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관중이 소설을 쓸 때 이 사상을 뼈대로 삼았다고 말씀드렸죠.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은 한마디로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는 다 가짜(도적)이고, 유비의 촉나라만이 한나라를 계승한 진짜 주인공(정통 왕조)이다"**라는 역사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삼국지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유비 삼형제를 응원하고 조조를 악당으로 보게 된 역사적·정치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상이 어떻게 생겨나고 시대를 흔들었는지 핵심만 짚어드릴게요.
## 1. 정반대였던 초기 역사관: 원래는 '위나라'가 정통이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삼국시대 직후에 쓰인 실제 역사서인 진수(陳壽)의 《삼국지》 정사에서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습니다. 이를 **'위진정통론'**이라고 합니다.
* **이유는 철저한 현실 정치 때문:** 정사를 쓴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었지만, 촉이 망한 뒤 삼국을 통일한 **서진(사마염의 나라)**에서 벼슬을 지냈습니다. 서진은 위나라 황제에게 왕위를 물려받는(선양) 형식으로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 따라서 위나라가 가짜 정권이 되면 사마염의 서진 역시 근본 없는 가짜가 되기 때문에, 진수는 서진의 정당성을 위해 위나라 조조-조비 라인을 정통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2. 반전의 계기: 처지가 비슷하면 감정이 이입된다
역사학계의 흐름이 '촉한정통론'으로 확 뒤집힌 것은 후대의 **시대적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남송(南宋) 시대의 대유학자 **주희(주자)**였습니다.
> **남송의 처지 = 촉나라의 처지**
> 서기 12세기, 송나라는 북쪽의 이민족(금나라)에게 수도와 중원 땅을 통째로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왔습니다(남송). 당시 남송 지식인들의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땅은 좁고 힘은 밀리지만, **"저 화북을 차지한 금나라는 오랑캐고, 남쪽으로 밀려난 우리가 진짜 한족의 정통이다!"**라는 정신적 명분이 절실했습니다.
>
이 눈물겨운 처지가 과거 조조(위나라)에게 중원을 뺏기고 사천방(촉나라)으로 밀려났던 유비의 상황과 소름 돋게 일치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세우며 명분론을 강화했습니다.
## 3. 삼국시대 정통론 변천사 한눈에 보기
시대에 따라 정통을 바라보는 눈은 이렇게 바뀌어 왔습니다.
| 구분 | 위진정통론 (魏晉正統論) | 촉한정통론 (蜀漢正統論) | 역사의 현실주의적 시각 |
|---|---|---|---|
| **정통 왕조** | **위(魏)나라** | **촉한(蜀漢)** | **정통 없음** (세 나라가 할거함) |
| **대표 학자/저서** | 진수 《삼국지》, 사마광 《자치통감》 | 주희 《통감강목》, 나관중 《삼국지연의》 | 현대 역사학계 |
| **핵심 명분** | 실제 중원을 지배했고, 서진으로 황위가 이어짐 (실리주의) | 유비는 황실의 핏줄(유씨)이며 한나라의 맥을 이음 (명분주의) | 영토, 인구, 통치력 면에서 위나라가 압도적이었으나 통일은 못 함 (객관주의) |
## 4. 나관중에 의해 대중문화의 치트키가 되다
명나라 시대를 살았던 나관중은 주희가 완성해 놓은 이 '촉한정통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 특성상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내려면 **'착한 주인공(유비)'과 '강력한 악당(조조)'**의 대립 구도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유비의 한실 부흥 투쟁은 유교적 충의를 실천하는 눈물겨운 대서사시가 되었고, 조조는 황제를 겁박하는 천하의 역적이 되었습니다.
> **결론적으로**
> 촉한정통론은 단순한 역사 시각을 넘어, **"비록 힘의 논리(위나라)에 밀려 실패했을지라도, 정의와 명분(촉나라)을 지킨 자가 역사의 진짜 주인공이다"**라는 인간적인 위로와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읽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출발점이 바로 이 촉한정통론인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