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란 무엇인가2 / 이재무
좋은 시란 무엇인가.
-구성에 대하여
시의 구성에 대하여 알아보자. 시의 구성이란 시어의 배열 또한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 시의 짜임새를 말한다. 시의 정서나 내용을 이끌어가는 질서나 논리인 시의 구성이란 비유적으로 말하면 건축에서의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 없이 건축이 가능하지 않듯이 시에 있어서도 구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잘 짜여진 시는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으며 시적 감동도 이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구성법 가운데 지면의 제약에 따라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비유적 구성
우선 시 쓰기에 있어 시적 발견과 상관성이 깊은 ‘비유적 구성’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비유적 구성을 이해하려면 비유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비유란 서로 다른 대상들 사이의 유사성을 근거하여 이루어진 진술을 말한다. 그런데 이 유사성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형태와 모양의 유사성이고, 다른 하나는 성질과 내용이 유사성이다. 가령 ‘이재무 시인의 얼굴은 말린 해산물 같다’와 같은 진술은 두 대상인 ‘얼굴’과 ‘해산물’ 사이에 ‘구겨지다’라는 형태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경우이고, ‘생활은 촛불이다’와 같은 진술에서는 ‘생활’과 ‘촛불’ 사이에 ‘언제 꺼질지 모른다’라는 내용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 <소주병>, 전문
이 사부곡은 어느 날 아버지가 부재한 시골집에서 시적 화자가 아버지의 생애를 회한으로 되돌아보는 내용을 주조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살면서 자신의 생애를 자식들에게 따라주다가 삶을 마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간단한 서사가 울림을 주는 것은 비유적 구성의 효과 때문이다. ‘아버지’와 ‘소주병’은 다 같이 자신을 따라주다가 빈 것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이 시는 두 대상 사이의 내용이나 성질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시가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최승호의 시 <자동판매기>, 김명수의 시 <동전 한 잎>, 손택수의 시 <소가죽 북>, 이재무의 시 <감자 꽃 > 등의 시편들은 비유적 구성에 의해 쓴 것들이다.
2. 선경후정
두 번째로 선경후정의 구성법(2단 구성)에 대해 알아보자. 선경후정이란 먼저 어떤 대상이나 세계에 대해 서경(풍경, 사실)을 먼저 제시한 다음 그것에 대해 뒤에서 시적 화자가 의미나 가치(의견)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들이 물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복효근, 시, <누 떼가 강을 건너는 법>, 전문
이 시는 전체 6 연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1연에서 4연까지는 티브이의 화면에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사실)이고 나머지 5연과 6연은 시적 화자의 의견을 진술한 것이다. 누는 말과에 속한 동물로서 서서 살다가 죽어서야 눕는다. 물론 잠도 서서 잔다. 그러니 누군가에 목숨을 빚졌기 때문에 서서 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의식이 없는 동물로서 6연에서처럼 스스로 전체의 안전한 도강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순전히 시인의 생각일 뿐이다. 최동호 시인의 시 <히말라야 독수리들>과 정진규 시인의 시 <플러그- 알. 2>가 여기에 해당되는 시편들이다.
3. 이야기시
세 번째로 이야기시의 구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한 편의 시에 짧은 서사가 들어있는 시편을 우리는 이야기시라 말한다. 이야기 시에는 역순행 구성과 순차적 구성의 시가 있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 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 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시, <여승>, 전문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 시편이다. 이 시는 가난 때문에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된 한 여인의 비극적이고 기구한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등의 이미지와 적절한 비유를 통해 한 여인의 한 서린 삶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는 시적 화자와 여승과의 만남이 그려져 있다(현재). 2연에서 4연까지는 과거에 시적 화자가 우연히 만났던 한 여자가 기구한 삶을 살다가 여승의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과거). 요컨대 이 시는 여승을 만나고 나서 한 여자가 여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보는 역순행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에 반해 시간의 순차적 진행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순행 구조의 시도 있다.
아주 오랜 전의 일입니다. 6학년 학기 초 담임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내일부터 매일 당신에게 계란을 갖다 바치라는 거였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시는 계란이 귀물이어서 물물교환으로 사용이 가능했었습니다. 어느 안전인데 선생님 말씀을 어길 수 있었겠어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식구들 몰래 계란을 훔쳐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암탉들이 알 낳는 곳을 염탐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2학기 말 무렵이었습니다. 열 마리였던 닭들이 그새 하나둘 제사용으로 손님용으로 잡아먹히게 되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계란을 빠뜨리는 날이 늘어나자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울먹이면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가늘게 떠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괜찮다, 이제 그만 가져 오너라. 그리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내주었습니다. 통장이었습니다. 그동안 네가 가져온 계란 값이다. 나도 좀 보탰다. 그거면 중학교에 갈 수 있을게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중학교에 갈 수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재무, 졸시, <계란과 스승>, 전문
이야기 시편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이들은 백석 시 전집과 신경림 시인의 시편들 그리고 김명인 시인의 <동두천> 연작시 등을 살펴보기 바란다.
4. 서경시의 구성
네 번째로 서경시의 구성법에 알아보기로 한다. 말의 의미 그대로 서경시는 대상이나 세계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부여하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나 풍경만을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일명 회화시, 묘사시라고도 한다.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 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첨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신경림, 시, <여름날>, 전문
소나기가 내리고 난 뒤 물이 불고 달리는 자동차는 그 앞에서 머뭇거린다. 기계가 자연 앞에서 겸손해 하는 것이다. 또 젊은 아낙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 놓고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있다. 이 때의 아낙은 원시적 생명력으로 충일한 건강성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도회지 여성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눈부신 생의 관능은 어지럼증을 불러온다.
이 시는 시적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시적 대상들 예컨대 차, 분물, 동구, 젊은 아낙, 버드나무 등속을 미적 거리를 유지한 채 한 폭의 그림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시란 언어로 그린 그림’이라는 시의 정의에 그대로 부합하는 시편이다. 대상에 대한 화자 우월주의는 자칫 감상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박용래 시인의 시 <점묘>와 이영옥 시인의 시 <단단한 뼈> 등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5. 삼단구성
다섯 번째로 삼단 구성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삼단 구성이 가장 정제되어 나타난 장르가 시조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조운, 시, <석류>, 전문
초장은 일으키는 구실을 한다. 시의 배경이나 사물에 대한 표면적 의미를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 중장은 전개의 역할을 한다. 초장의 일으킨 바를 이어서 내용을 구체화시킨다. 종장은 마무리에 해당되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주제도 여기서 심화되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