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세종시청~오송역, B1버스에 저상버스는 없어
비장애인은 한 번에 가는 거리, 비장애인은 환승에 ‘시간 두 배’
비장애인만 태우고 떠나려는 버스 밑에 기어들어가 ‘출발 저지’
B1버스가 장애인을 버려둔 채 비장애인 승객만 싣고 떠나려고 하자, 이형숙 대표가 버스 차체 밑으로 기어들어가 출발을 저지시켰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습니다. 왜 장애인만 버리고, 비장애인만 버스에 태워 이동하려고 합니까? 왜 장애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세종시장님, 대전시장님 너무 하지 않습니까? 법이 있는데 왜 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까? 장애인도 B1버스 타고 세종시청 가려고 합니다. ‘3.26장애인대회’ 참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고 하니 정류장 옮겨서 왜 비장애인만 태우고 홀라당 가려고 합니까? 왜 장애인은 버리고 가려고 합니까. 장애인은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까? 이렇게 버려도 됩니까? 더 이상은 못참겠습니다.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습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휠체어에서 내려 B1버스 아래로 기어 들어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가 울부짖듯 외쳤다. B1버스에 타고 있던 비장애인들은 이 버스 또한 탈 수 없음을 이내 곧 깨닫고는 쭈뼛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당연히 이 상황이 분통 터지는 사람도 있다. 한 시민은 버스 아래로 기어들어간 이형숙 대표에게 다가가 “이기적이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 왜 여기서 이러냐”고 성을 냈다. 비장애인 활동가를 밀치며 화를 내는 시민들을 경찰이 가로막아 세우기도 했다. 26일 오후 12시 30분, 오송역 앞 오송가락로 사거리의 풍경이다.
오송역 앞 오송가락로 사거리를 막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강혜민
오송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오송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버스는 그 정류장에 멈춰서 사람들을 태우고 각자의 목적지로 떠난다. 10분 간격으로 자주 오는 B1버스를 타면 30분 만에 오송역에서 세종시청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휠체어 탄 사람은 탈 수 없다. B1버스에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대전역을 기점으로 세종시청을 거쳐 오송역까지 오가는 B1의 운영주체는 대전시다. 지난 2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측은 대전시에 B1 저상버스 도입계획 및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위한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대전시는 묵묵부답이다. 전국장애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오송역에 몰려든 26일 당일에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B1버스는 당연히 마련되지 않았다.
오송역 앞에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 손피켓에는 “세종시와 대전시는 BRT B1노선의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 “세종시청 가나요?” 물음에 돌아온 답 “장애인은 못타요”
앞서 오전 11시, 오송역에 도착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버스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했다. 한명희 전장연 활동가는 “B1 저상버스 도입에 대해 세종시에 문의하니 세종시는 실제 책임주체는 대전시라고 했다. 대전시는 국토교통부의 법 개정 문제라고 했다. 세 주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1은 도심과 외곽을 잇는 간선급행버스다. 즉, 시외이동에 해당하는데 장애인들이 수년째 시외이동권 보장을 외치고 있음에도 속도는 매우 더디다. 한명희 활동가는 “현재 장애인 탑승설비가 갖춰진 시외이동버스가 시범운행 중이긴 하나 운영대수가 현저히 적다 보니 사실상 이용할 수가 없다. 그런데 국토부는 ‘장애인 시외버스 이동률이 너무 적다’고 한다. 접근부터가 막혀 있는데 어떻게 이동할 수 있나”고 일침을 가했다.
26일 오전 11시, 오송역에 도착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버스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후, 이들은 실제 장애인이 탑승할 수 없는지 확인하고자 B1 버스승차장으로 갔다. B1버스에 비장애인 승객들이 다 승차한 후,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대표와 이형숙 대표가 버스기사에게 “세종시청 가나요?”라고 물었다. 기사는 바로 “휠체어 탄 사람은 못 타요”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이 거듭 문제제기하자 기사는 “탈 수가 없다. 방법이 없다”고 손사래 치며 버스를 출발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문경희 대표는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입구 계단에 앉아 “우리도 시청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실랑이가 십여 분 지속되자 버스 승객들은 계단에 주저앉은 문경희 대표를 지나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탈 수 없는 B1버스를 장애인 활동가들이 점거하면서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자 승객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창밖을 둘러보고 있다. 차벽에는 B1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손피켓이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B1 버스가 있음에도 오송역에서 세종시청에 가기 위해서는 늘 어렵게 버스를 바꿔 타야 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세금 내는 세종시민이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동에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단시 시민으로서 너무나도 이동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민분들, 오늘 5분, 10분 늦으셨지만 저희는 평생을 이렇게 이동합니다. 저희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십시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대표)
문경희 대표에 따르면, 오송역에서 세종시청까지 가기 위해서 휠체어 탄 장애인은 오송역에서 B2(구 990번)를 타서 도담동에 내려 B0(구 900번)으로 갈아타야 한다. B1 타면 30분 안에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장애인은 한시간 가량 걸려서 가야 한다.
문 대표는 “B1은 세종시청에서 대전역까지도 연결된다. 그러나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그렇게 못 간다”고 자조했다.
또한 문 대표는 “세종시는 국토부에 저상버스 도입률이 25.8%라고 올렸는데 거짓말이다. 900번이랑 990번의 모든 차종이 저상버스다 보니 저상버스 ‘개수’가 올라가 도입률이 높아졌을 뿐”이라면서 “현재 세종시 버스 노선은 60개 남짓인데 저상버스가 도입된 노선은 6개 정도밖에 없다. 실제 노선률로 따지면 8.5%밖에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B1버스와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점거하고 있던 문 대표는 차량 내부를 쓰윽 한 번 보더니 “B1버스가 도입된 지 사오년 된 걸로 기억한다. 이제야 버스 내부를 처음 본다. 시트 가죽으로 되어 무척 좋아 보이는데, 짜증 난다”며 쓰게 웃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공동대표가 B1버스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감았다. 사진 강혜민
같은 시간, 장애인 활동가들은 버스가 나가는 출구도 막아섰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나가지를 못해 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정체된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버스 기사들은 운전석에서 내려 활동가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활동가들은 장애인 이동권 현실에 대해 설명하며 “세종시랑 대전시에 항의하시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대해 기사들은 “이 버스는 장애인도 탈 수 있는 버스다. 이 버스는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청주시민인데 내가 왜 세종시에 전화해야 하냐”며 활동가들에게 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장애인은 이동할 수 있는 세종시의 열악한 장애인 이동권을 알리기 위해 장애인 활동가들이 오송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나가는 출구를 막아섰다. 그러자 움직이지 못한 버스와 승용차들이 일렬로 서있다. 두 번째에 서 있는 승용차의 운전석 차 문은 열려 있으며, 그 뒤로도 버스 기사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오송역 앞 버스승강장 출구를 막아선 활동가들. 손피켓에는 “세종시와 대전시는 BRT B1노선의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또 다른 장애인 활동가도 장애인은 탈 수 없는 B1버스를 규탄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버스 밑으로 들어갔다. 사진 강혜민
- 비장애인만 홀랑 버스에? 장애인,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 출발 저지
버스 점거가 한 시간 반가량 지날 무렵이던 12시 30분, B1버스는 ‘비장애인 승객을 위한’ 승강장을 임시로 만들어 비장애인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이형숙 대표가 긴급히 버스 차체 밑으로 기어 들어가면서 ‘소란’은 더욱 커졌다. ‘또다시’ 버스를 탈 수 없게 된 승객들이 마침내 더 큰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제야 장애인들이 ‘눈에 보이는 존재’로 인지되기 시작한 시간이기도 했다.
버스 점거가 한 시간 반가량 지날 무렵이던 12시 30분, B1버스는 ‘비장애인 승객을 위한’ 승강장을 임시로 만들어 비장애인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사진 강혜민
B1버스가 장애인을 버려둔 채 비장애인 승객만 싣고 떠나려고 하자, 이형숙 대표가 버스 차체 밑으로 기어들어가 출발을 저지시켰다. 사진 강혜민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서는 장애인, 노인,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이동할 권리가 있다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는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동하지 못하면 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권은 생존권입니다. 오늘 하루 세종시청 가자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겁니다. 우리보고 왜 자꾸 불법이라고 하십니까?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지키고 있지 않은 정부와 세종시, 대전시 아닙니까? 우리는 이들에게 법에 있는 내용을 제발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 몇 시간 점거했다고 불편해하십니까?”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이날의 ‘소동’은 대전시로부터 ‘담당 부처 국장 면담 후에 시장 면담을 추진하겠다’는 공문을 월요일에 받기로 약속하면서 오후 세시에야 겨우 마무리됐다. 그 사이 ‘3.26장애인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에 내린 장애인 활동가들이 결집하면서 인원수는 점차 커졌고, 이들은 오송가락로 사거리를 막아서며 열악한 세종시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알려내고 있었다.
네시간 가량 이어진 버스 점거를 마무리하며, 오송역 앞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