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무대왕릉 (사적 158호)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아들로 태어난 신라 제30대 문무왕(661~681).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바다무덤으로 대왕암이라고
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
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용이 되어 신라를 평안
하게 보호하리라”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장례를 치렀다.
문무대왕릉(대왕암)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육지에서 불과 200여 m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신라시대 왕들이 모두 능을 조성하였는데 비해 문무대왕릉은 어찌 화
장하여 수중릉에 유해를 뿌릴 생각을 하였을까.
나라를 위하는 호국정신이 아니고선 해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 利見臺이견대 (사적 159호)
이견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이 가장 잘 보이는 곳
언덕 위에 利見臺이견대 가 있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68년에 세웠다.
이견대利見臺 는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
익을 얻었다는 곳이며, 혼이 깃든 대왕암을 바라보며 역대 왕들이 문무
왕릉을 참배하였다.
이견대 사이로 보이는 것은 바다무덤인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이 바라다 보이는 그 아래 작은 어촌에서, 4대가 함께 살면
서 선주가 직접 고기를 잡는다는 집에서 물회를 주문했다.
그 속에 따라 나온 ‘말짱 도루묵’은 내 생에 처음
으로 맛보는 생선.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은, 열심히 노력을 하였으
나 아무런 보람이 없이 무산되었을 때 쓰는 말로
만 여태껏 써왔지, 직접 생선을 대하는 건 처음이
라는 말이다.
# 感恩寺址 감은사지 (사적 제31호, 국보 제112호)
이견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감은사지가 있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여 신문왕에 완성된 절이다.
신문왕은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드나들게끔 법당 밑에 동해
를 향하여 구멍을 뚫어 두었다.
신문왕은 대왕암에 뿌린 아버지(문무왕)가 용이되어
감은사 절에 들어와 드나들도록 구멍을 뚫었다.
금당 앞에 동서로 서 있는 3층 석탑은 장대하며,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인다.
# 능지탑지(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
문무대왕 시신을 화장한 능지탑지는 경주 낭산
서쪽 기슭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는데, 여기서 문무대왕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바다 대왕암에 뿌린 것이다.
지금은 화장이 일반화 되었지만 당시는 꿈도 못 꾸었을 시대 아닌가.
낭산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보란 듯이 구르는 낙엽 하나 가벼이
올라온다.
첫댓글 감상 잘하고갑니다...ㅎㅎ
중국 장가계 여행기는 경주 여행 마무리 짓고 20일 후쯤에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