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중천에 맑은 기운 어리었다”했으니
동선에 참가한 선객들이 승산 종사의 수심결 강의를 듣고 있다.
변산 원광선원을 찾아가는 날, 시절은 1월 중순 겨울의 한가운데인데 봄 날씨처럼 볕이 따사롭다.
부안댐 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교단 초창기 선진들이 생불이신 대종사를 만나기 위해 다닌 길을 다 더듬어 볼 수는 없지만, 굽이굽이를 돌며 잘 닦여진 2차선 도로가 원광선원 입구까지 안내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마음의 주인공을 찾는 공부인들이 승산 양제승 종사로부터 『수심결』 강의를 듣고 있다.
비닐로 겨울 바람을 막은 실내는 봄날처럼 따사로워 졸음이 올듯한데, 스승님 주위를 자연스럽게 빙 둘러앉은 대중들의 눈망울은 변산구곡을 흐르는 맑은 물처럼 투명하다.
“이 가죽 주머니를 나로 아는 그 생각을 놓아 버려야해. 본래 없는 것인데, 모든 죄가 이것을 나로 잘못 아는데서 생겨나는 것이지. 참 마음은 낳고 죽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없어. 이것이 바로 공적영지지.” 승산종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슴에 쓸어 담으며 모두 숨을 죽인다.
‘대종사, 어느날 영광에서 부안 쪽을 보니 허공 중천에 맑은 기운이 어리어 있는지라, 그 후 그곳에 가보니 수도 대중이 선을 시작하였더라’고 했던가!(대종경 천도품 25장).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52명의 입선자들이 1월4일부터 11일 까지 동선을 났으니, 그 맑은 기운에 절로 푹 빠져드는 듯 하다.
변산 원광선원 임직원. 좌로부터 김원공 교무, 전임 박주성 교무, 임윤철 원장, 이순열·김만연 덕무
변산 제법성지. 대종사께서 석두암에 머무시면서 새 회상의 교강을 발표하신 곳이요, 수많은 성리 법문을 설하신 곳이다. 뿐만 아니라 교단 초창기 인연들을 만나신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석두암터에는 ‘일원대도’비 외에 별다른 표적이 없다. 누가 이곳을 원불교 4대 성지라고 믿겠는가.
이곳으로 부터 2㎞가량 떨어진 곳에 제법성지 수호를 위해 원광선원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성지수호를 위해 원기63년 10월 당시 월명암 주지 정도전 스님의 개인사찰을 인수해 원광선원을 설립했지만 교단적인 관심 부족으로 그동안 성지수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원광선원은 가끔씩 찾아오는 순례객들을 안내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단순한 면모를 갖추어 왔습니다. 이곳에 오면 대종사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성자혼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안타까웠죠." 임윤철 변산 원광선원장은 제법성지가 성지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늘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이야기 한다.
임 원장은 “제법성지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작년 겨울부터 승산 종사를 모시고 동·하선을 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번 동선이 3회째.
그는 “제법성지를 훈련도량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하고, 훈련을 통해 깨침의 소리를 얻을 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면서 “특히 대종사님께서 법성에서 곰소까지 뱃길로 온 곳을 재현해 순례코스로 개발하는 일이 큰 과제다”고 밝힌다.
원광선원 김원공 교무는 “4대 성지 중 제법성지가 가장 개발이 덜 되었다. 또 실상사 문제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다”면서 “교도들이 제법성지를 찾아와 법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고 말한다. 그는 “순례객들을 위한 개인·가족·교당별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부터 시행할 계획이다”고 덧붙인다.
구 정산종사 성탑.
원광선원은 성지수호 사업과 관련, 성지장엄 공사의 일환으로 올해 석두암터로 올라가는 길을 확장하고, 조경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협의중에 있다. 또한 한때 문제가 됐던 실상사와의 부지문제도 “성지수호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정을 받았다”고 임 원장은 밝힌다.
원광선원에 들어서면 눈에 번쩍 띠는 것이 하나 있다. 원광선원 건물 뒤편 산 아래에 조성된, 옛날 정산종사의 성해를 모신 탑이다. 대종사 탄생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정산종사 성탑을 새로 조성하면서 철거돼 한 때 방치된 것을 원기81년 6월에 원광선원으로 옮겨 재건축한 추모탑이다.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정산종사성탑’이라는 비명이 선명하게 새겨있다.
현재 원광선원에는 임윤철 원장을 비롯 김원공 교무, 이순열·김만연 덕무가 성지수호와 순례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며 근무하고 있다. 특히 이순열 덕무는 원광선원에서만 15년을 근무해 이곳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광선원은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해 원기82년 7월에 원광선원 구 건물을 철거하고, 연건평 70평의 법당을 신축했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이웃에 있는 개인집을 매입해 순례객들의 숙소로 쓰고 있다. 이웃집은 아직도 옛날 촌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향집의 정취를 더하고 있어 따사롭다. 문의 (063) 582-8306.
어둠이 내리기 전 원광선원을 돌아나오는데 토담집에서 군불을 지피고 있는 공부인을 만났다. 그는 매운 연기를 맡으면서도 “이리와서 불 좀 쬐고 가세요. 연기 냄새가 좋아요”하고 웃는다.
옛날 우리의 고향 모습이지만 지금은 도시화에 젖어 절로 잃어버린 이야기들. 어쩌면 이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대종사님과 9인 선진님이 살았던 그 시대로 가까워져 가는지 모른다.
눈 내리는 날이나 비오는 날 이곳을 찾아 하루밤 묵으면서 주위의 고요를 즐기며 내 마음의 주인공을 찾아봄은 어떨까? 그러면 대종사님 밝혀주신 그 말씀들이 더욱 마음에 다가설 것이다.
노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