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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과 그 앞 백운봉
사람도 없는
나무그늘 의자에
흩어진 솔잎
人もなし木蔭の椅子の散松葉
―――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
▶ 산행일시 : 2013년 9월 14일(토), 오전에는 비, 안개, 바람, 오후에 갬
▶ 산행거리 : 도상 23.8㎞(길 잘못 든 거리 2.2㎞)
▶ 산행시간 : 9시간 51분
▶ 갈 때 : 16번 버스 타고 상일육교 앞에서 1113-1번(또는 1113번) 광주 가는 버스로 환
승하여 택시가 다님직한 광주 나산아파트 앞에 내려 택시로 신월리 두월 마을
로 감. (강변역)에서 13번 버스도 광주로 가지만 중부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온
동네를 다 들리므로 30분 이상 더 걸림
▶ 올 때 : 병산리 백병산 등산로 입구에서 88번 국도로 걸어 나와 부동산 소개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타고 양평터미널로 가서 동서울 가는 시외버스 탐
▶ 시간별 구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7 : 57 - 광주시 초월읍 신월리(新月里) 두월, (주)성현기업 앞, 산행시작
08 : 28 - 능선마루 진입
09 : 03 - 무갑산(武甲山, △581m)
09 : 22 - 웃고개
10 : 17 - Y자 갈림길(608.5m), 왼쪽은 관산 1.6㎞
10 : 33 - 소리봉(열미봉, 609m)
10 : 41 - Y자 능선 분기봉(△612.2m)
11 : 00 - 박석고개
11 : 39 - 앵자봉(鶯子峰, 670.2m)
11 : 56 - 앵자봉에서 세 번째 헬기장, Y자 능선 분기봉(655m)
12 : 16 - 임도
12 : 45 - 슐라터 연구소
13 : 13 ~ 13 : 35 - 주어고개(走魚--), 점심
14 : 26 - 양자산(楊子山, 709.5m)
15 : 06 - 634m봉
15 : 42 - △394.1m봉
16 : 58 - 백병산(百屛山, △423.6m)
17 : 48 -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屛山里), 88번 국도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 갈림길, 관산 가는 길
▶ 무갑산(武甲山, △581m)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붙들기에 힘이 부치는가. 캄캄한 새벽, 천지를 무대로 한 천둥번개
의 현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보고 듣자니 갑자기 산에 가기가 귀찮아지고 무엇보다 겁이
났다. 에라, 산이 어디 가냐 하고 다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그런데 날이 훤해지고 천둥번개
가 잦아들자 생각이 달라졌다.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전에 없이 산행코스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마 이 궂은 날 산속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다면 찾을 방책을 마련하고자 위함일 것이다. 7시가 가까워서야 우산 받치고 집을 나선다. 상
일육교 앞에서 광주 가는 1113-1번 버스를 탄다. 버스는 바로 상일IC에 올라 중부고속도로로
달린다. 승객은 동원대학교에 가는 학생들이다.
버스 안에서 미리 스패츠를 착용하느라 찍찍이 뜯었다 붙이는 소리를 내서 졸던 학생들을 깨
워버렸다. 두리번거리는 그들에게 미안하다. 이윽고 광주시내에 들고 택시가 다님직한 번화
가의 정류장을 찾는데 나산아파트 앞이 그중 낫다. 빗속 행인 보이지 않는 썰렁한 거리다. 한
참을 기다리다 빈 택시를 만난다.
신월리 두월마을로 간다. 무갑산 산기슭의 찻길이 끊기는 데까지 간다. 길옆 개울이 큰물로
흐르는 (주)성현기업 앞에서 내린다. 비는 세차게 쏟아진다. 그렇지만 임산무퇴다. 예전에 왔
던 곳이다. 보호수인 거목의 은행나무가 반갑다. 너른 길은 성묫길이다. 여흥(驪興) 민씨(閔
氏)의 묘소가 나온다. 여흥(驪興)은 여주(驪州)의 고려 때 이름이다. 묘소 위는 벌목하여 잡목
이 빽빽하게 우거졌다. 아무리 살펴도 산길은 보이지 않는다.
늘 하던 버릇으로 들입다 덤벼들었지만 몇 발자국 못 가서 물러난다. 벌목한 잔해가 잡목 숲
속 곳곳에 겹겹이 쌓여 있어서다. 물에 빠진 듯 빗물에 흠뻑 젖어 나오고 말았다. 은행나무 있
는 데로 물러나서 대로 따라 더 간다. 벌목한 산자락 풀숲 사이로 소로가 보인다. 묘소 나올라
살금살금 따라간다. 산길은 벌목지대 관목 숲을 가르마로 뚫고 교목 숲으로 곧장 간다. 무갑
산 오르는 주등로 중 하나다.
능선마루에 오르고 좌우 지능선 모아 산길은 더욱 뚜렷하다. 가파른 오르막에는 가드레일 밧
줄을 설치했다. 천둥은 비를 다그친다. 어둑한 산중 사방의 활엽에서 듣는 빗소리가 후련하려
니와 상쾌하다. 이 또한 정취려니. 나 혼자 듣기 아깝다. 문득 드럼을 배워 이 빗소리를 신명
나게 연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마루. 무갑리에서 오는 등로와 만나고 무선간이기지국 시설이 나온다. 무갑산 정상은
120m 남았다. 평탄하게 가다 살짝 내리고 오르면 무갑산 정상이다. 널찍한 공터에 정상 표지
석과 2등 삼각점이 있다. 이천 25, 2012 재설. 날이 좋다면 조망이 훤할 텐데 오늘은 만천만지
(滿天滿地)한 빗속 안개다.
2. 들머리 은행나무
3. 무갑산 정상. 산의 형태가 갑옷을 두른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소리봉(열미봉, 609m), 앵자봉(鶯子峰, 670.2m)
앵자봉 가는 길. 웃고개로 내리는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일단 남진한다. 가파르게 떨어진다.
산길은 물길이기도 하다. 물이 괄괄 흘러 어느 길이 산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무갑산 정상
에서 190m 내려 ┤자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방향 틀어 사면 약간 돌았다가 다시 급하게 떨어
진다. 헬기장 지나고 한 차례 더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웃고개다. 왼쪽은 무갑리 마을회
관(3.21㎞)에서 오르는 주등로다.
등로 곳곳에 쉼터로 목제 벤치가 놓여 있다. 물길 거슬러 오르다 물길 따라 내린다. 쏴아 하는
빗소리를 음악으로 들으며 싸리나무숲 지날 때는 물세례를 흠씬 받는다. 지도 들여다 볼 필요
없이 이정표가 알맞게 안내한다. 505m봉 직전 ┬자 갈림길 쉼터에서 오늘 산행 첫 휴식한다.
아침식사는 행동식으로 걸으면서 호주머니 넣은 인절미를 하나씩 꺼내 먹는다. 그래서 휴식
이랬자 목추기려고 물 마시기 고작이다.
505m봉 넘고 길고 된 오르막이 이어진다. 가파를만하면 밧줄과 목제 계단을 설치했다. 허벅
지 뻐근하게 올라 Y자 능선 분기봉인 608.5m봉. 왼쪽은 관산 1.6㎞.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너무 멀다. 침만 삼킨다. 이제 박석고개 가는 길은 그리 큰 오르내리막이 없다. 산책
로다. 소리봉(‘悅美峰’이라고도 한다. 609m)을 간단히 넘는다.
왼쪽 사면은 넓게 벌목하였다. 몇 개 남긴 모수(母樹)가 자욱한 안개 속 진경이다. Y자 능선
분기봉인 △612.2m봉(삼각점, 이천 439, 1987 재설)을 지나 너른 길은 질척거리고 내리막은
미끄럽다. 길 벗어나 풀숲으로 간다. 오른쪽 사면의 이스트밸리 골프장이 조용하다. 여느 때
는 굿삿 하는 소리가 메아리로 들렸는데.
┼자 갈림길 안부인 박석고개. 왼쪽의 경기도청소년야영장으로 가는 길은 막았다. 앵자봉까
지 1.36㎞. 비는 멎었으니 얼굴에 흐르는 건 빗물 아닌 땀이다. 몇 개 나지막한 잔 봉우리가
막지만 내쳐 넘는다. 봄날이면 여기저기 바위틈마다 수놓던 매화말발도리의 이제는 이운 모
습을 들여다보며 가쁜 숨 삭힌다. 앵자봉. 사방 조망이 안개로 가렸다. 그래도 정상 오른 의식
으로 배낭을 벗어놓고 쉰다.
4. 등로 주변의 쉼터
5. 소리봉 가는 도중
6. 박석고개 가는 길
7. 앵자봉
▶ 양자산(楊子山, 709.5m)
앵자봉 정상을 밧줄 잡고 가파른 돌길 두 차례 내리면 야트막한 안부다. 왼쪽의 천진암 성지
로 내리는 길은 막았다. 한 피치 바짝 오르면 너른 헬기장인 672m봉이다. 키 큰 풀숲이 꽉 찬
헬기장을 지나기가 뜻밖으로 고약하다. 물구덩이 풀숲이다. 억새의 날카로운 잎에 팔뚝이 피
비치게 베인다. 이런 헬기장을 연속해서 세 곳 지난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의 양자산으로 가는 길도 뚜렷하다. 여전히 안개 속을 간다. 바람이 안개
를 열심히 쓸어내지만 역부족이다. 바위 슬랩을 밧줄 잡아 내리고 송전탑 아래 풀숲을 지난
다. 여기에서 지능선이 오른쪽으로 분기되는 줄도 모르고 예전의 기억을 갸웃하며 오른쪽으
로 갔다. 벌목한 사면의 안개 속 경치 구경하며 막 내달았다.
절개지 밧줄 잡고 내려 임도다. 임도를 의심하고 지도를 한 번 들여다보았더라면 앞으로의 참
담한 꼴을 면했을 텐데, 그새 임도를 새로이 뚫었나 보다 하고 능선마루 잡아 쭉쭉 내렸다. 계
곡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려 아차 골로 가는구나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대체 어딜까? 산
기슭에 양옥이 보이고 조경석 돌담 내리니 ‘슐라터 연구소’ 마당이다.
별 연구소가 다 있네. 지관(地官)인가. 슐라터라니. ‘터’를 묏자리 또는 인삼재배지 등의 명소
로 알았다. 괄호 안에 병기한 ‘Adolf Schlatter Institute’를 건성으로 보았다. 독일의 저명한 성
경신학자라는 아돌프 슐라터에 대한 연구소였다. 연구소 마당 지나 도로 옆 계류는 주어천(走
魚川)이다. 대하로 흐른다.
주어천을 거슬러 오른다. 저 대하가 마침내 밭아야 분수령일 주어고개이려니 갈 길이 아득하
다. 계류는 도로로 넘쳐흐르기도 한다. 유원지 지나고 베데스다수련원 갈림길도 지나고 한참
오른다. 색 바랜 등산안내도가 나오고 오른쪽 얕은 지계곡으로 소로가 보인다. 곧 주어고개
다. 계산해보니 주능선으로 오는 거리에 비해 도상 2.2㎞를 더 돌아왔다. 아까 임도가 나왔을
때 길을 잘못 든 줄 알아채고 임도 왼쪽으로 돌아 주릉에 붙었더라면 데미지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주어고개에서 점심밥 먹는다. 입맛이 쓰디쓰다. 그럴 수밖에. 물에 말아 그저 넘긴다. 양자산
쪽에서 내려오는 젊은 등산객 한 분을 만난다. 수인사 걸게 하고 서로 산행정보 교환한다. 대
번에 나는 그가 무갑산으로, 그는 내가 백병산으로 가리라 안다. 그랬다. 이제부터는 내 발걸
음도 한결 덜 심심할 것이다. 그의 발자국을 자주 보게 될 것이므로. 미끄러진 흔적까지.
기둥 박고 밧줄 매단 가파른 오르막 두 곳을 지나면 자작나무 조림지대가 나온다. 십여 년 전
에는 잡목 숲에 갇혀 어떻게 자랄까 싶던 자작나무 묘목이 어엿한 큰 나무로 자랐다. 송전탑
주변에는 나무를 베어내 조망이 트였다. 백운봉과 용문산에 백운이 감돈다. 밧줄 잡고 올라
등로 옆 전망바위에 들려 용문산 연릉 또 살핀다.
양자산. 참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놓여 있어 쉬기 좋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 옆에 ‘양자산의
모습’이라는 비를 세웠다. 음각한 글씨가 비에 젖어 판독하기 어렵지만 ‘각시산’이라고도 하
며 경기도 한강 이남에서 가장 높은 명산이라고 한다. 날이 맑은 날이면 서울 남산타워까지
보인다고 한다.
8. 양자산 오르면서 바라본 남한강
9. 양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운봉과 용문산
10. 양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운봉과 용문산 연릉
11. 양자산 정상
▶ 백병산(百屛山, △423.6m)
산꾼이라면 누구라도 지도로 양자산에서 백병산으로 이어지는 미끈한 능선을 보면 가슴이
설레리라. 이정표 거리 9.3㎞. 신나게 내닫고 싶은 능선이다. 그 백병산을 간다.
아, 환상이었다. 산길이 아니라 맨땅 드러난 신작로다. ‘양평 MTB 랠리’ 코스로 닦았다. 모를
일이다. 송전탑을 세우려고 낸 임도(臨道)라도 송전탑을 세우고 나서는 임도를 원상태로 복원
하려고 수목을 가꾸는데 여기는 오히려 신작로를 만들었다.
걷기 팍팍하다. 다만 MTB가 돌아가는 산허리를 따르지 않고 봉봉을 직등하거나 등로를 비켜
간다. 655m봉은 암릉 암봉이다. 오르락내리락 자맥질하다 오른 634m봉은 Y자 능선 분기봉
이다. 왼쪽 성덕2리로 내리는 숲길 소로가 부럽다. 쭈욱 내리다가 약간 도드라진 △394.1m봉
삼각점은 이천 421, 1989 복구. 어디서 내리막이 바닥칠까? 386m봉 넘고도 더 떨어진다.
297m봉 내린 ┼자 갈림길 안부에서 바닥친다.
백병산 품에 든다. MTB 랠리는 오른쪽으로 산허리 돌아서 내려가고, 백병산 등로는 왼쪽 숲
속 소로다. 백병산까지 도상 1.2㎞.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오지 닮은 한갓진 숲길이 흐뭇
하거니와 기력이 쇠진한 터에 가파른 봉봉 오르막을 스퍼트 내어 비지땀 훔치며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이 싫지만은 않다.
등로 주변에서 먼지버섯을 흔하게 본다. 버섯 중에서 먼지버섯보다 더 영리한 버섯이 있을까
싶다. 고욤처럼 생긴 버섯이 신기하여 만지거나 혹은 무슨 나무열매가 땅에 떨어진 것으로 착
각하여 주우려 하면 포자를 연기 같은 먼지로 비산시킨다. 지나는 짐승 또한 건드려보고 싶은
충동을 다분히 느끼리라.
마지막 긴 오름. 기둥 박고 밧줄을 매달았다. 한 손에 스틱 다른 한 손에 밧줄 잡으니 오르기
수월하다. 백병산 정상. 오석의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 무선간이기지국 시설, 마당바위 등이
정상 풍경이다. 삼각점은 이천 304, 2008 재설. 마당바위 위에 서면 양평시내와 용문산 연봉
이 바라보인다. 백운봉과 용문산은 구름이 감쌌다.
하산. 전수리로 내리는 길도 있지만 서울 가는 교통편은 병산리로 내리는 것이 낫다. 무선간
이기지국 시설 돌아내린다. 손바닥이 화끈하게 굵은 밧줄 잡고 내린다. 발에 철조망이 걸리는
무덤 주변의 덤불숲에서 잠시 버벅이다 말바위 지나고 낙엽송 숲길을 간다. 갈림길에 분산하
여 주등로가 희미해지고 왼쪽 산자락 성묫길로 내린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자 들판이다. 342번 도로와 만나는 갈림길에 백병산 등
산안내도가 있다. 도로 옆 수로에 내려 흙투성이인 바지자락을 씻어내고 코스모스 하늘거리
는 꽃길을 따라 마을로 간다. 88번 국도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스틱 접자 양평터미널 가
는 시내버스가 온다.
12. 먼지버섯(Astraeus hygrometricus), 담자균류 먼지버섯과의 버섯. 이 버섯만큼 영리한
버 섯이 또 있을까?
13. 백병산 정상
14. 백병산 마당바위에 바라본 백운봉과 용문산은 구름에 가렸다
15. 백병산 마당바위에 바라본 남한강과 양평 시내
16.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앵자봉에서 주어고개를 어렵게 갔다. 흰색 선이 능선 마루
금인데 오른쪽 주어천으로 잘못 내렸다가 골 따라 주어고개로 올랐다
첫댓글 고전
주를 하셨네여...백병산 길이 제일 흐렸는데 이젠 신작로가 되었군여...요즘 너무 
리시는듯

넘 무리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먼지버섯 참 특이하네요(꼭 상수리같네요)
명절 잘 보내세요
와~~ 산에 막 불이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