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파스카 부활 성야 미사
파스카 성야의 모든 예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여 교회 전례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한다. 따라서 교회는 장엄한 전례로,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다.
성야의 장엄한 시작, 빛의 예식 불 축복과 파스카 초의 마련
성당 바깥 적당한 자리에 화롯불을 준비한다. 사제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에 봉사자들과 함께 그리로 간다. 봉사자 한 사람이 파스카 초를 들고 간다. 행렬 십자가와 촛불은 들고 가지 않는다. 성당 바깥에 불을 준비할 수 없을 때에는 성당 문 안쪽에서 할 수도 있다(13항 참조). 사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하며 신자들과 함께 십자 성호를 긋는다. 이어서 사제는 보통 때처럼, 모여 있는 교우들에게 인사하고 아래의 말이나 비슷한 말로 성야 예식을 간단히 풀이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자발적이며 기쁜 마음으로
나는 어려서 어른들은 전부 허풍쟁이로 알았습니다. 모든 말에 엄청난 허풍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국말에는 그 허풍이 아주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특히 ‘박씨 부인전’과 같은 소설에서는 그 허풍이 아주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집채만 한 바위덩어리를 보고 채찍을 휘두르며 ‘네 이놈 저리로 가거라.’ 하면 그 바위덩어리가 엉금엉금 기어서 제자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로 어른들은 허풍으로 똘똘 뭉쳐진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과학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십이 되어 중국 만리장성을 가서 보고 그 얘기가 허풍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엄청난 크기의 바위덩어리를 옮기기 위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들이 지엄한 진시황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바위덩어리를 움직여 그 높은 산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죽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돌 하나하나가 그들의 목숨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얘기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논어 자로 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불정, 수령불종."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정자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되고,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자진해서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그 장성을 쌓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진시황은 백성들에게 채찍으로 휘두르며 죽지 않으려면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허풍 같은 말은 허풍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진시황은 바위덩어리를 보고 채찍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백성을 보고 흔들었고, 백성을 바위덩어리로 본 것입니다. 그가 폭정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항상 전전긍긍했던 것도 그가 전혀 올바르고 너그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향료를 발라드리려고 용감한 세 여인이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무덤을 막고 있는 바위 돌을 어떻게 치울지 걱정합니다.
복음에서 언급하는 바위 돌은 하느님을 만나는데 가로막고 있는 장애들을 상징합니다. 그 바위 덩어리와 같은 엄청난 장애들을 치워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시황과 같이 힘과 권력으로 그것을 없애거나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돈으로 사람들을 사서 그 일을 하게 한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 엄청난 장애들에 걸려서 포기하거나 지례 겁을 집어먹고 앞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연약한 여자들에게는 그 일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군인들까지 지키고 있으니 설상가상 격(雪上加霜 格)으로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은 그 모험에 나섭니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주일날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서 누군가 돌을 굴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장애를 제거해 놓으신 것입니다. 천사를 시켰는지, 당신의 권능으로 하셨는지 그 장애들을 없애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엄청난 것을 상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당신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당신 앞에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를 없애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에게 찾아오라고 강제로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원천이시니 우리는 그분의 명령이 없어도 당연히 그분을 따라 그분의 품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이른 새벽에 주님을 만나려고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처럼 자발적으로 주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아주 자발적이며 기쁜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