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친일·독재 잔재 ‘동심의 낙원’

[★혁명가☆]

친일·독재 잔재 ‘동심의 낙원’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놀 때마다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기며 그 뜻에 보답하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서울 광진구 능동 소재 어린이대공원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곧 나타나는 안내문 글귀의 일부다. 이밖에도 어린이대공원 정문 현판과 공원 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친일 소설가 김동인의 문학비와 흉상이 버젓이 자리한다.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 분수대 왼쪽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고 새겨진 박전대통령 휘호석이 서 있다. 휘호석을 받치고 있는 돌다리의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1970년 12월4일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곳 서울칸트리 구락부골프장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공원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대공원 건설은 이 높으신 뜻에 따라 시작되었으며 1972년 11월3일 대통령영부인 육영수 여사님께서 손수 사랑 어린 기공의 첫 삽을 드신 이래 밤낮없이 진행되어 1973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이곳 복된 땅 능동벌 푸른 들에 뜻깊은 첫날이 열리었다. 앞으로 이 어린이대공원은 그 뜻을 받들어 이 나라 어린이들의 꿈이 피어나는 낙원이 되고 산 교육의 터전이 될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는 메말랐던 동심을 다시 꽃피게 하리라.”

야외음악당 옆에는 친일문인 김동인의 흉상과 문학비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상보다 앞서서 자리잡고 있다. 김동인의 흉상은 1988년 10월2일 ‘조선일보사 동인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세운 것으로, 조소(彫塑)는 김영중, 글씨는 제자인 김동리가 쓴 것으로 돼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은 지난 3일 “어린이대공원에 유신 독재자와 친일 문인의 휘호와 동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민족문제연구소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임소장은 “친일 잔재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수탁·관리하고 있는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은 안내문 내용 등에 대해 “관리자들이 역사적인 시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거나, 존치 여부를 거론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공단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관계자는 “박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며 “어린이대공원은 공단에서 위탁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단사업소장의 의견을 거친 뒤에 의견을 물으라”고 말했다.

색동회 배동익 회장은 “어린이대공원은 어린이들의 꿈과 놀이의 동산이며 그곳에 동상이 필요하다면 어린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의 동상이 서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