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충신(忠臣)이라는 말의 뜻을 잘 알지요? 맞아요.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뜻하는 말이에요. 그럼 고려시대의 대표적 충신은 누구일까요? 조선을 세우려는 이성계에게 맞서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정몽주랍니다. 그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는 누가 꼽힐까요?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왕이 된 세조에게 맞섰던 여섯 명의 신하(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랍니다. 이들은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모시려 했다가 결국 죽음을 당해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린답니다.
오늘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역사공원으로 찾아가 볼게요.
역사공원 안에는 사육신 역사관과 사육신묘, 사육신비 등이 있어요. 사육신 역사관에 들어가면 여섯 명의 신하가 목숨을 바쳐 충성한 이유를 살펴볼 수 있어요. 사육신이 모신 단종은 세종대왕의 손자예요.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은 아버지 곁에서 왕의 덕목을 배우며 자랐는데 왕이 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그래서 문종의 어린 아들이 왕이 됐는데 그가 바로 단종입니다.
- ▲ 사육신 역사공원에 있는 사육신묘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문화재청
단종이 왕이 된 때가 열두 살이니 여러분 나이와 비슷하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도와주는데 단종에겐 그런 어른들이 없었어요. 이런 상황을 잘 알았던 문종은 죽기 전에 자기가 신뢰하는 신하 김종서와 황보인에게 특별히 단종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단종은 이들과 의논하면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왕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수양대군이었어요. 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즉 단종의 작은아버지죠.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가 신하들과 함께 정치를 하는 것이 영 마땅찮았습니다. 신하들의 권력이 커지는 것도 싫었어요. 어느 날 수양대군은 김종서 집을 습격해 김종서와 그의 아들을 살해합니다. 믿고 있던 신하들이 삼촌의 손에 죽음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자 단종은 몹시 두려워졌어요. 모든 권력을 쥔 삼촌은 끊임없이 왕권을 위협했고, 결국 단종은 뒤로 물러나고 삼촌이 왕의 자리에 앉도록 합니다. 왕이 된 수양대군, 그가 바로 조선 제7대 왕 세조입니다.
단종을 왕으로 모시던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신하들은 단종이 다시 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조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함께 준비하던 김질이라는 인물이 불안한 마음에 그만 비밀을 털어놓고 맙니다.
이제 사육신 역사관을 나와서 여섯 신하의 묘가 있는 곳으로 가볼게요. 신하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양대군이 어떻게 했을까요?
세조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성삼문과 박팽년이 '전하'라고 부르지 않고 '나리'라고 불렀던 거예요. 수양대군 시절에 불리던 호칭을 썼으니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들은 또 세조가 왕이 된 이후부터는 나라에서 받은 양식을 하나도 쓰지 않고 곳간에 쌓아뒀어요. 이것 역시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세조는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성삼문에게 형벌을 가해 죽입니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이개, 하위지도 마찬가지로 살해됐지요. 박팽년과 유응부도 형벌 끝에 죽고 맙니다. 유성원은 동료들이 모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이들에게 사육신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생육신'이었던 남효온입니다.
사육신 역사관 뒤에 사육신묘가 있는데 여섯이 아니라 일곱이에요. 그 이유가 뭘까요? 역사적으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원래 이 자리엔 성삼문, 이개, 박팽년, 유응부의 묘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하위지, 유성원의 묘는 그 이후에 임시로 세운 것이에요. 끝으로 사육신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이 됐던 김문기의 임시 묘를 세움으로써 지금의 일곱 묘가 된 것입니다.
[1분 상식] '생육신'은 누구인가요?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후에 벼슬 없이 단종을 평생 추모하며 살았던 여섯 명의 신하를 가리켜 '생육신(生六臣)'이라고 합니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을 비롯해 남효온,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가 생육신으로 꼽히지요. 남효온이 쓴 '추강집'에는 사육신의 이름 하나하나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세조는 사육신을 죽인 것도 모자라 가족 중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다 노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