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제철소 건립을 위한 "전초 기지 롬멜 하우스" 를 나서는 박정희(제일 앞 우측)와 측근들. 당시 박태준은 포항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사원 주택단지까지 지어 놓았다. 여기서 박정희는 박태준 앞에서 "이거 남의 집 다 헐어 놓고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건가" 라는 푸념을 던질 정도로 상황은 암담했다.
특히 지난 1969년 “한국의 종합 제철소 건립은 타당성이 없다”는 세계은행(IRBD)의 보고서 내용을 뒤짚은 장본인이 바로 박 명예회장이다.
이후 IBRD J 자폐 박사는 박 명예회장에 대해 “우리가 한국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면, 박태준이라는 변수를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1970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 1기 착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김학렬 부총리가 파일항타 버튼을 누르고 있다.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포항제철 건립식 당시 박정희와 박태준.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강력한 지원을 해 주었다. 포항 제철은 초기부터 정치계로부터 온갖 인사 청탁과 납품 로비에 시달렸는데 이런 애로 사항을 접한 박정희는 직접 "종이 마패" 를 만들어 박태준의 사업에 일체의 정치 사회적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권 위임 약조를 해 주었다.
박태준은 오직 제철소 건설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제철보국(製鐵報國·제철로써 나라에 보답한다)', '우향우 정신'(포철을 성공하게 하지 못하면 오른편 영일만에 모두 빠져 죽자는 각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에 매진했고, 기둥 하나가 잘못 세워질 때마다 가차없이 폭파시키는 그의 완벽주의 속에 제철소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