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문은 종종 광고용 스티커로 얼룩이 지는 장소이다.
우리 아파트는 두어 달전에 내부 도장공사를 해서 복도와 현관문이 산뜻하게
페인트 옷을 입었다.
누덕거리던 스티커 자국도 없어지고 벽면의 오래된 때도 씻겨서 볼수록 기분이 좋다.
그런데 몇 날도 못되어 또 다시 광고용 스티커가 붙여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심적인 광고주는 자석식 광고판을 만들어서 현관문에 붙이는데,
재래식 광고주는 전화번호를 크게 강조한 끈끈이 스티커를 인정사정 없이 붙여놓는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의 현관문 손잡이를 잡다가 순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도어키의 아래에 열쇠집 스티커가 붙여있는 것이었다.
보통 열쇠집 스티커는 조그맣게 손잡이에 붙이는 편이고 그래서 쉽게 떨어지는데,
그 스티커는 페인트가 칠해진 문에 붙여져서 잘못 떼다보면 페인트가 벗겨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손톱으로 긁어보니 예상대로 잘 떨어지지도 않고 문에 자국도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나중에 물 묻힌 걸레로 적셔가며 떼었다.
번번이 스티커와의 전쟁을 벌이면서....광고하는 업자들이 어쩌면 그렇게 제 입장만
생각하나 하는 야속한 생각이 들곤 한다.
남의 현관문과 복도를 자기의 광고 스티커로 얼룩지게 해놓는 것을 개의치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우리 아파트는 도색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보기에도 깔끔한데 조심하는 마음도
없이 그렇게 붙여대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피아노를 조율하던 때가 생각난다.
피아노 조율이 끝났다길래 값을 치루고 보니 피아노의 전면에 조율사의 전화번호가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져 있었다.
순간 그 조율사의 수준을 알 것 같았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 광고는 역효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누가 피아노 전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싶으랴.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서비스의 다른 면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서비스일 것이 뻔하니까.
요즘은 교육 수준도 높다보니 고객들의 요구수준이 무척 높다고 한다.
그래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경영전략을 짜느라 기업들도 고심하고, 자영업자들도 노력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그런 전략의 기본은 고객의 눈높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고객을 놓치기 때문이다.
광고용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만 보아도 알 것 같다.
고객중심인지 판매자중심인지.
판매자 중심의 스티커는 오늘 아침처럼 소비자를 불쾌하게 만든다.
그런 스티커를 보고 전화해서 주문할 마음이 싹 사라질만큼.
그런식의 판매자 중심적 사고야말로 유아적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유아들은 뭐든지 자기중심에서 생각하니까 말이다.
인간의 본능상 완전히 자기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광고를 할텐데..
나를 불쾌하게 만든 광고용 스티커를 통해서 '자기중심적 사고', '유아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