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난 벌써 읽은 글...
다 읽고 보니 읽은 줄 알겠네...
바부팅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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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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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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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의 도시 부산, 곽경택 감독과 함께 한 2박3일간의 추억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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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는 떠돌이들의 정거장이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채운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고향이 달랐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물을라치면 모두 하는 일도 달랐다. 어떤 아이의 아버지는 러시아로, 일본으로 배 타고 떠나 반년에 한번씩 생선독이 올라 부어오른 손에 돈뭉치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고, 어떤 아이의 어머니는 벽돌색 ‘다라이’에 비린내 풍기는 생선들을 담고 녹아내릴 듯 아픈 삭신을 새벽시장 앞 약국에서 산 한 움큼의 진통제로 달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도 했다. 유난히 ‘이모’가 많은 친구의 어머니는 몸을 팔았고, 유난히 ‘삼촌’이 많은 친구의 아버지는 깡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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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말, 사진작가 최민식의 망막에 잡힌 부산의 아이들. 시장통 한구석에서 국숫발을 끌어올리던 벌거숭이 여자아이나 산동네 중턱으로 오르는 리어카를 밀어올리던 사내아이, 힘없이 늘어진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빨고 있는 갓난아이. 세월은 이들을 부모로 만들었고 이들이 낳은 자식들은 전쟁이 남긴 아픈 기억 대신 폐허 위에, 혹은 왜색 짙던 건물 위에 날이 다르게 세워지던 신식건물들 사이를 뜀박질하며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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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장의사집 아들로, 건달의 자식으로, 밀수꾼의 귀염둥이로, 의사집 귀공자로 태어난 4명의 친구들은 매캐한 소독차 뒤꽁무니를 쫓으며 도둑질을 할 때도, 바닷가에서 패를 나눠 쌈질을 할 때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떤 궤도를 타게 될지 몰랐다. 서울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욕구와 그러지 못하는 망설임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만조와 간조처럼 넘실거렸던 사춘기를 지날 때도 그들은 결코 서로 “미안한 거 없는” 친구였다. 그러나 결국 항구가 낳은 자식들은 서로의 배에 칼을 꽂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에 빠져들었고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시체를 눈물로 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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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 체인’에 ‘칠공주 면도날’ 같은 폼나는 전설 대신, 30대 중반을 넘긴 한 감독이 풀어놓는 친구들의 ‘진짜 이야기’는 어찌 보면 ‘쪽팔린’ 기억들이다. 하여 이제는 더이상 소년이 아닌 감독과 <친구>의 촬영현장을 따라가는 2박3일의 짧은 여정은 “솔직히 그동안 친구들에게 무심했다”는 감독의 속죄의 순례였다. 그러나 항구는 <`call me`>가 흘러나오는 ‘롤라장’이나 교묘히 제조한 ‘11장 회수권’ 초등학교 앞 ‘아트론 전자오락기’처럼 향수어린 기억과의 아련한 스침 역시 넓은 품으로 허락해주었다.
: 부산=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 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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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첫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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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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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쨋날 저녁 10시 | 초량동 산복도로, 준석집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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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돈들고 가출해가 내한테 찾아오믄 "와∼ 상택아 잘했다. 인자 우리같이 건달해가 인생 개판치자" 그랄 줄 알았나?”
: “그기 아이고….”
: “내가 우리집이 제일 좇같다고 생각할 때가 언젠지 아나? 우리 엄마 입원하고 내가 중학교 때 한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던 새끼들 중에서 한놈이라도 내를 뭐라고 하는 놈이 없는기라, 씨바, 그때 한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고 했으믄 혹시 모르겠는데…. 상택아! 인제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나는 내처럼 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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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버스기사들은 전국 어디를 가도 버스를 몰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유독 달팽이모양으로 산을 타고 지어진 집들이 많아서인지 부산의 버스는 마치 곡예하듯 산복도로를 올라간다. 여장을 풀고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찾아간 준석집 옥상 역시 몇 바퀴의 원을 돌아야 닿을 수 있는 초량동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덕분에 잠잘 채비를 하던 부산시내는 한눈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몇몇의 높은 증권회사의 불빛 넘어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듯 고깃배와 컨테이너배들이 불을 밝히며 정박해 있었다. 분명 어떤 집에 속한 공간일 테지만 경사를 달리하는 집들 때문에 윗도로와 바로 통하게 돼 있는 묘한 구조의 옥상 위에 서니 가출한 상택(서태화)에게 이 길은 네 길이 아니다며 어른스런 충고를 던지던 준석(유오성)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우연이었을까? 까까머리 소년 둘이 어깨를 마주하고 옥상 난간에 앉아 있다. 저들도 혹 그들과 같은 대사를 나누고 있을까 곽경택 감독이 다가가서 “너그 어느 학교 댕기노?” 물었는데 의외로 “아, 예! 군인입니다” 한다. 원래 대구캠프 소속으로 부산 하야리아부대에 출장중인 자칭 “꽃상병” 카투사. 만나서 영광이라며 감독과 악수를 청한,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처럼 앳된 이들은 “정말, 여기서 영화를 찍으셨어요? 와! 예전부터 내가 찍었던 자린데…”라며 탄성어린 감탄사를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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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는 극장에서 상택이가 패싸움하고 나서 가출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내가 가출한 거는 대학 떨어지고 나섭니다. 돈도 없이 객기로 집 나와서 준석이 집에 갔거든요. ‘내캉 서울가자’ 했는데, 임마 말이 ‘니 눈치밥 묵어봤나? 니같이 곱게 자란 놈은 그런 거 못 묵는다. 빨랑 집에 들어가라’ 하대요. 그라고 지 가출했을 때 얘기를 해주는데…. 그때 가출한 사실은 우리 아버지는 아직꺼정 모르십니다. 옥상신은 12월 정도에 찍었는데 장난 아니게 춥었지. 태화하고 오성이하고 대사를 마치면 카메라가 붐업을 해야 하는데, 워낙 새로 생긴 고층건물이 많아가지고… 와, 그거 피해가려니까 진짜 난감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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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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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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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쨋날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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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서두른 탓인지 일요일의 도로는 한산했다. 어렵고 고되던 네 친구의 성장과 다르게 유년의 바닷가로 향하는 길은 막힘없이 뻗어 있었다. 송정을 지나 기장으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다다르는 자그마한 항. 생 멸치회로 유명하다는 대변항 근처 방파제는 동수(장동건)가 준석의 조직을 밀고하고 난 뒤, 노을지는 방파제에 쪼그려 앉아 씁쓸히 담배를 피우다가 탁한 목소리로 “은기야, 니 조오련이 아나…” 하며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던 곳이다. “차가 들어올 만한 방파제가 별로 없더라구요. 여기가 제일 적당한데 낚시꾼들이 안 비켜가지고 혼났어요, 그 장면은 열흘 동안 두번을 찍었는데 동건씨 표정이 날이 갈수록 달라졌어요. 인물에 몰입을 하니까 근육 움직임까지도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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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10시 대변 자갈밭 | 바닷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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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택아, 니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하고 바다거북이하고 헤엄치기 시합하믄 누가 이길껏 같노.”
: “조오련.”
: “그 봐라.”
: “아이다, 거북이가 물 속에서는 얼마나 빠른데.”
: “물 속말고, 물 위에서.”
: “임마! 니가 아까는 물 속에서라고 했다 아이가.”
: “내가? 내가 언제.”
: “와! 쌔끼, 진짜 꼬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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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뿌릴 듯 어둑한 시내 날씨와 다르게 아이들의 해수욕장면을 찍었던 대변근처 자갈밭은 해가 쨍쨍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큰 검정색 고무튜브에 매달린 아이들이 <호기심천국>에나 물어봐야 할 것 같은 황당한 호기심에 목숨 내걸고 집착하던 그 시절엔 뚜렷한 적도, 뚜렷한 동지도 없었다. 아니, 그런 구분조차 필요없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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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석이랑은 6학년 때 같은반 짝지였어요. 우리 어릴 때는 살벌하게 놀았거든요. 학교에서는 ‘까기’라는 패싸움 놀이가 유행했는데, 내가 덩치가 커서 그런지, 준석이편하고 내편하고 갈려가지고 싸움도 마이 했지요. 어려서 그런가, 오히려 싸우면서 친해진 것 같아요. 내가 금마한테 실수도 참 마이 했는데…. 왜, 학교 다닐 때 새마을어머니회 같은 거 하잖아요. 교실 뒤편에 엄마들 쭉 서 있는데 다른 엄마들은 다 수수한데 한 여자가 화장을 유독 찐하게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저거 술집 다니는 여자 아니가, 저래가 즈그아 학교 오고 싶나?’ 했는데 준석이가 ‘고마해라, 임마’ 하더라고. 그래서 ‘뭐? 임마’ 했더니만 ‘우리 엄마다’ 그라는 기라요. 와, 그때 미안했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땀이 나요. 화내도 모자랄 텐데, 새끼, 그런 거 보면 임마가 어릴 때부터 내보다 훨씬 조숙하고 그릇도 컸던 거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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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오 범일동 삼일극장 앞 | 극장 패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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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래?”
: “저 껄뱅이 새끼들하고 같이?”
: “상관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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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일동 가는 길부터는 곽 감독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전날 저녁을 겸한 술자리에서 ‘웰컴’이라는 환사를 던진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나보다. 기차길 옆 극장들은 곽 감독 표현대로 대부분 ‘화제작’ 일색이다. 지난해에 상영해놓고 떼지 않은 ‘살색’ 광고물들을 보면 지금 개봉중인 <말레나> <클럽 버터플라이> 등은 ‘아트’에 가깝다. “예전에는 개봉관이었어요. 여기서 <소림사 18동인>이랑 <부메랑>도 봤는데. 이런 구식극장도 이제 거의 마지막이죠.” 일요일 정오, 3천원에 두 프로를 ‘땡길 수’ 있는 저렴한 극장이지만, 삼일극장 안은 여남은명의 초로 신사들이 전부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흘깃거리며, 장기판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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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은 400석 가까운 그리 작지 않은 단관이지만, 잠을 청하고 있는 손님조차 한명 없다. 골골한 냉기만이 흐른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했던 극장 주인은 아까부터 곽 감독에게 연신 불평을 해댄다. “화장실 소변기랑 유리창이랑 갈아준다 케놓고 어찌 됐십니까. 저번에 담당자가 한번 나와선 휙 둘러보고 그냥 가뿟거든요.” <벤허> 간판까지 이곳에서 해결하는 등 톡톡히 신세를 졌는데 제때 못 갚았다는 미안함이 곽 감독을 채근한다. “제가 전화를 했거든예. 곧바로 올깁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는 주인장.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2층의 영사기는 ‘떨그덕, 떨그덕’ 하면서 잠깐의 소란이 신기한 듯 더 부지런히 도는 것 같다. “지나가던 한 아줌마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진짜 황당한 일 아입니까. <벤허> 간판이 걸린데다 100명 가까운 교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쭉 일렬로 섰으니. 신기했겠지요. 무슨 타임머신 타고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하긴 했을 깁니다. 영화상영 전에 나오는 촌스런 광고들이 진짜나고요? 촬영 퍼스트와 조감독이 같이 만든 ‘작품’입니다. 대낮부터 술 한잔 묵고 찍은 건데, 거기 나오는 안경점은 사실 제 친구가 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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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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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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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쨋날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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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 범일동 일대 | 질주하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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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ctor, doctor give me the news, I’ve got a bad case of lovin’ you. No pill's gonna cure my ill. I’ve got a bad case of lovin' you”(<`bad Case of Lov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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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제 없이 답답하기만 한 청춘이 어디 부산에만 있었으랴. 먼저 내달리기 시작했으나 점점 숨이 차오르는 상택이와 중호를 제치고 준석과 동수가 앞서 내달리는 골목은, 사실 범일동 도로 아래 40m가량의 축대를 배경으로 스쿠터를 이용해 찍은 장면이다. “이 동네는 거의 안 변했다고 봐야죠. 커서 자주 온 적은 없어도 누구나 한번쯤은 이곳을 거쳐갔을 깁니다. 제 기억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지요. 정확히는 태화가 놀던 동넵니다.” 축대를 빠져나와 왼쪽으로 몸을 비틀면 철길 위 육교가 나온다. 오른편의 무명천은 철길 아래로 흐르니 기차는 물 위를 달리기도 하는 셈이다. 육교 위에서 “부산 목욕탕은 왜 그리 높다란 굴뚝을 세워놓는지 모르겠다”면서 곽 감독이 촬영 당시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든다. “웬 할메가 장동건이를 보더니 반갑다면서 막 아는 척을 하더라고, 그라더만 하는 말이 ‘아이고, 유동근이도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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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한나절이 지난 것뿐이지만 어제의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와 다르게 감독과 3명의 기자일행은 거의 끊이지 않는 대화의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돌아볼 곳이 아직 많이 남았으므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돼, 뭐 나올 게 있다고 그렇게 소독차를 따라다녔지?” 하는 질문에 “딴 세상 같잖아”, “하늘나라에 온 기분이지”, “뭐, 그때는 그만한 이벤트가 없었으니까” 하는 대답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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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 모르는’ 아이들이 소독차 뿌연 연기를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쫓던 골목길. 엉덩이 깐 손주녀석을 ‘다라이’에 넣고 목욕시키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마디와 행여 소독차 연기가 들어올까 문을 닫는 2층집 아저씨의 무심한 표정이 지나고 나면, 앞 못 보는 연기를 틈타 절도행각을 펼치는 아이들의 재빠른 손놀림이 이어진다. 준석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주현씨가 “야, 저때 우리 진짜 도둑질 많이 했다”며 공소시효 지난 범죄사실을 고백했다는 타이틀 시퀀스에서 범일동 굴다리는 꽤나 많은 컷을 허용했다. 진시장에서 부산진역으로 내려오는 고가도로 옆으로 난 첫 번째 계단으로 내려가면 담쟁이 덩굴이 자랐던 흔적이 남아 있는 꽤나 멋스런 굴다리가 있다. “옛날 간지(느낌) 낸다고 보육원 아이들을 출연시켰어요. 타이틀 시퀀스는 여러 군데서 나눠서 찍었는데 이틀 동안 소독약 냄새 맡으며 계속 뛰니까 나중에는 아이들이 기진맥진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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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다리를 지나, 소독차를 따라, 아이들이 달려간 곳은 범천동 안창마을. 꽃동네라고도 불리는 이곳 고지대는 영세민 거주집단이다. 사는 모양새가 남루하기에 서울 봉천동 산동네와 비슷한 이 마을은 70, 8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바람을 막기에도 역부족인 판자들을 꼼꼼히 이어서 울타리를 쳐놓은 곳이 눈에 곧잘 띄지만, 그런 풍경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이곳 사람들만의 방식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이 곽 감독의 팬이라며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는 마을 꼭대기 주차장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왼편에 아이들이 소독차를 따라 나서는 장면 중 나오는 조그만 다리가 나온다.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음식점들에서 내놓는 쓰레기 뭉치들이 조그만 다리의 반쪽을 점령하고 있는데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악취들로 사방이 진동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는 법이 없다. 만개한 꽃으로 뒤덮인 정원은 아니더라도, 안창마을이 꽃동네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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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마을에서 내려오는 길 왼쪽으로 부산고등학교가 스쳐지나갔다. “아부지 뭐하시노”하고 묻는 선생에게 “건달입니더”라고 사실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좋겠다! 느그 아부지 건달이라 좋겠다”는 말과 함께 개 맞듯이 맞은 준석은 “누가 좋타캣심니꺼”라며 벌컥 화를 내고 교실을 박차고 나온다. “학교마다 이상한 선생들 진짜 많지요. 영화에 나온 야비한 선생 모델이 ‘개뼉따구’란 선생이었는데 꼭 고무밴드 두개를 뭉쳐서 코를 때렸는데, 와! 진짜 생각만 해도 아프네. 이런 선생들은 주로 말가지고 늘어지는 것도 장난이 아이지. 하루는 시험치고 났더니만 선생이 ‘어이, 곽경택이! 요번에 모의고사 잘 쳤나?’ 하고 부르더라구요. 그래서 ‘아니요, 요번에는 못 쳤는데요’ 했더니만 ‘요번에는 못 쳐? 언제는 잘 칫드나’ 하고 무안만 주고 가대요. 학교 앞에 오니 밸 생각이 다 나내. 우리 학교 앞에서는 도저히 신분을 알 수 없는 미모의 딸래미 둘이 라면을 팔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 고등학생이란 약점을 이용해 장사를 해묵은 것 같아요. 선배들은 ‘니가 봐도 예쁘재’, ‘저 남자 애인이 조직 보스란다’ 뭐 이런 말도 마니 했었지요, 참, 그 딸래미들 지금은 뭐 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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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 용두산공원 | 공원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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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택아, 다음에도 아 새끼들 팰 일 있으믄 확실하게 조지아 된다이. 다음에 눈만 마주치도 오줌을 찔끔 싸게끔 만들어나야 되는기라. 아예 용서해주고 같은편으로 만들든가, 아니믄 차라리 빙신을 만들어삐라. 그래야 뒤탈이 없다.”
: “좋다. 앞으로 누구 팰 일 있으면 그래 하께. 그라믄 니도 내 부탁 하나 들어도.”
: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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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법칙을 이미 몸 속 깊이 배워버린 준석에게 상택이 부탁한 것은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누구 말도 듣지 않을 것 같던 준석의 반항어린 눈매는 ‘친구’라는 부름 앞에 여지없이 부드러운 형상으로 바뀌고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교실로 향했다. 이 긴 말 필요없는 ‘싸나이’들의 대화는 용두산공원 언덕길에서 이루어졌다. 부산 어디에서도 보인다는 부산타워(용두산타워)가 우뚝 서 있고 꽃으로 만든 대형 시계가 한가로이 누워 있는 용두산공원은 세상의 비둘기란 비둘기는 죄다 모이는 곳 같다. 중호(정운택)가 자위하다 이모에게 들킨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내던 곳은 타워를 에워싼 팔각으로 생긴 난간. 곽 감독은 비둘기 모이로 줄 새우깡을 ‘오독오독’ 씹으며 엉뚱한 헌팅 이유를 풀어놓는다. “저기서 왜 찍었냐면요…, 저기는 아무나 못 올라가거든요. 사무실 통해야 올라가지. 그래서 어릴 적부터 저 위에 한번 올라가는 게 소원이었어요.” 벚꽃에 목련까지, 봄이 되면 온갖 다채로운 꽃들이 향기를 뿜어내는 곳. 서울의 탑골공원처럼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도 두고, 한쪽은 음악을 틀어놓고 자기 흥에 겨운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 뒤로 대학 신입생처럼 보이는 무리들은 빙 둘러앉아 80년대식 수건돌리기를 하더니 벌칙인지 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업고 공원을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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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30분 국제시장 | 카드 사러 나온 상택과 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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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택아…,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내는 배운 기 깡패질이니까, 니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말이지 직이삐고 싶은 놈이 있스믄 내한테 딱 한놈만 말해라. 내가 직이주께. 그라고 니는 나중에 내가 늙어가지고 건달짓 못하게 돼서 니 찾아가믄 그때, 개인택시 한대만 빼줄래?” “개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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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찾아온 “엘리트 대학생” 친구의 파카를 빌려입고 준석은, 마약금단현상으로 쾡한 눈을 불안하게 움직이며, “성질 더러븐 영감 수발하다 죽어간 어무니”에게 보낼 크리스마스카드를 사러 가자며 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용두산공원에서 자갈치쪽으로 향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되는 국제시장에는 도로를 따라 각종 학용품 및 사무용품을 파는 문구사들이 쭉 늘어져 있다. “아까운 장면이에요. 조금 더 넓혀갈 수도 있었는데, 엑스트라들의 헤어나 분장까지도 80년대에 맞춰서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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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고등학교에서 시작해 범일동 철길육교로 삼일극장을 향해 질주하던 뮤직비디오 시퀀스의 가운데 토막은 자갈치시장 건어물상회 옆이다. 자갈치를 ‘갈치’의 사촌쯤 되는 생선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지만, 자갈치는 본디 충무동쪽 보수천(寶水川) 하구 일대가 자갈투성이였던 자리를 말한다. 힘좋은 바다장어 머리를 못에 ‘꽉’ 찍고 한번에 쓰윽 껍질을 벗겨낸 뒤 철판에 구워주는 부산 특유의 장어구이가 풍기는 냄새가 연신 일행의 출출한 배를 자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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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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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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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쨋날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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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5시 영도다리 | 내기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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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우리 엄마가 일본에서 테레비 녹음기 가지왔드라.”
: “테레비 녹음기? 그기 뭐고?”
: “녹음기처럼 테레비를 녹음할 수 있는 거.”
: “꽁까지 마라, 임마! 세상에 그런 기 어데 있노?”
: “아이다. 진짜다. 그라믄 느그 내캉 내기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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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죽자”는 말은 부산에서 흔히 쓰인다. 특이한 건 열에 아홉은 장소가 영도다리라는 사실이다. 그건 부산에서 난 사람들에게는 이 다리가 친숙한 구조물이라는 방증이다. 죽음의 장소로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영도다리는 그리 높지 않은, 길지 않은 다리다. 서울 한강다리의 아찔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완만한 아치형의 다리는 오히려 ‘울컥’,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진 이들에게 맘껏 기대라며 등을 내어주는 서글서글한 형이나 곱디고운 누나 같다. 곽 감독도 영도다리에 한번 신세를 졌다. 99년 <친구>의 시나리오를 쓰러 부산에 내려왔지만, 투자하기로 했던 삼부파이낸스 회장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었다. 하지만 그는 예정대로 영도다리 위에서 헌팅을 강행했다. 비오는 날, 우산과 디지털 카메라를 한손에 들고서 ‘억수로’ 운이 없는 사내는 이 영화를 꼭 찍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한국전쟁 당시 굳센 금순이를 찾지 않더라도, 힘들 때 영도다리를 찾은 이는 ‘수도 없이’ 많다. <친구> 개봉은 그래서 곽 감독에게 남다르다. 영도다리가 베푼 아량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옆에 부산대교가 개통된데다 근처에 100층이 넘는 백화점이 들어서는 판에 영도다리는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친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촬영을 시작한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크고 새로운 것에 밀려 결국은 소멸해야 할, 낡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은 영화뿐 아니라 이곳, 영도다리에도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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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면을 찍는데 비가 오다 안 오다 해서 시껍했지요. 오후 촬영은 아예 못하게 됐고. 풀숏으로 잡은 뒤 영도다리 저쪽에서 네 녀석들이 내기하며 걷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는데. 그건 둘째치더라도 영도다리 양쪽을 통제하고 옛날 자동차 20대를 운행시키는 것도 힘들었고. 뭣보다 첫날부터 날씨가 이러니 다른 사람들이 찝찝했을 텐데. 그래도 그런 이야기 안 있습니까. 첫날 비오면 대박 터진다는 말. 그걸로 위안 삼았십니다. 8일 내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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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토성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별다른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구 쑤셔놓은 것 같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박혀 있는 문구들이며 줄줄이 매달려 있는 준비물 봉지 같은 것들도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다. 그저 20년도 넘게 문방구를 지키던 아줌마만이 어느덧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을 뿐. 딱지다발, 옷갈아 입히는 종이인형, 흘림체로 ‘필승’이라고 써 있는 쌍절곤, ‘알다마’ 같은 향수어린 소품들은 국제시장 장난감점 창고에서 간신히 찾아냈다. 스프링달린 장난감 재크나이프로 준석의 배를 장난스럽게 찌르던 동수의 순진한 미소가, 이들이 10여년 뒤와 연결시키면 잠시 아찔해진다. “커서는 동수하고는 좀 서먹해졌지만 어릴 때는 놀러도 많이 댕기고 진짜 친했죠. 근데 어릴 때부터 금마가 얼마나 살벌했었냐면 한번 중학생하고 싸운 적이 있었는데, 지가 졌어. 며칠 있다가 그 중학생이 생일이라고 화해도 할 겸 즈그집에 초대를 했는데 동수가 문걸어 잠그고 뒤에서 손가락 집어넣어서 그아 입을 찢어버렸다고…, 독종이에요, 독종. 영화에서 동수는 많이 완화한 거죠.” 문방구 뒤에 붙어 있는 작은 골목은 아이들이 도색잡지의 ‘월경사진’을 암거래하던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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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7시 대신동 | 준석이집 담벼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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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학년 때, 연탄집 멍길이가 내 입술이 빨간 거는 우리 아부지가 죽은 사람 간을 많이 묵이서 그렇다고 놀릿다 아이가. 금마는 그때 중학생인데, 니가 내 대신 한판 붙었다 아이가. 그 다음부터 내가 니 따라 댕깃고.”
: “그랬나….”
: ”… 내는…, 내일부터 상곤이 행님 밑으로 들어간다.”
: “거기는 건달 아니다. 양아치다. 모르나? 꼬마들한테도 약파는 거.”
: “상관없다. 장의사보다 났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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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철문 뒤로 봄꽃들은 꽃망울을 튀우고 있었고 그속에 단아하게 자리잡은 왜식가옥은 몇달을 풀어도 모자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아들을 조직의 품으로 떠나보내는 아버지가 하염없이 응시하던 그 골목, 동수와 준석이 ‘친구’로서 등을 맞댄 마지막 장소. 두 사내의 운명은 그렇게 각기 다른 길로 들어섰다. 잠시, 어두운 골목길 속으로 퇴장하는 연극배우처럼 사라져가던 동수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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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석집 골목에서 곧장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구덕운동장 건너편의 문화아파트 지하에는 16년 전통을 자랑하는 ‘88롤라장’이 있다. 이제는 없어진 신천지백화점의 ‘신천지롤라장’이나 유나백화점 아래 ‘중탁(중앙탁구장)롤라장’이 진짜 무대이지만 촬영은 비교적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중앙에 위치한 DJ부스는 주인아줌마 말에 따르면 한때 “아르바이트 하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다. 오후의 한산한 롤라장엔 초등학생 몇명이 쌩쌩 신나게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황기석 촬영감독이 대부분 롤라를 직접 신고 찍었어요. 황 감독, 롤라 잘 타더라고. 신기한게 그때 미국에서도 한인아이들이 갈 데 없으면 잘 가는 데가 롤라장이었다나봐요.” 지하에 위치한 롤라장에서 나오니 밖은 어느새 어둑한 땅거미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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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셋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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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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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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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11시 국제호텔 나이트클럽 | 동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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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루코 장례식 때 못 가서 미안하다. 일이 너무 바빠가꼬….”
: “많이 컷네… 동수.”
: “원래 키는 내가 좀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 할 때부터.”
: “간단하게 말할께.”
: “복잡하게 말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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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을 떠나기 2시간 전이다. 이틀 전과 달리 공기가 오슬오슬하다. 푸근한 해풍은 온데간데 없다. 국제호텔 앞은 버스 한대가 지나가도 복잡할 정도로 좁은 일방 통행로다. <친구>팀은 3개월 촬영기간 내내 이곳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식사는 곽 감독이 뉴욕에서부터 즐겨먹었다는 꼬리곰탕을 주메뉴로 하는 호텔 뒤쪽 한 식당. 한참 북적거리다 요즘엔 통 손님이 없으니 그곳의 ‘아지메’는 올 4월부터 또다른 영화촬영이 있다고 해서 그때만 손꼽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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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 동수가 회칼을 맞고 널브러지는 빗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찍은 것도 호텔 앞. “대형 강우기 2대에다…, 크레인까지 동원해 가 4일 내내 찍었으니 큰 공사였십니다. 동선도 복잡했고, 애초부터 이 장면은 촬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찍겠다고 생각한 장면입니다.” 배우와 스탭 모두, 최고조로 물이 올랐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감독은 천으로 해를 막고서 이 장면을 찍었다. “빗방울이 반짝반짝 제 빛을 내는 거는 전적으로 황기석 촬영감독과 신경만 조명감독 공이지요.” 동수를 찌르는 액션의 사운드 이펙트가 듣기에 좋지만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안 그러면 음악에 묻힐테니까. 그리 했십니다” 한다. 이 장면의 경우 주어진 상황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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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어디까지가 진짜예요?” 맨 마지막으로 미뤄놓은 질문을 던졌더니 곽 감독이 담담하게 말한다. “동수가 죽었다는 소식은 유학 갔다와서 들었습니다. 근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다, 가까운 친구한테서 그간의 사정을 듣고나니 이야기가 쉽게 안 풀리지 않겠구나 싶었십니다.” 젊은날 친구들이 치러야 했던 예정된 비극의 전말을 듣고서 가슴 먹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걸 또 이야기로 옮겨야 한다니, 곽 감독의 그것은 곱절이었으리라. “중앙동 근처 육교 아래가 진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지요…, 비오는 날 대낮이었다는데. 영화에는 서른번 넘게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스물네 군데 찔렸십니다. 동수쪽 조직이 실제로도 많이 크니까, 준석이쪽에서 동수쪽 막내를 잡아다가 길거리에서 톱으로 다리를 잘라버렸다지요. 은혜도 잊지 않지만 복수도 잊지 않는 게 건달이거든. 얼마 안 되가 동수쪽에서도 볼링장에서 일하는 준석이 애들 몇명을 담가버렸지. 그러다 치고박고 치고박고 한 거이고…. 친구들한테 미안한 게 많지요, 막말로 하면 우리 얘기를 상업적으로 팔아묵은 거니까. 준석이는 쭉 경주에 있다가 지난달에 영등포로 옮겨갔는데 이제 4년쯤 남았습니다. 그동안에 신문에 난 <친구> 기사는 스크랩까지 해서 감방 안에서 자랑한답니다, 봐라, 내가 이런 놈이다. 뭐 이란다 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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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 자라난 골목과 사람들을, 그 공기를 불러내는 작업이 어디 그리 편하기만 했을까. 자신의 기억을 영화로 담아내는 일은 추억을 공유하는 동시에 추억 잃어가는 작업이다. 잊고 살아도 누구하나 비난하지 않는 ‘친구’. 십여년전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내는 내처럼 사께” 했던 친구의 말을 약속처럼 가슴에 새긴 감독은 “그놈 나와도 다시 깡패짓 할 깁니다. 내는 영화 찍는 게 일이고 지는 그리 사는 게 지 일이니까네”라는 자조적인 말을 마지막으로 흘렸다. 바야흐로 꽃피는 동백섬엔 봄이 왔건만, 친구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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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읽어보신 내용인가..
: 음..
: 읽어보셨어도 또 읽으면 재밌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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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읽어주셔서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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