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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개미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지하 45층. 비생식 개미 103683호가 전투 훈련실로 들어간다. 병
정개미들이 춘계 전쟁에 대비해서 훈련을 하고 있는, 천장이 낮은
방들이다.
어디에서나 병정개미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다. 대련자들은 먼저
상배방의 체격과 다리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서로서로를 더듬는
다. 다음에는 몸을 돌려 옆구리를 서로 더듬어보고 상대방의 털을
잡아당기면서 냄새를 풍겨 도전장을 내고, 더듬이의 도톰한 끝으로
서로를 가볍게 두드린다.
대련 준비를 끝낸 병정개미들이 마침내 서로서로를 향해 달려든
다. 딱지 부딪는 소리, 저마다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으려고 안
간힘을 쓴다. 한쪽이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자, 다른 쪽은 상대
의 무릎을 깨물려고 한다. 로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몸짓 하나하나
가 나뉘어 있다. 두 뒷다리로 버티며 몸을 곧추세웠다가, 쓰러지며
구르기도 한다. 맹렬한 연습이다.
대련자들은 대개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면 동작을 멈추고, 다른
대상에게 달려든다. 이것은 그저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한 연습일 뿐
이다. 그러나 몸 한 부분이라도 깨지거나 피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
해야 한다. 등을 대고 누워버리는 개미가 생기면 전투가 중단된다.
그때 그 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항복을 하면 중단하는 대련이기는 해도, 실제 상황과 다를 게 없
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발톱으로 사정없이 눈을 찌르기도 하
고, 위턱이 맞부딪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50머리 떨어진 곳에 조약돌을 놓고, 겨냥을
해서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은 대개 과녁에 적중한다.
고참 병정개미가 신참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은 접전
을 벌이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
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
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기
려고 마음을 먹은 자와 패배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정해지기 마련이
다. 전투란 그렇게 역할을 나누는 문제일 뿐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
을 선택하고 나면, 승리를 결심한 자는 겨냥을 하지 않고 쏘아도 과
녁의 한가운데를 명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패배를 생각한 자는 제
위턱을 아무리 휘둘러도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하는 것을 자기 몫으
로 받아들인 자를 그 무엇이 당할 수 있으랴.
결투를 하고 있던 두 개미가 병정개미 103683호를 떠밀었다.
103683호는 그들을 힘껏 밀어젖히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103683
호는 전투 연습장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병들의 구역을 찾아가
고 있다. 그리로 가는 통로가 저기 보인다.
용병들의 방은 일반 부대의 방보다 훨씬 더 널찍하다. 용병들은
끊임없이 훈련장 위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로지 전쟁에 대
비해서 존재할 뿐이다. 용병 부대에는 벨로캉 인근의 갖가지 미개
부족의 개미들이 어우러져 있다. 동맹을 맺은 부족의 개미들이 있는
가 하면, 정복을 당한 부족의 개미들도 있다. 즉, 노랑개미, 빨강개
미, 까망개미, 끈끈이침 개미, 독침을 가진 원시개미 등이 들어 있
고 심지어는 난쟁이개미도 섞여 있다.
다른 부족의 개미를 먹여살리는 대가로 적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
이 자기 편에 서서 싸우게 만든다는 생각은 흰개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개미 도시에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즉, 외교적인 문제가
미묘해 지면서 개미들이 다른 개미와 싸우기 위하여 흰개미와 동맹
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흰개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
미부대를 아예 용병으로 만들어서 흰개미 도시에 영원히 주둔하게
하면 어떨까? 그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개미군대가, 흰개미들을 위해 싸우는 같은 개미 동포들과 맞서 싸워
야 했다. 개미 문명이 아주 빠르게 적응력을 키워감에 따라 이번에
는 개미쪽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개미들은 흰개미들이 했던 대로 흰개미 부대를 용병으로 삼아 제
종족과 싸우게 함으로써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
요한 장애가 생겨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여왕에 대한 흰개미
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이 워낙 빈틈이
없어서 제 겨레에 맞서 싸우질 못했다. 결국 용병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용병을 제 겨레와 싸우게 하는 패륜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인
데, 그 모든 폐단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개미들뿐이었다. 개미들은
생리적인 특징만큼이나 다채로운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흰개미들을 용병으로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족의 개미들이 있
기에 용병 제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개미 대연방
들은 많은 이방 개미 부대를 만들어 자신들의 군대를 강화하는 것으
로 만족했다. 이방 개미들의 부대는 모두 벨로캉 페로몬의 기치 아
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103683호는 난쟁이개미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시게푸의
비밀무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순식간에 불개미 원정대 28마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출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용병
개미들은 그렇게 강력한 무기는 본 적이 없고, 그런 소리는 듣던 중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103683호는 가까운 동료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모두 103683호가 잘 아는 개미들이었다. 그들
은 103683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를 믿어주었다. 그의 얘
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결의에 찬 30마리 이상의 개미들이 모여 '난
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를 탐색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아, 327호
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주의할 점이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를 모두 죽이려 하는
한 무리의 조직된 집단이 있다. 그 자들은 틀림없이 난쟁이개미들을
위해 일하는 불개미 용병들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보안을 위해서, 그들은 첫 모임을 도시의 가장 밑바닥인 지하 50
층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방 가운데 하나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아
무도 거기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거기에서라면 마음놓고 거사 계획
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몸이 갑작스럽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알려
온다. 그는 몸으로 기온이 23도임을 느낀 것이다. 103683호는 동료
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327호, 56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개미의 미학
개미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구부슴한 테두리 선은 맵시좋
게 다듬어져 있고, 몸매에 구현된 공기 역할의 원리가 더할 나위 없
이 훌륭하다. 몸의 구석구석이 정교하게 고안된 차체와 같아서, 공
기 역학의 원리에 맞게 오목오목 들어간 자리에 다리 하나하나가 완
벽하게 박혀 있다.
몸 마디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다. 몸 마디를 감싸고
있는 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어떤 디자이너가 마름질한 것처
럼 사개가 꼭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삐걱거리는 일이 없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세모진 머리는 공기를 헤쳐나아가기에 알맞고,
구부러진 긴 다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몸을 사뿐하게 받치
고 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다.
발톱은 천장에서도 붙어다닐 수 있게 되어 있고, 눈은 180도의 넓
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더듬이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가
지의 정보를 감지하며, 그 끄트머리는 망치 구실을 한다. 배에는 화
학 물질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나 자루나 샘들이 가득하다. 위턱
으로 물건을 자르고 구멍을 내며 붙잡을 수도 있다. 몸안에 그물처
럼 퍼져 있는 관들을 통해 후각 정보를 방출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니콜라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도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었다. 무인 탐사 우주선 '마르코폴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뉴스가 방금 끝났다. 탐사 작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지구
와 가까운 태양계에는 생물이 살고 있는 징후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
다. 무인 우주선이 탐사한 행성들이 보여준 모습이란 바위 투성이의
사막이나 암모니아 액으로 된 표면이 고작이었다. 아주 보잘것 없는
이끼 하나, 아메바 하나, 미생물 하나도 없었다.
'정말 아빠 말대로 외계의 생물은 없는걸까? 온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의 형태는 우리뿐인가?....' 니콜라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
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가 끝나자 '세계의 문화'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인도의 카스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힌두교인들은 태아날 때부터 각자의 카스트를 타고나 죽을 때까
지 거기에 속하게 됩니다. 카스트마다 따라야 할 규율이 있는데, 그
규율이 엄격해서 그것을 범했다가는 출신 카스트는 물론이고 다른
카스트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그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떠올려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니콜라가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지하실에서 개
가 죽은 뒤로, 아이는 매일 4시간씩 일삼아 텔레비젼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 딴 사람처럼 되어보려는 제 나름의 방
법이었다. 니콜라 어머니의 음성이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일깨웠다.
"자, 이제 그만 보거라. 피곤하지 않니?"
"아빠는 어디 계셔요?"
"아직 지하실에 계시단다.... 이제 자야지."
"잠이 안 와요."
"옛날, 얘기 해줄까?"
"예, 좋아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로요."
뤼시는 아이의 방으로 함께 가서, 오렌지빛의 긴 머리채를 풀어
해치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뤼시는 히브리의 옛이야기
하나를 골랐다.
"옛날에 석수장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
뻘 흘리며 산을 파는 일이 그 사람 일이었지. 어느 날 그 석수장이
는 자기 일에 싫증이 났어. 석수장이는 생각했지. '이런 삶은 지긋
지긋해. 허구헌 날 돌맹이나 깎고 있자니 지겨워서 못 하겠어....
저 햇님은 늘 따가운 햇살로 나를 힘들게 해. 아, 내가 햇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높은 곳에서 세상에 햇살을 가득 뿌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못 할일이 없을 거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어. 곧바로 석수장
이가 햇님이 된 거지. 그는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자 행복했어. 그런
데,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 여기저기에 햇살을 보내고 있는데,
구름이 나타나서 햇살을 막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이 소리쳤지. '구
름이 저렇게 쉽게 내 햇살을 막아버리니 햇님이 된 게 무슨 소용이
있담! 구름이 햇님보다 더 힘이 센 거라면 구름이 되고 싶어.' 이렇
게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구름이 되었어. 그는 세계 위를
날아다니면서 비를 뿌렸지.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구름을 흩
뜨리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생각을 했지. '아, 바람이 구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가장 힘이 센 건 바람이다. 난 바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그는 바람이 되었나요?"
"그렇지,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 폭풍을 일으키고,
돌풍을 만들기도 하고, 태풍이 되기도 했어. 그런데 느닷없이 벽이
하나 나타나서 그가 가는 길을 막았어. 아주 높고 튼튼한 벽이었지.
산이 나타난거야. '고작 산 하나가 내 길을 막는다면, 바람이 된 게
무슨 소용이람? 가장 힘이 센 건 바로 산이로구나!' 하고 그가 말했어."
"그래서 그는 산이 되었겠군요."
"맞아, 그때 그는 산이 된 자기를 뭔가가 두드리고 있는 걸 느꼈
지. 그보다 더 힘이 센 무언가가 안에서 그를 후벼파고 있었던 거
야. 그건.... 자그마한 석수장이였어...."
"아아!"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니?"
"그럼요, 엄마."
"텔레비젼에서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하는 거 본 적이 없지?"
"예, 엄마."
뤼시는 웃으면서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뭔가를 파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간 아빠는, 저 아래로 내려감으로
써 아빠 자신이 해나 구름과 같은 다른 것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빠는 이곳이 편치 않은가 봐요."
"그렇단다. 니콜라. 아빠는 실업자인 걸 부끄러워하셔. 아빠는 햇
님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거야. 땅 속의 햇님 말이야."
"아빠는 아빠 자신을 개미들의 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뤼시가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야. 네 아빠에겐 아이 같은 구석이 있
지 않더냐. 어린애치고 개미집에 반하지 않는 애가 없지. 너는 개미
를 갖고 장난해 본 적이 없니?"
"왜요, 있어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베개를 다독거리고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자야지. 그럼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성냥개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아직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뤼시는 거실로 돌아와서 읽던 책을 다시 들었
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집의 내력을 밝혀놓은 건축 책이었다.
그 책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이 이 집에 살았으며, 특히 중세에는
신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미셸 세르베라는 사람이 그 한 예인데,
그는 이 집에서 몇 해 동안 산 걸로 나와 있었다.
책의 어떤 구절이 유독 뤼시의 눈길을 끌었다. 그 구절에 따르면,
종교 전쟁중에 도시 밖으로 신교도들을 도망시키기 위해 지하실을
팠다고 한다. 보통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깊고 긴 지하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