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다 앞서, 치우씨가 비록 그렇게 날짐승과 들짐승 및 벌레와 물고기 등의 무리를 몰아내긴 하였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흙굴에서 사는 까닭에 아래로부터의 습한 기운이 사람에게 해를 끼쳐 질병을 일으켰다. 게다가 짐승들을 한차례 휘몰아 내쫓으니, 점차 스스로 물러나 피하고 숨어 버린 까닭에 잡아먹기에 불편하였다. 신시씨가 이에 치우씨로 하여금 사람이 거처할 만한 것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씨에게는 소·말·개·돼지·수리·범 등의 짐승을 사로잡아 데려와서 가두어 기르게 하였으며, 또 주인씨(朱因氏)를 신임하여 그에게 남녀간에 장가들고 시집가는 법을 정하게 하였다. 무릇 지금의 사람들이 힘센 장사를 두고 '지위'라 함은 치우씨의 이름이 잘못 전하여 진 것이며, 밭갈고 齪瑩?거??나무를 하고 짐승을 기르는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고시례' 하며 축원하는 것은 고시씨를 일컫는 것이며, 혼인에서 중매를 서는 것을 '주인 선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주인씨의 이름에서 남겨진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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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 (지위, 즉 지위리환인), 고시 (즉 고시리환인), 주인 (즉 4대 주우양환인 ) 는 모두 동시대인으로 되어 있군요.
모두 신시씨가 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신시씨는 즉 초대환웅이고, 규원사화의 환인은 하늘의 신, 즉 인간이 아닌 존재이므로,
사실상 '신시씨' 와 초대 환인 (즉 인간) 안파견 을 동일시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는 아예 환인, 환웅 존재조차...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2년 07월 31일 | 조회 : 82 | 추천 : 0 ][ 이메일 : sqlk2025@ionet.netxyz ]
인정 안 하고 있는 건 모르시지 않겠죠.
>고시가 고시리 환인
지위의 천이 지위리환인
주인이 주우양환인
>이것은 완전히 단어 짜맞추기에 지나지 않습니다.그럴뿐더러 그런 단어 짜맞추기가 역사에 통하는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므로 그런 행동 아무리 해봐야 믿어주지 않습니다.
누가요?
그러면 이 홈의 지명찾기도 다 헛수고고 헛고생이겠군요.
사료가 거의 멸실되어 실낱같은 것이라도 찾아서 이어 가려고 하는 것이 이 홈의 주 목적입니다.
이름맞추기가 중요하지 않다면, 왕조가 바뀔 때마다 중국에서는 왜 잘 있는 땅 이름들을 싹 바꿔 버렸을까요? 한번도 아니고 말입니다.
>지위의 천이 치우천왕이라고 해서 지위리 환인까지 치우천왕이라고 나온 역사책 하나 없을 뿐더러 그것 역시 님이 짜맞추신것에 지나지 않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
는것입니다.
우리가 지위리환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 이름의 뜻조차 모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장자에는 7환인 중 여럿의 이름도 보이고 그 순서도 바뀌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25년 전에 누가 환인의 이름을 하나라도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원동중의 글을 그대로 믿더라도, 7대 3301년이면 한 환인이 평균 480년 정도를 다스렸다고 봐야 하는데, 갓난아기 때부터 환인이 된 것은 아닌 만큼 500년을 훨씬 넘게 살았다고 봐야 하는데,
아무리 도력이 높아도 그게 가능할까요?
>모든 역사서가 님의 짜맞추기 처럼 된다는 착각에 빠지지 마십쇼.
아직 역사 학계에서 치우를 지위리환인으로 한다는 말이 없고,고시를 고시리환인으로 한다는 말이 없고,주인을 주우양환인으로 한다는 말 역시 없습니다.
역사 학계에서 아예 논의가 없지요.
그리고 민족사학계도, 솔직히 뭉치지 못하고 다들 의견이 분분합니다. 고대에 대륙을 다 차지했다, 아니다 만주와 산동 일부만 차지했다, 이렇게 설이 많지만, 정설은 없습니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여러 환인들의 제 위치가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입니다.
>그저 그 환인들의 후손일 뿐이기에 그렇게 적어넣은 것일수 있습니다.
전에 제가 말했듯이 배달환웅이 치우천왕의 조상이었으면 조상이었지 그 아들이나 후손은 아니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80세 넘어 아들을 낳았다 이건 아직 맞다고 나온것도 없고 틀렸다고 나온것도 없으니 이말은 저희가 지금 따질 필요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글에서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셨었는데, 아뭏든 좋습니다.
>후에 생각해볼 문제고,
어쨌든 치우천왕이 지위리환인의 직계후손이라고 나온 것은 봤는데 치우자체가 지위리환인이라니 그런 말로 다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쇼.
환인 7대의 이름이 다 나온 유일한 사서는 "조대기" 를 인용했다는 삼성기 하 뿐입니다.
이중재씨는 다른 설을 가지고 있고, 그밖에 제가 읽은 설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직 정설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제 설은, 최소한 교차 점검이 가능합니다.
>님의 의견이라고 다 맞는다는 뜻이 아니란 뜻입니다.
아직까지 치우가 지위리환인 그 자체라고 전해진 사실또한 없습니다.
>치우를 지위라고 잘못 부른게 아니라 지위리환인중 '지'자를 따서 지위리환인의 후손이 실위족이고,그 우두머리가 치우란 표현을 했을 뿐입니다.무슨 지위라서 지위리환인 그렇게 되지 않는단 뜻입니다.
치우의 본명은, 자오지라는 것은 아실 터이고,
치우라는 이름은 부족의 명칭일 수도 있으나, 자오지 본인에게 붙었던 별명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부족명이면 후세까지 "치우" "치우"하지는 않을 터이니까요. 사람들은 부족명은 기억 못해도 영웅의 이름은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님의 의견이 다 맞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다른 사서에 후손이라는 말은 있어도 동일인물이다라는 말은 하나 없습니다.
다른 사서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태백일사는 삼성기 하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고, 그 외의 어느 책에서도 환인들의 이름이 질서정연하게 나온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의 원전인 "조대기" 라는 책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이상,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언젠가 만약 나온다면 그 때는 알게 되겠지요.
동양 고대사를 연구하신 분들 중 서양 고대사를 아시는 분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서양 고대사를 보면 이집트나 그 외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기원전 1200년부터 1000년 사이에 200여년간이 텅 비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새로운 학설로, 이 현상은 텅 빈 게 아니라 역사가들이 200년을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이 나왔습니다.
아직 보수적인 고대사 학계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진 않고 있으나, 조금씩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실마리는, 여러 이집트 신관들의 족보와, 앗시리아 점토판들에 기록된 여러 부족 왕들의 이름들을 맞추어 본 것이었습니다.
더우기 이들의 이름들이, 별명이나 현지 발음대로 불리는 경우가 많아, 맞추기가 어려웠지만,
고고학적 증거와 함께 증명을 하였습니다.
정통 고대사 학자들 중 일부도, 이집트와 그 외 고대 여러 나라들의 역사가 일부는 부풀려진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합니다.
시베리아가 과거에는 동토凍土가 아니고 온대 지역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위구르 대제국이 환국인지 저도 확신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두고 볼 생각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발굴될지 모르니...뒤죽박죽이 된 역사를 바로잡도록 정부가 고고학자들을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초고대에 핵전쟁이 있었다면 우리 인류의 진보성에 대해 회의감이 들수도 있을 겁니다. 문명의 도구가 변했을 뿐..인간은 전혀 변한 게 없으니..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반복인가???..핵전쟁으로 또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안 되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현대 문명을 물려주고 싶다면 핵전쟁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다만 7000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역사학자들의 반응이 매우 회의적입니다. 어쩌면 초고대시절부터의 인류가 경험한 기억들이 신화나 전승의 체계로 후대에 전해져 역사로써 기록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로서의 실증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첫댓글 저는 상고시대에 초고대문명이 있었고 핵전쟁으로 멸망되었다는 이론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이 분야 연구의 선구자인 영국의 제임스 처지워드가 아시아에 위구르 대제국이 존재했었다고 하죠..인도와 티벳 일대의 옛 사원의 상형문자로 된 자료들을 연구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시베리아가 과거에는 동토凍土가 아니고 온대 지역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위구르 대제국이 환국인지 저도 확신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두고 볼 생각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발굴될지 모르니...뒤죽박죽이 된 역사를 바로잡도록 정부가 고고학자들을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초고대에 핵전쟁이 있었다면 우리 인류의 진보성에 대해 회의감이 들수도 있을 겁니다. 문명의 도구가 변했을 뿐..인간은 전혀 변한 게 없으니..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반복인가???..핵전쟁으로 또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안 되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현대 문명을 물려주고 싶다면 핵전쟁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왈 : 3차대전이 무슨 무기로 일어날 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 전쟁은 원시시대 무기로 일어날 것이다...(정확하게는 기억 못하니 양해를..)
이집트에서 고대 방공호가 발견됬다고하던데;;; 얼핏들은거에요 ㅎㅎ
.. 뉴 인디아나존스 스토리 ㅡ_-)~ 아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기원전 3000년)에는 황화 유역에 초목이 무성했었습니다. 코뿔소 화석이 많이 발굴되는 것도 이를 증명하죠. 대략 기원전 1만250년경에 전자기적 변화가 있었고 이때 온난한 남극 대륙의 일부가 지금처럼 극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다만 7000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역사학자들의 반응이 매우 회의적입니다. 어쩌면 초고대시절부터의 인류가 경험한 기억들이 신화나 전승의 체계로 후대에 전해져 역사로써 기록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로서의 실증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그 진위를 떠나서 신화는 신화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신화의 실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죠. 다만 제 생각으로는 신화의 기초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뼈대는 사실에 기초했어도 살점이 가상이라면 역사로서의 가치는 낮을 수 밖에 없겠죠. 그렇다고 뼈대마저 부인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처럼 우리의 신화도 사람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와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