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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목사 / 말한대로 되게 하시는 하나님 (민 14:26-30)
1964. 2. 25.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 홀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고 말했고, 경기에서 꼭 그렇게 했습니다. 알리는 17번의 KO승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알리의 주먹이 약하다고 평가했지만, 그는 그의 장점으로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장점은 주먹이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상대 선수가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극도로 빠른 주먹을 날려 KO를 시켰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말을 잘했습니다. 그는 은퇴하면서 승리의 비결을 털어놓았습니다. “나의 승리의 반은 주먹이었고, 나머지 반은 말이었습니다.” 그는 말로 자기 생각에 승리를 계속 각인시켰고, 상대방의 생각에 각인시켰습니다. 알리는 링 위에 올라가자마자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링 위를 마구 돌아다니며 혼자 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나비처럼 날라서 벌처럼 쏘겠다. 이번 경기에서는 소련 전투기처럼 공격하고 독일 전차처럼 빠져 나오겠다. 이번 경기에서는 일본군이 하와이를 기습 공격한 것처럼 기습작전을 쓰겠다....”
야고보서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말 전부를 제어하고, 작은 키로 배 전체를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듯이, 사람은 말로서 온 몸을 제어한다고 말씀합니다(약 3:2-4).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잠언 23:7에서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8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말은 마음의 표현으로서, 말은 속마음이 겉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마 12:33-37).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 전체가 풍성한 추수 때처럼 잘 되고 싶다면, 잘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갚아주신다(민14:28).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은 12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민 13:2). 그런데 12명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그 땅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 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민 13:31-33). 그러자 온 백성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 통곡하였습니다(민 14:1). 그리고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라고 탄식했습니다(14:3).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민 14:28).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하는 과정에서 10가지의 기적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기적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못 취하겠다고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말로서 자신들의 불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거역을 표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말한 대로 갚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교훈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임금님이 시몬이라는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 오게 하고, 요한이라는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얼마 후 두 광대가 돌아와 각각 그들이 담아가지고 온 상자를 임금님께 바쳤습니다. 시몬의 상자를 여니까 사람의 혀가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요한의 상자를 풀었더니 역시 사람의 혀가 나왔습니다. 잘 쓰면 가장 좋은 것이고, 잘못 쓰면 가장 나쁜 것이 혀인 것입니다.
<긍정의 힘>이란 책을 읽어보셨을 겁니다. 그 책에 보면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간암에 걸려서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었는데, 치유 받은 간증이 나옵니다. 의사들은 몇 주밖에 살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권위자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하나님 절대권위자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할 거야!” 그리고 치유에 관한 성경구절 30~40개를 종이에 적어놓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점차 식욕도 되찾고 건강을 회복하더니 온전해졌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다는 겁니다. 잠언13:2 말씀 대로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말이 환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말은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선진국은 국민의 언어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언어가 아름다운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언어가 거칠어진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국가 지도자들과 언론 매체와 국민들의 언어들이 희망적이고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이든, 국가든 그가 말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2. 말대로 잡힌다(잠 6:2).
잠언 6:2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로 자신의 인생을 얽히게 하고, 악에게 사로잡히게 합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 해야 하고, 나중에는 그 대가를 크게 치르게 됩니다. ‘자승자박’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자기가 만든 밧줄로 스스로를 묶는다는 말입니다. 원수 앞에서 자기를 스스로 묶는다면 고스란히 원수에게 내어주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말에 있습니다.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의 자신의 말이 지옥 같지 않은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6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잠언 17:20은,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역사상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해 보면 그 배경에는 성공을 만들어준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의 배후엔 언제나 실패의 언어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로 자신의 미래를 그르쳤던 사람들 중에 1984년 올림픽에 출전했던 매리 데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육상 선수로 미국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기 전에 출연한 한 TV 토크쇼에서 “난 운이 따라 주질 않아요. 난 늘 운이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부정적으로 말을 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큰 압박감에 시달렸고, 그 후 올림픽 육상 경기에서도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반드시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미국의 여자 옷을 만드는 사업가가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치수를 정하는데 큰 치수를 빅 사이즈, 더블 빅 사이즈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뚱뚱한 사람들이 사가질 않더랍니다. 결국 사업이 큰 위기에 몰렸는데, 고민 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빅 사이즈 대신 퀸(여왕) 사이즈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불티나게 팔려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업의 막힌 문을 말의 지혜로 푼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골리앗 앞에서 긍정적인 승리의 말을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과 긍정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부정적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5만~6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75%가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도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믿음을 주시면 기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긍정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내 말이 나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똑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믿음의 말로 승리하고 축복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불신의 말로 패배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동안 말로 나 자신을 얽어 놓았던 것을 회개로 풀어야 합니다.
3. 말에는 권세가 있다(잠 18:20-21).
잠언 18:20-21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병을 고치실 때도 말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사야 55:11 보면,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100% 실수 없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는데,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인간만이 말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람끼리 대화하는 존재입니다. 다른 피조물에게는 인간처럼 정교한 언어체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어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듯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말에도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을 마음에 모신 그리스도인의 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처음 구원 받는 것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롬 10:10). 그리고 입으로 주의 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도 말로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습니다(행 3:6). 예수님은 마가복음 11:23에서,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의학계에선 뇌 속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치료법(Word therapy)도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에게 하루 2-3차례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나의 혈당치는 정상이 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는 말기 암 환자에게 언어 치료법을 적용했는데 3주후에 진통이 말끔히 사라졌고 암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임상 보고가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대화전문가인 이정숙씨가 쓴 <성공하는 여자는 대화법이 다르다>에 보면, 말로 뇌를 자극하면 행동과 사고의 패턴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말을 바꿈으로 행동을 바꾸고 인생을 성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하고 싶다면, 복을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맞게 말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 박사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아주 신기한 실험 결과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에다 글씨를 보여주거나 말을 해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결정체의 모양을 촬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각각에 대한 반응에 따라 다양한 모양이 되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랑, 감사 등 좋은 말에 대해서는 물이 아름다운 모양의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반면 악마 등 나쁜 말에 대해서는 흉한 모양의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기도하기 전과 후의 물의 결정체 모양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말은 이처럼 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인간은 70%가 물로 이루어 있으니, 말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격체이므로 나쁜 말은 거부하고, 좋은 말은 받아들이는 의지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들이고 살아서 생명으로 넘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화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가 1995년 어느 날 승마를 즐기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면서 목뼈가 골절되었고, 그로 인하여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침대에 누워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아내 다나가 사랑으로 격려를 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는 아내의 위로에 힘을 얻어 열심히 재활훈련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팔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지금 그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교육 심리학자와 아동 심리학자들은 칭찬을 자주 해주면 아이들의 잠재능력이 무궁무진하게 개발될 수 있으며 성취욕구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남을 책망할 때는 예수님처럼 대신 죽어줄 사랑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3은,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어디서나 사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쓰임 받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지금까지 말을 잘못 사용했다면, 예수의 보혈로 씻고, 이제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말의 권세를 긍정적으로 사용해 밝고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창인 목사 / 씨앗이 열매를 맺습니다! (민 14:26-35)
오늘은 민수기 14장 26절에서 35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씨앗이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농사는 씨앗을 가지고 짓습니다. 왜냐하면 씨앗은 알곡 중에서도 알곡으로서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이 나가 씨를 뿌릴 때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므로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으므로 결실이 없었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짝 밭에 떨어지므로 싹은 나고 뿌리는 조금 내리는듯 했으나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었기에 말라져 죽고 열매가 없었으며,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매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나서 자라기는 제법 자랐지만 가시가 기운을 막아서 결실을 보지 못했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첫째로 좋은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길가나 돌짝 밭이나 가시덤불은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반면 옥토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씨를 뿌린다고 당장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로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햇빛, 적당한 단비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해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하늘의 도움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농사를 짓는데 곡식 농사가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가 지금 씨앗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좋지 못한 씨앗을 심어 놓으면 좋지 못한 결과가 맺어지고 좋은 씨앗을 심어 놓으면 축복의 열매가 맺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따라 어떤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 말의 씨앗 (26-28) 마태복음 12장 34절을 보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면 악한 말을 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에 선이 가득하면 선한 말을 하고 그 말이 씨앗이 되어 꼭 열매는 맺는다는 내용입니다.
36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말을 하며 살수밖에 없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심판 날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따지겠다는 말씀입니다. 37절을 보면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열매를 맺고 그대로 거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즉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원망의 말이 씨앗이 되어 또 원망할 일을 열매로 맺어 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이 양을 낳고 소가 송아지를 낳듯이 원망이 원망을 낳습니다. 원망이 계속되다 보면 반드시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가정의 아내가 남편을 보면서 항상 원망을 하고 아들 딸들은 꼭 자기 아버지 닮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볼 적마다 원망을 한다면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편은 또 아내를 볼 적마다 똑 같은 원망을 하고 자식을 볼 적마다 자기 어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 원망을 한다면 그 집안은 뭐가 되겠습니까? 그런 집에는 원망이 가득하고 원망이 씨앗이 되어서 원망이 열매 맺습니다. 죽을 때까지 원망을 못다하고 죽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나 그 반대로 남편을 보아도 또는 아내를 보아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부모가 자식을 보던지 자식이 부모를 보던지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감사하다는 말이 씨앗이 되어서 반드시 감사할 일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런 가정은 참 복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씨앗이 되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돌아가서 26절에서 2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나이 반도를 지나서 가나안 땅 입구라 할 수 있는 가데스 바네아까지 갑니다. 가데스 바네아까지 가기에는 세월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 중에서 대표자 즉 "나 로다" 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열 두명을 가나안 땅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이 사람들이 가나안 족속들이 모르게 들어가 전국을 샅샅이 누비면서 정찰을 하고 40일 만에 돌아옵니다. 40일 동안 기다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두명의 보고를 받습니다. 열 두 명중에 열명은 보고하기를 '가나안 땅을 절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과 반대되는 말만합니까? 그 말을 본문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지 못할 땅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에 쓰여진 내용들을 전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또 성경에 보면 거기에 '아낙 자손들이 사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우리들 자신이 그네들과 비교해 보니 우리가 메뚜기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앞과 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사람 잡아 먹는 땅에 어떻게 그렇게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살아 남아 있습니까? 다 조무래기 인간이 되던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씨가 말랐다던가 그래야 맞지 않습니까? 앞뒤가 다른 말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 보고를 듣고 얼마나 아우성을 치고 하나님을 원망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좋다'고 하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증거로 포도송이 하나를 내가 혼자 들고 올 수가 없어서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온 저 포도송이를 보라 이것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틀림없지 않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또 아무리 장대한 아낙 사람들이 살아도 '하나님이 들어가라' 하신 말씀을 믿고 들어가면 반드시 점령하고 우리가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네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우리의 밥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열명의 말을 듣고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했는지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점도 있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아주 나쁩니다. 절대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민주주의가 좋지 않니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민주주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천만인이 다 옳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는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단 한 두명일지라도 즉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뜻이다'하면 뜻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위를 말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원망하는 말이 내 귀에 들린 그대로 행하여 열매를 맺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원망하는 만큼 원망할 일이 생기게 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다 죽을 때까지 원망만 하다가 죽지 않습니까? 감사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원망하는 말을 하면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면 감사할 일이 꼭 생깁니다. 말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적에 일년정도 가서 봉사하던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2백명에서 3백명 정도 모이는 교회로 20여년 전에 교회를 지었고 또 완전한 건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당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교인들이 우리 삶이 넉넉하지 못하고 교인은 2백에서 3백명 정도 될지라도 터를 좀 더 넓게 사고 예배당을 짓자고 할 때 중직자 중에 하나가 한사코 반대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다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데 헌금이 어디서 나옵니까?"라고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가 가난하므로 헌금을 할 수가 없어서 체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힘을 내서 짓자고 하지만 끝까지 반대하면서 말끝마다 "예배당을 지어 놓으면 내 손톱 끝에 장을 지진다"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곤 하였습니다. 못한다는 뜻입니다. 손톱 끝에 장을 지지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러나 교인들은 그 말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우리 모두 힘을 합하자"고 하여 너도 나도 헌금에 동참을 했습니다. 정말 생각밖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짓고도 돈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여전도사님이 목사님께 보고를 합니다. "목사님 손톱 끝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셨던 그 분이 지금 몹시 아파서 누웠는데 심방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가서 보았더니 열 손가락에 침을 꽂아 놓고 뜸을 뜨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손톱 끝에 장을 지지는 것이지 무엇이겠습니까? 왜 손 끝마다 뜸을 뜨고 있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손가락 마디 마디에 관절염이 심하여 마디 하나가 굵직 굵직 해지고 건드리기만 하면 아파 죽는다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치료하느라고 그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분이 단단히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원망하는 일이 없었고 주의 일에는 항상 앞장을 서서 동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손톱 끝에 장을 지진다고 하니까 손톱 끝에 장을 지질 일이 생기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감사하는 말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하면 감사 하는 말이 씨앗이 되어 감사 할 일이 꼭 생길 줄로 믿습니다. II. 믿음의 씨앗 (29-30)
이 말은 믿음을 씨앗으로 심으면 믿는대로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서 57장 19절을 보면 '나 입술의 열매를 짓는 여호와가 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열매를 맺어 주시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두번째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언약을 맺을 때는 동등한 입장에서 맺기 때문에 나와 네가 마음이 맞고 동의를 해야 언약이 성립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을 맺을 때에는 동등한 입장이 아니고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기 까닭에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그것으로 언약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가령, '너는 이렇게 하라 그러면 이런 복을 받는다, 저렇게 하라 그러면 저런 복을 받는다, 만약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이런 화를 당한다'라고 하면 그것이 곧 언약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열매 맺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하면 그 말씀이 바로 내 생활 속에 꽃피어 열매를 맺는다는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에게 오는 사람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면 그 믿음대로 되고 맙니다. 크게 믿으면 큰 사람이 되고 작게 믿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안 믿으면 그 사람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가버나움의 로마군 백부장을 예로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백부장이 자기의 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 종은 젊음을 바쳐서 온갖 충성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는 누가 사랑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종이 나이가 지긋해서 중풍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풍병은 못고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내 버려 두어도 괜찮습니다. 그 이유는 그 때 당시 종은 절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젊음을 바쳐 준 사람이 이제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몰라라'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장로들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고, 자기의 벗들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고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나와 "내 종을 살려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 때 주님은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집에 돌아가 보니 그렇게 고통 당하며 죽어가던 종이 깨끗이 나아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믿은 대로 된 것입니다. 많이 믿으면 많이 받고 적게 믿으면 적게 받고 안 믿으면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믿음이 씨앗이 되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9절에서 30절을 보면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하실 때 그 백성들은 '아니다 사람 잡아 먹는 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들어가면 너희에게 주리라'고 하실 때 그 백성들은 하나같이 '아니다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끝마다 배반하여 거절한 것입니다. 그럴 적에 '너희 같은 자들 즉 믿음은 손톱 끝만큼도 없는 자들은 가나안 땅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다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완전히 소멸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전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얼마나 믿음이 좋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 좋다'라고 하실 때 '좋더라'고 하였고 하나님께서 '할 수 있다'하시니까 그 두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아닙니까? 결과 두 사람은 가나안의 축복을 받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믿는 대로 받고 믿는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고 그 믿음을 씨앗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이 땅과 하늘 나라의 좋은 것으로 넘치게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장질부사에 걸렸습니다. 8?15해방이 되고 6?25사변이 날 때까지의 기간이 5년이 아닙니까? 그 당시 북한에서는 국민학교 6학년 제도를 5학년으로 줄이면서 6학년을 중학교 2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5학년을 1학년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년은 그대로 두었기 까닭에 5년이면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장질부사에 걸렸습니다. 요즘은 병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는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그 집안에서 한 사람이 장질부사에 걸렸다 하면 온 집안을 쓸어냈습니다. 또 아무개 집에서 장질부사에 걸렸다고 하면 그 집에 새끼줄을 치고 그 동네에 통행금지를 시켰습니다. 얼마나 열이 끓고 몸이 뜨거운지 정신을 잃었다가 20일만에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습니다. 그 때 살아나면서 제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고 제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하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 '죽어도 목사가 되리라'하는 것이 저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한 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목사가 되기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6?25사변을 거치면서 이곳에 와서 고학하면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오로지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는 믿음대로 또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대로 목사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는 대로 되었고 믿는 만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크게 믿어서 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많이 믿어 많이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이 씨앗이 되어서 반드시 믿는 대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거역(순종)의 씨앗 (31-35) 오늘 본문에 보면 '거역한다, 패역한다'는 말이 나와서 거역의 씨앗이라고 한 것뿐입니다. 거역의 반대는 순종입니다. 그러기 까닭에 순종의 씨앗이라고 해도 되는데 본문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역의 씨앗이라고 했지만 그 반대로 순종의 씨앗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배신하고 거역하게 되면 열매는 죽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끝마다 순종하게 되면 반드시 순종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는데 온갖 축복입니다.
이사야 1장 19절에서 20절을 보면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배신과 거절이 씨앗이 되면 반드시 칼에 죽는 결과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1절에서 35절을 보면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끝마다 "아니라" 반대하고 거절하고 배신을 하는 너희들은 반드시 가나안 땅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광야에서 맴돌다가 죽으리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대로 그렇게 원망하고 거역하며 패역하던 무리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소멸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의 자식들 즉 20세 이하의 자녀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원망하던 부모들이 죽을 때 가지 40년을 그 부모들의 죄를 지고 그 광야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유리방황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겨우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그 자손들이 죽을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부모의 거역한 죄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죽는 것은 말해 볼 것도 없고 자식들이 고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니요'하고 거절하여 배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옳소이다'하고 순종하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땅에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종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111년 전 정확히 말하면 1889년 같은 해에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두 사람이 태어납니다. 한 사람은 독일에서 태어난 히틀러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아이젠하워입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습니다. 술만 먹었다 하면 집에 들어와 밥상을 엎어 버리고 살림이란 살림은 다 때려부수고 아내를 쥐 잡듯 합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서 집밖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자란 히틀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히틀러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불량배들과 어울려 불량배가 되고 맙니다. 보고 배운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군대에 갔다가 거기서도 적응을 못하고 제대하였습니다. 정치한다고 날뛰면서 감옥을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하다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치 독일 정권을 세운 다음에 세계 전쟁을 일으키는 전쟁 미치광이가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는 원흉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내 몰라라 하고 살다가 결과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944년 4월 30일 지하 벙크에서 권총을 가지고 자살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까? '나의 죽음을 기뻐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내 몰라라 하고 사는 패역한 자의 말로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패역이 씨앗이 되어 멸망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에 출생한 아이젠하워는 텍사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독실한 크리스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이어 받았습니다.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진급을 거듭하다가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킬 때 유럽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총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웠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히틀러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군복을 벗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서도 주일을 지켜 예배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세계 정상들과 만날 때에도 주일을 꼭 지켰습니다. 그가 나이 80살에 죽을 때 온 세계가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가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할 때에도 주일에는 일정을 비워 두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날은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사사로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은 순종이 씨앗이 되어서 이런 귀한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역은 바로 씨앗이 되어서 멸망이요, 그 반대로 순종은 씨앗이 되어서 축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첫째, 말의 씨앗입니다. 말은 씨앗이 되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원망하는 말을 하면 원망할 일만 생기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 감사할 일만 생깁니다. 둘째, 믿음의 씨앗입니다. 믿음은 씨앗이 되어 반드시 열매를 맺는데 믿는 만큼 되고 믿는 만큼의 축복이 있습니다. 셋째, 거역의 씨앗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말끝마다 거역하는 사람은 그 거역이 씨앗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멸망밖에 없습니다. 그 반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그 순종이 씨앗이 되어서 땅에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앗을 심어 보다 귀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대로 되리라 (잠 23:7/민 14:26-38)
백범 김구 선생은 서민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돈으로 과거시험의 당락을 결정하는 부정이 판을 치던 때라 백범은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했습니다. 아들의 실망하는 모습을 본 그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예야, 너는 과거에 급제하기는 틀렸으니 풍수쟁이나 관상쟁이로 살아라.”백범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관상 책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관상을 공부해보니 자신의 얼굴이 가난할 상이요, 살인자의 상이요, 온갖 풍파를 겪을 상이요, 비명횡사 할 상이요, 감옥에 갇힐 상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온갖 불행을 내 얼굴에 다 지니고 어찌 남의 관상을 봐주랴.’라고 탄식하면서 관상 책을 내던졌습니다. 그러다 펼쳐진 마지막 장을 보았더니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관상이 신상만 못하고, 신상이 심상만 못하다(觀相不如身上 身上不如心相)”얼굴이 아무리 잘생기고 관상이 좋아도 몸의 건강에 못 미치고, 아무리 몸이 튼튼하다 해도 마음씨 바른 것에 비기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때 백범은 관상 책을 버리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섬겼습니다. 그 후 김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에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는 지금도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는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백범 선생의 이야기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외모에 나타나는 관상이 아니라, 마음임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의 생각에 따라 위대해 질 수도 있고 졸렬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의 생각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의 생각에 따라 사람이 악해지기도 하고 선해지기도 합니다.“마음의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운명을 낳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에“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한즉)”(잠언 23:7)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생각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100% 생각의 산물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의 씨앗을 심는가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말하는“의식화 작업”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생각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뿌려 놓으면 반드시 거기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씨앗을 마음에 심을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一. 왜 마음의 생각이 중요할까요?
1. 생각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 23절 말씀에“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모두가 생각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경비행기에서 떨어지게 되면 여자의 생존율은 70%, 남자의 생존율은 40%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자는 자식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통해 일하십니다. 민수기 14:26~38에 나나타난 결과를 보면, 같은 광야인데 어떤 사람은 망하고 어떤 사람들은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단 한 가지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우리가 잘살고 못사는 것은 환경이나 조상 탓이 나니라 자신의 생각 탓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면 누구나 다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2.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언 23:7) 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가난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생각대로 된 것이 지금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입니다.
오랫동안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부총재로 봉사해온 대로우 밀러 (Darrow Miller)라는 분이“생각은 결과를 낳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분은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기아대책 봉사를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가난한 국가는 가난한 이유가 있고, 성공한 국가는 성공한 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 책에 보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면 자원도 많고 인구도 적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음에도 전혀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자기들은 가난하게 살아갈 운명으로 태어났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한 나라 사람들은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나라들은 자원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형편이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리기를“생각은 결과를 낳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고 못사는 것은 환경 탓이나 조상 탓이 나니라 자신의 생각 탓이라는 것입니다.
3. 마귀도 마음의 생각을 통해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에“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긴 가룟유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귀가 먼저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넣어준 결과였습니다.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그렇습니다. 내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지금 내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지 아니면 나를 파멸로 끌고 가려는 마귀가 미혹하는 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의 생각을 통해 일하시고, 마귀도 생각을 통해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32절에“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박하는 사람이 도박을 끊기 위해 손가락까지 자르고도 상처가 낫자, 발가락으로 도박을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1. 기도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한 젊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에게 타이릅니다.“주일을 잘 지키고, 성경대로 착실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니?”“아니요 나는 내 방법대로 살고 싶어요.”이처럼 아들은 언제나 반대를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친구들과 사귀며 교회를 멀리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옷 몇 벌을 챙겨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면서 어머니께 하는 말이“더 이상 갇혀있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이다, 교회다. 다 싫어졌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자유롭게 살겠습니다!”하며 집을 떠나는 아들의 등을 향하여 어머니는 말했습니다.“사랑하는 아들아! 정 떠나려는 너를 붙잡아 둘 수는 없구나. 그러나 너는 나의 간곡한 부탁 한마디는 꼭 기억하고 가거라. 너에게 언제인가, 답답한 시간이 오거든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되는 시간이 오거든, 너는 너의 어머니가 부르는 하나님을 찾아라 나는 너를 위하여 기도하겠다.”
집을 떠난 아들은 술과 도박 그리고 온갖 방탕한 생활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편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한 밤도 잠자리에 누워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침대 옆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은 방탕이 자유로 알았고, 방탕 속에 즐거움과 만족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의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방황하던 아들은 삶의 허무를 느끼고 끝내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밤 여관방에서 준비한 권총으로 가슴을 겨누었습니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그의 귓전에 어머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답답한 시간이 오거든, 모든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든, 너는 너의 어머니가 부르는 하나님을 찾아라!”순간 아들은 권총을 땅에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소리 높여 울부짖었습니다. “나의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를 살려주옵소서!”밤이 새도록 울부짖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이 젊은이의 마음과 생각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소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날이 밝자, 그는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열심히 기도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훗날 그는 세계적인 대전도자요, 신학자요,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곧 미국이 자랑하는 토리 목사입니다.
마귀는 방탕과 좌절로 미혹하지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구습을 버린 새로운 변화와 소망과 용기로 아름다운 삶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 11절~13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2.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을 채우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6장 5절~9절 말씀에“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 한다면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훗날 심리학자들은 마치 신명기 6:5~9의 의미를 설명이라도 하듯 대체의 법칙이라는 이치를 밝혔습니다.
심리학에“대체의 법칙”(The Law of Sub stitution)이란 것이 있습니다.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의자가 하나만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앉을 자리가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절망이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희망과 절망은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에 비춰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다른 세상 적인 탁락한 요소들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 1절~3절에 말씀하시기를“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고 살아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시편 1편 3절에“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면 그의 삶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가뭄을 모르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길과 행복의 길을 알려주신 삶의 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덤으로 주어지는 건강의 축복이 있습니다.
심장 전문의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인 허버트 벤슨 박사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사를 발표했는데, 성경 말씀 묵상이 현대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주요 요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들은 성경을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씩 묵상했던 그리스도인 환자들에게 분명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환자들에게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한 번 묵상하라고 열심히 권고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정신병을 유발하는 정신적 피로에 대해 연구한 미시간 대학 심리학 교수 스티븐 카플란 박사와 그의 연구팀도 환자가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회복의 필수요소라고 결론지었는데, 성경을 묵상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사람을 주의해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 말씀에“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지만 반면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시편 1편 1절에 말씀하시를“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안 땅을 향해 가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빗나간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담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비뚤어진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은 불평과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에는 불평과 원망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눈앞의 것과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불신앙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습니다. 여우는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여우는 바다 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물고기 여러분,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뭍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되었습니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고기 대표는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저녁식탁에서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물고기가 뭍에 나오면 어떻게 되지?”어린이들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을 합니다.“바로 그거야.”아버지의 교훈은 계속됩니다.“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어린이의 마음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가슴을 울려주는 감동과 각성이 있게 됩니다. 무서운 교훈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태인은 유태인으로서의 신분과 유태인의 정신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어린 마음속에 심어준다고 합니다.
빗나간 사람들의 감미로운 미혹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고, 성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고귀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위험하기도 합니다.
내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간교한 이단자들의 유혹이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신천지 이단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편 이단은 아니지만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나를 실패의 늪으로 끌고 가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생각과 말이 항상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원망과 불평을 일삼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고 함께 동조하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불 뱀에 물려죽었는가 하면 때로는 악질에 결려 죽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땅이 갈라져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250명을 집어 삼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노를 보고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40년간 광야를 맴돌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음의 생각은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축복을 생각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귀도 생각의 기능을 통해서 미혹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성경말씀을 마음에 가득 채우면 마귀가 미혹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을 잘 분별하여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아름다운 생각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