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살. 의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지나 안주하고 안착하는 인생을 사는 시기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기에 늦었다고 여겨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사람을 우리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칭송한다. 소리꾼 장사익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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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90으로 봤을 때 자신의 전반기 45년은 밤으로, 후반기 45년은 낮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밤이 있으므로 낮이 있고, 낮이 소중한 이유는 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생의 전반기를 결코 탓하지 않았다. 육십 평생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은 그이지만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밝기만 하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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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노래를 시작한 ‘대중가수’ 장사익 씨가 벌써 데뷔 20년을 맞았다. 1994년 11월 그는 가수로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올해 66세.
이제 국가에서 인정하는 ‘노인’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9월24일 서울 세검정로(홍지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머리는 희끗할지언정 얼굴에 주름이 있을지언정 ‘노인’의 풍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풍채는 무대에서와는 달리 보였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선 그는 거인처럼 거대한 몸집이었지만 실제는 평범한 신체구조를 가진 아담 사이즈였다. “무대에 있을 때나 장사익이지, 내려오면 일반 사람과 똑같다.” 큰 웃음으로 어색한 질문에 화답하는 그는 다시 크게 보였다.
장사익 씨는 자택 2층 거실에 앉아 인왕산을 자주 내다본다. 산꼭대기에는 스스로 명명한 ‘부처님 바위’가 있다. 부처님 가피력이 자신에게 직접 미쳐 지금까지 노래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데뷔 20년, 그는 별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미자 나훈아 패티김 등 50년을 넘게 노래한 가수들이 즐비한데 겨우 20년밖에 안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노래인생 20년은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옴이 분명해 보였다.
“지난 20년은 하루하루가 꿈꾸는 듯한 시간이었다. 20년이 오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감사하고 고맙고 기쁘다. 내 하찮은 노래를 돈을 내고 들어주고 박수까지 치며 감동했다고 치유됐다고 칭찬하니 얼마나 좋은가. 노래는 내 이야기이자 인생이다.”
“내 나이 이제 66세
10년 후가 기대됩니다
그러다 무대서 가버리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매일처럼 수많은 가수들이 등장했다가 스러져간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 같은 가요계에 20년을 한결 같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감사했다. 스스로 ‘대중가수’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소리꾼’이라는 별칭이 있다. 팬들이 달아준 이름이다. “소리꾼은 명창에게나 부여하던 수식어다. 대중음악을 하는 나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명창처럼 제대로 하라는 의미라고 여겨진다.”
장사익 씨는 종교가 없다. 굳이 따지면 ‘미신’이 종교다. 아름다울 미(美), 종교는 가리지 않고 모두 아름답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가운데 불교는 그에게 특별하다. 산사음악회 단골 게스트로 매년 가을이면 사찰 무대에 오르고 있고, 인터뷰 당일도 서울 수국사에 다녀왔다.
20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호산스님이 이날 주지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주지 진산식에서 장 씨는 노래 한 곡조를 뽑았다고 했다. “축하 화환이나 꽃다발도 못 가져가서 노래로 축하를 대신했다.”
지난 5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재에서 추모곡을 부르고, 2010년 불교신문 창간 50주년 행사에 깜짝 등장하는 등 불교와의 인연이 진중하다. “불교가 좋다. 부처님 앞에서 까부는 것(노래)을 가장 좋아한다. 지난 추모재에서는 내 노래로 슬픔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수 있어서, 무겁고 힘든 마음들을 가볍게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서 그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을까. 장 씨는 고(故) 박영석 대장을 떠올렸다.
“박 대장이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내 집에 왔다. 등반할 목표가 정해지면 절대 그곳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1m를 최선을 다해 오를 뿐이라고 했다. 인생은 길다. 오늘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40대에 데뷔해 지금까지 노래하고 있다. 장사익도 다 늙어서 시작했는데 나도 멋있게 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그는 국화 얘기를 꺼냈다. 국화는 늦가을에 핀다. 꽃은 봄에 핀다는 상식에서 벗어난다. 세상의 꽃은 언젠가 반드시 핀다. 사람은 과연 그런가. “누구나 꽃을 피울 수 있다. 준비돼 있다.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60대, 창창한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는 나이다. 그럼에도 장사익 씨는 희망을, 꿈을 이야기했다.
“내 길을 찾았으므로 노래를 계속하겠다. 이것 말고는 할 게 없다. 물론 예전보다 힘이 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힘이 없다면 힘을 빼고 나이에 맞는 노래를 하면 된다. 10년 후인 70대가 더욱 기다려진다. 20년, 30년이 지나 죽음을 앞두고도 노래를 부르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 설렌다. 그때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노래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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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읊조리다’
전국순회공연…30일부터
데뷔 20주년을 맞아 장사익 소리판 ‘찔레꽃’ 공연이 열린다. 오는 30일과 31일 이틀간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장사익은 지난 20년 노래인생을 되돌아보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읊조리게 된다. 데뷔 직후 초창기인 ‘어제’, 요즘 부르는 노래를 담은 ‘오늘’, ‘내일’은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20주년 공연 제목을 ‘찔레꽃’으로 정한 것은 자신의 데뷔곡이자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노래인 까닭이다. 더불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40대라는 “말도 안 되는 나이에 노래를 시작해서 목청껏 부르겠다고 염원한 그 때 그 당시의 원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찔레꽃’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찔레꽃은 장미과 식물이다. 장미는 화려하지만 향기가 없다. 반면 찔레꽃은 볼품은 없지만 향내가 진동한다. 그의 모습이자 이 땅의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다. 찔레꽃 같은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 노래에 녹아있다.
2시간30분 가량 이어지는 공연에서 장사익은 20여 곡의 노래를 선사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3~4곡의 신곡도 선보인다. ‘한강’은 이현주 목사의 시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에 곡을 붙인 노래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나 남과 북을 버리고 한강이 된다. 우리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 버리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종기 시인의 시에 곡을 넣은 ‘상처’는 나이 들면서 단순해지는 모습을 그렸다. 대부분 나이 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
40대에 노래를 시작해 육십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은 소리꾼이 자신의 인생과 나이를 이번 공연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살펴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전국순회공연에 맞춰 그의 8번째 앨범도 발매된다.
장사익 소리판 전국순회공연은 서울에 이어 울산(11월15일 울산KBS홀), 대구(11월21일 계명아트센터), 광주(12월4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강당), 대전(12월12일 충남대 정심화홀), 부산(12월19일 부산KBS홀), 김해(12월25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