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문 : 누가복음 18 : 18 - 27
제 목 :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채우라
찬 양 : 60, 293, 300, 338, 428, 429,
복음송 : 영문 밖의 길
할렐루야!!
오늘도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벌써 11월 넷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11월 24일입니다. 절기상으로 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이 어제 그제 지났습니다. 강원도에는 벌서 금년 들어 두 세 차례나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은혜 중에 지켰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지키는 추수감사절이지만 지키고 나면 왠지 하나님께 죄송하고 허전한 감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절을 지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나처럼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죄책감은 들지 않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 중에는 예수님에게 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부자, 가난한 사람들, 세리, 창녀, 소경, 벙어리,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 뿐만 아니라 율법사,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백부장, 관리, 정치인, 도덕가,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 중에 한 청년 법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식으로나, 권력으로나, 재산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젊고 패기 있는 이 청년에게는 권력과 지식의 날개까지 달게 되었고 거기다가 10계명까지 잘 지켜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청년입니다. 그는 신앙심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영생에까지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이 청년은 막10:17절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 앞에 나와서 꿇어앉아 영생의 길을 물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그의 열심 또한 칭찬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듣고도, 영생의 길을 알고도, 돈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이 청년은 참으로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를 등지고 떠나간 사람의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율법적으로 흠이나 하자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렇게도 열심히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그가 그만 물질 문제에 부딪치자 근심하며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문둥이가 되어서 평생 고생하다가 죽었고,
가롯유다는 목매어 죽으려 하였으나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다가 즉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죗값으로 전쟁에서 죽어서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부자청년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이 청년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행복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명예, 부귀, 재물, 권세, 문벌, 가문, 젊음, 건강, 다 좋았으며 거기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십계명까지 지키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위는 공회원이요, 법관입니다. 게다가 돈도 많이 있어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십계명을 다 지켰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이 청년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나 그래서 잠시의 만족을 얻었을지 모르나 그의 영혼의 만족은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와서 영생을 구한 것입니다.
독일의 학자 괴테는 ‘나는 일생 중에 즐겁다고 생각한 시간은 불과 4주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로마의 학자요 웅변가인 시세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고 그 다음으로 행복이 있다면 하루 속히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시인 바이론은 ‘나는 일생 중에서 즐겁다고 생각하는 시간은 오직 한 시간뿐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인생의 무상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 중심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을 허무한 것이다. 라고 하였고 삶의 참 기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2. 이 부자 청년은 고통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이세벨을 피하여 호렙산 동굴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40년간의 광야의 시련을 겪은 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영도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이 멸망하는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은 고난의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부자 청년은 이와 같은 눈물과 피나는 아픔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청년은 부모 덕분에 고생하지 않고 공부 잘하고 재물의 풍요로움을 누렸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참 인생의 의미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깊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이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흔적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 때문에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인생의 아픔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안일하고 순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이나 믿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저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살면 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도둑질도 안 했습니다. 거짓말도 안 했고, 간음도 안 했으며, 술도 안마시고, 나쁜 곳에 가지도 않고, 또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는 영생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도 모르고 만족감도 없었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행복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그의 인생은 너무나도 무의미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고통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도가 잘 안됩니다.
3.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 앞에까지 왔으나 결단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 청년이 주님 앞에 찾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나사렛 출신 목수로 알고 있었으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서 “선하신 선생님이여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켜라” 고 하시자 그런 것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하시니까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멸망을 당하는데, 이 사람은 예수 앞에까지 왔다가도, 그렇게 소원이든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보다는 자기가 가지고 누리며 부자로 사는 것이 더 좋았으며
예수를 따르는 것보다는 그의 권세와 재물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교회까지 왔다가도, 예수 앞에까지 왔다가도, 구원의 문턱까지 왔다가도,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은데 결정적인 것이 부족하였습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결단력이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눅19:1절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시고 자원하여 말하기를 (눅19:8)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고 말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에는 잘하는 것 같이 생각이 들고 이만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을 택할 것인지 영생을 택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영생의 문턱에서 뒤돌아서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 멘>
4. 영생의 길은 좁고 험하며 어려운 길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 앞에 나왔다가 오히려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재물이 영생 길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문 옆에는 작은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바늘 문이라고 합니다. 밤이 되어서 성문이 닫히면 이 비상문으로 통행을 합니다. 그런데 약대에 짐을 싣고 온 사람이 이 문을 통과하려면 짐을 다 내려놓고 땅에 완전히 엎드리게 하고 한사람이 앞에서 끌고 또 한사람은 뒤에서 밀고해야 들어가는 비상구입니다.
이같이 천국의 영생 길은 세상의 모든 죄 짐을 내려놓고 겸손히 엎드려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 멘>
<찬338장 3절>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영생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의 부귀와 권세, 영화, 명예를 배설물처럼 모두 버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과 가족까지 모두 버리고 주님을 따라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앞서가신 모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모두 이 길을 갔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시면서, 또 온갖 고문을 당하시면서 정신이 들면 손수 작사 작곡하신 「영문 밖의 길」 이라는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영생의 길이 그 길밖에 없었기에 주기철 목사님은 차디찬 감방 안에서 흐느끼며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도 한 번 다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고갯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 복락 얻으려면 이길 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아 멘>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주님도 가셨으니 우리도 가야 합니다. 끝까지 돌아서지 말고 앞만 보고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5. 축복 받는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은혜 받고 영생을 얻는 길이 어렵고 힘들고 좁은 길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축복을 받는 길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축복을 받으려면 축복 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그저 받을 복만 욕심을 부립니다. 그것이 바로 기복사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대로만 순종하면서 산다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들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사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그리고 야곱도 하나님께서 그의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하셨지만 실상 그가 축복을 받기까지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마지막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시려고 천사를 보냈습니다. 야곱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도 놓지 않았습니다. 아무려면 천사가 사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마지막까지의 인내와 끈기와 열정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한 번 하나님께 매달려 보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길은 험하고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려고 하지 않고 쉽게 축복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최소한의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의무도 하지 않고 공짜로 받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반드시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 관원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자신 있게 자기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부자 청년과 같이 착각하고 있는 성도는 없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하며 자신을 과대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면 그런 사람일수록 형편없이 부족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24: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하였습니까? 혹시 오늘 성경 말씀의 부자 청년처럼 착각하지나 않습니까?
내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이 근심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재물이 영생의 문턱에서 되돌아서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재물이 범죄의 원인이 되어서는 더 더욱 안 될 일입니다.
세상의 재물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 은혜 받고 변화가 되어서 자진하여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므로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니라” 는 말씀을 들은 삭개오와 같은 믿음과 행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욥1:21) 욥이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모든 만물을 주셨으니, 있는 것 다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고 또 죽어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몸을 살려주셔서, 지옥 갈 몸 천국가게 해 주셨는데 무엇인들 못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 원치 않으시고 그 중에 일부분, 11조만 드리라고 하셨고, 첫 열매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년 한해도 하나님의 은혜로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험한 인생길,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적이 없었기에, 오늘까지 살아온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만입이 있은들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다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찬양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몸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물질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들의 감사가 부족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감사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항상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치는 감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대대로 충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