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팽이 인내심
학창시절 좋아하던 학문의 길을 관둘까 고민할 정도로 좌절감을 맛본적이 있다. 돋보기로 봐야할 정도로 작은 달팽이 때문이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충남 태안 안만도 패총을발굴했을 때의 일이다 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먹고 보린 조개껍데기가 쌓인 무더기다. 더 이상 못 쓰게 된 생활 도구들도 같이 버려져서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에게는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패총에는 이런 문화적 소산 외에도 그당시의 기후나 환경에 맞게 살았던 동물들의 흔적도 남아있다. 대표적 것이 육지 달팽이다 달팽이는 프랑스 요리에 쓰는 큼직한 것에서 깨알만 한 것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이 중 길이 1-2MM의 작은 달팽이는 환경에 민감해서 계절이나 기후의 차이에 따라서 서식하는 종류가 다르다. 이 달팽이를 유적지의 흙에서 분리 하고 종류별로 통계를 내면 당시의 생활환경을 알아 낸 수 있다.
발굴 조사에 참여한 우리는 이런 연구 목적으로 달팽이 분류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추운 겨울 온기 없는 연구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깨알만한 달팽이를 핀셋으로 골라내는 작업을 장시간 해다 보니 눈을 따가워 눈물을 흐르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학자로 대성할 그릇이 아니었는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핑계를 대고 도망 가버렸다. 하지만 동기생들은 그 모진 작업을 방학 내내 근기있게 해나갔다.
몇 개월이 흐른 뒤 방굴 조사를 지휘했던 선배들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발굴한 안면도 고남리 패총이 특정계절에만 사용된 계절성 주거 유적이라는 결론을 학계에 발표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이해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