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4 水/ 사순시기의 시작
<재의 수요일>
-재의 날 미사:
① 요엘 2,12-18 ② 2코린 5,20─6,2
㉥ 마태 6,1-6.16-18
* 오늘의 성인('24.02.14)
노스트리아노 주교 남, 디오니시오 순교자 남, 마로 원장 남, 메토디오 증거자 남, 발렌티노 순교자 남, 아폴로니오 순교자 남 안토니오 원장 남 에페보 순교자 남 엘레우카디오 주교 남 제노 순교자 남.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재의 수요일-허무로 돌아갈 육신을 불태워 ♧
ㅁ
<재의 수요일-2011/김찬선 신부>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1-2)
왜 교회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할까?
이왕이면 산뜻한 이름,
예를 들어 “은총의 수요일”, 이렇게 이름붙이면 안 될까?
그제는 신문을 읽는데 여성들끼리 대담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여배우가 진보진영에 대해 따끔한 한 마디를 하였는데
“찡그리고 분노하는 사람 곁에는 아무도 가고 싶지 않다.”는
너무도 지당한 말에 뜨끔하여
저도 우리 교회도 이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고,
우리의 사순시기도 너무 어둡기만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저의 육신의 형제들은 늘 저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데,
저보고 늘 하는 얘기가 사람들을 만나면
손도 잡아주고 제발 좀 자주 웃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살 땐 거기 풍습이 만나면 포옹하며 인사하기에
저도 잘 웃고 포옹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딱딱하고 심각한 저로 바뀌었습니다.
저뿐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비슷하여 처음 성당에 온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내가 오는 것을 싫어하나?”하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다 성당에서 노상 하는 얘기가 십자가이고
도저히 천국과 은총을 살아가는 사람들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처럼 단식하며 오만상을 짓고,
우리는 십자가로 은총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만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는 달리
우리의 십자가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형틀일 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타서 재가 되도록 사랑하는 것이면 은총이 될 것입니다.
그 재가 그저 有가 無로 돌아가는 虛無가 아니고
뜨겁게 타버린 사랑이라면 재도 은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의 수요일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들으며
단지 인생의 허무함만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어차피 허무로 돌아갈 육신을 불태워
사랑이 되자고 마음 다지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 오류동 공동체<여기밥상>가족/ 인천 석남동 수도원 분원"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4-21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