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되 가정·사회 속에서 유기체 형성해야
#2. 김모(40)씨는 매너 좋은 대학 전임강사다. 그는 독신주의자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적은 강사 봉급으로 혼자 살기도 벅차다. 그는 이른 새벽 집을 나서고 늦은 밤 귀가한다. 가족과 마주치는 시간은 거의 없다. 하루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고, 식사는 학교에서 해결한다. 주말에는 자전거 동호회 멤버들과 함께 보낸다. 부모와 한 지붕에서 살고 있지만 독신처럼 생활한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3. 박모(32)씨는 인정받는 미모의 사무관이다. 그녀는 독신이 되었다. 결혼 생활 3년 만에 파경을 맞은 것이다. 다행히 아이가 없어 쉽게 헤어졌다. 결혼은 해도 안 해도 후회한다. 그녀는 결혼 이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빵과 우유, 각종 영양제를 한 입에 털어먹고 회사로 향한다. 저녁에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술 한 잔을 하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주말에는 중단한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싱글족 5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가 1990년대 9%에서 2014년 26%, 20년 후 35%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네오(Neo) 싱글족은 신세대 독신자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신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파라(Para) 싱글족은 기생하는 독신자다. 독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 집에 살면서 자기만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돌싱족은 돌아온 싱글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다시 독신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여기에 기러기 아빠, 홀로 된 노인, 원룸 고시생도 싱글족에 동참한다.
싱글족 500만 시대 눈앞
싱글족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줄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공감대가 늘고 있다. ②경제적인 이유다. 취업과 내 집 마련의 어려움, 힘든 육아환경으로 마지못해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③이혼의 증가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혼인신고가 32만 건이고 이혼 신고가 11만 건이다. 셋 중 하나가 헤어진다. 돌아온 싱글과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혼자 사는 즐거움이 있다. 자유롭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만큼 한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화려하다.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자기계발에 맘껏 투자한다. “인생은 처음이자 한 번이자 마지막 가는 길이다.” 혼자 사는 슬픔이 있다.
불편하다. 의식주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 몸이 아플 때는 특히 슬프다. 고독하다. 느닷없이 외로움이 몰려온다. 가끔 우울과 공허감에 빠져든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야 한다.”
인간은 소통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든 소통한다. 말이 아니라도 눈짓이나 몸짓, 미소나 표정으로 소통한다. 인간은 유기체다. 유기체는 열린 체계다.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를 거친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개인심리학은 사회심리학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가 있어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가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이다. 공동 성장, 공동 성숙, 공동 창조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존재론적 질문이다. 어느 날 한 물고기가 용왕을 찾아가 물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갑니까?” 용왕이 대답했다. “물에서 와서 물로 돌아간다.” 우리는 보통 남이 하니까,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퍼뜩 눈을 뜨게 된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불교에 ‘이뭐꼬’라는 화두가 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의 줄인 말이다. ‘이뭐꼬’에 집중하면 홀연히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싱글족을 위한 탁월한 조언은 무엇일까? 첫째, 자긍심(Pride)이다. 싱글족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긍정적인 시각이 대세다. 스스로를 긍정하자. 자긍심은 확고한 정체성에서 온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매일 이렇게 외쳐보자. “나는 내가 좋다.” 자긍심은 유쾌한 낙천성에서 온다. 어떤 일을 당해도 배울 점이 있다. 매일 이렇게 읊조리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자긍심은 무한한 책임감에서 온다. 책임지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매일 이렇게 외쳐보자. “모든 게 내 책임이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싱글족의 최고 고수는 고깃집에서 혼자 저녁 먹는 사람이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둘째, 몰입(Flow)이다. 싱글족은 누구보다 시간이 많다. 시간관리가 중요하다. 살아 있음에 흠뻑 빠져들자. 몰입할 때 시간 가는 것을 잊고, 어디에 있는지도 잊는다. 몰입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큰 일을 해 냈는가?” 그는 대답했다. “평생 한 가지에 집중했다.” 몰입은 자발적으로 사는 것이다. 재미있고, 의미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투신하자. 몰입은 무아(無我)의 경지다. 나조차도 잊는 최고로 행복한 상태다. 지금-여기(Here & Now)에 머무는 것이다. 도덕경에 거피취차(去彼取此)란 말이 있다. ‘저기를 버리고 여기를 취하라.’
‘저기를 버리고 여기를 취하라’
셋째, 교류(Exchange)다. 싱글족은 혼자에 익숙하다. 혼자 살다보면 함께 사는 세상을 등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에겐 교류가 필수적이다. 교류가 없는 인생은 죽은 나무토막과 같다. 관계를 위한 시간을 기획하자. 만나는 가운데 호기심이 생기고, 대화하는 가운데 아이디어가 샘솟고, 돕는 가운데 에너지가 넘친다.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 머리로 소통하여 지혜를 얻고, 가슴으로 소통하여 용기를 얻고, 배로 소통하여 의지를 얻는다.
싱글족의 진정한 고수는 누구일까? 혼자 사는 듯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혼자 사는 듯이’란 원하는 대로 하는 자유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이란 두 톱니바퀴가 이가 맞아 하나의 체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속에서 유기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강에서 배와 배가 부딪히게 되면 시비가 붙게 마련이다. 그런데 상대가 빈 배였다면 아무런 싸움도 안 벌어진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빈 배로 지나가라.”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