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23길 235 (수유동)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조선후기 1872년에 신도 고상진(高尙鎭)이 창건하여 ‘소란야(小蘭若)’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와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어우러져 경내를 에워싼 삼성암. 나반존자(독성)기도 도량으로서는 청도 운문사 사리암과 쌍벽을 이루는 도량이다. 나반존자는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는 데 부처님으로부터 혼자 수행하여 깨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授記)를 받고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는 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이러한 나반존자(독성)를 위해 따로 전각을 마련하여 섬겨왔다. 그러나 나반존자를 섬기고 기도를 하기 위해 절이 창건된 것은 삼성암이 유일한 예일 것이다.
창건에 앞서 한양에 살았던 신도 박선묵(朴銑默)과 유성종(劉聖鐘)·서윤구(徐潤龜)·고상진·이원기(李元基)·장윤구(張潤九)·유재호(劉在護) 등 7인은 1870년 봄에 함께 발심(發心)하여 현재의 절에 있는 천태굴(天台窟)에서 3일 동안 독성기도(獨聖祈禱)를 마치고 절의 창건을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을 이행하여 창건한 그 뒤 1881년에 박선묵이 독성각(獨聖閣)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삼성암으로 바꾸었으며, 1936년에는 동운(東雲)이 신도 김용태(金容泰)의 시주를 얻어서 칠성각(七星閣)을 중건하였다.
1942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절이 무너지게 되자 화계사(華溪寺) 주지 회경(會鏡)이 중창의 뜻을 세워 중현(重玄)·성섭(性攝)과 함께 대방 12칸을 세웠으며, 1943년에는 혜운(慧雲)이 독성각을 다시 세웠다.이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 사리암(舍利庵)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성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삼성암은 창건이전부터 나반존자에게 기도를 올렸던 청정도량이었고, 절이 창건된 이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반존자께 소원을 빌어 성취하고, 난치병을 완치했다는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공주에서 미곡상을 하는 임선달의 아들 수동이가 삼성암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하고 꼽추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나반존자의 영험담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나반존자의 영험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삼성암은 필수 기도처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삼성암 독성각엔 기도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나반존자의 영험이 가득한 도량임을 느낄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는 1961년부터 본공(本空)·세민(世民)이 중건하고 보수하였는데, 법당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칠성각·독성각·범종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