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6.토. 김신옥목사님편. 유낙준주교.
“여러분의 사랑은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2고린8:8).”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게 해 주셔요.
어제 오전에 김신옥목사(97세, 실제로는 1923년생, 호적은 1924년생)님을 뵙고 어르신의 건강하심을 찬찬히 보며 점심을 나눴다. 평양의 감리교서 세운 정진여자보통학교와 감리교서 세운 부유한 여학생들이 다닌 정의여학교(서울의 이화여고와 같은 평양의 여학교가 정의여학교이다. 가난한 여학생들이 다닌 숭의여학교는 장로교가 평양에 세웠고 서울로 옮김)를 졸업하고 평양의 대봉초등학교서 교편을 잡았다가 서울로 와서 경성사범학교서 공부를 하고 김신옥의 외삼촌인 조만식선생님이 세운 민호단에서 일하시다가 백범 김구선생님이 아들처럼 여기시던 평북 남곤면의 안기석과 혼인하였다. 철교를 건너다 기차가 와서 우산을 서로 잡고 뛰었던 연애시절과 이후 미국서 신학공부를 할 때 1965년 5월 20일자의 사진뒤에 적힌 글 ’입주한 우리의 복음처입니다. 재미중이신 당신을 기다립니다‘고 안기석남편의 기다림이 느껴진다. 동지적 관계로 사신 안기석장로와 함께 5개 중고등학교(대전대성 남여중고, 세종대성고)와 건신대학원대학교와 물질시대에 물질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람중심이 되고 그 사람이 하느님을 섬기는 관계로 살고자 예뜰순복음교회를 세웠다. 김신옥의 친정어머니가 여장부이셨고, 김신옥의 며느리 노팅엄에서 공부하신 전용란총장으로 여장부 3대가 이어오고 있다.
1996년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을 세우고서 1997년에 복음교회에서 하는 드래스디아스 유스훈련에 가출한 여학생 여섯 명을 보내 4박 5일간 영적치유를 받도록 받아주신 분이 김신옥목사님이셨다. 제대로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조건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부서진 여학생들이 집을 나와 거처가 없을 때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이 그들의 거처가 되고 집이 되었다. 집을 나와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에 머무는 여학생들에게 말씀과 기도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분이 바로 김신옥목사님이셨다. 김신옥목사님은 교단을 가리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사역을 도모하신 분이셨다. 말씀으로 교단을 뛰어넘는 길이 당연한 하느님의 사람들의 길임을 늘 강조하셨다. 그 당시에 김신옥목사님과 별세하신 영혼들을 위하고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목회를 교회가 해서 대전지역의 새로운 선교운동을 펼치자고 논의와 기도를 하였다.
김신옥목사님께서 후손들에게 가장 바라시는 말씀을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라는 제 질문을 받으시고 답의 말씀을 주셨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는 깨우침이 20대 초반에 깨우쳤다. 한 인생을 살고 이제는 죽음에 가까웠다. 인생 앞에 두 길이 있는데, 첫째의 길은 아직 가보지 않은 천국을 가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천국 가는 길이 금으로 다져진 길이 아니다. 지옥 가는 길과 천국 가는 길은 똑 같다. 두 길을 보고 회개의 눈물이 흘렀다. 그때 매우 아름다운 여성(수녀)같은 분이 제게 ‘신옥아! 그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어?’라는 질문을 하길래 ‘제게도 그러한 옷을 입혀 주셔요.’라고 답을 했다. 그러면서 산에 올라가서 하느님을 뵈었다. 하느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을 주셨다. ‘네 부모는 나와 대적하고 싸움을 하였다. 나를 믿지 않으면 나를 대적하는 것이고, 나를 전하지 않으면 나와 싸움하는 사람이다.' 그 말씀을 제게 주신 후 작은 등잔을 주셨다. 20대 초에 장질부사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때의 하느님이 제게 주신 환상이었다.”
계속해서 김신옥목사님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말씀이 중심이 되고 기도가 중심이 되는 영적모임을 잃어버렸다. 영적상태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었지 모르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면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된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정체성을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 안의 어둠을 사라지게 하고 몸과 삶의 성전이 되게 하여 회복하는 모임을 세워야 한다. 자신 안의 어두움을 보고 형용사로 된 어두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발표하는 삶의 성전회복운동으로 영성노트를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은 스터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받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교단문제로 보이지만 실제적인 것은 교단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녔는가의 문제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잘 하면 제대로 된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면 하느님이 먹여주시고 재워주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셋째아들을 먼저 하느님께 보내고서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이제 주님 품 안에 있음을 알고 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만 부르지 말고 하느님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로부터 내가 왔다는 생명의 근원임을 직시하는 아버지를 부르는 자세이어야 한다. 또한 주의기도인 마지막 기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라고 해야 한다. “기도하였습니다”라는 과거형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현재형으로 기도를 마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