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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4년에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103위 성인의 시성식을 위해서 방문하였습니다. 당시는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03위 시성식과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의 공식 표어는 ‘이 땅에 빛을’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1784년 시작된 교회는 많은 박해를 겪었고, 순교자가 있었지만 신앙을 지켜왔고, 103위 성인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신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103위 시성식’입니다. 교황님과 사제단이 제대로 입장하는 동안 통로에서 안내를 맡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황님의 신학교 방문이었습니다. 저의 자리는 통로 쪽에 있었고, 교황님께서 제대로 입당하실 때 제 옆을 지나가셨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았던 제가 신학교를 잘 마치고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 빛이 되신 103위 성인의 전구하심이라 생각합니다.
5년 뒤인 1989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제 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세계 성체 대회(International Eucharistic Congress)는 전 세계의 성직자, 평신도가 성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높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회입니다. 103위 시성식이 한국교회를 알리는 자리였다면 성체대회는 한국교회의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성체대회의 공식 표어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습니다. 저는 당시 군대를 다녀왔고 복학하였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성체대회 폐막미사’입니다. 저는 제단에 올라가서 미사에 참례하였고, 성체 분배를 하였습니다. 5년 전인 시성식 때는 통로 안내를 맡았지만 성체대회에서는 성체분배를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괌에서 온 참가자들의 안내였습니다. 덕분에 성체대회의 많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벗이셨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25년 뒤인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와 124위 시복식을 위해서 방문하였습니다. 시복식의 공식 표어는 ‘일어나 비추어라.’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월호 참사’로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세월호 희생자의 손을 잡아 주셨고, 희생자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셨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교황님의 말씀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교황방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교구청에 있던 저는 감사하게도 방준위에서 ‘영성신심분과’를 맡았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문 제작’입니다. 교황방한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문을 제작하였고, 교회의 인준을 받아서 나누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순교자들의 영성을 기억하는 자료집 발간입니다. 함께 하였던 분과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통로 안내자, 성체 분배자에서 분과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일어나 비추는 것이 제게는 영광이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별을 따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온 세 명의 박사이야기입니다. 멜키올과 발다살 그리고 가스발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인도해준 ‘별’을 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 명예, 권력, 부와 건강이라는 별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별은 참된 진리의 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남을 속이게 되고, 분쟁과 갈등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별은 무엇이어야 할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드릴 선물은 무엇이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첫 번째 선물은 첫 예물은 희생이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였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2021년도에는 ‘말씀’의 별을 따라 ‘희생, 인내, 감사’의 선물을 준비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신부)
2020년 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생존하려는(to be) 사람에겐 당신을 감추시고
살려는(to live) 사람에겐 당신을 드러내신다>
복음: 마태오 2,1-12
오늘은 하느님께서 누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지를 묵상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만큼 귀중한 일은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제 주님께서 나의 ‘삶의 의미’가 됩니다.
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까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으면 그냥 생존하기 때문입니다.
생존하는 사람의 특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혹은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나도 죽고 이웃도 죽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어릴 적 길을 잃어 남의 집의 식모로 키워졌습니다. 그 집은 어머니를 학교도 보내지 않고 일만 죽도록 시켰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생존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성당엔 보내주었지만,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하도 모질게 당신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약을 타서 죽이고 당신도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은 나병환자촌으로 가시며 이런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얼굴과 손발이 문드러진 저 나병 환자들을 보아라. 저런 사람들도 사는데 넌 무엇이 모자라 죽으려고 하느냐?”
어머니는 그 사건 이후로 삶의 의미를 찾으셨습니다. 사람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창조해주신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때문에 살게 되셨습니다.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생존합니다. 생존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이 세속-육신-마귀의 욕구만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존이 목적이 되는 이유는 ‘창조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은 태어나면 생존하려 합니다. 그러나 부모를 만나면 살아갑니다. 그들은 ‘내가 왜 생존하는가?’를 묻습니다. 부모를 보며 ‘아, 부모가 낳아주었으니 사는 거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를 위해’ 생존합니다. 나를 창조해 준 부모를 위해 살 때 동물적 생존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 부모가 더는 ‘사는 이유’를 주지 못합니다. 부모가 진짜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냥 살아가면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존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처럼 창조자를 만난다면 삶의 의미를 알아 그분 때문에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래서 살기 위해 창조자를 찾는 일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하지만 대부분은 찾지 않습니다. 그저 생존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가 그런 사람입니다. 반면 동방박사들은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자를 찾았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만나 참으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이영표 선수의 간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을 마치고 굉장히 피곤한 상태에서 꿀맛과 같은 2주간의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강원도 어느 곳에서 청년들을 위한 강연이 들어왔습니다. 그가 관심 있어 하는 북한 이탈자 청년들도 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며칠을 생각하다 도저히 피곤해서 갈 수가 없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잘 아는 목사님의 사모가 우연히 자신을 방문했고 또 우연히 북한선교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여 다시 강연하겠다고 연락했습니다.
강연 내용은 그리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패해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 성공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맨 앞의 한 청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마지막 질문을 그 청년에게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왜 저희 탈북자 청년들을 좋아하세요?”
이영표 선수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 그 청년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그때 자신이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북한을 나와 남한에 왔는데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를 때 하느님을 안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월드컵을 보며 이영표 선수를 한 번 만난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청년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청년이 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이 의미는 자신을 창조하신 분을 진짜로 만날 때 찾게 됩니다.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게 될 때 진짜 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생존의 삶을 넘어서고 싶어 해야! 합니다. 참삶의 의미를 위해 생존의 도구들을 포기하는 모습이 바로 ‘봉헌’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이 가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지니고 강연에 왔던 것이고 하느님은 그런 동방박사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면 더는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하며 생존하게 만드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 때 부모가 삶의 의미가 되어 그렇게 행복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하느님을 만나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표징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희망이 되는지, 아니면 고문이 되는지가 우리가 헤로데의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려는 사람인지 동방박사인지를 결정합니다. 동방박사들이 하느님을 찾는다는 증거로 준비해 온 선물이 십일조와 같습니다. 황금은 세속(돈)을, 몰약은 육신(쾌락)을, 유향은 마귀(교만)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세속-육신-마귀를 선택하여 주님께 바치기를 거부한 ‘선악과’와 같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결국은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를 판별합니다.
청년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연습을 시킨다면 청년들은 자신들의 창조자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 투자하는 만큼 주님은 당신을 만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사는 동물과 같은 존재가 아닌 하느님의 자녀로 힘차게 살아가게 됩니다. (전삼용신부)
https://youtu.be/5Hap9_z2Xp8
유튜브 묵상 동영상
2021년 01월 03일 일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대영광송신경교중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에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는 곳에서는 1월 2일부터 8일 사이에 오는 주일에 대축일을 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이라고도 한다.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간 것을 기념하는 날로, 이를 통하여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해마다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립시다.
입당송
말라 3,1; 1역대 29,12 참조
보라, 만군의 주님이 오신다. 그분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가 있다.
본기도
하느님,
오늘, 별의 인도로 성자를 이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니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저희도 자비로이 이끄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빛이 왔다고 하면서, 민족들이 그 빛을 향하여 오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고 한다(제2독서).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2,2 참조
◎ 알렐루야.
○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 알렐루야.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모든 이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음을 널리 알리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욕심과 고집으로 다투는 세상 사람들을 굽어보시어, 서로를 이해하며 감싸 주고 도와줌으로써,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가난한 이들에게 몸소 보호자가 되시어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저희가 주님께 받은 것들을 그들과 나누며 함께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를 살펴 주시어,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을 언제나 기뻐하는 저희가 냉담 교우들에게 다가가 그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이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니라
그 예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봉헌하고 받아 모시오니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2,2 참조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영성체 후 묵상
▦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먼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만민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 교회도 이 땅에서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언제나 어디서나 저희를 천상 빛으로 이끄시니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의 신비를 올바로 깨닫고
성자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로 부를 만큼 중요한 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는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듯이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십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연약한 아기 예수님께서, 동방 박사들로 표현된 이방 민족들에게 별의 인도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며, 구세주의 탄생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빛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며, 세상을 구원하는 빛입니다. 이 빛을 보고 도착한 동방 박사들에게 연약한 인류의 구세주께서는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듯이 우리에게도 당신을 드러내시어 ‘신앙의 여정’이라는 먼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도록 초대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 인류의 구세주께 경배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빛을 따라 삶의 희망을 잃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내며 지혜롭게 우리의 믿음을 키워 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빛으로 우리 인간을 이끌어 주시고 온갖 위험에서 건져 주시며, 끝내 당신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신앙의 빛을 따라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강생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고, 들어 높여진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겸손하고 가난하신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신앙의 빛 안에서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걸으며, 그분께 의지하는 신앙인은 늘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