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행 배편은 명절 전이라 사람도 차도 만원이라 하선하는데만 1시간이 걸렸습니다. 완도항에 도착하면 차량선적한 승객들이 먼저 내려가야 하는데 오늘은 줄이 하도 길다보니 태균이가 그만 줄에 떠밀려 먼저 내려가 버렸습니다. 뒤처져서 내려간지라 걱정을 했는데 정확한 층수와 위치를 잘 찾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향감각이나 위치파악, 숫자외우기는 순식간이지만 꽤 정확하게 합니다.
비록 시간걸려서 배에서 빠져나왔지만 잠깐잠깐 화장실 가기위해 졸음쉼터에 들렸을 뿐 내처 달려 분당 준이 집까지 오니 오후 4시입니다. 작정하고 먹을 것들 준비해서 차 안에 미리 넣어놓았더니 굳이 휴게소에 들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휴게소에 가봐야 별 시덥지도 않은 먹을 것들에 비싼 값을 치뤄야하니 늘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성비, 가심비 최악이 휴게소 먹거리들입니다.
그렇게 4시에 완이는 엄마차에 태워보내고 그 동안 입었던 옷가지들 모두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다 넘겼습니다. 오늘 완이가는 날인데 어제 늦게까지 연락도 없고 먼저 카톡하니 그 때서야 답변이 오는 것으로 보아 완이와 새로 시작될 시간들에 생각이 많아진 듯 합니다. 힘든 일을 누군가 대신해주면 은근 중독되기 마련이죠.
그렇게 완이를 떠나보내고 준이를 데리고 올라갔더니 준이집 요양도우미 분이 대뜸 화부터 냅니다. 자기한테 연락도 없이 데리고 왔다고... 준이네 집에 올 때마다 당한 일이라 뭐 화낼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버틴다는 그녀는 목소리톤이 높고 늘 혼내는 기운이 가득해서 그녀의 하느님이 참 힘들겠다 싶습니다. 저를 통학도우미 쯤으로 생각하나 싶기도 한데 원래 성정이 센 사람같습니다.
준이네를 거쳐갔던 서너 명의 준이엄마 전담 요양보호사들을 지켜보면서, 감정기복이 시시각각 다르고 가끔 정신나간 소리나 사람 복창두드리는 소리가 워낙 상습적인 준이맘 상태인지라 그녀들이 지쳐있는게 훤히 보입니다. 지금 하시는 분은 성정이 워낙 세서 그런지 그런데로 기를 눌러가며 버티는 듯 합니다. 어찌보면 이 싯점에 준이집에 꼭 필요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불행한 가정사입니다. 준이 돌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고, 준이누나한테 일정을 다 보내주었건만 그녀에게까지 보고하라는 볼멘 센소리는 마음넓은 제가 그저 담아두어야지 어쩌겠습니까? 준이 등본이전 문제 때문에 준이 큰아버지랑 준이누나랑 미팅한다고 해놓고도 집에 도착해서야 오늘 못 할 것 같다고 하니, 무엇보다 준이가 딱할 뿐, 그리고 이제 등본이전도 크게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준이아버님도 냉담한 편이긴 했지만 죽음에 그렇게 빨리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머리가 복잡했었겠는지 백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싫어' '아니야'를 외쳐댈 때 준이에게서 보이는 앙칼짐과 언어적 공격성은 준이가 얼마나 사랑을 배우지 못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너를 사랑해'라는 믿음을 주어야만 통합니다. 암튼 복잡합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제가 관여할 수도, 관여할 필요도, 관여할 건도 아니기에 아무런 감정을 갖지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태균이와 단둘이 남자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소중한 둘만의 시간을 즐기는 기쁨! 저녁은 뭘 먹을까? 태균이가 내비게이션 주소치는 칸에 '낙지볶음'이라고 써줍니다. 그리고 또 어디갈까? 했더니 '영화'라고 씁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용인에 가면 웡카 보러 영화관가지고 노랠했더니 그걸 쓰네요. 차타고 갈 때 내비게이션 화면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태균이와의 소통수단으로 아주 좋습니다.
신나게 낙지볶음먹고 땀 좀 뺐습니다. 예전보다 먹는 양은 현저히 줄기는 했습니다. 그건 다행입니다.
그러고는 CGV오리점으로 웡카보러 갔더니 일단 영화선택이야 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고 태균이는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키오스크도 어찌나 잘 하는지 뭘 골랐는지 가서 보니까 가관입니다. 팝콘 라지+콜라 두잔 세트에다 스프라이트와 환타포도 추가해서 담아놓고는 엄마더러 결제를 하랍니다. ㅋ. 결국 나초까지 선택해서 스프라이트와 환타포도는 삭제하고 팝콘과 나초와 음료만 결제완료.
웡카, 요즘 너무 재밌다는 후평들이 많아서 태균이랑 보기 딱 좋겠다싶었는데 다행히 끝까지 자리일어나지 않고 보기 성공. 정면 뿐 아니라 좌우 벽면까지 3면이 스크린으로 펼쳐지니 일단 눈이 시원하고, 나날이 영화보기도 좋아진다 싶습니다.
초콜렛이라는 말이 수 백번 나오고 끊임없이 초코렛이 등장하니 그런대로 마음을 두고 볼만했나 봅니다. 한 편의 환상의 동화 속에서 놀다나온 기분이랄까요? 관객도 겨우 5명이라 마치 극장 전세낸 듯 했던 기분. 영화끝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의 흐뭇한 표정.
용인숙소에 오니 아빠가 태균이 왔다고 베스킨라빈슨 초코아이스크림 음료를 3잔이나 사들고 왔으니 기쁨이 배가되네요.
계산해보니 17시간을 정말 치열하게 보냈고 한치의 순간도 낭비없이 보냈네요. 3일치 일을 하루에 끝낸 듯한 기분입니다. CGV영화관에서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어떤 중년여인이 제게 와서는 미군철수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영화관 대기실에 중년 연령에 사람들이 바글거립니다. 오늘의 주상영 영화는 웡카인데 이 나잇대의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이렇게 많이 보나? 하고 있던 중에 저보고 설문조사 여인이 전광훈목사 영화보러 온거 아니였나고 말을 합니다. 거의 꺼지라는 식으로 설문지 치우라고, 말도 섞기 싫다는 반응을 했더니 저를 붙잡고 한 설교하려다가 참고 가네요.
딱히 제가 야당 편도 아니지만 최강 극우 인물들의 행태는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 사회를 이끄는 이데올로기는 결코 '정의'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고집과 자기이익에의 저울질에 있을 뿐입니다. 묘하게도 그런 사회 속성을 동화같은 영화 웡카에서도 계속 보여주네요...
첫댓글 아, 모든게 감사합니다.
다만 준이만 갑갑하네요.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늘만 바라 보네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열흘 후에 준이 만나실때 많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여행 잘 다녀 오세요. 간만에 엄마를 독차지 한 태균씨. 즐거운 날들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