, 제각 뒤에 있는 우리 도선산(都先山)으로 올라갔다.
유격공(학포공파) 보성종회 28세 홍열(弘烈, 60년생, 慶熙大, 삼배 연구가) 종손의 안내로 재수(在洙) 대부님의 가족 7인과 함께 입보성조이신 응자덕(應字德) 선조님과 함양(咸陽)오씨(吳氏), 전주(全州)이씨(李氏) 두 할머니 산소에 성묘하였다. 조화(弔花)를 올리고, 간단한 제수(祭需)를 차린 다음, 작주(酌酒) 진작(進爵)하고, 사배(四拜) 씩을 하였다.
다시 제각으로 내려와 재수(在洙)대부께서 그 분의 가족들은 한 분 한 분 소개하였다. 그 중에서 둘째 아드님이신 태회(汰會)씨 차례에서, (주)비상교육이 발행하는 초중등교과서와 (완자)입시문제집 등(권당 평균 두께 약 1,8㎝)을 쌓아 놓으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8,840m)의 3개의 높이와 같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그 사업이 얼마나 번창하였는가를 증명하는 말이다. 그리고 (주)비상교육은 지난 1998년에 설립하여, 2004년에 코스피에 상장하였고, 여기에서 창안 생산되고 있는 초·중등교과서와 중등인터넷학습시스템이 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 국가로도 수출 중이라고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창의성 하나만을 가지고 ‘교육출판문화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양태회 CP & CEO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참석한 모든 남녀 종언(宗彦) 들에게 봉투를 주면서, 오늘 응자덕(應字德) 선조님의 자손으로서 출향하였다가 성공하여 고향을 찾은 자신의 행사에 함께 해 주신 고마움에 대한 답이라며 거마비(車馬費)를 선물로 주셨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거금 25만원이 들어 있었다. 참석자가 30명쯤 되었고, 3마을(가신동, 텃골, 박실)에 각각 100만원씩을 따로 주었으며, 식당 점심 식사비 등을 합하면 1,000만 원 이상을 쓰신 것이 된다. 재수(在洙) 대부님이 이번에 쓰신 돈이 본인에게는 큰돈이 아니겠지만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로 그런 행사를 하신 분은 처음이어서 크게 마음 쓰신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런 종언(宗彦)을 둔 우리 문중이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분의 아들 3형제가 다투어서 아버지를 보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들 교육 잘 시키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너무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약사암까지 올라갔다가 하산하던 도중에 증심사 일주문 입구에서 정원길을 만나 벤치에 앉아 쉬면서, 어떤 기타리스트의 기타 연주를 흥겹게 들었다.
우리가 금주의 노래를 부를 정자에 도착하였다. 김재일과 김상문이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먼저, 저 지난 주에 불렀던 ‘비목(碑木)’을 복습하여 불러 보았다.
우리가 부를 금주의 노래는 ‘향수(鄕愁, 징지용 시, 김희갑 작곡)’ 였다. 먼저 동명이 이 노래의 배경을 설명하였다. 시인 정지용은 충남 옥천출신으로 6·25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그의 사망 일이 분명치 않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서정시였지만 납북 인사였기에 한 동안 홀대를 받기도 하였다.
가요를 많이 작곡한 김희갑이 이 시에 곡을 붙였지만, 맨 처음, 서울 대학 교수이자 성악가 박인수와 가요 가수 이동원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른 뒤에는 가곡으로도 많이 부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박인수는 한때 클레식계에서 상당한 비난을 받았고, 국립 오페라단에서 제명까지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크로스오버’ 시도가 우리나라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오기도 하였지만 이후로 그런 시도가 일반화되기도 하였다.
이 시에 등장하는 토착어 들은 지금까지도 너무 친근하고 그리운 언어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해설피’는 ‘해가 설핏해진, 해의 밝은 빛이 약해진 모양, 즉 해질 무렵’이고, ‘함추름’은 ‘함초롬’이 바른 말이고 뜻은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차분한 모양’이다.
몇 년 전 감상문이 옥천군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 들렀다가, 시비(詩碑)에 적힌 시가 너무 좋아, 당장 그 자리에서 시를 암기하였다고 하였다. 지금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시 5연을 한 구절도 어김없이 차분히 암송하였다. 우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시 암송(暗誦)에 화답하였다. 김상문은 이번에도 기인(奇人)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한 편, 지난주에 내가 악력기(握力機)를 선물하였는데, 나종만이 자기는 쓸 가치가 없어서 다시 반납하겠고 하였는데, 김상문이 악력기를 받은 그날 겨우 3개를 하였는데 날마다 연습한 결과 이제 100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용한 결과를 보고하니까, 나종만이 마음을 바꾸어 자기도 한 번 시도해 보겠다면서 반납의사를 철회하였다. 정말 바람직한 반응이어서 마음이 흐뭇하였다.
우리들이 주마다 회비(1만원)를 갹출하여 식대로 지출하고 1~2만원씩 남아 적립된 잉여금이 50만원이 넘어서, 내가 그 돈을 간수하기도 부담이 되어 20만원이 남을 때까지는 회비 없이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첫댓글 아석의 대부되시는 양재수님의 금의환향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양재수님의 애족하시는 모습이 우리 가문에도 깃들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해 보았습니다.
노익장의 건강을 유지하며 오랜우정 즐거운 만남이 계속 되기를 기원 합니다.
위의 내용을 재수대부님의 큰 아드님이신 광회씨에게 보내 드렸더니, 온 가족이 둘러 보시고는 재수대부님께서 너무너무 흐뭇한 마음으로 너털웃음을 웃으시면서, 저에게 우리 목요산우회원들이 등산하고 내려와서 막걸리라도 나누어 마시라고 기쁜 마음으로 금일봉(50만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은 재수대부님의 넓은 마음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마시고, 우리 재수대부님 가족의 화평을 빌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