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1. 주일예배설교
사무엘상 15장 1~31절
우리의 신앙 행위의 이유는 합당한가?
■ 이유 없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품에도 이유가 있고, 배고픔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넘어지는데도 이유가 있고, 숙제를 못 한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합당한 것이 있고, 변명인 것이 있습니다. 합당한 이유는 설득력이 있으니 수긍이 갑니다. 물론 변명도 그럴듯하면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핑계는 다릅니다. 야비함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신앙 행위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왜 기도했는지, 왜 찬송했는지, 왜 말씀을 묵상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순종의 이유, 헌신의 이유, 사랑의 이유, 믿음과 소망의 이유 등등, 모든 신앙 행위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합당한 것이 있고, 변명인 것이 있습니다. 합당한 이유는 설득력이 있으니 수긍이 갑니다. 특히 말씀에 입각한 신앙적 이유이면 100%의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변명도 그럴듯하면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자체가 부족함을 갖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변명은 양해 가능합니다. 이에 신앙인도 인간입니다.
그러나 변명도 변명 나름입니다. 핑계에 가까운 변명은 설득력이 쉽지 않습니다. 핑계는 야비함이기 때문입니다. 음흉한 속마음을 감춘 채 경건한 척하는 태도가 핑계인데, 이런 핑계는 곧 그 구차함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본문은 우리의 신앙 행위의 이유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사울 왕의 경우에 빗대어 가르치십니다. 합당한 이유, 변명의 이유, 핑계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며, 모든 신앙 행위에 믿음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라고 가르치십니다. 자,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애굽 생활에서도 그랬지만, 출애굽 후 광야 40년의 생활 끝에 들어가 만난 가나안 문화는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었고, 체계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이유는 다스리는 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지도자만 있지 왕이 없기에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내가 왕인데 무슨 왕이 필요하냐?”고 하셔도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도와 조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충분한지 아시기에, 왕위와 왕권이 오히려 백성을 얼마나 옥죌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한 생떼에 결국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마지못해 허락하신 첫 번째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도와 조직이라는 것은 아무리 완벽한 개선을 애써도 여전히 불충분합니다. 인간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불완전한 인간이니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리 공을 들이고 수고를 해도 불완전한 제도일 뿐입니다. 정치제도, 경제정책, 사회조직, 문화생활 모두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세계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해집니다.
사울 왕의 시작은 겸손했습니다. 작은 자의 태도로 살았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자신을 작은 자로 여겼고, 하나님 앞에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낮은 자를 들어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여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울의 초기는 경건 그 자체였습니다. 겸손에 입각한 철저한 순종적 삶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삶, 이것은 경건이기에 사울의 삶은 경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이 경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달이 날 일을 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 사항을 자기식으로 결론을 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 사항은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인즉,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나왔을 때, 그 길을 막고 대적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막고 대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일에 대한 심판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지시에 사울은 즉각 순종했습니다. 군대를 꾸려 아말렉을 쳤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시 사항을 자기식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8~9절입니다.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의 지시 사항을 전적으로 순종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진멸했지만, 좋아 보이는 짐승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울이 내놓은 이유는 20~21절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어떻습니까? 경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살려 두었다니 말입니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 이 이유는 합당하고 아름답습니다. 혹시 전후 사정을 알더라도, 이것은 꽤 괜찮은 변명입니다. 설득될 만합니다.
그러나 이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매섭습니다. 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의 변명은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핑계를 대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물질로 본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방기(放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버리고, 하나님을 돌아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결국, 이런 패착의 결과는 ‘버려짐’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 전해 듣자마자 자신의 범죄 사실을 회개했습니다. 24~25절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울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즉각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을 붙잡고 애걸복걸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셨던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혹시 하나님이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삼세번이니 적어도 한 번쯤은 봐주실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나요? 사울이 하나님의 결정 이후에도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계속 인정했고, 간절히 경배도 드렸으니, 이것으로라도 봐줄 여지가 있으셨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시나요? 30~31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보는 대로라면, 이전보다 더 경건해 보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속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경건이 아니라 탈출구를 찾는 자기 꼼수입니다. 그러므로 봐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더욱이 사울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니 말입니다. 다윗이어도 똑같을 수 있지만,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하나님의 결정하심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이유가 있으십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고 순종하고 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진리 안에서 더욱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늘 질문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 행위의 이유는 합당한가?> <나의 지금의 이 신앙 행위는 하나님께 떳떳한가?> <나의 이 신앙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가?>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이, 변명도 핑계도 없는 늘 당당하고 멋있는 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