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든 나이테에 담긴 풍성한 인생이야기 이해숙
정정애 수필가의 - [느티나무에게]를 읽고
[펼치며]
그의 삶이 숭미하다. 4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퇴임하며 인생 1막을 마무리했고, 슬하의 다섯 남매를 각계의 전문인으로 키운 지극한 정성의 어머니다. 노고를 자축하며 유유자적해도 될 텐데 일을 냈다. 팔순을 기념한 미술 작품 개인전 개최와 수필집과 시집을 함께 출간한 일이 그것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여든의 나이가 무색하다.
인생살이가 힘들고 고단할수록 눅이는 예지가 필요하다. 삶의 스승에게서 그것을 배운다. 일관된 소신으로 살아온 인생, 풍성한 나뭇결이 이룬 아름다운 무늬, 열정과 지혜가 켜켜이 스민 둥근 테가 순란純爛하다. 참삶을 영위하며 연련하게 이어온 노을빛 인생이 주는 묵언의 가치를 헤아려본다.
지난해 일이다. 마당의 백모란이 가뭇없이 지니 모란을 노래한 시인처럼 계절을 ‘여윈 설움’ 같은 허전함이 찾아왔다. 여름에 접어든 어느 날 뜻밖의 전시회 초대장이 배달되었다. 표지화가 백모란이었다. 눈부신 겹겹의 하얀 꽃잎 속에 노란 수술과 빨간 암술이 기품 있게 표현된 그림이었다. 초대장에 이어 며칠 새 시집과 수필집이 동봉된 책 꾸러미도 받았다. 정정애 작가가 팔순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회에 초대해줬고, 발간한 시집과 수필집을 보내주셨다. 그동안 수필가로만 알았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줄 몰랐었다. 마치 수험생처럼 치열하게 삶과 문학, 그림까지 섭렵하신 줄은…. 뜨겁게 존재의 의미를 붙안고 살아내시는 듯했다.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 밤을 지새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준비했으리라.
한 해에 책 한 권 출간하기도 벅찬 현실을 두고 보더라도 ‘젖 먹던 힘까지 보태서 용기를 내었다’는 작가의 자서에 공감이 갔다. 자서는 작가의 집필에 대한 동기와 인생, 삶의 자세를 전방위적으로 피력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기운찬 삶의 자세가 엿보였다. 작품은 작가를 반영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빼닮은 나이테를 글로 낳은 것이다. 여든 개의 나이테를 가진 우람한 나무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집. 웃밭에 해마다 토란을 묻어두고 묵묵히 ‘보리타작하는 농부의 도리깨 소리를 듣고야 싹을 틔우는 토란처럼’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준비하였단다. 지치지 않고 창작에 매진하는 자세야말로 필자가 선망하는 노년의 모습이다.
정정애 작가는 열정의 아이콘이다. 슬하에 여러 자식을 키우며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서 중등미술 교사로 정년퇴직을 했다. 9개의 도시락을 싸던 시절에도 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쳤고 중등미술 교사가 되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했단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노력으로 꿈꾸던 미술 교사가 되었다. 자녀 양육과 직장생활, 녹록하지 않은 시골 초등학교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또 다른 꿈을 꾸었고 꿈을 실현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주춤거리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해서 이루어 냈다. 그런 치열함이 생활이 되었고 습관으로 굳었다. 여든 연세에도 여일하게 새벽에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 그의 노년이 더없이 고상하다. ‘목어’가 연상된다.
1. 새벽을 여는 부지런함으로
면 단위 지역 초등 교사 시절 자녀들은 어렸고 기저귀 등 빨래는 많았으며, 동네 우물물은 부족해 물 가난이 극심했단다. 새벽에 일어나 공동 우물터에서 겨우 두어 통 길어오면 식수로 쓰기에 급급했고 빨래는 언감생심이었다. 기저귀 빨래를 위해서는 수백 미터 떨어진 냇가까지 나가 맨손으로 빨아야 했으니 그 어려움을 어찌 다 짐작하랴. 이는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의 강인한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듯이 자식을 낳아 키웠고, 직장생활을 했으며, 더한층 상승하기 위해 촌음을 아꼈다. 초인의 모습이다. 감사하게도 현대 생활 속 문명의 이기들을 볼 때 우리는 더없는 풍요 속에 살고 있다.
나는 다섯 자식을 기르면서 무던히도 많은 빨래를 해야 했다. 첫째와 둘째를 키우던 마령 솔안 마을은 지하수 수량이 부족하여 취사용 물을 공급받기도 어려웠다. 새벽 두세 시경에 공동 우물터에 물을 길으러 가면 겨우 두어 수대 떠올 수가 있었다. 그러니 집 근처에서 세탁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었다. 결혼 전 나 살던 친정집엔 우리 식구만 사용하는 우물이 있어서 빨래나 목욕을 하는데 물 걱정은 없었는데 처음 당하는 물 가난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천상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삼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강정리 냇가를 찾아가야 한다. 내가 편리한 세탁기를 만난 것은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었다. 누가 세탁기를 발명해 내었는지 참 신통하고 고맙다. 오늘은 편리한 노년을 사는 내가 복 받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0년 전의 불편한 생활 모습과 오늘날 편리함을 도모하는 문명의 이기들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 빨래를 하다가 -
휴일이면 새벽 남부시장을 가끔 나가본다. 그저 시장 구경이다. 신선한 새벽공기도 좋고 새벽 장터의 활기도 더할 나위 없다. 시장은 서민들의 장이다. 그곳에는 허위도 가식도, 권력도 지위도 없다. 진솔한 삶이 있을 뿐이다. 사고파는 사람들은 하루를 확장해서 사는 이들이다. 앞집 교수님과 가끔 마주친다. 교수님의 사진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리얼리즘 사진, 테마가 ‘시장 사람들’이었다. 그분은 시장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함과 끈질긴 생명력을 응시하고 포착하기 위해서 새벽 출사를 나오시는 듯했다. 그렇듯이 사진 작업은 가난한 사람들의 한없는 고독을 여과 없이 미적으로 승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정정애 작가도 가끔 새벽시장을 찾아 구하기 어려운 황포묵도 사고 글감도 얻는다고 한다.
꿈 너머 꿈을 이룬 사람들은 하늘이 공평하게 허락한 ‘하루’중에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 꿈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일상적인 시간을 ‘황금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정정애 작가는 삼십 대 중반에 하루 다섯 시간쯤 자며 ‘중등미술 교사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몇 달 산 것이 여태 습관이 되었다. 퇴직을 하면 몇 날 며칠 늘어지게 잠만 자리라 했었지만, 그 시간쯤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단다. 한결같이 살아온 길을 통해 오늘의 작가가 탄생되었으리라. 밤 열 시쯤 잠자리에 들면 새벽 세 시쯤 잠을 깬다. 무생물의 시간대지만 자신을 맑히는 시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수필을 쓰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 중심 사상을 삶으로 구현하고 창작으로 꽃피운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중등과 고등의 자녀들을 위해 여러 개의 도시락을 쌌던 그 새벽. 신약과 구약 성서 쓰기를 6년에 걸쳐 완필했고, 스케치한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도 새벽 시간이었다. 독자들이 작품에서 기대하는 것은 결국 공감이고 감동이다.
칠십 넘어서부터 글 쓰는 공부를 시작하여 남의 글을 읽기도 하고 내 글을 쓰는 것도 새벽시간에 하게 된다. 어떤 때는 새벽 다섯 시에 남부시장 천변에서 열리는 도깨비시장에 가서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사 오기도 하고 늦게 가면 동나는 소양 할아버지의 황포 묵을 사 오기도 한다. 나에게 내일을 살아갈 재충전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저녁 시간이나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새벽 시간이 나에게는 황금시간인 셈이다. 그 소중한 나만의 골든타임에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끼며 오늘도 그 시간을 틈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 나만의 골든타임 -
2. 자랑스러운 둥구나무
수필은 픽션이 아니라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담긴 내용으로 작가의 인품이나 삶을 유추한다. 삶의 반영이 그의 글이므로. 정정애 작가를 대하면 고요하고 따스한 정감이 전해온다. 수필에서는 깊은 사색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감지됐다. 첫새벽에 잠을 깨 맑고 고요한 정(靜)의 화면을 펼쳐 창작에 전념한다. 이는 묵묵히 자기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그의 아름다운 열의는 진실의 울림이다. 봄을 맞아 목청껏 울어대는 뻐꾸기와 개구리, 그리고 만발하는 온갖 꽃들의 향연이 ‘자아를 마구 우짖는 생명의 절규’이듯이.
작가의 세대 때엔 대부분 대여섯 혹은 일고여덟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녀 양육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웠을 것 같다. 알뜰하게 키운 자녀들이 각기 어엿한 사회인의 몫을 다하고 있지만 유독 외아들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단다. 청출어람이랄까? 어머니의 재능이 아들을 통해 발현된 듯하다. 그러나 애지중지하던 그 아들로 인해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 대입 준비로 여념이 없을 고교 시절, 입시 공부보다는 글을 쓰고 시를 지으며 질풍노도의 과정을 고스란히 거쳤다. 입대를 위해 다니던 대학을 휴학이 아니라 자퇴 처리한 것, 아들이 대학보다는 ‘글 쓰는 일’에 뜻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단다. 기도하는 맘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 아들이 드디어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스물여덟 살에 ‘전북일보 신춘문예’ 등단을 시작으로 동화, 희곡,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를 망라하여 문학의 전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정정애 작가는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북받친다. 그의 성취가 자랑스럽고 느껍다. 아들을 ‘느티나무’라 명명했음에랴. 그토록 믿음직스러운 거다. 빈 들판에, 마을 어귀에 의연하게 서있는 둥구나무. 동네의 구심목求心木으로, 시골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 꿋꿋하게 삶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나무가 그것이다. 한 해의 운수대통을 빌고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을의 수호신. 치열하게 성장을 도모하는 여름날의 짙푸른 녹음과 새들이 깃들어 노래하는 나무, 소나기를 피해 그 나무아래 서면 나뭇잎 위로 듣는 빗소리에 한여름 무더위도 잦아들던…. 마을의 노거수, 성황 나무! 느티나무는 그런 나무다. 집안의 자랑이자 대견한 아들이 뭇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꿈의 증거가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지극하다.
내 아들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가 문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온 삼십 년 세월, 아들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된 것은 1995년이었으니 첫 등단을 한 지도 어언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6회의 신춘문예 당선(전북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전남일보, 광주일보, 경남일보)의 영예를 얻었고, 해양문학상 4회(부산 1회, 여수 2회, 전북 1회), 일반 문학상 8회 등의 귀한 족적을 남겼다. 장르를 넘나들며 치열한 작업을 해왔음을 조금은 알고 있다. 참 나는 그 아이의 어미로서 한 일이 별로 없다. 그는 문학이라는 외길을 걸으며 항상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혼자서 첩첩산중을 헤매며 가시덤불을 만나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긴 기도 끝에는 하느님의 전능한 힘에 의탁하고 마는 무기력한 어미였을 뿐이다. - 느티나무에게 -
그 아들의 기도도 간절했으리라. 머지않아 반드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리고 등 뒤로 늘 어머니의 다사로운 눈길을 느꼈으리라. 자식의 꿈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간곡한 그분의 염원을 감지하며 더욱 박차를 가했으리라. 신뢰에 힘입어 외롭고 팍팍한 길을 내색 없이 참고 묵묵히 걸으며 결과로 말하리라 마음 다졌을 것이다. 그간 아들의 성취와 노고를 헤아리며 어머니는 소망한다. 그의 작품 창고에 그득 쌓인 귀한 작품들이 책으로 엮여 세상으로 나와 햇볕도 쏘이고 바람도 맞으며 독자들과 소통하기를…. 정정애 작가는 부모로서 해 준 것이 없다지만, 몸소 노력하는 모습으로 생활의 본을 보여 실천했다. 뭣보다 소중한 재능의 씨앗을 심어 주었고 아들은 소질을 십분 발휘 백배의 노력과 열매로 보답하였다.
3. 더없이 풍성풍성한 노년
인생을 반 넘어 살아 왔다. 후회보다는 더러 아쉬움이 있다. 노년을 맞아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리라. 그때마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그렇다.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동동거렸고, 직장 일 때문에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이제는 새해가 되면 그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망각의 저편에서 첫사랑의 전화라도 걸려올 것 같은 설렘도 있다. 꽃노을 물든 하늘을 바라보니 살아온 세월이 감사할 따름이다. 다 이루었고 이제 풍성풍성한 노년을 영위하며 할 일이 있으니, 쓸쓸해 말 일이다. 초조해 말 일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앞뜰 텃밭에 채소를 가꾸어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꽃나무와 화초를 심어 집안을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다. 이층 다락방에선 좋은 글을 많이 쓰고, 화실에서는 멋진 그림도 여러 점 그리고 싶다. 내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올해도 달력에 그려진 징검다리 같은 동그라미를 지우며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다. 문득 ‘새 달력’이라는 동요가 떠올라 조용히 흥얼거려 본다. ‘새 달력엔 아빠 생일이 들어있다. 새 달력엔 내 생일도 들어있다. - 새 달력을 벽에 걸며 -
중년을 넘어서면 추억을 소환하는 예가 많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이라든가, 멋진 풍경이 인상적이었던 장소, 거기에 맛난 음식이 주는 추억도 간과할 수 없다. 정정애 작가에게는 생애 또 한 분의 엄마가 계시다. 시시철철 챙겨주는 큰언니다. 이 글을 읽으며 자책했다. 필자도 육 남매, 네 자매의 큰언니다. 줄줄이 있는 동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나 살기에 급급하니 면목이 없어서다. 작가의 큰언니가 해마다 사서 보내오는 황태를 감사한 마음으로 펼친다. 노랗게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은 황태를 보며 양질의 황태가 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보며 감사를 잊지 않는다. 거무죽죽하게 마르면 ‘먹태’, 너무 추워 하얗게 바래서 마르면 ‘백태’,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 흐트러져 마르면 ‘파태’, 붉고 딱딱하게 마르면 ‘골태’란다. 소고기 부위의 다양한 명칭에 지지 않을 만큼 서른다섯 가지 정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니 참 신기하고 놀랍다.
갓 잡아 온 명태는 생태, 꽁꽁 얼린 것은 동태, 완전히 건조시킨 것은 북어, 반 건조시킨 것은 코다리, 산더미처럼 많이 쌓아놓았을 때는 산태, 덜 자란 어린 것은 노가리, 봄에 잡은 것은 춘태,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 멀리서 잡은 것은 원양태, 가까운 곳에서 잡은 것은 지방태, 강원도에서 잡은 것은 강태. ~~ 지금까지 먹어본 명태 음식 중 가장 훌륭한 음식은 황태 보푸라기다. 황태 살을 가볍게 두들겨 손으로 곱게 비벼서 솜털처럼 만들어진 것을 살짝 볶은 뒤 참기름과 양념을 가하여 무쳐 낸 것이 황태 보푸라기다. - 큰 언니 선물 황태 -
작가가 노년에 이르도록 건강관리도 잘해온 게 부지런한 성정 때문이지 싶다. 문학회 행사 때 베레모로 성장한 삽상한 예술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만 보고 여념 없이 인생을 살았고, 오 남매 양육에도 최선을 다했으며 한숨을 돌리고 보니 여든이 되었다. 후회도 없고 그저 감사가 넘치지만 아쉬움이야 어찌 없겠는가. 오랜만에 고향 상거마 곰솔 나무 그늘로 찾아드니 곰솔이나 작가나 같은 처지다. 둘레 4m의 커다란 몸통에 다른 소나무 몸통만 한 16개 큰 가지가 둥글게 뻗어 커다란 우산 모양으로 늠름했던 곰솔이었다. 세월이 흘러 4개의 가지만 겨우 남았고 그마저 10여 개의 쇠기둥으로 부축을 받으며 버티고 있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란다. 인생은 버티는 자가 곧 이기는 거라지만 허허롭다. 늙고 쇠잔해진 곰솔을 보며 자신을 투영한다. 인생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노년. 머지않아 너나없이 맞닥뜨릴 일이기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짠하고 애틋하다.
매화봉 밑자락에 둥지를 틀어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아침이면 도화봉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잠이 깨고, 창문을 열면 푸른 숲이 코앞으로 달려온다. 지나간 세월의 발걸음 소리도 마음을 기울여야 들리는 법이라는데, 나는 지난날 너무 정신없이 허둥대며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지나쳐버린 시간 속에 많은 소중한 것들을 속절없이 놓치며 지나친 것이다. 40년 긴 교직 생활을 하며 제자들에게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고, 워킹맘으로 살면서 자식들에게 소홀히 했던 고비도 많았을 것이다. 또한 나와 인연 지었던 모든 분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한 회한이 나를 아쉽게 한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내가 펜을 드는 이유일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며 갈무리하는 작업이다. 그렇다. 나는 한글로 한 자 한 자 더듬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 이 곰솔 나무 아래에서 80년 세월을 되새김질하며 다비식 같은 고즈넉한 석양을 씁쓸히 맞이하고 있다. -나이테 여든 되어-
[닫으며]
수필집 [느티나무에게]를 찬찬히 읽으며 글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도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삶을 이보다 더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 낼 수 있을까! 이제는 지난 세월을 담담하게 돌아보며 추억하면 되리라. 그의 수필은 연출하지 않은, 문학적으로 숙련되게 꾸며 쓴 글이 아니었다. 따뜻한 품성과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 모습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었던 인품이 그대로 배어 나온 글이었다. 인위적이 아닌, 저변에 내재한 따뜻하고 뜨거운 기운이 그대로 글로 드러났다. 이제 한풀 내려놓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꽃나무와 눈도 맞추고 얘기하며 수필도 쓰고 시도 지으며 유유자적해도 될 것 같다. 작가는 우주의 일부면서 자신이 곧 우주이니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가끔 손자 손녀들이 들려주는 느꺼운 소식에 활짝 웃고 소일하면 되리라. 뉘엿뉘엿 붉게 물든 서녘 하늘을 마주하고 서면 감사가 넘치리라. 더 바랄 게 있을까.
작가 최일걸 님의 글을 모두 구해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인 소설 ‘감별’이 수록된 작품집 단 한 권만이 검색되었다. 어머니인 정정애 작가가 소망했듯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머지않은 날 그의 작품을 지면으로 만나기를 고대한다. 그의 문학상 당선 소감을 옮긴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들의 마음이 자못 깊다.
생을 다해 교단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셨던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의 삶을 되돌려 텃밭에 이르셨다. 전 생애를 텃밭에 부려놓고 땅을 경작하며 하늘을 받아쓰기하시는 부모님의 터전에 근접하기에 나의 문학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쓴다. 나의 99%는 아버지 어머니이기에 나는 창작을 멈출 수 없다. 화폭 속에 당신의 세계를 구축하신 어머니가 물려주신 달란트가 내 문학의 바탕이다.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끈기와 의지가 내 창작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나의 글쓰기는 이 땅의 어둠에 빛을 던지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창작을 통해 언저리의 삶을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 놓을 것이다. 한가지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내 문학의 토양 위에 아버지 어머니의 기념비를 세우고 싶다. 이 땅에 작품을 남기기 위해 작가는 자신을 죽인다. 나는 죽어야만 하고 작품은 살아야 한다. 나는 가고 작품은 남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창작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 수족을 자르고 기어서 전진할 것이다. - 제18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소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