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백년(百年)을 기다렸다! 이성계(李成桂)야, 주원장(朱元璋)이야?
○ 아래의 부【賦 : 감상(感想)을 느낀 그대로 적은 한시(漢詩)의 한 종류】를 보면,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논리(論理)대로 번역(飜譯)된 것이다. 물론(勿論), 번역(飜譯)하기 위한 원 사료(史料) 자체(自體)가 왜곡(歪曲)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글을 보면서, 그 내용(內容)이 당시(當時)의 것과 특별(特別)히 다른 점을 없는가? 살펴보고 연구(硏究)하는 것이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을 찾는 시발(始發)점이 될 것이 사료(思料)된다.
○ 아래의 글을 보면서 대륙(大陸)과 반도(半島)의 “코-메-디 스타일”의 역사(歷史)이야기를 논(論)해 보고 합니다. 과연(果然) 무엇이 진실(眞實)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파악(把握)해 보십시다.
==========================================================================================
잠곡유고(潛谷遺稿) 제1권 / 부(賦) : 애강남부(哀江南賦) 갑신년(1644) 3월 <출처(出處) : 고전번역원>
대명(大明)의 태조(太祖)가 남경(南京)에 도읍하자,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건너가 조빙(朝聘)하면서, 천조(天朝)를 일러 강남(江南)이라고 하였다. 태종(太宗)이 북경으로 천도(遷都)하자, 그대로 강남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는 대개 옛날의 습관에 익숙해서이다. 지금 와서 이를 슬퍼하여 이 부를 짓는다.
《밝고 밝은 성조가 태어남에 있어서는 : 赫 聖 祖 之 首 出 / 오백 년을 기다려서 상서가 응했도다. : 期 五 百 而 應 籙 / 영부를 바치어서 상서로움 나타냄에 : 呈 靈 符 以 效 瑞 / 붉은 옷을 입은 신선 약 한 알을 주었네. : 有 朱 衣 之 投 藥 / 부모 모두 잃고서 어려움에 처해서는 : 失 怙 恃 於 遘 厲 / 덕을 숨겨 황각사에 중이 되어 숨었네. : 乃 潛 龍 於 皇 覺 / 온 천하가 혼란하여 어지러운 세상 됨에 : 屬 四 海 之 雲 擾 / 하늘 이미 오랑캐의 나쁜 덕에 싫증냈네. : 天 旣 厭 於 夷 德 /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 애처로워 : 憫 蒸 黎 之 塗 炭 / 불과 물속에서 꺼내주길 생각했네. : 思 救 焚 而 拯 溺 / 저왕의 사위 되어 그에게 의지하자 : 賴 滁 王 之 館 甥 / 산통의 점괘에서 길함이 나타났네. : 果 恊 吉 於 珓 卜 / 사방 사람 와서 붙음 그림자와 같아서 : 來 三 八 以 影 附 / 풍패의 영웅들이 모두 다 와 모이었네. : 摠 豐 沛 之 英 特 / 진우량을 죽이고 장사성을 잡으니 : 旣 戮 陳 而 擒 張 / 마침내 두 여우가 북쪽으로 달아났네. : 終 二 狐 之 走 北 / 오랑캐의 나라에서 중국으로 변하여 : 爰 用 夏 以 變 夷 / 중화의 예전 풍속 회복을 하였다네. : 復 中 華 之 舊 俗》 <이후(以後) 생략(省略)>
==========================================================================================
위의 글 중에서
●〔밝고 밝은 성조가 태어남에 있어서는 : 赫 聖 祖 之 首 出 / 오백 년을 기다려서 상서가 응했도다. : 期 五 百 而 應 籙〕하였는데 참으로 이해(理解)곤란(困難)한 이야기다.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에 대한 고사(故事)를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인데, 무려 「500년을 기다려서 상서로움이 나타났다」 는 말은, “하늘이 드디어 주원장(朱元璋)을 보냈다”는 말이 되는데,
(1) 500년 전(前)이라면, 서력 868년이 되는데, 이때는 당(唐) 왕조(王朝)가 탈 없이 존재(存在)할 테니, 대략 오백(五百)년이면, 당(唐)왕조(王朝)가 망(亡)한 것이 서력(西曆) 907년이다.
(2) 서력(西曆) 907년으로 보면,
바로 「왕건(王建)이 전촉(前蜀)을 개국(開國)한 해」 이며,
또 「요(遼)나라가 서력(西曆) 907년에 건국(建國)되었다.」고 설명(說明)하며,
반도(半島)에서는, 「태봉국(궁예:弓裔)이 서력(西曆) 901년에 건국(建國)」고 하며,
이어 「서력(西曆) 918년엔 왕건(王建)의 고려(高麗)가 개국(開國)되었다.」고 한다.
(3) 「대륙(大陸) 땅과 그 북방(北方)과 동방(東方) 땅, 그리고 반도(半島) 땅!」 여기 세 곳의 땅 넓이는 일만(一萬)리도 넘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렇게 광대(廣大)한 넓은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事件)인 즉, 망하고 일어났던 모든 시기(時期)가 907-918년 사이라는 것이 정말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까?
대륙(大陸)의 형편(形便)은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이민족(異民族)으로 둘러싸여 있는 관계(關係)로, 항상(恒常) 이민족(異民族)들이 눈을 부릅뜨고, 절호(絶好)의 기회(機會)만을 노리고 있는 형국(形局)이나, 반도(半島)는 대륙(大陸)의 상황(狀況)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대륙(大陸)의 이상기류(異常氣流)에 휘말릴 필요(必要)도, 가능성(可能性)도 낮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륙(大陸)에서 왕조(王朝)가 망(亡)하고, 다시 새로운 왕조(王朝)가 탄생(誕生)했다고 해서 반도(半島) 역시 그럴 수 있는 확률(確率) 은 매우 적다. 그러나 현(現) 역사통설(歷史通說)은, 대륙(大陸)에서 왕조(王朝)가 망(亡)하고, 또 탄생(誕生)하는 시기(時期), 반도(半島) 역시(亦是) 망(亡)하고, 새 왕조(王朝)가 탄생(誕生)한다는 것을, 우연(偶然)의 일치(一致)라고 보기에는 많은 무리(無理)가 따르며, 이것에는 조작(造作)의 가능성(可能性)이 많다는 점이다.
(4) 또 오대(五代)십국(十國)이란 무엇일까? 오대(五代)시대란 정말 존재(存在)했을까? 이들이 감히 천자(天子)나 황제(皇帝)를 참칭(僭稱)했을까? 일단 이들에 대해 알아보자.
오대(五代)시절은 겨우 54 년간이다. 【서력(西曆) 907-960】
① 후량(後梁)이 겨우 17년이요【서력(西曆) 907-923년】
② 후당(後唐)은 또 겨우 13년이요【서력(西曆) 923-936년】
③ 후진(後晉)은 또 겨우 11년이요【서력(西曆) 936-946년】
④ 후한(後漢)은 또 겨우 겨우 4년이요【서력(西曆) 947-950년】
⑤ 후주(後周)는 또 겨우 10년이다.【서력(西曆) 951-960년】
이런 자(者)들이 어떻게 황제(皇帝)를 참칭(僭稱)했다고 하며, 정통(正統)왕조(王朝)로로 군림(君臨)시킬 수 있을까? 이것은 음모(陰謀)다. 이들은 일개(一個) 한 지역(地域)의 패자(覇者)일 뿐, 어찌 감히 황제(皇帝)라고 칭했겠는가? 조선(朝鮮)의 빈자리를 이 자(者)들로 채워 넣은 것이리라.
십국(十國)은 겨우 78 년간이다. 【서력(西曆) 902-979년】
① 오(吳) : 902-937
② 전촉(前蜀) : 907-925
③ 오월(吳越) : 907-978
④ 초(楚) : 907-951
⑤ 남한(南漢) : 907-971
⑥ 민(閩) : 909-945
⑦ 남평(南平=荊南) : 924-960
⑧ 후촉(後蜀) : 孟知祥) ; 934-965
⑨ 남당(南唐 : 李璟 : 都金陵) : 937-975 / 남당후주(南唐後主 : 李煜) : 937-978
⑩ 북한(北漢) : 951-979
● 전촉(前蜀)의 왕건(王建)이 죽어, 묻힌 곳이 바로 ‘영릉’이다. 【전촉(前蜀)은 겨우 18년이란 짧은 기간(期間) 존재(存在)했던 왕조(王朝)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릉(陵)을 조성(造成)하는 데는 많은 시간(時間)과 인력(人力)이 필요한 것에 착안(着眼)해 보면, 의심(疑心)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
㉮ 전촉(前蜀)의 왕(王) “왕건(王建)”은 서력(西曆) 918년에 죽고,
㉯ 똑 같은 해인 서력(西曆) 918년, 반도(半島)에서 또 한 명의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건국(建國)시킨다. 이런 모든 일이 하늘이 시킨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까?
㉰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人物), 두 사람이 똑같은 해에, 한 사람은 대륙(大陸)의 사천(四川) 땅에서 “전촉(前蜀)”이란 나라를 건국(建國)하고 죽었는데, 또 한 사람은 반도(半島)에서 “고려(高麗)”라는 나라를 건국시켰다?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이 모두를 굴복(屈服)시키거니 병합(倂合)한 것이 조광윤(趙匡胤)의 송(宋)나라다. 당(唐) 이후 대륙(大陸)왕조의 정통(正統)을 계승(繼承)한 것이, 바로 송(宋)나라이다. 따라서 『500년을 기다렸다.』 는 말은 대륙왕조(大陸王朝)에서 사용(使用)할 수 있는 단어(單語)선택(選擇)이 결코 될 수 없다.
● 명(明)의 건국(建國)은, 공식적(公式的)인 현대(現代)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서 서력(西曆) 1,368년이요, 망(亡)한 것은 1,644 년이라고 한다. 이럴 때 주원장(朱元璋)이 500 년을 기다렸다고 한다면 조선사(朝鮮史)에서는, 정통(正統)을 당(唐)으로 보고 있으며, 그 중간(中間)의 왕조들은 정통(正統)왕조(王朝)가 아니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문제(問題)는 대륙(大陸)의 정통왕조(正統王朝)인 조광윤(趙匡胤)의 송(宋)나라가 어정쩡하게 자리 잡게 된다는 뜻이다. 조광윤(趙匡胤)의 송(宋)나라는, 북송(北宋)이 960-1127년이요, 남송(南宋)이 1127-1279년이다. 만약(萬若), 위의 글대로라면 조광윤(趙匡胤)의 송(宋)나라는 정통왕조(正統王朝)로 대접(待接)받지 못했다는 말이며, 이는 심각(深刻)한 문제(問題)로, 제후국(諸侯國)으로 전락(轉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萬若) 그렇다면 당시(當時) 송(宋)나라는, 어떤 황제국(皇帝國)에 속(屬)한, 제후국(諸侯國)의 왕(王)이었을까?
당시(當時) “고려(高麗)”이외(以外)의 왕조(王朝)는 존재(存在)하지 않았다.
➥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 서력(西曆) 1,328년 출생(出生) - 1,398년에 죽었으니, 70 세로 생(生)을 마감했고, 재위(在位)기간(期間) : 1,368년-1,398년간이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 서력(西曆) 1,328년 출생(出生) - 1,398년에 죽었으니, 70 세로 생(生)을 마감. 재위(在位)기간(期間) : 1,392-1,398년간이다.
이 두 인물(人物)을 보면, 야릇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똑같은 해에 태어나, 똑같은 해에 죽은 위의 두 인물(人物)! 이런 공교로운 일이 또 있을까?
㉮ 주원장(朱元璋)은 아들 36명과 16명의 딸을 두었으며, 서력(西曆) 1,398년 38명의 후궁(後宮)들이 순장(殉葬)되었다고 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도주(逃走)하고 이주(移住)한 가난(家難)하고 무식(無識)한 주원장(朱元璋) 출신(出身)으로 볼 때, 너무 과분(過分)한 참혹(慘酷)한 짓을 저질렀다고 본다. 일설(一說)에는, 빈농(貧農)의 자식(子息)으로 제대로 된 교육(敎育)을 전혀 받지 못한 성장(成長)배경(背景)과 주걱턱에 돼지처럼 못생긴 외모(外貌) 때문에 열등감(劣等感)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傳)하며, 정적(政敵)들을 무자비(無慈悲)하게 처형(處刑)했는데, 1,380년에 승상(丞相) ‘효유용’을 반역죄(反逆罪)로 처형(處刑)하는데, 일만(一萬)여명이 처형(處刑)되었으며, 황제(皇帝)직속(直屬)의 비밀경찰(秘密警察)인 금의위(錦衣衛)를 창설(創設)하기도 했다.
㉯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우왕(禑王)시절에 우왕(禑王)과 최영(崔瑩)의 명령(命令)으로 요동(遼東)정벌(征伐)을 나섰으나, 이성계(李成桂)일파(一派)의 반역(反逆 : 쿠데타)으로 인하여,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해 옴으로써 요동(遼東)정벌(征伐)이 좌절(挫折)되고, 이성계(李成桂)의 쿠데타 군(軍)이 황도(皇都)에 난입(亂入)하자 소수(小數)의 군사(軍士)로 이에 맞서 싸우다 체포(逮捕)되어, 유배(流配)되었다가 서력(西曆) 1,388년에 참형(斬刑)되었다. 이때 최영(崔瑩)일파(一派) 역시 많은 사람들이 처형(處刑)되었을 것으로 추정(推定)되는데 정확(正確)한 사료(史料)가 없어 안타깝다. 또한 이후(以後) 많은 왕씨(王氏)들이 처형(處刑)되고, 수장(水葬)되었다고 전(傳)할 뿐, 그 숫자는 알 수 없다. 다만 수많은 구시대 인물(人物)들이 처형(處刑)되었으리라고 추정(推定)할 뿐이다.
○ 주원장(朱元璋)의 군대(軍隊)가 황제(皇帝)를 참칭(僭稱)했던 진우량(陳友諒)이나 장사성(張士誠)등을 굴복(屈伏)시키고, 또 포로(捕虜)로 잡아 고려왕(高麗王)에게 보냈다는 말은 주원장(朱元璋)은 고려(高麗)왕조(王朝)의 신하(臣下)였다는 말이며, 이는 이성계(李成桂)가 고려(高麗)왕조(王朝)의 신하(臣下)였다는 것과 맥(脈)을 같이 한다.
○ 조선사(朝鮮史)는 이렇게 대륙사(大陸史)와 맞물려 있으며, 이러한 연유(緣由)는, 조선(朝鮮)을 해체(解體)한 후, 광대(廣大)한 일만(一萬)리, 땅의 빈 자리를 조선(朝鮮)의 각 지역(地域)에 있었던 제후(諸侯)들의 이야기를 각색(脚色), 조작(造作)하여, 대륙왕조(大陸王朝)로 편입(編入)시켜 줄거리를 만든 것이다. 조선사(朝鮮史)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진실(眞實)을 밝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바다.
○ 〔밝고 밝은 성조가 태어남에 있어서는 : 赫 聖 祖 之 首 出 / 오백 년을 기다려서 상서가 응했도다. : 期 五 百 而 應 籙〕고 한 것은 조선(朝鮮)의 이성계(李成桂)를 뜻함이지, 주원장(朱元璋)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2014년 11월 01일 <글쓴이 : 문무(文武)>
|
첫댓글 대륙사와 조선사!
이는 조선사를 갈라치기 해 '두개의 왕조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한반도로 온 이조의 후손들이 역사를 잘 가지고 있었기에 주원장의 역사가 거짓이라는 걸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주원장이라는 인물이 원래 없던거는 아닐 겁니다 이조가 지나 땅에 없었다는 지나측 주장이 지나친 거짓입니다 주원장의 후손들은 힘이 강해져 가는데 이성계의 후손들은 힘이 약해져 가니 하는 수 없이 명을 사대 했갰지요
조선과 명은 하나의 나라일 것입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라는 대목이 이를 증명한다 생각됩니다. 평구와 흑수등의 지명은 대륙의 어느곳일 것이고, 특히 대륙을 조선과 중국(조선의 중국)으로 분리하여 생각했을때 중국땅에 있어야할 지명으로 생각되기에 명과 조선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가 합니다.
조선과 청(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성계에의한 대륙조선(조선의 정치체계는 중앙정부인 중국(경기)과 그외의 조선으로 이분화되어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이 확고히 내려오다가 조선 북쪽의 여진족(이들도 크게보면 조선의 일부)이 조선의 중국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성계의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퇴출당하고 그자리를 청이 차지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이자성의난과 이괄의 난, 조선 영조와 청의 건륭제, 조선과 청의 공동운명체적 멸망과정 등이 너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파면 팔수록 대륙의 땅은 조선일 수밖에 없는 단서들이 나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을 수만 있다면 많은 자료들을 취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영 되질 않네요. 주원장과 이성계의 관계? 왕건과 왕건? 조선사의 핵심을 이루는 두 왕조의 영위기간만도 일천년입니다. 반도에 이들을 묶어두려는 자들은 바로 반도사관=식민사관 논자들이죠. 그러나 이러한 매국행위는 틀림없이 그 댓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원 감사드리며,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관동별곡에 나오는 흑수의 위치를 반도에서는 여주로 설명합니다. 흑수가 여주라는 이유를 알수가 없읍니다.(혹 아시는 분은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주(驪州)의 옛 지명이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 신라의 황효현(黃驍縣)' 고려때 황려현(黃驪縣), 조선때 여주목(驪州牧)이라 하여 흑수와의 연관성을 찾을수 없읍니다. 다만 驪자가 '가라말 려' '검을 려'로 검다는것 이외는 특이사항이 없고, 검다는것도 누른 말과 검은말; (黃驪) 이 강에서 나왔다 하여 그렇게 붙였다는 것인데 신빙성 있게 와 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는 대륙조선사로 풀어야 제대로 풀리지 않을까 합니다.
중국놈들이 역사를 말살한 후에 다시 복원한 것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외국으로 이주를 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옛날 진한시대 때 피난을 간 사람들 처럼 말이죠. 자기들이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왕조의 역사를 제후국의 역사와 분리를 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제후국의 식민일 수도 있고 황제국의 식민일
수도 있지만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을 황제국만의 식민으로 역사를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떨어져 나가거나
중국에 속하지 않은 이주한 사람들은 자연 그 지역에 맞는 역사를 다시 재정립 하게 되었고 가뜩이나 역사라는 것을
지금과 같이 정립을 커녕 개념도 없던 사람들이 뒤 늦게
다시 정립을 하다 보니 국경 때문에 다른 민족이라는 개념이 강하여 그들과 중복을 피해서 만들다 보니 이런 해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우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철저하게 다르다라고 지명을 비정하다 보니 엉터리 해석이 나오는 것이죠.
이성계는 1408년 사망한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존사학에서는 1408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봉건왕조시대라는 것을 생각하고, 한양과 함흥과의 거리, 또 달단동이라는 지리적 본시의 위치등을 감안하면 그가 선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정적들을 살해한 그가 권좌를 물려주고 야인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은 각색된 것이다라는 주장입니다. 그가 권좌를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죠. 물론 기존사학은 선위를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선위했을 가능성은 경코 없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북미대륙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당나라 후손의 역사이고 고려는 명태조역사인가,,아마 미국남부에서멸망하고,
만주국으로 한반도위쪽으로 이주하는것 같은데요,
조선은 원나라입니다 징기스칸의나라 입니다,
조선은원나라을 계명한나라이고 고려을 멸하고 건국한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는멸망하고 만주국으로 만들어진것 아닐까요,
조선은 북미대륙의 동경부 한반도 호주대륙의 서경부가 있고 만방의 우두머리로,1945년 핵폭탄맞고 멸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