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23. 사랑,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 (롬13:8~10)
서론
바울 사도는 1장부터 11장에 걸쳐,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 죄인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었는지 눈물로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감격 앞에 가슴을 치며 울었고, 감사의 찬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12장에 이르러 바울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장 초반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의무를 말했던 바울은,
오늘 본문에 이르러 우리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단 하나의 영적 법칙을 제시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10)
오늘 이 말씀이 그저 도덕적인 권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1. 우리 모두는 사랑에 빚진 자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8절a)
바울은 우리를 '빚진 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금전적 빚은 갚아야 하고, 남에게 신세 진 것은 털어버려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 하나, 평생을 다 써도 결코 털어버릴 수 없는, 아니 영원히 갚아나가야만 하는 거룩한 빚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빚'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입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시돋친 삶을 살고 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온몸의 피를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억 만 가지의 죄의 빚으로 인해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값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다 이루었다(다 갚았다)" 선언해 주셨습니다.
과거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위트필드 목사님의 실화입니다.
한 사형수가 죽음을 앞두고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모든 죄를 다 지불하셨음을 전했습니다.
극적으로 국왕의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나오게 된 그 사람이 울면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 평생의 죄 빚을 예수님이 다 갚아주셨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제 자유가 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때 위트필드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평생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당신이 거저 받은 그 생명과 사랑을,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그 사형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억만가지 죄의 빚이 "다 이루어졌다(다 갚아졌다)" 선언되었습니다.
이 거룩한 탕감을 받은 사람은 타인을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빚진 자'가 됩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은혜받은 자의 '평생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갚을 길 없는 엄청난 용서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그 크신 사랑의 탕감을 받은 사람은,
이제 타인을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룩한 빚진 자가 됩니다.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은혜의 빚을 진 자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평생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성경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속 인물로, 왕에게 절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적은 빚을 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아 결국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은데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갚을 것이 없어 주인이 불쌍히 여겨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약 3조원 이라고(하루 일당 5만 원을 기준으로 할 때) 합니다.
사실 이 돈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곧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빚을 탕감해주셨습니다. 스스로 갚을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죄의 빚을 지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주인의 은혜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이 임금에게 들이니 그를 불러서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넘깁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십니다.
일만 달란트는 약 3조 원입니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 하루 품싹, 그래서 1만 달란트 6천만 데나리온이기에 하루 5만 원으로 계산하면 3조원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5백만 원, 일만 달란트의 60만 분지 1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가 아무런 대가 없이 탕감되었다는 은혜의 감격입니다. 바로 탕감받은 감격이 있을 때 우리 신앙의 발걸음에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해야만 탕감받는 것이 아니라 탕감받았기에 용서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에 빚진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와 같은 엄청난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이웃의 작은 잘못(백 데나리온)을 마땅히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2.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9절)
이 말씀은 사랑이 모든 율법의 목적과 내용을 가득 채워 온전히 이룬다는 뜻으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할 때 율법의 모든 조항이 자연스럽게 성취됨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단순히 벌을 피하기 위해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아끼는 마음(사랑의 동기)에서 우러나와야 비로소 그 뜻이 온전히 채워집니다.
바울은 십계명의 계명들을 나열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율법은 본래 거룩한 것이지만, 죄로 깨어진 인간에게 율법은 늘 '하지 말라'는 금지와 정죄의 칼날로 다가옵니다.
율법만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할 뿐, 우리를 죄에서 건져낼 손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의 '바람과 햇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매서운 바람을 불어댈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 꽉 움켜잡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죄와 처벌만을 가하는 '율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햇님이 따스한 햇살을 내리쬐자, 나그네는 스스로 웃으며 외투를 벗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차가운 법과 규율은 사람의 겉모습을 통제할 뿐이지만, 따뜻한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녹여 스스로 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차가운 자갈길 끝에 '십자가의 사랑'을 놓으셨습니다.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사랑은 율법이 다다르고자 했던 그 거룩한 목적지를 비로소 성취하는 하나님의 열쇠입니다.
3. 사랑은 악한 마음, 악한 말, 악한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 (10절)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사도바울의 말씀과 같이 서로에게 악한 마음, 악한 말, 악한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이렇게 악한 마음을 다 내려놓고 서로가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참된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감상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행동이며, 자기 비움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은 자신의 몸을 새하얗게 태워 다른 이의 방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완전히 비워 흰 재로 남습니다. 참된 사랑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태워 상대방의 생명과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얕고, 쉽게 변하며, 조그만 상처에도 이내 미움으로 변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나의 메마른 삶에서 이웃을 향한 참된 선함과 사랑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랑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실제 삶과 인간관계 속에서 이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의 실천은 거창한 희생보다 시선의 전환과 작은 습관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4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첫째, 관계의 주도권을 내가 먼저 잡기 (선제적 사랑)
세상의 관계는 '네가 나에게 해준 만큼 나도 해준다'는 기브 앤 테이크 법칙을 따릅니다.
반면 사랑의 빚진 자는 먼저 빚을 갚는 심정으로 다가갑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 밉니다.
둘째. '베푸는 교만' 대신 '당연한 겸손' 유지하기
이웃에게 선행이나 도움을 베푼 후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라는 보상 심리가 생기면 실망과 원망이 찾아옵니다. 영적 채무자의 자세는 이 마음을 다스려 줍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내가 너를 돕는다'는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랑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은밀하고 겸손하게 돕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호의를 알아주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겨도, 쉽게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합니다.
세째.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기
로마서 13장 10절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합니다. 대단한 사랑을 베풀기 전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적극적인 절제가 사랑의 시작입니다.
단톡방이나 일상 대화에서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비방, 험담 등에 동조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화제를 돌립니다.
네째.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향한 '시선의 전환’
도저히 사랑하기 힘든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만났을 때 내 감정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때 '영적 채무 의식'이 브레이크 역할을 해줍니다.
상대방의 모난 모습을 보며 정죄하기 전에, '나 역시 하나님 앞에 허물이 많은 죄인인데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을 내려놓으려 노력합니다.
감정적으로는 당장 좋아할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를 위해 속으로 짧게 축복 기도를 해보는 연습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 진리를 '주장'하는 곳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교회 공동체 속에서 "저 사람을 보니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겠어"라는 고백이 나올 때, 세상은 비로소 복음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미움의 대상이 있습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웃이나 가족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자격 없는 나를 위해,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다시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복음을 진짜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명확한 열매는, 바로 '사랑하는 삶' 즉 사랑의 빚진자로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사랑의 빚진 자로서 삶을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탕감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날마다 그 크신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이웃에게는 작은 허물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자비 없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메마르고 완악한 마음을 씻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성령의 사랑을 부어 주시어, 이제는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미움이 사랑으로, 우리의 정죄가 용서로 바뀌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함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기를 전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율법의 참된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날마다 사랑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