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短篇小說
달이야기
김광한
술이 깬 아침나절, 주머니 속에 든 낮선 명함을 여러 장 대할 때가 있다
어느 주식회사의 상무 누구, 페인트 가게 주인 누구, 출판사 외판사원 누구, 도대체 이 사람들이 나와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질없는 세월의 파편도, 휴지통에 버려지는 명함처럼 흩어져버린다.
그 가운데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한 인물로 7년 동안 꼭 일곱 번 만난사람이 있다. 체격이 우람하고 눈매가 서늘한 마흔 살 가량의 서글서글한 사내였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8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난 그 이듬해의 추석 전날이었다.
아버지가 묻힌 곳은 송추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였는데 말이 좋아 공원묘지이지 사실은 공동묘지였다. 재단에서 야산을 불하받아 여기에 묘지 터를 조성했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죽는 자가 늘어나 이웃 야산까지 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구파발에서 의정부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면 얕은 고개가 나오는데 거기서 내려 왼쪽으로 비스듬히 산비탈을 향해 30분쯤 오르다 보면 거기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 나온다.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반남 박씨, 안동 권씨, 경주 최씨, 안동 김씨, 밀양 박씨, 부안 임씨 등 대부분이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고 꼬리표가 붙은, 일생 동안 알량한 벼슬 한번 한 적 없는 서민들이 잠든 곳, 그곳은 세속의 다툼이 없는, 죽어서도 빈부격차라든가, 지역 정 같은 것은 아예 없는 평화로움이 깃들여 있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한 다툼을 포기한 곳이라 항상 적막 속에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 년에 서너 번, 한식 날, 추석, 민속절 때가 되면 죽은 사람들을 핑계로 산 자들의 축제 (?)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생전에 불효했던 아들과 며느리가, 중풍에 폐인이 된 남편을 박대하던 아내가 한꺼번에 효자 효부가 되고 사랑하는 아내가 되는 그런 날이 추석이고 한식이라면 조금 틀린 말인가.
그 해 가을, 아버지가 잠든 묘소의 도랑 건너편에 새 입주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아직 봉분도 형성되지 않은 채 밋밋한 땅, 거기에 화강석으로 비석이 하나 세워졌는데 앞에는 망자의 생몰 연대와 망자(亡子)의 이름, 뒷 편엔 직계비속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는 그 비석 앞에서 그 사내는 자녀들로 보이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비감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내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그의 곁에는 커다란 카세트가 하나 놓여 있었고 거기서 카톨릭 성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구하시오, 받으리라. 찾으시오, 얻으리라. 두드리시오, 열리리라. 구하시오, 받으리라. 찾으시오, 얻으리라‥‥
참 안됐구나 싶었지만 그에게 말을 먼저 건넨다는 것은 그의 슬픔을 극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내가 그 사내와 처음 상견례와 함께 말을 나눈 것은 그 이듬해 추석 전날이었다. 추석 전날은 성묘객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번잡함을 피해 전날 성묘하는 버릇이 있었다.
봉분 사이로 소복을 입은 미망인들만이 간혹 눈에 뜨이고 하늘엔 까마귀 몇 마리가 푸른 하늘을 선회 하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한 줄기 미풍이 잔솔가지 틈으로 불어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내는 잠바차림으로 지난해와 다름없이 조금 더 성장한 아이들 셋과 함께 이미 완성된 봉분 앞의 잔디를 열심히 손질하고 있었다.
카세트에선 여전히 지난해의 그 성가(聖歌)가 울려 퍼졌다.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란 걸 보면 지난 1년 동안 홀아비 노릇하느라고 고생이 심했다는 걸 엿볼 수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봉분 위에 볼성 사납게 툭 튀어나와 하늘을 향한 억센 쑥 뿌리를 뽑아내고 있을 때 사내가 그사이 틈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와 나는 인사는 없었지만 안면이 있었던지라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누구나 이런 곳에서 만나면 공동의 인식을 함으로써 친해지기 마련이다.
"성냥이 있으면‥‥‥‥
라이터를 꺼내주자 그는 담배를 붙여 물고 깊숙히 한 모금 빨았다. 내게 뭔가 무척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예상한 대로 사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춘부장이십니까? 작년에 돌아가셨군요. "
"예, 그렇습니다. 쉰 아흡이시죠."
"아까운 나이입니다. 아흡 수를 넘기면 보통 십년은 버티는데.
"선생님은요?"
내가 묻자 그는
"마누라죠. 작년에 죽었어요. 유방암이랍니다. 고생 많이 했죠. "
"안됐습니다.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 ‥‥‥‥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합니까? 일 년 동안 홀아비 생활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더군요, 애들 때문에 장가든다는 것도 우습고‥‥‥"
"그렇겠지요."
나는 말하던 걸 멈추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내가 내게 말할 구실을 잡았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지요. 나보다 더 예수를 믿었으니까요. 내게 성당 가자고 어찌나 조르던지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마누라가 세상 떠날 때 나보고 꼭 영세하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난 틀린 것 같아요.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의식도 그렇고."
사내는 술이나 한잔 나누자면서 아내 묘소 옆으로 가더니 젯상 위에 놓여진 북어와 반쯤 남은 사 홉들이 소주병을 가지고 왔다.
내가 한사코 술 마시길 사양하자 그는 플라스틱 컵으로 자작을 했고 곧 취기가 돌아오는지 불콰한 음성이 되어
"아내가 새벽 미사에 나가는 걸 나는 결사반대했죠. 회개를 함께 하자는데 내가 무슨 회개를 할 만큼 죄를 진 일이 있어야지요. 교무금이나 헌금 바치는 것도 싫었고요. 나는 공사판의 십장이라서 종교에 대해 좀 무식합니다. 그런데 뼈만 남은 아내가 임종할 때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자기는 이제 예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가니까 걱정하지 말라구요.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아이들 생각을 해서 절대로 재혼 같은 끔찍한(?) 일일랑 생각지 말고 성당에 열심히 나가라고 하더군요. 천국에서 기다리겠다는군요. 천국은 이 세상보다 훨씬 좋은 곳이니까 세속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마누라가 죽어서까지 내게 질투를 하고 감시를 한다고 생각되어 어째 기분이 안 좋더군요. 그래서 집에 있는 성서 책과 예수 의 초상화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
그는 카세트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의 볼륨을 줄이면서 내게
"그런데 선생님,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천국이란 곳이 정말 있습니까?"
“그야 모르죠. 죽어서 가보질 못했으니까요."
"만일 그런 좋은 곳이 있다고 칩시다. 예수 믿는 분들이 말하길 그곳은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고 이 세상에 없는 진귀한 음식이 언제나 쌓여 있고 날개 달린 어린 천사들이 하늘에 날고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상스런 욕 한 번 하지 않고 오순도순 모여서 산다고 하는데 그게 저는 웬일인지 싫단 말입니다." 하면서 남아있던 소주를 병째로 들이마셨다.
"그런 곳이 싫단 말입니까?"
"그렇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공사판의 십장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과 상대를 하게 되니까 성격도 거칠어져요. 작업이 끝나면 의례 노동자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하거나 허름한 작부집에서 수작을 하며 즐기지요. 이 때가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기본 시간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천당이란 곳이 품위 있고 배움이 있고 경건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면 나는 아무리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도 그런 천당엔 가고 싶지가 않아요. "
"가고 싶지 않다니요, 얼마나 근사한 곳인데요."
"나는 마치 천당을 진작에 갔다 온 것처럼 이야기 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물리는데 일년이 하루 같이 꽃이 피어 있고 고상한 말만 쓰고 경건한 사람들만 왔다 갔다 하면 어디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은 말 붙일 때나 있나요. 원 주눅 들고 권태가 나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적당히 술주정꾼도 있고, 가난한 사람, 못난 사람도 있고 포장마차도 있고, 시장바닥에서 빈대떡 파는 아줌마도 있어야지 푸근한 맛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식대로의 천당이 필요 하지 남들이 만들어 논, 남들이 그리는 천당은 웬일인지 가고 싶지 않군요. 마누라는 그런 곳을 원할지 모르지만 나는 싫습니다. "
"그럼 왜 부인께서 좋아하시던 성가를 틀어 놓습니까?"
"아, 그건 얘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죠. 마누라가 죽었을 때 신자들이 와서 연도를 해주는 건 참 좋더군요. 나도 죽으면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
사내는 연거푸 술잔을 들이켜서인지 가끔 국적 모를 말이 튀어 나왔고 혀 놀림이 잘 안되었다.
"선생, 이렇게 만난 것도 전생의 인연 같은데 통성명이라도 합시다.
사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 류진석이오. 버들류가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올해 몇이지요?"
"마흔 하나입니다. "
"아, 그래요. 그럼 내가 한참 연배로군. 형님뻘인데 말 놓아도 되겠수?"
"좋을 대로 하시죠. "
"그럼, 자. 아우 한 잔 들게. "
사내의 느닷없는 반말지꺼리에 기분이 안 좋았으나 악의가 없어 보여 오히려 친근감마저 들었다.
우리는 그날 의기가 투합해 형이니 아우니 하며 곤죽이 되도록 술을 퍼마셨고 술이 모자라자 나는 십리쯤 되는 산아래 묘소 매점으로 내려가 술을 사오는 객기까지 발휘했다. 어느새 저녁놀이 지고 있었고 공동묘지엔 우리 둘만이 남아 있게 됐다. 어둠이 내린 묘지는 스산한 감이 감돌았다.
까마귀가 기분 나쁘게 울어댔다.
그와 나는 산 아래까지 비틀거리며 가끔씩 넘어지기도 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합창을 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흘러 흘러가는데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
이때 보름달이 솟았다.
소슬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앞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사내가 노래를 바꿔 불렀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사내는 울고 있었다. 곁의 세 아이들이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부축 했다.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오자 그는 내 손목을 꼭 잡으면서
"아우, 서울 가거든 자주 전화 하자구, 아우가 만나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나올 테니까 꼭 약속하자. "
하며 내 얼굴에 그의 수염 난 껄껄한 얼굴을 비벼댔다.
그런 그가 무척 외롭게 느껴졌다.
버스가 오자 그가 먼저 올라탔다.
"잘 가게. "
"예, 형님도요. "
그러나 사내와는 일 년이 다가도록 한번도 만나질 못했다. 서로 바쁜 탓도 있겠지만 산에서 만난 순수한 감정을 길거리에서 만나 혹시 그 기분을 잃어버릴까 하는 노파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추석이 가까워졌다. 그제서야 나는 일년 전의 그 사내 생각이 났다. 일년 동안 그는 얼마나 변했을까?
문득 그가 만나고 싶어졌다.
일년 동안 지낸 이야기를 털어놓고 막걸리 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추석 전날.
구파발에서 내려 큰 통에 든 막걸리 두 병과 마른 북어 몇 개를 사들고 다시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소복 입은 몇 명의 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대낮부터 취한 촌노가 육자배기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버스가 공원묘지 입구에 멎자 소복 입은 여자들 몇 명이 함께 내렸다.
코스모스가 작년과 똑같이 길가에 피어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화들짝 피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더듬어 한참 올라가면 양쪽 곁으로 죽은 사람들의 침묵의 동네가 적막 속에 올망졸망 들어서 있다.
일 년 동안 변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있다면 공터에 묘지가 몇 개 더 들어서 있을 뿐, 하늘을 나는 까마귀도 1년 전, 그것과 같았다.
무심한 가을 구름이 갖은 형상을 만들면서 하늬 바람에 서서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숨을 헐떡이면서 산 정상에 오르자 그 아래 멀리 장난감 같은 버스가 오가고 있었고 이름 모를 풀벌레가 숲 속으로 튀어 달아났다.
아버지의 묘소를 두리번거리자 한낮의 정적을 가르고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내의 탁한 음성이었다.
"아우, 이리 오게. "
그 사내였다.
"1년 만이군 나야. 잊었나?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반가웠다.
"형님이시군요. "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1년이란 세월이 우리에겐 바로 엊그제 같았다.
"꼭 1년만이지? 그 동안 아우는 어떻게 지냈나? 난 사우디에 갔다 왔지"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그런데 형님 집안은 모두 무고하십니까?"
그는 내 물음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괜히 물어보았나.'
그는 말없이 담배를 피워 물더니
"악몽이었지. 큰 아이가 죽었어. 맏상주 될 아이 말일세. 교통사고였지.
아우도 한번 봤지. 작년에 여기 왔던 아이. "
말 그대로 사내의 곁에는 딸 둘밖에 없었다. 나는 사내에게 뭐라고 위로할지 몰라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화장을 했지. 벽제에서 ‥‥‥마누라 옆에다 묻어주려다가 괜한 것 같아서. "
사내는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인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아, 그렇군요. 참 안됐습니다. '
나는 겨우 그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말을 한다고 해서 그의 상처가 치유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쓸쓸 하실 텐데 아이들 봐서 재혼이라도 하셔야죠. 돌아가신 분에겐 안 된소리 같지만 산 사람은 사는 동안 불편 없이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재혼 말인가?"
반문하면서 그는 허탈하게 웃더니
"마흔 다섯인데 들어와 살겠다는 여자가 있겠나? 벌어 논 것이라도 많다면 몰라도 겨우 노동으로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는 주제에, 자식새끼 둘 달린 냄새나는 홀아비가 뭐 좋다고 오겠나. 다 팔자소관이지. "
"그래도 희망을 가지셔야죠. "
나는 가져온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그에게 권했다.
죽은 마누라가 벼락을 내리면 어떻게 하나?"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분도 이해를 하겠죠. 오히려 하늘 나라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
"그럴까? 하긴 요즘 들어와서 더 쓸쓸해져. 외롭다구 술 먹구 주정도 해보곤 했지만 깨보면 더 허망해져, 망할 놈의 인생이지. 홀아비생활도 못할 짓이야. 곰보, 언청이라도 좋으니 말 상대할 여자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 하다가 술기가 좀 올랐는지 나를 보면서
"혹시 아우 친척 가운데 얌전하고 살림 잘하는 과수댁 없는가? “ 하며 물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사내가 성묘를 마치고 내게 온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들고 온 막걸리를 손수 자작하면서 그 동안 지냈던 일을 푸념처럼 이야기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그에게 나는 지난 일년 동안 즐거웠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나 역시 침묵을 지켰다
헤어질 때 우리는 일년 전과 똑같은 약속, 서울 가서 가끔 만나 대포라도 마시면서 즐겁게 지내자는 그런 얘기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참 우리집 골목 어귀에 자매 집이란 막걸리집이 생겼지. 주인이 40 먹은 과분데 기분 나쁘게시리 애새끼가 나처럼 달렸지. 가끔 가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지. 꼭 한번 찾아와. 신당동 전철역에서 내리면 동서가구 있는 오른쪽 골목이야. "
나는 며칠 내에 한번 찾아간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 1년이 지났다. 내 머리의 새치가 늘어난 만큼 사내의 머리는 지금 쯤 반백이 됐을 성 싶은 세월의 무게였다.
그 동안 나는 직장에서 쫓겨나 실업자 생활을 몇 개월 했고 아내와의
장기화된 불화 때문에 폭주를 했던 탓인지 심신이 몹시 나빠져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내 나이도 중년기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졌다는 사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듬해의 추석 전날, 사내를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산길을 급히 올랐으나 웬일인지 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의 아이들도 역시 보이질 않았다. 다만 그의 부인 묘소에 말라비틀어진 장미 몇 송이가 놓여진 것으로 보아 한두 달 전에 누군가 다녀갔다는 걸 추측할 수 있을 뿐 묘소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고 쑥대풀이 훤하게 봉분을 뚫고 하늘로 향해 가지를 뻗었다.
사고라도 났을까?
지난 1년 간 그는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외국에 나가 있었을까? 재혼을 하겠다더니 좋은 혼처감이 나타나 중년의 삶을 즐기고 있을까?
나는 가능하면 사내가 잘되기를 바랐고 불길한 생각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은 묘지를 내려 올 때쯤 깨끗이 잊혀졌다. 사내는 어디까지나 나의 뇌리 속에 단편적으로 기록됐던 삽화에 불과했던 것일까?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 나는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꼭대기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고 또 다른 생존의 공간 속으로 함몰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일년이 지났다.
나에게 변함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재미없는 직장에 열심히 나갔고 이틀에 한 번꼴로 술을 마셨고 큰 장마에 침수가 돼 가재도구를 버렸다는 것 이외에 새치가 몇 개 더 늘어났다는 것뿐이었다.
이듬해 추석 전날,
이번에는 기어코 사내를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산등성이를 헐떡이며 올라갔다.
빈 공간에는 지난해보다 사자(死者)가 더 늘어나 공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과연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까? 나는 믿기로 했다. 만일 이런 식으로 만난다면 그와 나는 죽을 때까지 고작 20여 회의 해후일 것이라는, 대단히 귀한 만남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산등성이를 올라 사내의 부인이 잠들고 있는 묘지 곁을 바라보았을 때 어떤 움직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
그는 내 추측대로 거기 있었다. 꼭 2년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재작년엔 없던 인원이 한 명 더 불어나 있었다.
총원이 처음과 같아졌던 것이다.
"형님!" 하고 내가 부르자 그는 풀 뽑던 일손을 멈추고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소 같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워 함께 껴안고 포옹을 했다. 소금기 밴 그의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작년엔 많이 기다렸습니다. 형님이 없으시길래 혼자 자작을 했죠.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래 아우에게 소개할 사람을 사귀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
그의 곁에는 중년 여인이 서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그 나이에 수줍은 듯 외면을 했다.
"내 처일세. "
그리고 중년여인에게
"여보 내 아우야. 당신에게 내가 가끔 얘기한 바로 그 아우야. 일 년 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아주 귀한 아우지. 인사해. "
중년여인이 내게 고개를 까딱 했다 그녀의 오른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고 손가락에는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천주교 신자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검었고 결코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상스럽지 않은 인상의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였다.
사내의 두 아이들도 그녀를 친엄마처럼 호칭하고 따라주어 내 마음이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었다.
사내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나는 사내와 부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그의 첫 부인 묘소에 나 있는 잡초를 뽑아주었다.
일이 끝나자 우리는 함께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가져온 송편과 과일, 그리고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사자(死者)의 마을에서 갖는 산자들의 축제였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내가 먼저 그 탁한 음성으로 노래를 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그 다음은 사내의 두 번 째 부인 차지였다.
그녀는 사내의 첫 부인 앞에서 차마 흥겨운 노래를 부를 수 없는지 사양을 하다가 성당 미사 때 외우는 주모 송을 소리 내어 읊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 가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 하소서
그녀는 기도문 말미에서 목이 메이는지 더 이상 이어나가질 못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 우리를 용서 하소서' 하는 귀절에서 그녀는 문득 땅 속에 누워 있는 첫 부인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나 첫 부인도 그녀를 용서해줬을 것이다.
소슬바람이 한줄기 지나가자 비구름이 몰려왔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하산을 했다.
관리사무실로 가는 도중 소나기를 만났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관리사무실 옆'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우리는 이번엔 정말이지 한 달에 한번씩 만날 것을 굳게 약속 했다.
그리고 사내의 아이들에게 나는 작은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또다시 세월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 이듬해 만난 그는 무척 행복한 생활을 한 듯 훨씬 젊어 보였다.
사내는 내가 내미는 술잔을 거절하면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술은 사양 하겠다고 했다.
"아주 안 마시는 건 아니야. 옛날에 알콜 중독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술이 들어가면 뱃속에 든 마귀들이 기뻐서 날뛰는 거야. 성경 귀절에도 있지, 악령이 어떤 사람의 안에 들어갔다가 그에게서 나오면 물 없는 광야에서 쉴 곳을 찾는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전에 있던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며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짱히 치워지고 잘 정돈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는 귀절이지, 내게 있어서 술이란 일종의 악령인 것 같아. 마침 집사람이 성당의 레지오 단원이야. 집사람의 권유도 있고 해서 술은 마시지 않으려고 하네. " 하며 자기도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면서 오래 전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성경 귀절을 내게 인용하기도 했다.
"내 본명이 베드로야. 자네도 교리공부해서 영세를 받게."
사내는 나같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을 퍽 측은하게 여기는 투였다.
나는 그가 새 사람이 됐다는 것을 축복해줘야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체'하는 태도에 거부감이 생겼다.
적어도 그는 꾸밈이 없고 소탈해야 했으며 어느 정도 속물기 있는 사람으로 나에게 남아 있어야 했다. 적당히 술도 마시고 실수도 하고, 농담도 하고, 흰소리도 하고, 그리하여 후회도 할 줄 아는 보통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가 규격화된 사람이 되어간다고 생각하니 나는 사람을 하나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어 섭섭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부인을 잃었고, 아들을 잃었고, 다시 부인을 얻어 행복했고 신앙을 얻어 방황을 끝냈지만 내가 보기엔 무엇 하나를 잃은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난 해 추석 전날이었다. 웬일인지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를 만나도 그 동안 그의 변신에 그리 반가움을 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얻었다는 부인이 소복을 입고 서 있는 뒷모습이 전부인의 묘소 곁에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성장한 아이들 둘이서 막 제사를 끝냈는지 앉아서 다과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형수님. "
내가 부르자 부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부인의 모습에서 나를 대하는 반가운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어쩐지 남을 대하는 서먹서먹한 모습이었다.
"형님은 안 오셨습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자리를 비켜섰다. 바로 그녀가 자리를 비켜선 곳에 낮선 봉분이 하나 더 있었다.
부인이 손으로 봉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쓸쓸하게
"여기 누워 계세요. 그렇게 됐답니다." 하며 말문을 닫는 것이었다.
柳베드로之墓'
음각된 글씨가 내 눈에 똑똑히 들어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 그는 간 것이다.
그의 재혼을 투기한 첫 부인이 데리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날개 달린 천사가 꽃밭에 날고, 진귀한 음식과 죄 짓지 않고 지상에서 산다는 품위 있고 경건한 사람들만 있는 천국으로 갔을까? 그러나 그는 거기 있지 않을 것이다. 포장마차도 있고, 과부도 있고, 막걸리도 있었고, 병신도 있고, 인정과 눈물이 있고, 공사판의 막 노동자들도 있고, 그리고 사랑과 용서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보통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그의 묘소 주변에 더 이상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다.
소슬바람이 또 한 차례 내 앞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지금도 나의 귓전엔 사내와 함께 불렀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약력 중앙대 문과대 국무학과 69년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
첫댓글 오랜만에 단편소설 올려주셨네요.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난정 작가 선생님
단숨에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의 천국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건승 건필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