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봄, 남해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 입김에 뻣뻣했던 나뭇가지들이 몸을 녹이고 있다. 가지 사이로 설핏 풋마늘 향이 실리면 친정 엄마로부터 전화가 온다. “내가 와 이 나이까지 안 죽고 사는지 모르것다.” 지청구를 늘어놓으시며 옆 마실을 가자는 듯 남해에 바람 쐬러 가잔다.
어제 일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는 구순의 엄마는 바다만 가면 옛 기억을 다 쏟아낼 듯 봄마다 자식들을 불러 모은다. 두 시간이 넘는 먼 길이 걱정이지만 환했던 엄마의 봄날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슨 대수이랴.
흑백 사진 속에서 한복 저고리에 꽃 브로치를 단 젊은 엄마가 친구분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남해대교 개통기념 나들이’이라고 사진 위에 쓰여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나보다. 귀했던 봄나들이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남해의 바다가 엄마의 청춘처럼 푸르러서 좋았던 것이었을까 엄마는 그 사진을 두고두고 꺼내 보며 남해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자식 셋을 세상에 내놓느라 바다는 엄마의 가슴속에서만 출렁였다. 반찬값을 벌기 위해 집 근처 통조림 공장에서 받아온 알밤을 깎고, 하나에 십 원씩 쳐 준다는 인형의 리본을 접으며 노동으로 꽉 찬 하루를 보냈다. 검게 그을린 곤로 심지에 불을 올려 여섯 개의 도시락을 싸고 우리 학창 시절을 뒷바라지하다 보니 엄마의 젊은 날도 사그라져 갔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뒤늦게 시작한 아버지의 사업이 일어나자, 엄마는 제일 먼저 남해를 떠올렸다. 아버지 와 아들, 사위 차를 줄줄이 앞세워 나서는 엄마의 표정은 반짝이는 햇살보다 더 환했다. 대교 아래 바다는 보란 듯 출렁이며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엄마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름도 거룩한 노량의 바다 위에 붉은 몸체를 뽐내며 강건하게 서 있는 남해대교는 예술작품의 조형물처럼 아름다웠다.
“이 다리가 없을 때는 남해가 섬이었는 기라. 뭍으로 시집온 울 동네 남해 댁이 친정에 못 가서 그리 안달을 해쌋더만 인자 올매나 좋노” 엄마는 마치 어제 대교가 세워진 듯 벅찬 눈길로 오래도록 다리를 바라보았다.
대교를 건너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이른 봄 향기에 코를 킁킁대면 수많은 횟집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다리와 서대회, 멸치 쌈밥 같은 메뉴가 보이지만 우리는 엄마가 귀동냥해 온 횟집으로 향했다. 바다를 끼고 더 좁은 길을 구불구불 지나면 이런 곳에 횟집이 있을까 싶은 곳에 이르러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간판도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날그날 잡은 활어로 회를 떠 준다. 능숙한 솜씨로 비늘을 치고 소복하게 회를 쌓아 올려주는 주인아줌마의 손길에 섬마을의 인심이 넘쳐났다. 바다를 다시 헤엄쳐 나갈 듯 탱탱한 살점에 먼 길을 찾아온 수고로움이 입속에서 사라진다. 스끼로 나온 홍합 국물의 들큼함과 남해 노지 시금치의 달큼한 무침에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우리는 서로 ‘마이 무라’ 다정한 인사가 요란스럽다. 객지에 흩어져 있던 자식들이 당신 눈앞에서 배불리 먹는 모습에 엄마는 더 신이 나서 “봐라, 남해 오니 좋제” 하며 다시 바다 타령을 하셨다.
하우스 근처의 돌밭에는 여린 초록의 풋마늘이 올라와 비릿한 바다 냄새에 마늘 냄새를 더한다. “하고 벌씨로 마늘이 이리 자란 거 보래이. 마늘은 거센 바닷바람에 여물게 자란 마늘이 독해서 최곤 기라. 사람도 이리 여물어야 어딜 가도 대우 받는기라” 섬 아낙네가 된 것처럼 마늘밭에 주저앉아 흙을 꾹꾹 누르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고향에 온 듯 편안해 보였다.
“이런 곳에 집 짓고 철철이 너그들이 와서 같이 놀고 하면 참말 좋것다”
엄마의 먼 바램을 들으며 해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망망대해 바다가 보였다가 점점이 뿌려 놓은 섬들이 보였다가 다시 낮은 산이 보인다. 이처럼 평화로운 정경을 주는 섬이 또 있을까. 풍경이 주는 평화의 끝자락에 저 멀리 다랭이논이 보인다. 다랭이논은 한 평이라도 더 땅을 일구느라 층층이 돌을 쌓아 만든 산골짜기의 계단식 논이다. 심지어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은 논도 있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땅도 다 논으로 만든 절박함이 스며 있어 땅의 풍경이 애잔하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심고 거둘 수 있을 뿐이다.
“저런데도 땅이라고 다 일군 거 보래이. 섬 여자들은 참 억척스럽고 부지런해서 하루도 노는 날이 없는기라. 오데서 살던지 다 지 하기 나름이라” 당신의 고단했던 지난날을 대신하듯 우리의 앞날을 훈계하듯 엄마는 읊조렸다. 다랭이논 사이 수로로 숭고한 땀이 흘러가고 있다.
바다에 일몰의 빛이 내리면 마당에 유자나무가 향기롭게 버티고 있는 장어집에 이르게 된다. 펄득이는 바닷장어를 뜰채로 잡아 손질해 오면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불판에 굽는다. 투명했던 장어살이 하얀 꽃을 피우며 볼록하게 솟아오른다. 방아잎을 다져 넣은 양념장에 콕 찍어 한 입 넣으면 우리의 여행은 보신이 되어 온몸이 거뜬해졌다. 한참 애들을 키우느라 지쳤던 몸을 장어로 달래고 나면 일 년이 금방 흘러갔다. 다시 엄마와 새봄을 기약하며 우리는 도돌이표처럼 가족 여행을 떠났다. 대교 아래에서, 마늘밭에서, 다랭이논 위에서 흘리듯 똑같은 말을 하던 엄마의 넋두리는 지금까지 내 삶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도록 잡아 준 닻줄이 되었다.
그렇게 수십 년의 봄이 세월로 넘어가고, 엄마의 기억 마저 후루룩 앗아가 버렸다. 십 년 전, 집 앞 사거리에서 집을 못 찾겠다고 한 그날부터 엄마는 딴사람이 되었다. 늘 좋은 말만 하던 엄마는 입만 열면 다른 사람 험담을 한다. 옆에 있는 아버지에게도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며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정작 당신은 싹 잊어버린다. 치매는 둥글둥글했던 엄마의 머릿속을 뾰족뾰족하게 만들어 아무에게나 들이받으며 다정했던 당신 모습을 없애고 있다.
혹여 예전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엄마 기억 속의 봄날을 찾아 줄 수 있을까 올해도 우리는 바다로 가고 있다. 수산 시장 가면 멸치도 한 상자 사서 육수도 우리고, 풋마늘도 한 단 사서 발갛게 무쳐 먹자며 바른 소리를 하는 엄마에게서 온전했던 예전의 모습이 훅 스쳐 가고 이내 엄마는 딴사람이 되어 버린다. 당신이 가자고 나선 길에 ‘오델 간다꼬 나를 이리 끌고 댕기냐’며 남해 도착할 때까지 고시랑고시랑 귀를 따갑게 했다. 대교는 변함없이 붉은빛 위용을 발하고 있다. 변해버린 엄마에게서 지난날 동네 남해댁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지나간 기억들이 철썩이는 파도로 일렁대고 있다고 믿는지 한없이 대교 아래 깊은 바다로 시선을 더듬고 있다.
“여가 오데고?”
저 수평선 끝에서 밀려오는 너울처럼, 사라져간 기억 끝에서 엄마의 봄날이 다시 피어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 엄마의 청춘 같은 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