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0yQjGtbt8Ic
(글: 김태산)
대한민국에는 종북 역적, 멍청한 바보 두 부류가 산다.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탈북인인 나의 생각을 써본다.
결론을 말하면 한국은 나라를 결단 내려는 종북 역적들과 자기의 것도 못 지키는 보수우파라는 바보들이 사는
희한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북 좌파는 물론 보수우파들도 나를 건방진 놈이라고 욕을 하겠지만 부족함이 많은 이 탈북자의 말도 한 번쯤은
들어보라
탈북인들은 김일성이 이승만을 얼마나 미워했고 또 어떻게 한국인들을 충동질해서 이승만을 내쫓았는지도 잘 안다. 바보스러운 한국국민들과 청년학도들이 자기들을 살려준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에 밧줄을 걸어서 넘어뜨리는 모습을 본 김일성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도 안다.
북한은 철저하게 이승만은 반역자이고 김구는 애국자라고 선전하며 국민을 교육한다. 노동당 선전만 듣고 이승만이 정말 나쁜 줄 알았던 내가 한국에 와서 현실을 보고야 이승만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지구의 공산화를 막은 절세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이 이승만 덕분에 북한 국민이 부러워하는 자유민주 국가로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왜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공산독재 대신에 자유를 안겨준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내고도 모자라
그의 업적과 이름을 지우려고 악착하게 날뛴다.
한국은 애국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대와 멸시를 받고 매국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대를 받는 부끄러운 나라다.
실례로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를 대전, 부산으로 옮겼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지금도 선전포고 없이
동족상잔을 도발한 김일성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략상 지휘부를 옮긴 자기 대통령을 역적 취급한다.
그런 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고 한국이 공산화 됐어야 좋아할 자들이다.
종북 좌파들은 김일성은 후퇴를 못 한 인민군은 버리고 자기 혼자 강계, 만포를 지나 중국 즉 외국으로 튀었는데
그것은 모른 체하고 자기네 대통령만 부산으로 튀었다고 욕을 한다.
또 웃기는 것은 이승만이 상해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숨기고 김일성과 소련의 주구로 전락한 김구만이 임정의 대통령이고 애국자라며 둥둥 띄운다.
한국에 배신자 김대중의 동상과 기념관은 즐비한데 애국자 이승만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승만 기념관은
“괴물 기념관”이라며 그 건립을 반대하는 이종찬이가 대통령의 뒷배를 타고 광복회장을 해 처먹는 해괴한 나라다.
그뿐인가?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폭도들이 국가의 무기고를 털어서 무장하고 방송국과 국가기관들을 점거하고
정치범 교도소를 습격하고 국군과 국민을 사살한 반역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킨 거꾸로 가는 나라다.
이제는 그 폭도들과 가짜유공자들이 득세하여 진실을 밝히려는 애국자들을 법정에서 심판하고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로 전락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달려나가 이승만을 내쫓은 한국 사람들, 바로 당신들이 만든 지금의
대한민국의 진면모다.
대한민국은 완전히 종북좌파들의 세상이다. 그자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하며, 그들이 청년 학생들을 북한에 충성하도록 교육도 하고, 그들이 언론을 거머쥐고 국민을 바보로 만들며, 또 그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군을 주적도 모르는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국가의 공권력을 쥐를 못 잡는 바보 고양이로 만들었다.
결국, 종북 역적들은 대한민국을 북한 김씨 가문을 살려주고 보호해주는 북한의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반대해서 싸웠다고 자랑하는 종북 좌파들은 80년 동안이나 장기집권을 하는 김일성
가문에게는 왜 충성하는가?라는 이 탈북자의 물음에 답을 할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보수우파들은 나라를 위하여 뭣을 했는가? 보수우파들이 한 것이 있다면 똥과 된장도 구분을 못 하고
간첩들과 종북좌파들에게 속아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반대 데모에만 쫓아다녔거나 자기 살 궁리만 했다.
그리고는 나라의 후대교육과 국민 교양권도, 나라의 법도, 정권도 모두 종북 역적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아직도 보수우파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5.18의 진실이 담긴 스카이 데일리 신문을 보았다는 죄로 인천시의회
의장을 출당 해임하고 5.18정신을 헌법에 넣겠다는 국민의 힘 당을 거대 여당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들이다.
그러니 종북 좌파들이 아무리 부정선거를 해도 바로잡을 자가 없다. 지난날 보수우파들의 손으로 키워준 자들이
모두 쓰레기들 뿐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나의 말을 부정할 보수우파들은 4.19 당시 이기붕의 부통령 부정선거에는 그리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던
당신들이 지금 종북 좌파들의 부정선거에는 왜 몸을 사리는지부터 답을 해보라.
이제라도 보수우파들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잘 챙기고 말 잘하는 자들에게 주지 말고 진실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살릴 애국자에게 주라
2024.02.17.
[김태산(전 체코주재 조선-체코기술합영회사사장,탈북인) 페북 글]
(코리안드림타임즈)
북에서는 고위 공직자, 남에서는 일용직 근로자로...
- 전 북한 고위 공직자 출신이니 개인 자금도 충분히 가져왔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정부에서 받은 정착 지원금으로 초기 생활비를 충당한 것인가?
“4,200달러(약 450만원)를 가져와서 세 식구가 3~4년 살 거라 예상했으니 정말 한국을 몰랐던 것 같다.
북한에서 해외 무역대표를 맡아 외국을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에 와서 피부로 느낀 이곳 경제 수준은 유럽
국가들보다도 더 높았다. 2002년에 한국에 왔는데, 당시 우리 가족에게 지원된 정착 지원금은 대략 3,500만원 정도였다. 탈북민이라고 집을 전액 무료로 제공받는 건 아니다. 집세로 1,200만원 정도를 내고, 농이나 텔레비전 등
가구들도 사서 채워넣으니 거의 남는 돈이 없더라. 그런데 막내 딸만 하나 데려왔기에 아직 북에 남겨진 자식 둘을 데려오려면 돈을 더 모아야 했다. 탈북민 정착 지원금은 정말 처음에 딱 살 곳 정도만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집을 마련한 이후부터는 닥치는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막노동 공사 현장부터 돌게 됐다.”
- 김 대표는 무역을, 아내는 영어를 전공했으니 관련 분야로 취업을 시도했을 법 한데...
“자본주의 무역은 많이 다르더라. 내가 해외에서 무역사업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그저 당국이 시키는 일을 하고
로임(월급)을 받는 체계였다. 또 북한에서는 그 달, 다음 달 등 당장 필요한 거래를 해 나가는 수준인데, 한국의 판매유통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10년, 20년, 이렇게 장기계약을 통해 이미 기업 간 관계가 구축돼있다보니 뚫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한국어에 워낙 외래어가 많아 언어소통도 쉽지 않고 탈북자라는 거부감이 있어서인지 일반
회사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나이 50이 넘은 몸으로 공사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청년도 아닌
사람을 받아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영어를 잘 했지만, 한국 상황을 생각해보라. 미국,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고 싶지 누가 북한 사람에게 영어를 배우고 싶겠나. 그건 당연한 심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도 가방 하나 메고 집집마다 돌며 가정학습 일부터 시작했다.”
- 일용근로직으로 돈을 벌어 4년만에 건물을 임차하고 학원을 운영한다는 건 한국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빠르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아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배우겠다는 학생이 없으니 처음엔 힘들었다. 당시 어느 목사님을 통해 한솔교육
(현재 능률주니어랩) 가정방문 교사직을 알게 됐고, 강서지부에서 70가구를 인계받게 됐다. 그런데 아내가
탈북자라는 소문이 퍼져서 학생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20가구 정도만 남게 됐다. 강서지부에서도 난감해하고
아내도 이에 낙담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었다. 그래도 20가구라도 정말 열심히 가르쳐서 실력으로 평가받자는
각오로 아내를 잘 격려해 시작하게 됐다. 아내가 정말 잘 가르치고 학생들 성적도 오르고 하니 그게 또 입소문을
타고 퍼지더라. 결국 떨어져나간 아이들 대부분이 돌아왔고 6개월 쯤 지나니 수익이 많이 올라 내 통장에 500만원이 넘게 쌓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는 학원버스를 몰며 그렇게 4년을 함께 버니 거의 1억이 모아졌다. 남들이 들으면 학원수입이 높은 줄 알겠지만, 채소 몇 개 무치고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며 악착같이 모은거다.
그렇게 먹어도 북한에서보다 잘 먹는 거였으니...”
남북 발전 격차, ‘자유’로부터 시작
- 탈북 4년만에 개인사업자가 됐다. 창업을 꿈꾸는 탈북민들에게 경험자로서 조언한다면?
“준비된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왜 이렇게 빠른 시일 내 발전했는가를
연구해본적이 있다. 바로 ‘자유’가 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살린 것이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내 노력만큼 결실을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백가지 능력을 가졌어도 당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북한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 ‘자유’. 그것이
오늘날의 북한과 한국을 만든 차이다. 또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섣불리 창업에 뛰어들지 말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충분한 자금이 모아질 때까지는 소비를 줄이며 저축하길 바란다. 남의
돈(대출)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포기가 쉽다. 그런데 내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다 투자해서 사업했다고 가정하면,
쉽게 포기가 안 된다. 어떻게든 사업을 일으키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
- 교육 사업을 계속 확장·지속하는 특별한 이유나 목표가 있는가?
“처음에 프랜차이즈 학원에 지부허가를 받고자 했을 때, 탈북자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며 본사로부터 많은 우려와
거부 의사를 받았었다. 그 때 간절히 부탁하며 “허가만 내주면 잘 일으켜서, 나중에 통일 후 평양에도 이
프랜차이즈 그대로 가져가 열겠다”고 말했다. 물론 어이없는 웃음이 돌아오긴 했지만, 난 정말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통일은 반드시 된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가족이 사업성공의 원천
- 충분한 자본과 지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성공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있을까?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말투도 거칠고 성격도 불같이 급하다. 화도 잘 냈다가 또 세상 허망함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한다. 때때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뭐하러 이렇게 악착같이 사나’, ‘저기에 빠져 죽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은 게 가족이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일과를 마치는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면 내가 무너지면 안 되는 거였다. 가족이 있었기에 힘을 냈고, 또 내가 있었기에 가족들도 버텨준 것 아닌가.”
- 북에도 가족, 친인척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지금도 연락하는 이들이 북에 있는데, 여러 소식통을 접하다보니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북에 제2의 고난의행군이 오고있다고 하는데,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힘차게 그 길을
견뎌내주길 바란다. 북한에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