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한동희 | 날짜 : 10-12-15 11:15 조회 : 1605 |
| | | 내 안의 블루
한 동 희
9월 초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유로 ‘아쿠아랜드’를 향해 차를 달린다. 이곳은 통일전망대와 인접해 있는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공기가 맑고 조용해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온 종일 혼자 보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목욕시설도 잘되어 있는데, 내가 즐기는 것은 노천탕에 있는 평상에 누워 하늘 바라보기다. 하늘을 자주 바라보지만 이곳에서처럼 자연 속에서 원시의 자태로 마음의 평정을 누리며 하늘과 구름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늦더위로 노천탕을 즐기고 너른 평상에 누워 넓게 펼쳐진 짙은 블루의 하늘을 바라본다. 신뢰와 희망을 주고 신비로움에 젖게 하는 색 블루. 토파즈색 청명한 하늘이 마음도 눈도 맑게 해준다. 태양은 부셔져 내리고 바람은 소나무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곁에는 늘씬한 몸매와 탄력 잃은 몸매의 여인들이 늦더위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한나절 한유에 젖기에 좋은 날씨다.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마치 대운하를 연상케 한다. 구만리 먼 하늘은 깊고 푸른 강물과도 같아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강물이 깊을수록 신비감은 더하다. 무리지어 떠가는 뭉게구름은 유람선 같기도 하고 돛단배 같기도 하고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 같기도 하다. 푸른 강물에 뛰어들어 유람선에 오르면 먼 남태평양에 있는 미지의 섬에도 닿을 수 있겠다. 대운하를 벗어나 바다를 떠도는 공상에 젖어보는 것도 한때의 즐거움이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유유히 흐르는 구름떼들. 지상을 내려다보며 조바심에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인간들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 운행이 여유롭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비행기는 그냥 구름 속에 묻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초속 수천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듯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던 구름도 잠시 눈을 뗀 사이 저 멀리 가 있다. 넓게 펼쳐진 짙은 블루의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그 색의 조화가 금상첨화다.
오래 전부터 ‘블루’는 내 안에서 나와 숨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의상이나 장식품을 고를 때는 은연중 파란색에 시선이 멈춰 구입하게 된 것이 여럿 이다. 30여 년 전 처음 장만한 코발트블루 투피스를 입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블루는 상실되어가는 젊음을 회복시켜주어 자신감을 갖게 했고, 결여되는 사회성에 진취적 정신을 키워주었다.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장만한 터키석 팔찌와 반지는 무한한 순수와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준다. 연하늘색 바지와 구두, 핸드백은 시원한 느낌을, 블루 터키석 반지와 브롯찌, 목걸이는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토파즈 반지다. 토파즈는 이민역사 취재차 브라질에 갔을 때 어느 교포에게서 선물 받은 것인데, 그 물색이 마치 맑은 호수와 같아 마음을 잔잔하게 다독여 주고, 디자인이 어떤 스타일에나 잘 어울려 자주 착용하고 다닌다. 특별히 의상과 장식품의 밸런스를 맞춰야할 경우가 아니면 으레 토파즈 반지를 끼는데, 늘 하고 다니니 호신용 같아 토파즈 반지를 하고 외출을 하면 하루를 무사안일하게 보낼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내가 지니고 있는 장신구는 비싼 보석이 아니고 원석이 대부분이지만, 그 색에서 느끼는 감흥으로 정신적인 만족도는 보석보다 높은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요즈음, 어떤 행사의 실무를 맡아 그 감사의 뜻으로 받은 L화백의 그림 한 점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다. 바다 속을 헤엄치는 두 마리의 물고기 그림인데 바다 표면은 옅은 색, 심연으로 빨려드는 중심과 바닷 속 깊은 곳은 짙은 블루의 색채감으로 구분해 놓았다. 물고기들은 바다 표면과 가까운데서 평화롭게 노닐고, 중간의 파란색은 깊은 곳으로 함몰되듯 빨려 들어가는데, 깊은 바다 속에는 다섯 개의 수염을 단 생물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구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파란색은 억눌린 감정을 해체시켜주고 순수함을 불러일으키며 좌절에서 희망으로 인도하는 신비의 힘을 지녔기에 즐기게 된다.
파란색은 남녀 모두 선호하는 색으로 그 종류가 백 여 종에 이른다. 19~20세기에 청바지 산업이 발전하면서 파란색이 각광을 받게 되었지만,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야만인의 색으로 꼽혔다고 한다. 그 이후, 죽은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피에타 상의 성모에 의해 성스러운 색으로 변했다. 색채 치료사들은 파란색이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눈이 피로할 때 하늘을 바라보거나 컴퓨터 배경 화면을 파란색으로 권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올해 우리나라는 파란색의 향연 속에서 지냈다. 지난해 말 개봉된 영화 ‘아바타’의 폭발적인 인기도 블루에서 시작되었다. 동계올림픽의 메달리스트들이 입은 의상도 모두 파란색으로, 특히 김연아의 블루 의상은 성공을 상징하여 ‘올림픽 블루’의 속설이 생기기도 했다.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 ‘팬톤’사에서 올해의 색으로 ‘터키석블루’를 꼽았다. 세계적인 불황이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희망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파란색은 이상향과 희망, 밝은 미래를 상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늘은 푸른 녹차 탕에서 몸의 피로를 풀고, 짙은 블루의 하늘을 보며 가슴에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희망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
| 이진화 | 10-12-15 11:55 | | 터키쉬 블루..., 12월의 탄생석 터키석 아름답지요. 한 선생님, 행복한 12월 보내세요. (^_^* | |
| | 한동희 | 10-12-15 12:48 | | 이진화 선생님, 지난 번 모임에 끼고 나온 터키석 반지, 그 색상이 너무 아름다워 훔치고 싶었어요. | |
| | 이진화 | 10-12-15 12:56 | | ㅎㅎ...훔치세요.^^ | |
| | 강승택 | 10-12-15 16:35 | | 이선생님은 남색, 한선생님은 청색을 좋아하시는군요. 각자의 기호에 맞춰 쓰신 글의 내용이 신선하고 상큼합니다. 터키석 반지를 훔치고 싶었다는 댓글에서 한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었습니다. | |
| | 한동희 | 10-12-15 17:53 | | 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일전에 몇몇 문우들이 모여 일곱가지 무지개색을 나눠가지며 색에대해 얘기했는데, 관심을 가지니 한 편의 수필이 만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박원명화 | 10-12-17 14:23 | | 마음속에 색깔의 꿈을 키우시는 한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세상의 빛을 밝게 빛나게 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늘 어여쁘신 모습을 잃지 않는 것도 정신의 세계와 통일을 이루 덕이겠지요. 올 한해도 잘 마무리 하시고 내년에 멋진 설계 기대하겠습니다. | |
| | 한동희 | 10-12-17 14:42 | | 박원명화 선생님, 지금쯤 어떤 색의 환상에 젖어있을 것 같군요. 그 꿈의 색에 맞는 멋진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 |
| | 임재문 | 10-12-20 16:14 | | 저는 내안의 검정색 ! 그렇게 외치고 싶어지네요 교도관생활을 하면서 제복이 검정인데다가 구두도 검정이 아니면 허용이 안되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년퇴임을 했으니 내 나름대로의 색깔을 찾아 길 떠나고 싶어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소원성취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
| | 한동희 | 10-12-20 22:47 | | 임재문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어디 편찮으신건 아닌지요? 모임에 나오지 않으시니 궁금하군요. 검은색이 멋쟁이 색이기는 하지만, 새해에는 검은색 모두 걷어내고 밝고 희망찬 무지개색을 찾아 길 떠나 보세요. 행복한 꿈 꾸세요. | |
| | 임병식 | 10-12-21 08:53 | | 지난 여름에 판문점을 갈 기회가 있어서 그곳에서 '이 부근에 한동희 선생님이 사실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일박을 했는데, 참으로 평온한 고장이더군요. 지금은 남북관계가 극도로 긴장되어 그렇지는 못할 것입니다. 글을 읽으며 푸른 색을 유달리 좋하하시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 |
| | 한동희 | 10-12-21 11:00 | | 임병식 선생님, 요즈음 선생님 수필집을 읽고 또 이렇게 홈피에서 자주 만나니 어제 뵌듯 친근합니다. 요즈음 전국민이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은 북한과 가까운 거리여서 더욱 긴장되는군요. 그러나 군과 나라를 믿고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새해에도 푸른 하늘같은 높은 이상과 꿈을 이루어나가시기를 빕니다. | |
| | 최복희 | 10-12-22 10:34 | | 바쁜 나나를 보내다가 오랜만에 들렀더니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놓으셨네요. 우선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글을 읽게 됩니다. 불루! 참 좋은 색이죠. 늘 색상에 맞춰 옷을 잘 입으시는 한선생님! 세련되지 못한 전 선망의 대상입니다. ㅎ 전 그린색을 좋아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
| | 한동희 | 10-12-22 21:37 | | 최복희 선생님, 실버넷 뉴스에서 활약이 대단하시다지요? 봉사정신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이 아릅답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새해에도 뜻한바 모두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그린색처럼 늘 푸르게 살아가세요. | |
| | 일만성철용 | 10-12-28 06:10 | | 저도 아쿠라랜드를 자주 들립니다. 그제는 아내와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총명하시던 분이 치매 초기에 들어 둘째 딸을 도둑년으로 몰고 있는 91세의 장모님을 모시고 갔었지요, 저도 프른 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 적도 있답니다. -하늘보다 프른 것이 있다. 바다다. 바다보다 더 넓은 곳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
| | 한동희 | 10-12-28 21:45 | | 일만 선생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더욱 건강하시고, 여행 많이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기행문이 올라올까 기다려집니다. | |
| | 정진철 | 10-12-30 15:51 | | 블루~ 참 아름다운 색인것 같습니다 파아란. 파란 푸른 푸르른 짓푸른 퍼런 시퍼런... 그리 좋은 색이니 보는 사람들의 마음마다 느끼는 감정이 이리 많겠지요~ | |
| | 한동희 | 10-12-30 17:51 | | 정진철 선생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재미있는 글 많이 올려주세요. 선생님도 블루를 좋아하시는군요. 이 색은 누구나 좋아하는 색이지요. 푸른 꿈, 푸른 희망으로 새해를 시작하십시요. 감사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