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외진 화장실과 옥상 학교폭력 공간으로 악용돼 깨끗하고 열린공간 만들어야
초등학교 입학 전 6년과 군대에 있던 3년을 제외하고 평생 학교와 인연을 맺고 살았다. 학교와 함께 하다 보니 그동안 학교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강조점, 교육과정, 관련 법규, 학교 구성원들의 역학관계 등이 변했다. 때로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파격적으로.
이상하게도 그동안 학교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학교 공간이다. 학교 공간은 교실, 도서관, 체육관과 같은 건축물, 화단이나 식목과 같은 자연환경, 그리고 교문, 게시판, 각종 상징탑과 같은 인공물을 포함한다. 정부의 교육예산이 늘어나면서 학교 공간에도 변화가 있긴 했다. 표준교실 정책이 사라지고 다양한 크기의 교실이 등장했다. 냉난방이 보편화됐고, 교내 많은 곳이 현대화됐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학교 공간에 대한 교육적 의미 부여가 없다는 사실, 그래서 교실, 복도, 도서실, 운동장과 같은 공간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공간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결과 학교 공간은 후진적인 재료와 엉성한 마무리로 이 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학교는 더 이상 지역사회의 문화적 중심 공간이 아니다.
이러한 결과가 업무를 담당하는 몇몇 사람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관련 법규, 관행, 이해관계, 학교 관계자들의 무관심이 종합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의 원인을 예산의 부족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학교 예산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것은 우리의 관심과 상상력이다.
최근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의 등장은 인간의 사고과정이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교문, 교무실, 교실, 행정실, 강당, 체육관, 도서실, 식당, 매점, 정원, 화장실, 옥상, 계단, 복도, 운동장 등 학교의 공간이 학생들의 학습과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각각의 공간을 구성하는 데 디자인, 색상, 재료, 환풍, 소음, 기자재 등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이 왜 일어날까? 나는 상당 부분 학교 공간 때문이라고 믿는다. “너 화장실로 와!”, “ 쉬는 시간에 옥상에서 보자!”라는 말은 화장실과 옥상이 싸움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외지고, 적당히 지저분하고, 그래서 적당히 나쁜 마음을 가져도 되는 공간이다. 화장실과 옥상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밝은 조명에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고 항상 깨끗한 화장실, 바닥은 잔디와 다양한 꽃과 나무로 가꿔지고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파라솔 벤치가 설치돼 있는 옥상! 나는 이런 곳에서 친구를 괴롭힐 대한민국 학생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교실, 복도, 계단 등 학교의 모든 공간을 학생들이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작업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과 상상력이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리가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