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서관 가려고 도시락까지 다 쌌는데
나갈려는 찰나, 마침 중곡동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바쁘냐고 물어보셔서(우리집에 오시고 싶어하는 것 같아)
괜찮다고, 프리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말씀드렸더니,
성당 지역반 모임 갔다 오후에 오시겠단다.
.....
중곡동 고모..
아버지의 고모의 딸이니까
아버지 사촌동생이고,
나한테는 고모할머니의 딸..
암튼 고모는 고모다.
같은 서울 살면서도 찾아뵙지도 않고
연락도 잘 안 드렸다. 내가 죄송해하자,
고모는, 살다보면 다 그러고 바쁜데 오히려
내가 아버지 첫제사도 놓치고... 그러신다.
고모는 아버지가 아주 이뻐하던 사촌동생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마랑 만날 때도 곧잘 국민학생이던 고모를
데리고 나갔다고...(그땐 또 흔히들 그러기도 했겠지만.)
엄마도 그랬다. 인형 같았다고. 이쁘고, 그리고 참 착하고..
또 ‘고모는 천상 여자’라고도 했다, 조신하니.
그런 고모도 요즘엔(몇년 전부턴.. 사실 어찌 몇년 전만이겠는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산 생(내가 없었던 삶)이 좀 후회가 되시는가 보다..
꼬장꼬장 샌님 같은 고모부는 퇴직한 요즘도, 등산을 가더라도
밥 세끼는 집에서 꼭 드셔야 된다니... 고모가 조금 집을 비울라치면
당장 찾고..(환갑 나이에 아직도 고모가 그래야 한다니.)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은 손주들 키우느라 또 내 시간은 날라가고..
(친구들이 그런단다, 5년새 폭삭 늙었다고.. 고모부 퇴직에 아들
장가 보내고 손주 둘 키우고 하며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지난번 아버지 안장식 때 뵙고 우리(언니랑)도 그랬지, 고모가 많이
늙으셨다고. 참 고왔는데 하며..
이제 고모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아는데, 그게 잘 안 된단다. “오랜 세월 머리 속에 집어넣어진 것
때문에”라시며.. 고모부를 말하는 거겠지.
고모부도 알긴 알 텐데.. 그러니, 친구들 말을 빙자하여,
“당신은 천사래..” 그 천사한테 날개 좀 달아주지, 아니
꼼짝 못하게 껴안은 날개 좀 펼치게 해주지.. 하긴 그 말이 더
꼼짝 못하게 하는 수단인가?
.....
두어 시간 얘기 나누다, 내방역까지 같이 걸어내려갔다.
고모는 7호선 타고 죽 가면 되고, 난 한 정거장 가서 내린다.
내리기 전에 고모가, 테이블보 밑에 봉투 놔두고 왔다 그러신다.
아버지 제사에도 못 오고, 잊어버리고 했다며...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 추석 때 잘 쓰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뭐든 하고 싶은 거 일단 시작해 보시라고, 담에
전화 걸었을 땐 꼭 그런 얘기 들었으면 한다고...
고모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듯하여 서둘러 고개 돌린 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