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8. 14;00
예봉산 자락의 텅 빈 팔당역,
누군가 떠나가고 누군가는 내리는 역사 지붕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정처 없이 떠다니는 뭉게구름,
예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던 한강수 거친 여울목에서 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들의 영혼(靈魂)을 달래주던 당집(神殿)이 8개나 있는 팔당(八堂)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은 누구의 넋을 태우고 떠다닐까.
모처럼 양평 나들이 길에 올랐다.
기차는 덜컹거리지도 않고 소실점(消失點)을 향해 두 직선을 달린다.
열차의 창밖으로 흐르는 남한강의 정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가롭게 떠다니는 쇠백로,
새끼를 등에 업고 헤엄을 치는 뿔논병아리가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그리는 풍경은 망원렌즈가 없어 촬영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마음속에 담는다.
기찻길 옆 운길산, 부용산, 청계산, 용문산, 백운봉에 여름이 꽉 찼고,
남한강 건너 해협산 자락에 먹구름이 걸렸다.
오늘이 음력으로 5월 10일이니 태종비(太宗雨)가 내리려나.
내 좌석 건너편에서 두런두런 담소를 하는 촌노(村老),
해맑은 미소로 나와 눈 맞춤을 하는 아기를 보며 전철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15;00
양평역은 시골역답지 않게 소란스럽다.
무엇이 잔뜩 들었는지 무거운 짐 보따리를 옆에 놓은 여인이
전화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쌍쌍 또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노인들 두 손에 비닐봉지가
들렸으니 오늘이 앙평장날인가 보다.
16;00
코로나 유행으로 2년 반 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습은 얼마나 변했을까,
얼굴의 주름이 올곧게 패었을까,
걸음은 제대로 걸을까,
아니면 지팡이를 짚는 꼬부랑 노인이 되었을까.
걸쭉한 입담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친구는 오늘 볼 수 있을까.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친구의 입은 얼마나 정화되었을까.
코로나로 잃어버린 2년 반 세월의 모든 것이 그리움의 대상이다.
17;00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속속 도착한다.
멀리 포천에서, 또는 괴산에서 불원천리(不遠千里) 멀다 않고 왔다.
또 다른 몸이 불편한 친구는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다.
패랭이, 조팝, 눈개승마, 플록스, 장미, 초롱꽃 등 온갖 기화요초
(琪花瑤草)가 숨 쉬는 꿈의 정원을 잠시 거닌다.
< 패랭이와 루드베키아 >
지금 내가 서있는 뒤로 정상에 서면 7개 읍이 보인다는 추읍산
(칠읍산 583m)이 보인다.
2015. 6. 17일 올랐던 추읍산이 풍수학상으로 이곳의 주산(主山)이
될 수도 있겠다.
카페 정면에는 포병부대도 있다.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는 내가 성년이 되기 이전부터 전국의 곳곳에
군부대가 들어섰다.
전국의 산을 다니며 군부대 근처를 지날 때면 볼 때마다 위치 선정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명당자리는 사찰과 묘(墓)가 점유를 했고,
적군에 대하여 공격과 방어를 잘할 수 있는 요충지에는 군부대가
자리를 잡은 거다.
실제로 청와대, 동두천 미군기지, 내가 근무했던 양구 동면의 부대
위치는 적이 쏘는 곡사포 포탄의 각도가 나오지 않는 지형이라고
배웠다.
물론 요즘에는 미사일과 각종 포병 레이더가 잘 발달되어 안전한 곳이
없지만 말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배성 친구의 표정이 여유롭다.
암(癌)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산(山)에 기대라는 뜻이다.
칠개읍을 내려다보는 추읍산의 정기가 여기까지 내려와 친구가
건강을 회복한 모양이다.
물론 본인의 넉넉한 품성, 결코 서두르지 않는 여유도 도움이 되었겠지.
< 플록스 >
암 환자들은 암(癌)을 질병이라 하지 않고 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병의 진단과 선고는 엄연히 다르다.
병의 진단은 의사가 환자를 살피어 병의 상태를 판단하고 향후의
대책을 마련하는 거지만,
선고란 준엄한 재판정에서 재판의 판결을 공표한다는 말과 같이
암에 대해서 만큼은 의사가 환자에게 선고(宣告)를 한다고 표현을
한다.
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한 친구가 인사말을 건넨다.
긴 기간 동안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문득 뇌종양 선고를 받던 그날 나의 모습이 친구의 얼굴에
오버랩된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건강을 회복한 친구가 2019. 5. 15일에 이어 두 번째 여러 친구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날이다.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서 회복되면 충청도에서는 '되살이'라는 말로
축복을 해주는데 물론 '되살이'라는 말은 사전에 없고 그냥 충청도
사투리로 보면 된다.
오늘같이 좋은 날 칠성신에게 미리 돌아가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그립다.
욕쟁이 친구, 한없이 맑은 심성을 가졌던 친구,
봉사정신이 투철했던 친구,
지점장실에서 책임자 회의를 하던 중 스피커 폰을 켜자 막 욕을
해대는 바람에 부하직원들 앞에서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친구가
떠오른다.
지금도 췌장암, 방광암, 심근경색, 후두암 등으로 고통을 받는 친구가
여럿이다.
다 조강지(糟糠之) 친구가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내가 당구를 칠 때, 또는 당구게임을 tv로 보다가도 당구공끼리
키스가 나면 가슴이 뜨끔해질 정도로 소심해졌다.
뇌경색이 왔는지 저서가 19권이나 되는 동순이의 말이 어눌하고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다른 친구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휴!
늙어간다는, 늙었다는 징조인가?
웬만한 일에도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드니 말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 웃는 게 아니겠지.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씹 새끼"라는 욕을 섞으며 대화를 한다.
보통 술자리에서 친한 사이에 부모에 관련된 욕이 아니라면 이 정도
욕(辱)은 웃으며 넘긴다.
나는 옛날 어르신들이 "애들은 욕하면서 말 배우고, 싸우면서 커간다."
라고 하시던 말씀을 많이 들었다.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이다.
물론 나도 욕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욕은 욕이 아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똥, 바보, 머저리 같은 뜻을 담은 욕설을
많이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생식기와 성행위에 관련된 욕이 많다.
'씹'이라는 말은 씨 즉 정자를 여성의 질에 넣어 난자를 만나게 한다는
'씨의 입(入)'으로 신비스러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성스러운 행위를
말하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고상하지 않은 욕으로 쓰인다.
'씨팔'은 '씨(정자)를 다른 사람에게 팔'이라는 뜻으로 남성의 성적
상황이며,
'씨'발은 '씨(정자)를 받을' 행위로 여성의 성적 상황이다.
자식을 잉태하기 의한 성스러운 사랑 행위가 모욕과 모멸감을 주는
상스러운 욕이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irony)하다.
어쩌면 환향녀(화냥년), 양갈보, 씨받이년 등 우리 민족의 서글픈
역사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밖에 염병할, 지랄, 고자, 석녀 등 욕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 생명의 잉태가 삶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의 찰나에서 완성되는데도 불구하고 비속어로 언어의 절제
대상이 되는 '씹'이라는 말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나이가 들면, 직업을 잃으면 일과 삶에 대한 에너지가 고갈되고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다들 활기차게 술잔을 권유하며 마시는데 다행히 번아웃(Burnout)에
빠진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무기력감은 자신감과 성취감이 잘 느껴지지 않고, 공감 능력까지 함께
떨어지면 까칠한 말이 튀어나와 자신과 주변을 당황하게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대부분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고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번아웃이 왔다고 해서 인생을 대충 살은 거는 아니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며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생각하면 된다.
이럴 때는 명상, 여행 등을 통해 재충전 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친구들이랑 술 한잔을 즐기며, 또는 단체 카톡방에서 마음껏 수다를
떠는 것도 좋겠다.
2019. 5. 15일엔 이곳에 38명이 모였는데 오늘은 53명이나 모였으니
참여인원이 점점 늘어난다.
종심(從心)이 되니 가는 인생이 아쉬운지 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라며
각자 스스로 위안을 한다.
맞다.
누구나 이 나이가 되면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움의 순간들,
아쉬웠던 순간들이 엄청 쌓이고 쌓였겠지.
그러니 오늘만은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리라.
양평에 오다가 송해 선생님의 별세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 내 의형(義兄)이신 고 백남봉 형님과 재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알 필요도
없다.
따라서 걸어온 길을 따질 필요도 없고 갈길도 알 수 없으니 그냥
오늘에 충실하며 술 한잔을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게 세월이다.
무심코 살다 보면,
때가 되면 세월이 나를 데려가겠지.
세월의 나이를 덜어낼 수는 없지만,
그냥 무상(無常) 속에 살다보면 통계상의 75세 54% 생존율도
의식할 필요가 없으리라.
19;00
한 친구가 "늙어가는 사진을 찍어서 뭐하느냐"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소중한 순간순간이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우리의 소중했던 짧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찍고 기록하고
그것이 나의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라며 답을 한다.
2022. 6. 8. 양평 그린 망고 카페에서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석천 선생의 해박한 지식과 명철한 사회 비판이 있는 좋은 글이 있어 항상 좋습니다.
‘동순이의 말이 어눌하고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고’
보시는 그대로 몸이 않 좋은데, 원인을 몰라 걱정이다
윤구로의 진단은 종백의 초기 증세와 같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