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한 번째
여전히 불초입니다
명절 때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아주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께서 어른들에게 편지 쓰는 법을 일러주신 말이 있습니다. ‘불초 소생不肖小生’, 그때는 그냥 어른에게 쓰는 편지의 머리말 정도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늘 그렇게 썼습니다. 아마도 우리 세대에서는 낯설지 않은 단어일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 뜻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부모를 닮지 않은/不肖 자식. 현명하지 못한 자식.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맹자孟子의 글 가운데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舟는 불초하고, 순舜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두 분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모님은 현명한 분이라는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부모는 늘 현명한가요? 요즘 아이들은 이런 문장을 쓰지 않습니다. 대개는 “안녕하셨어요?”라고 쓸 겁니다.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불초 소생은’이라는 말로 편지를 썼다면 읽는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우리보다 엄청난 정보/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학교에서도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살아낼지를 가르치기에 그리 말하는 겁니다. 이제는 승어부勝於父하라고 가르칩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지요. 교육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부모의 현명함을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불초不肖’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