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핵심인 성직자는 교구가 지정한 신학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이른바 신학생 시기를 정해진 대학에서 탈 없이 지내야 사제로서 서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구성원들은 특별히 신학생에 대한 관심과 육성에 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신학생 양성과정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며 신학교 역시 예전에 비해 다양한 커리큘럼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아래 이야기는 본당 안에서 바라보는 신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 - 신학생의 방학
필자가 교적을 두고 있는 본당에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 한 명 있다. 지난여름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 학생을 먼발치에서 보니 여린 청년이었다. 예비 신학생 과정을 거쳐 신학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보나마나 후일에 성직자가 되려는 꿈이 있을 것이다. 신학대학 그중에서도 가톨릭신학대학의 공부방법이 독특하여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생활을 한다. 보통 대학생들이 타지에 진학할 경우 1년 정도 기숙사생활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화가 현재의 신학생 양성과정중 하나이다. 그거야 공부하는 주체인 학생과 공부시키는 학교의 약속이니 그렇다 치자.
특별히 한국천주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성직자에 대한 배려는 대단한 것이다. 아마도 그 역사는 초창기 한국천주교회의 성립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평신도 양반남자에서 시작한 천주교회는 이내 성직자 영입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고 그 이후 불어 닥친 형언할 수 없는 박해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직자보기를 황금보기 이상으로 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 전통과 여파가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천주교인에게는 구교우·신교우를 막론하고 몸에 배여 있는 것이다. 성직자에 대한 교우들의 진심어린 배려는-요즘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가 도처에 있다고는 하지만-이웃종교들 안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사실 유례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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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에 참석한 모 교구 신학생들(사진/한상봉 기자)
| 그러나 신학을 배우고자 신학대학을 진학한 학생의 경우는 성직자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온당한 교육방법이며, 교우들 특히나 청년 선후배들과의 관계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신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이에게 자신감을 북돋우고, 자기정체성 성립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때로는 과한 대접이 비교육적이고 오히려 바람직한 성소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0대의 신학생들이 나서야 할 자리가 있고, 삼가 해야 할 자리가 있다. 방학이 학생들 공부의 연장일 수 있지만, 본당이 실습의 대상은 아니다. 하느님의 학문이라 일컫는 신학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길 없는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 길의 여정에 들어선 학생들을 돕는 일은 교우들 앞에 서둘러 나서게 하는 것이나 경험이 우선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의 바른 몸가짐이 우선일 것이다. 공자께서 ‘배움은 본받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두 번째 이야기 - 신학생의 맘은 학생 맘
“사제의 맘은 예수 맘”으로 시작하는 성가가 있다.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옥중서신을 볼 때마다 죽음을 앞둔 한 사제의 마음을 그의 목소리로 읽을 수 있다. 사람으로서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나 주님을 안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여기에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이다. 사제로서 출발하는 외적양식이 서품이고 그 이후 사제로서 살아가는 길은 평신도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온전히 비워둘 수밖에는 없다. 사제로 서품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다. 일반에게 알려진 그 과정은 ‘본인의 성소동기 확인-본당신부의 추천과 본당 성소자 모임 참여-교구 예비 신학생 모임 참여-신학교 입학-입학 후 3년째 군 입대 및 현장체험-신학교 복학-착의식, 독서직, 시종직-부제 수품-사제 수품’ 이다(<평화신문> 2008년 7월 6일 9면 참조)
오래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알게 된 한 청년과 얼마 전 전화통화를 했다. 청년은 신학생이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알게 되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그는 신학교를 가고 싶어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제의 길을 가고자 뜻을 품었다. 그의 부모님과 교사들과 본당신부는 기뻐했고, 그 역시 열심히 노력하여 신학교에 입학했다. 군대를 다녀왔고 신학교 5학년이 될 즈음 그는 전공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다. 일반 학생이 대학에서 전공하던 것을 대학원에서 바꾸는 것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지만 ‘신학생’이 전공을 바꾸는 것은 신학교를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년 동안 신학생이었던 그는 몇 가지 제도에 막혀 대학원이 아닌 일반 대학교 2학년에 학사편입을 했다. 그와 통화하는 동안 그의 젊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가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그의 마음이 깊었다. 사제가 되는 것 보다 신앙인이 되어 가는 과정은 더 만만치 않아보였다.
또 겨울방학이 올 것이다. 방학이 되면 오랜만에 여기저기서 여러 신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반갑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또 같은 또래의 타 지역에 진학했던 대학생들도 본당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우직하게 늘 곁에 있는 청년들도 있다. 참으로 귀한 보석들이다. 학업에 힘들었던 시간을 방학 중에 재충전하기 위한 도움은 어른들의 몫이다. 특별히 신학생들이 풋풋한 학생으로서, 재기발랄한 젊은이로서 방학동안 쉬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기를 미리 기원한다. 신학생 마음은 그냥 학생 마음이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