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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1:1
호세아가 활동하던 때 북이스라엘은 전성기의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나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패역한 시대였습니다.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부와 풍요를 누리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으로 진실과 인애를 저버리는 우리 상황과 흡사합니다.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가정이든 사회든 화목하지 못하는데 웃음이 나올 수가 없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반목 하고 인상을 쓰면 관계가 더 소원해지기 마련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이런 불화의 원인은 사랑이건, 돈이건 모두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During Josea's time, North Israel enjoyed peace and prosperity in its heyday, but it was a defeated era of injustice and injustice. It is similar to our situation where we enjoy the wealth and abundance the most in the 5,000-year history, but abandon the truth and humanity with insatiable greed. What is God's message to the times? Whether it's at home or in society, we can't laugh even though we're not harmonious, and if we continue to antagonize and impress, the relationship will become estranged. I thought about it carefully, and the cause of this discord, whether it's love or money, comes from 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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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지 않은지 몇 달이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이 없다는 것은 사랑의 실종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은 그분의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그분은 사랑하시기에 아파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란 그분의 사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모리 가조는 그의 책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에서 "자기의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픔에 봉사하라"고 말했다지요. 내 아픔을 가지고 말입니다.
It has been several months since I entered the house. I thought that even if my parents passed away, I might not go. To have no pain is the disappearance of love. God's pain comes from his love. He is sick to love. Therefore, to join God's pain is to join his love. That's why Gadimori Gajo said in his book Theology of God's Pain, "Take your own pain and serve God's pain." With my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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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때 선지자로 부름 받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 크게 음란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안정의 영광을 바알과 아세라에게 돌렸습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시기에 하나님은 호세아를 아픔의 길로 부르십니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너 만은 울고 아파하라"는 것 같습니다.선지자는 시대의 죄악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사람입니다.
Josea was called a prophet during the reign of Jeroboam II. It was a period of political stability and economic affluence, but it was a time of great obscene spirituality. Israel gave Baal and Asera the glory of their prosperity and stability. At a time when everyone is enjoying themselves, God calls Josea the path of pain. When everyone is smiling, it seems like "You are the only one who cries and hurts." A prophet is a person who embraces the sins of the times into his own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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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흠도 없이 정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흠을 온 몸에 묻히고 함께 아파하고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반면, 풍요에 취해 있는 이들의 웃음은 곧 끝날 것입니다. 이스르엘에서 아합 왕조를 피로 물들인 예후 왕조 역시 같은 자리에서 피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음란한 자식들은 음란한 어머니로 인해 고생을 당합니다. 음란한 나라 백성들은 이제 "긍휼을 얻지 못한 자"가 되고 "하나님 백성이 아닌 자"가 됩니다. 나라가 불의 하면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교회가 타락하면 성도가 아픔을 겪습니다.
He is not a person who condemns without flaws, but a person who is buried all over his body and cries out for pain and suffering. On the other hand, those who are drunk on abundance will soon end their laughter. The Yeh Dynasty, which dyed the Ahab Dynasty in blood in Israel, will also shed tears in the same place. obscene children suffer from obscene mothers. The people of obscene countries now become "those who have not gained sympathy" and "those who are not the people of God." When the country is infidelity, the people suffer, and when the church is corrupted, the saints su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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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간이 타락하여 피조물도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롬8:22). 곳곳에서 아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난과 질병,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혹 고멜인 내가 낳은 자식들은 아닐까? 누구도 하나님만큼 아프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아내를 끊임없이 사랑하기에 겪는 고통입니다. 음란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아버지의 통곡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돌아서면 그만입니다.
Also, man degenerates and cries out for his creation (Rom 8:22). I hear a groan of pain everywhere. Don't you hear the wail of poverty and disease, violence and war? Or are they not my children who are Gomel? No one is as sick as God. Because God loves it the most. It is the pain of constant love for an obscene wife. It is the wail of a father who gives birth to and raises obscene children. God's love makes him angry. If you don't love it, you can turn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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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분노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선포가 "너희는 변함없는 내 자녀라"는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진노의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사랑은 십자가의 고통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이 고통스러운 사랑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 받았다는 말이 가볍고 흔하게 들리는 요즘, 사랑하기에 기꺼이 상처 받기를 선택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라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음란한 시대를 향한 선언과 회복을 위한 약속은 무엇인가?
God's compassion is contained in his anger, "I will never offer you mercy again." The proclamation, "You are not my people," is heard as the echo, "You are my children who have not changed." God's painful love for the object of resentment culminates in the agony of the cross. Carrying the cross and following the Lord is the way to join this painful love. These days, when it sounds light and common to say that you are hurt in church, you should become a saint who is willing to be hurt to love. Love as if you are not hurt. What is the declaration toward the obscene times and the promise of re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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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호세아와 그의 시대(1)
하나님의 명령,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2)
a.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은유(3-9)
b.첫아들 이스르엘과 이스라엘의 멸망 예고:3-5
c.언약 폐기, 딸 로루하마와 아들 로암미:6-9
이스레엘의 회복 약속(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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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와 요담과(1a)
아하스와 히스기야가(1b)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1c)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1d)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1e)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1f)
여호와의 말씀이라(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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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2a)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2b)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2c)
너는 가서(2d)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2e)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2f)
이 나라가(2g)
여호와를 떠나(2h)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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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가 가서(3a)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3b)
맞이하였더니(3c)
고멜이 임신하여(3d)
아들을 낳으매(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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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4a)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4b)
조금 후에 내가(4c)
이스르엘의 피를(4d)
예후의 집에 갚으며(4e)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4f)
폐할 것임이니라(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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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내가(5a)
이스르엘 골짜기에서(5b)
이스라엘의 활을(5c)
꺾으리라 하시니라(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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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이 또 임신하여(6a)
딸을 낳으매(6b)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6c)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6d)
내가 다시는(6e)
이스라엘 족속을(6f)
긍휼히 여겨서(6g)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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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7a)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7b)
그들의 하나님(7c)
여호와로 구원하겠고(7d)
활과 칼이나(7e)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7f)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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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8a)
또 임신하여(8b)
아들을 낳으매(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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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9a)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9b)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9c)
나는 너희 하나님이(9d)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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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10a)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10b)
헤아릴 수도 없고(10c)
셀 수도 없을 것이며(10d)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10e)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10f)
그 곳에서(10g)
그들에게 이르기를(10h)
너희는 살아 계신(10i)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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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다 자손과(11a)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11b)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11c)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11d)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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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아픔_the pain of a visionary_
백성의 아픔_the pain of the people_
하나님의 아픔_the pain of Go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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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기에 분노하시고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저를 주님의 것으로 받으시고 사랑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제 삶 깊숙한 곳에 음란한 것들이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They are angry and sick to love. Thank you for receiving and loving me as the Lord's, who left God. Let it be a day of repentance after looking back on and looking back for obscene things in the depths of my life.
2024.11.20.wed.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