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첫 날인 12월22일 토요일!
우리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분주히 여행 채비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빠진 게 없나 점검하면서 우리의 얼굴은 흥분으로 약간씩 상기되었다.
오늘은 우리의 모험이 시작되는 첫 날!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향하면서 8일간 비울 집 단속을 철저히 하였다. 새벽공기는 들뜬 우리에게 하나도 춥지 않았다. 1만원이나 하는 리무진 버스는 참 좋기는 하였지만 역시 조금 비쌌다.
김포공항을 거쳐 1시간 40분 정도 되자 인천 신공항에 도착했다. 우와 정말 으리으리 하고 좋았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티켓팅을 하고 공항세를 내고 환전을 했다. 이미 호텔대금은 지급한 상태니깐 50만원 정도만. 화장실에서 안에 입은 두꺼운 옷을 하나씩 벗었다. 태국은 여름이라니깐!
그리고 비지니스클래스를 끊었더니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로얄오키드클럽)을 주었다. 그러나 넓고 넓은 공항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워라 흑
공항의 면세점은 정말 명품으로 그득했다. 외제 화장품, 브랜드별 시계들, 버버리를 구경하다 가격을 보고, 달러로 써 있어 감이 안왔으나 우리 돈으로 환산하곤 눈이 휘둥그래졌다. 옆에서 관영씨는 자꾸만 숄을 하나 사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돈으로 세일해서도 28만원 허걱 ~!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즈니스클래스는 체크인할 때도 줄을 안서도 되고 비행기에 탈 때도 통로가 달랐다. 후후. 비행기 타는 것도 신기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라니 하하. 좌석도 넓고 서비스도 달랐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타이항공 소속. 타이 전통의상을 입은 스튜어디스들이 합장을 하고 복을 빌어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의 좌석은 창가 오른쪽 날개옆이었다. 자리에 앉자 뜨거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라고 하고 타이항공의 기념선물을 주었다. 좌석은 다리부분도 올릴 수 있었고 편히 누울 수 있었으며 좌석마다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었다. 나는 영화를 한편 보았다. 금발미인의 콤플렉스를 극복한다는 얘기인데 제목이 뭐더라? 애인이 금발은 머리가 나쁘다고 하버드 법대에 입학, 거기 다니는 여자와 약혼을 하자 자기도 열심히 공부해 하버즈 법대에 가고 변호사로 성공, 더 좋은 남자를 만난다는 얘기인데 한국어로 더빙이 되어 있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지 보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아주 좋은 내용이구나 싶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운해. 그야말로 거대한 운해였다. 운해 밑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저 밑의 푸른 바다는 다분히 이상향으로 보였다. 더 건너편의 운평선.. 그리고 운해 위로 보이는 솜사탕 같은 귀여운 구름들..
식사로 나오는 스테이크 요리와 화이트 와인, 레드와인, 커피향도 좋았고 이국적 요리도 맛있었다. 식사 후 승객 대부분은 오수에 빠졌고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공책에 느낌을 정리했다.
12월21일 5시간 20분의 비행을 거쳐 방콕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착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타이 방콕은 직사각형의 반듯반듯한 논들이 인상적이었다. 방콕이라~ 서울에서도 늘 방에 콕 박혀 있었는데 진짜 방콕을 온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은 알까?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방콕을 들먹이는지.. ㅋㅋㅋ. 방콕의 시간은 서울보다 2시간이 느렸다. 기후는 섭씨 28도. 내리자 후덥찌근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보이는 타이의 야릇한 글자. 타이어 발음들. 피부가 조금씩 까무잡잡한 동남아시아 사람들 천지였다. 갑자기 이방인이 된 느낌 땜에 서울에서 입고 온 두꺼운 쉐타를 벗었다. 호텔까지 찾아갈 일이 갑자기 난감해졌다. 몇몇의 사람들이 다가와 택시 운전사인 듯. 말을 붙였으나 갑자기 하려는 영어는 제대로 이해하기도 말하기도 어려웠다. 우리의 숙소인 맨더린 호텔로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택했다. 여행 안내책에서 보니 리무진 버스는 비싸다고 하던데 얼른 타이화에 대한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1인당 100바트나 하는 버스였다 -1바트는 우리돈 30원-.'세븐 일레븐'에 가서 물을 한병 사고 -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에도 있는 세븐 일레븐이나 훼미리 마트 같은 편의점과 맥도널드는 진짜 도처에 많았다-리무진 버스에 올랐으나 리무진 버스는 우리 호텔까지 한번에 가지 않았다. 룸피니공원에서 내려 툭툭을 타고 가라 했다. 룸피니 공원 앞에서 꼭 말해 달라고 재차 부탁하고 버스로 방콕 시내로 들어갔다. 에어콘을 단 버스는 하이웨이로 시내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보던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들, 우리는 창 밖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길에는 무지무지 차가 많았다. 운전석이 우리와 달리 오른쪽이라 얼른 적응이 되지 않았다.
룸피니 공원에서 내렸으나 잠시 어리둥절했다.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 어디에도 영어 표지가 없었다. 도로 교통 표지도 눈에 띄지 않아 정류장의 젊은 친구들에게 지도를 보이며 맨더린 호텔을 물었으나 그들은 영어를 전혀 할 수 없는 듯했다. 지나가는 툭툭을 세워 맨더린 호텔을 외치자 공항에서 막 도착한 듯한 우리들은 그들에게 최고의 사냥감인 듯 100바트나 불렀다. 우리는 겨우 50바트에 깍아 툭툭에 올랐으나 -사실 이것도 바가지 쓴 것 10바트에서 20바트만 주면 됨- 툭툭은 뒷 좌석이 오픈되어 있는 타이식 삼륜차인데, 필수품으로 마스크나 손수건을 권하고 싶다. 타이는 교통 사정이 안 좋아 길이 많이 막히고 또 대부분 일본에서 폐차 직전의 차를 수입해 오기 때문에 매연이 엄청 심각했다. 툭툭은 오픈되어 있는 구조라 앞차나 다른 차의 배기가스를 다 마실 수밖에 없다. 한여름에는 - 평균기온 섭씨 45도-넘 무더워 툭툭을 거의 탈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여행자들에게는 미터택시를 권하고 싶다.
하여 우리는 숙소인 맨더린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일본인이나 한국인은 별로 없어 보였다. 방을 배정 받고 짐을 풀고 옷을 갈아 입었다. 배도 고팠고 타이의 곳곳을 누비고 싶어 지도와 안내책을 들고 무조건 거리로 나왔다. 호텔 앞에는 택시 운전수, 툭툭 운전수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모두 뿌리치고 근처 공원에 앉아 어디 갈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한 툭툭 운전수 어저씨가 영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꽤 의사소통이 되었다. 원래는 차이니즈 거리가 볼 만한테 주말이라 전부 문을 닫았다고 쇼핑을 할 만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20바트만 달라고 했다. 우리는 벌써 50바트를 주고 툭툭을 타고 온지라 20바트라는 말에, 그리고 말을 조금 통한다는 기쁨에 따라 나섰다. 아저씨는 이거저거 물어보고 우리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려고 하더니 시푸드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데려다 주었다.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다. 툭툭 아저씨는 자기는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경비를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비싼 바다가재와 게요리를 과감히 뿌리쳤다. 다시 아저씨를 찾아 비싸다고 했더니 쇼핑센터도 다 밤에 문을 연다고 했다.(지금 생각하니 파트퐁 거리를 말하는 듯). 아저씨는 타이의 자랑인 타이실크를 하는 가게로 데려다 주었다. 지나는 길에 노점상들을 많이 보았다. 배가 고파서인지 시장의 식당에서 음식 먹는 이들이 부러워 보였다. 짐 톰슨에 의해 세계에 알려진 타이의 실크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이하면 실크 아니겠는가? 우리가 타고 온 타이항공의 캐치프레이즈가 'smooth as silk'였다. 값도 싸고 질 좋은 타이실크 샵, 짐 톰슨의 가게는 아니었다. 가격을 알아 본 우리 신랑은 정장을 한 벌 맞추라고 권했다. 우리의 여행일정을 듣더니 디자이너는 하루만에 맞춰 줄 수 있다고 했다. 각국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이 실린 카다로그를 보여주며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으나 우리는 앞서 말 했듯 경비를 아껴야 하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 눈요기를 실컷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호텔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하여 툭툭 아저씨에게 40바트를 지급하고 우리끼리 근처 시장골목을 걸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뭐라고 재밌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순박하고 친근해 보였다. 무척 배가 고팠다. 냄새가 좋은 어느 작은 시장 가게에서 카레를 넣은 듯한 국수를 볶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다가가 영어로 물어 보니(물론 우리 신랑이 ^^:) 영어를 모르는 듯 회피했다. 한참 가게 안에서 어떤 아가씨를 부르니 그 아가씨가 간단한 영어를 구사했다. 값이 얼마고 이름이 뭐라는 것. 우리는 그 국수와 볶은 밥 같은 것을 시키고- 값이 아주 쌌다._ 그리고 물도 한 병 주문했다. 동남아권 대부분 물은 사서 마셨고 음식점에서도 물 값은 따로 냈다.-국수는 아주 맛있었다. 카레 맛이 나는 꾸들꾸들한 볶은 국수에 표고버섯과 걸쭉한 국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람들이 왠지 먹어야 할 것 같은 밥은 별로였다. 태국의 쌀은 길쭉길쭉하게 생겼는데 밥알이 끈기가 없어 서로 붙지 않고 다 떨어진다. 푸석푸석한 것이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 식당에선 다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이제 배가 어느 정도 차니 이 곳 방콕에 자신이 생겼다. 거리에서 보는 진기한 먹거리들도 구경하고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도 샀다. 이 곳은 빨대가 대 유행인 듯했다. 음료수를 사면 늘 큰 빨대를 주고 음식점에서도 컵에다 빨대를 꽂아 주었다.
우리는 지도를 보고 호텔 가는 길을 재차 확인하고 길에서 어떤 예쁜 아가씨한테 확인까지 했다. 얼굴도 예쁜 그 아가씨는 영어 발음도 좋았다. 이 곳 태국의 아가씨들은 전부 미인이었다. 키가 크진 않지만 다들 허리가 짧고 다리가 길었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시장에서 본 방콕 사람들의 순박한 표정은 실로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아무리 가도 호텔은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뒷골목으로 이어져 어두웠다. 모자를 쓴 우리는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보였다. 대부분 우리를 일본인으로 알았다. 다리가 아파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맨더린 호텔은 아는 모양인데 영어로 표현을 못하나 보다. 덕분에 방콕 밤거리 실컷 걸었다.
걸으면서 본 방콕거리에는 개, 고양이가 무지 많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개들, 한국에서라면 사냥개 수준의 큰 개들이 골목골목 늘어져 편하게, 세상 고민 없는 얼굴로 자고 있었다. 평소에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어떻게 피해볼 수도 없이 개들이 많았다. 태국은 불교 나라라 살생을 금하기 때문에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이 많고 사원의 승려나 누구나 먹이를 많이 준다고 한다. 태국에서의 살생금지는 쿠데타에 실패한 장군도 죽이지 않고 국외로 추방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방콕은 아주 복잡한 큰 길을 제외하고는 길을 건널 때 무단횡단이 자율화(?)되어 있다. 첨엔 어리둥절하고 무슨 불법을 행하는 것 같았으나 모든 관광객과 방콕시민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차 다니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왼쪽 오른쪽이 헷갈려 조금 위험할 뻔 했다. 한번은 어떤 일본인이 나보고 위험하다고 친절히 방향을 가르켜 주기도 했다.
걷다 보니 어디선가 불꽃놀이를 하는 거 같아 신이 났느나 곧 그쳤다.(나중에 들으니 이건 불교의 화장의식이라고 한다. 3번 쏜다고 한다) 한 30분 정도 걸었을까 한 경찰관의 길 안내로 - 이 경찰은 우리 보고 가방 조심하라고 주의를 시켜주기도 했다- 겨우 호텔에 왔다. 기진맥진 다리만 아프고. 첨부터 툭툭을 탈걸. 남편은 내 원망을 했다. 호텔방에서 우리는 다음날 일정을 짜기에 바빴다. 태국의 텔레비젼까지 재밌었다.
태국 이틀째날 아유타야 유적지로 떠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부페였다. 이 호텔에 얼마나 다양한 외국인들이 투숙했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엔 생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으나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어야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에 마구 먹었다. 근데 커피가 넘 맛이 없었다. 진하고 향이 없고 헉 무슨 사약 같다. 한국의 달콤한 자판기 커피가 생각났다.
활람퐁역에서 기차로 가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으나 호텔 앞에서 자가용 택시를 하는 사람에게 걸리고 말았다. 우리는 아유타야로 가기 위해 활람퐁역 기차를 탄다고 했으나 의사소통이 어찌된건지 무슨 여행사로 데려다 주었다. 택시비로 50바트나 주었다.
그 여행사의 중국계로 보이는 영어 잘하는 청년은 아유타야로 가는 대절 택시를 대주고 1인당 1500바트를 내라고 했다. 너무 비싼 듯해 잠시 망설였으나 사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안내책의 말대로, 조금 깎아서 (입장료를 다 내주기로 했다) 그냥 하기로 했다. 근데 영어하는 기사라더니 허걱 우리 말은 알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 반복했다.
처음 간 방파인은 아유타야 남쪽 약 30km지점에 있는 방콕 왕조의 별궁으로 동 서양의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정원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넓기도 넓지만 관광객들도 많았다. 근데 특이한 것은 총을 든 군인이 도처에 많았다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들은 총을 든 군인들을 무슨 진이한 구경거리인 양 사진을 찍어 댔다. 전형적인 타이의 건축 양식유럽의 고딕 같은 양식, 중국풍 양식이 한 정원 안에서 꾸며져 있어 태국의 근대사를 보는 듯 했다. 왕이 친히 사용했던 건물은 신발과 모자를 벗고 경건한 자세로 들어가 보아야 했다. 이 곳 태국 사람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이다. 택시를 타도 작은 불상과 함께 국왕의 사진이 놓여 있고 - 수호신으로- 음식점이나 작은 가게 어디를 가도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들에게 국왕은 국왕 이상의 의미, 부처와 동일한 레벨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아유타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유적지였다. 폐허가 된 유적지.. 안내책에는 을씨년스럽니 어쩌니 했지만 내 눈에는 폐허조차 너무나 으리으리하고 거창했다. 버마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이 모든 건축물이 모두 금으로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한지 가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처음 간 사원은 와트 프라몽콜 보피트. 16세기에 만들어진 18m의 거대한 청동불상이 있는 사원이다. 사원 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저마다 사원 입구에서 각자의 사정에 맞는 헌금을 하고 금박과 꽃, 향 같은 것을 얻어 금박은 작은 불상들에 입히고 각자 향을 피우고 꽃을 들어 복을 빌었다. 이 나라 사람들의 불심은 정말 대단하다고 한다. 돈을 버는 족족 거의 절에 바친다고 하니..동남아 영화에서 보던, 무지 사람 많던 절들이 바로 이런 분위긴가 보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잠시 낯선 분위기에 어리둥절했으나, 사실 사진을 찍어도 될지.. 눈치를 보았다. 특히 사원 안쪽에 있는 불상은 정말 거대하여 사진을 찍고픈 욕심이 났으나, 간절한 불심으로 기원하는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눈치를 보다 입구의 스님에게 물어보니 사진 가능하다 한다. 거대한 불상은 무슨 행사준비로 한참 가사를 입히는 중이었다. 아마도 거대한 불상의 노란 옷(이 곳 승려들은 모두 영화 'cup'에 나오는 노란 옷을 입었다)은, 어디선가 노란 천이 계속 쟁반으로 날라져 오면 불상 밑의 스님이 위로 올려 보내고 위의 있는 스님은 그 천들을 연결하여 또다시 다른 쪽 스님한테 보내면 밧줄로 연결하여 불상의 옷의 일부분의 되었다. 아마도 아까의 노란 천들은 시주인 것 같다. 불상 한쪽 옆에는 기념품이나 불교용품 그리고 이 사원이 발견되던 당시의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발견 당시에도 파괴된 사원에 이 거대한 불상만 우뚝 솟아 있었다. 신기하게도 예전의 흑백사진의 사원은 지금같은 천정까지 있는 양식이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 석굴암의 예전 모습이 그러하듯 천정이 오픈된 개방양식이었다.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것을 태국 사람들이 이렇게 금칠을 하고 사원도 멋있게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 석굴암은 일제때 개방형이 아닌 천정이 덮인 지금과 같은 양식으로 하여 계속 습기가 찬다고 하던데.. 이 곳은 괜찮은지 궁금하였다.
두번째로 간 곳은 와트 야이차이 몽콜. 이 곳은 일단 경내도 넓고 탑도 높고 역시 사람들도 많았다. 이 사원은 1357년 아유타야 왕조의 초대왕인 우통왕이 당시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타이인 승려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원 내에 있는 높이 72M의 체디(탑)는 1592년, 버마와의 전쟁에서 이긴 나레수앙 왕이 세운 전승기념탑이라고 한다. 전승기념탑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이 탑 주위로는 수많은 불상들이 빙 둘려 배열되어 있으나 많은 불상들이 목이 잘라 나가 있었다. 이건 우리나라 특히 경주 가면 목 없는 불상들이 많다. 불상 파괴에는 목을 자르는 관습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들이 많이들 불상을 파괴했다고 하는데 물론 이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이지만, 이 나라의 기독교도는 5%도 되지 않는데.. 고로 불상 파괴는 타종교인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불상이 아닌 그 나라의 문화로 보고 문화를 파괴하고자 하는 이들의 소행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아유타야 유적지 중에서 이 사원은 어느 정도 복구가 이루어져 많이 정비되어 있었고 한 쪽에는 지금도 사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절이 있었으며 20M가 넘는 와불상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순 운주사에서 와불을 보았지만 사뭇 그 느낌이 달랐다. 우선 우리나라에선 와불이 귀한데 태국에선 3개나 보았다. 누운 모양도 운주사의 와불은 편안하고 장엄한 얼굴인데 비해 태국의 와불은 미소가 좀더 밝고 환한 느낌, 게다가 하얀 와불은 승려의 노란 가사까지 입고 있어 좀더 귀엽고 요염한 느낌까지 들었다.
우리는 아유타야의 거대한 유적에 사뭇 감탄하고 있었다. 근데 도처에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 혹은 바지를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보였다. 다들 친절하고 "thank you" 하면 "you're welcome"하며 미소로 답하여 우리는 대만에서 온 수학여행단인가 하며 궁금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의 대학생들이라고 한다. 태국에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고 한다. 하얀 웃도리에 여자는 검은 치마, 남자는 검은 바지. 교칙이 엄격하여 화장이나 담배 같은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태국에는 관광지가 아니면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이 검은 하의에 흰 상의를 입은 젊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 대학생들이라 다들 영어가 통한다. 아 치마가 좀 타이트하면 대학생이고 펑퍼짐하면 중고생이다.
대절한 택시 기사는 친절하기는 한데 계속 타이식 영어를 반복하여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자꾸 우리를 안내했다. 예를 들면 코끼리 타는 곳- 것도 무지 비싼- 아니면 기념품 파는 곳-절대 사면 안된다. 특히 음료수를 주는 곳을 주의하라. 방콕시내 파트퐁 거리 같은 데 가면 관광지보다 무려 1/40값으로 살 수 있다- 으로 안내하여 당황했다. 아 또 한가지 친구임을 내세우는 곳도 바가지요금이다. 그 기사는 나중에는 맛사지 받겠느냐고 했다-타이에서는 맛사지를 '맛사'라고 발음한다. 아무튼 이들이 안내하는 곳은 무지 비싸다. 물론 우리는 거절했다.
다음에는 와트 프라 마하네트. 아직까지 파괴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너무나 철저히 파괴되어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어보이는 폐허 그 자체이나 전성기에는 굉장한 규모의 사원이었던 듯 싶었고 아기자기한 탑들이 수려한 건축미를 아직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곳곳에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이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듯 놓여 있었고 상반신만 남은 불상과 방금 잘린 듯한 불상의 머리가 흩어져 있었다. 나중에 안내책을 보니 나무뿌리에 둘러싸인 불상머리가 있다는데,우리는 못 찾아보고 말았다.
점심 때가 되어 배가 고프다고 하자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야자수잎에 싸서 찐 떡(이름이 뭐더라?)을 사주려고 하여 우리가 돈을 내자 (2바트 정도) 아주 미안해 하다가 우리가 맛있다고 먹자 하나를 더 사주었다. 이 운전기사는 자꾸 뭐 사는 데만 안내해주어 얄미운 점도 있었지만, 우리가 음료수를 사줘도 먹지 않았고 점심도 자기는 따로 해결하여 공과 사가 분명하였다. 점심은 기사가 안내해주는 수상 레스토랑에서 가장 싼 듯한 요리를 시켜 먹었다. 계란을 이용한 누들과 새우요리였는데 나중에 안내책을 보니 여기가 아주 비싸다고 써 있었다. 허걱
오후에는, 사원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오직 길이 28m 높이 5m의 와불상만이 들판에 가로 놓여 있는 와트 로키타 수타에 먼저 갔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이 큰 불상만은 어쩌지 못했나 보다. 이 곳에도 꽤 큰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을 분위기로, 아유타야 시절엔 전성기를 누렸을 만한 규모이다. 곳곳에 있는 탑들은 꽤 가파르고 높았다. 너무 가팔라서 겁이 많은 나는 올라가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입구의 기념품 파는 아저씨는 자꾸 이것저것 필요치도 않은 물건들을 보여주며 가격을 불렀다. 물론 부를 때마다 우리가 반응이 없으면 가격이 마구 내려갔다. 자꾸 "빠니스,빠니스" 하길래 뭔가 했더니 panies가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작은 철제 인형인데, 우리 관영씨는 웃으며 자꾸 관심을 보였다. 하니 그 아저씨가 자꾸 따라올 수밖에.하여간 남자들이란...
다음에는 왓 프라 램.아직도 사원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안에 우통왕의 청동불상이 있어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호수 건너편에는 쿤펜하우스. 아유타야 시대의 유명 문학작품을 본따 만든 그 시대의 정통 양식인 민가이다. 더운 지방의 특성에 맞게 시원한 정사각형 구조이다. 신발을 벗고 한 층 올라가는 구조로 더위나 홍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집이라 시원해서 한숨 자고픈 욕구가 들었다,
마지막으론 와트 푸카오통. 온통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 사원은 버마(지금의 미얀마)의 바이나운 왕이1569년 전승기념으로 만든 하얀색의 높이 80m의 체디가 있다. 당초에는 버마양식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타이양식으로 개장했다고 한다. 이 탑에 올라가면 아유타야 전체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이 곳 저 곳을 바라보며 아유타야의 유구한 세월을 다소나마 짐작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디지털카메라와 일반카메라를 둘 다 가지고 갔었는데 여기서 그만 일반자동카메라가 고장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물려 받은 것이어서 수리비가 많이 들었는데, 그나마 찍은 사진이라도 잘 나왔으면 했다.
아유타야는 16-17세기 무렵에는 '동양의 베네치아'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그 많은 유적이 거의 금으로 되어 있을 만큼 보석도 풍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1767년 버마의 침공으로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버마군의 침략은 너무나 철저해서 후의 왕국들은 재건을 포기하고 수도를 옮기고 말았으며 타이정부도 복원에 소요될 막대한 예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운전기사와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 관광 5시까지, 호텔에 6시 도착-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유타야를 떠나 왔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은 어느 정도 될까? 하루 정도 더 보면 거의 볼 수 있을까? 아유타야는 앞서 말했듯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다. 다음에 꼭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관영씨와- 호텔에 도착했다. 기사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말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대충 땀을 씻고, 호텔을 슬슬 구경하였다. 지하에 발마사지샵이 있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한 시간에 300바트라고 하였다. 우리를 또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말로 답을 하였다. 다행히 간단한 일본말은 할 수 있어서 알아 들을 순 있었다. 1층에는 상아 목거리 등의 보석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 둘러 보았다. 살까말까 망설이면서 말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또 무조건 거리가 나갔다. 호텔 앞의 육교를 건너니 음식점이 많아 보였다. 근데 어떤 노천 식당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씨푸드를 맛나게 하는지 사람이 많았다. 가리비도 있고 조개도 있고 신선로 비슷한 전골도 보였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진짜 맛있나 보다. 우리는 사람들이 먹는 걸 유심히 보며 가격을 물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공책에 숫자를 써 보였더니 아니라고 하며 300바트라고 하였다. 무지 싼 가격이어서 배도 고프고 먹으려고 하였으나 아뿔싸 준비성 없는 우리 신랑 "돈을 다 써서 us달러밖에 없다”고 하였다. 주인은 타이 바트만 받는다고 하며 맨더린 호텔에 가서 바꿔 오라고 했다. 하여 투덜대며 다시 호텔에 돌아 왔으나 호텔에 돈이 다 동이 났다는 것이다. 식사를 호텔 안에서 하면 나중에 체크 아웃할 때 계산이 된다고 했다. 나는 괜히 화가 났다. 미리미리 챙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주된 싸움의 원인이었다. 호텔 안에는 스테이크나 피자 스파게티 같은 것들뿐.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가자고 하며 심통을 냈다. 서울에서 가져온 3색 일제 펜을 그 가게에 두고 온 것을 발견하자 다시 그 식당에 가 펜을 찾아 오라구 골을 부렸다. 동갑내기 부부라 평소 싸움이 잦던 우리는 떠나기 전 외국에선 절대 싸우지 말자고 약속을 했었다. 이 사람이 좀 참는 듯하더니 그 펜을 찾으러 나갔다. 나는 좀 미안해졌다. 잠시 후 펜을 진짜 찾아왔다. 그 가게에선 파트퐁 거리에 나가 환불을 해 오라고 했다. 관영씨는 그렇게 해서라도 – 파트퐁 거리는 10여분 걸어야 함- 저녁을 먹자고 했으나 넘 피곤하고 귀찮았다. 하여 서울에서 가져온 가루 생식으로 저녁은 해결하기로 했다. 돈도 절약하고. 내일 일정은 방콕 시내 관광이었다. 우리는 말이 안통하는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가이드를 하루 쓰기로 하고 여행사와 통화를 하여 호텔로비에서 가이드와 만날 약속을 했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또다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호텔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려는 외국인들로 꽉 찼다. 약속시간에 맞춰 환불을 하고 나니 벌써 가이드가 와 있었다. 어떤 키작고 까무잡잡한 태국아가씨가 "한국 싸람 마자요?" 하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의 가이드였다. 이름은 '녹'. 방콕의 대학원생. 한국어교육과를 공부 중이란다. 우리는 녹을 통해 그간 궁금하던 태국의 여러 풍습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기로 했는데, 그만 싱가폴에서 그녀의 주소가 적힌 공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미터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우선 왕궁과 에메랄드사원으로 갔다. 그 곳은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그간 통 볼 수 없었던 한국인들도 많았다. 단체 관광객, 신혼 부부들... 게다가 한국말로 물건 사라는 상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만원에 3개 하다가 안산다고 하면 만원에 10개, 또 안산다고 하면 만원에 20개, 이런 식으로 값이 내려갔다.
이 곳에선 복장이 엄격히 제한된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히 긴 바지에 단정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왕궁은 1782년 라마1세(차크리왕조)에 의해 세워졌으며 현재는 국왕이 살고 있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관람이 허용되고 국가행사에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왕궁을 지키는 군인들이 교대하는 의식을 볼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대고 몰려 들었다.
에메랄드 사원은 차크리 왕조의 수호사원이다. 사원 입구에 3개의 불탑이 서 있는데 각각 버마양식(종모양)- 이 버마양식의 탑은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실제 금은 맨꼭대기의 동그란 부분만 진짜 금이라고 한다-, 타이양식(첨탑), 크메르양식(옥수수모양)이 사원의 모습을 아주 특색있게 해주며 형형색색 화려한 분위기였다. 이 밖에도 스리랑카양식의 불탑도 볼 수 있으며, 세계3대 불교 유적의 하나인 크메르의 앙코르와트모형도 있었다.
또한 전설을 소재로 한 벽화도 특색있어 볼거리가 되며 여기저기의 불탑들은 어느 것 하나 진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사원이 보석으로 되어 있다는 바람에 다 진짜라고 믿은 관광객들이 간혹 작은 불탑에 꽂힌 유리까지 빼 간다고 한다. 하여 입장료로-입장료가 진짜 비싸다- 보수를 한다고 한다.
본당에 66cm크기의 진짜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되고 모자 신발도 벗어야 하는 등 자못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운데의 초록색 에메랄드 불상은 뒤로 국왕의 출입구가 따로 있었는데 계절에 따라 국왕이 직접 에메랄드 불상의 옷을 갈아 입힌다고 한다. 입구로 다시 나와 무슨 꽃으로 복을 빌어 주는 의식이 있었는데 우리는 녹의 복을 빌어 주어 녹의 환심(?)을 사기도 하였다.
다음은 와프 포(열반불사원)이다. 이 사원은 길이 49m, 높이 12m의 거대한 와불이 유명하다. 어제 아유타야에서 본 와불하곤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더 불심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식으로 만든 느낌이랄까?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와불을 다 볼려면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도 이 와불이 세계에서 3번째로 쓴 와불이라 한다. 1번째 두번째는 얼마나 더 큰 것일까? 다 중국본토에 있다고 하는데 ..상상이 되지 않았다. 불상의 발바닥에는 바라문교의 세계관을 나타난 도안이 나전으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창 보수 공사 중이라 사원 내부가 어수선했다. 불상 한 쪽 옆에는 사람들이 동전을 담고 있었는데, 녹이 동전 108개를 소원을 빌며 던져서 딱 맞으면, 즉 108개에서 남거나 모자르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약간의 봉헌을 하고 동전 그릇을 받아 하나하나 소원을 빌며 정성된 마음으로 동전그릇을 채워 나갔다. 나는 우리 신랑의 건강과 하는 일 모두 잘 되기를 빌었다. 그리고 108 그릇에 남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딱 맞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 신랑은 하나가 모자랐다. 잠시 당황했으나 다행히 수중에 동전이 하나 있어 마지막 그릇을 채웠다. 아마 아이가 생겼으면 하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녹은 계속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며 우리를 '언니''오빠’하고 불렀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녹이 한국말을 배운 사연, 한국에 간 얘기. 한국말은 태국말, 중국말, 영어와는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배우기가 아주 어렵다고 했다.
이 사원 내에는 전통 맛자지 스쿨이 있어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녹이 아는 친구가 있는 전통 맛사지 샵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녹은 아침 일찍 나오느라 아침도 못 먹고 왔다고 했다. 우리는 사원을 나오자 길 건너 시장가에 있는 노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생선 구운 것과 고기국 같은 거와 누들을 먹었는데 나는 약간 이상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먹을 만 하였다. 자꾸 옆에 고양이가 다가와 겁 많은 내가 흠찟 놀라자 주인 아저씨가 멀리 쫓아 주었다.
점심 식사 후 차우프라우강에 있는 배를 타고 수상시장에 갔다.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긴 모양의 배를 타고 수상시장으로 가는 것이다. 근데 물살이 센 강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엔진소리를 내고 달리는 배 안에서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구명조끼를 입긴 했으나 지난 신혼여행 때 사이판에서 바나나 보튼지 뭔지에 워낙 놀라서 배가 뒤집히는 상상을 한 것이다. 녹은 계속 "언니, 괜찮아요. 이 배는 안전해요"를 외쳤으나 공포감은 쉬 가시지 않고 부딪히는 공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호흡을 가다듬고 강 주변의 경치를 보았다.
타이의 수상 가옥들, 야자수 나무로 짓는다고 하는데 5년에 한번 정도 보수를 해주지 않으면 기우뚱 기울어 위험하다고 한다. 화장실은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녹이 특이한 노란 배를 가리킨다. 화장실 배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배가 한두 척씩은 묶여 잇고 또 다들 수영을 잘한다고 한다.
수상시장은 사원 근처에 가면서 시작된다. 배에 물건을 싣고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것인데 주로 할머니들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삿갓 같은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아무리 물살이 세어도 배를 잘 젓는다고 한다. 바나나 열대과일, 식빵 같은 것들이 보였는데 녹은 빵을 하나 산다고 하여 우리는 작은 바나나를 샀다. 값이 매우 쌌다. 수상시장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라 많이 팔아 주면 좋다고 했다. 녹은 빵을 방사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며 보니 사원 근처에는 승려들이 먹이를 주어 물고기들이 많았는데 물고기 밥을 주는 것이었다. 신기하게 물고기들이 모여 들었고 물 위에 빵을 가만히 놓아 두면 와서 먹었다. 과연 태국 사람들의 불심다웠다. 오면서 왕실의 선착장을 보았다. 앞부분이 금박의 무늬가 있고 하얀 색의 육중한 모양이었는데 원래는 수상에서의 전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요즘은 의례에 쓰인다고 한다.
사원부분을 지나자 배는 속도를 내어 다음 목적지인 새벽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소매치기범이라는 두 남자가 잡혀가고 있었다. 다들 가방을 조심하자고 수근거리는데 그 사람들은 불전함의 돈을 훔치다 들켰다고 하는데 잡혀가는 표정이 순박해 보였다. 우리는 과일을 파는 아저씨에게 열대과일을 사먹었다. 특이하게 설탕과 소금을 섞은 양념에 찍어 먹었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으나 말이 안통해서리.. 우리는 낄낄대며 좋아했다.
새벽사원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높이 82m의 큰 탑을 중심으로 네 개의 작은 탑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인데 하얀 색에 장식이 아주 정교하고 현란하였다. 구조적인 면에서는 아유타야의 양식과 비슷하였다. 중앙의 탑은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원래는 4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나 너무 가팔라서 어떤 관광객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2층까지밖에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탑의 장식이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 딸랑 종소리 같은 유리소리가 났다.
우리는 다시 많은 사람이 타는 큰 배를 타고- 배 운전하는 사람, 노 젓는 사람들은 사원에 딸린 사람들이라 따로 월급이 없다고 한다. 녹은 약간의 팁을 주었다-와트 트라이마트 일명 황금불 사원으로 향했다. 800억원에 달한다는 황금불상이 있는 이 사원은 번쩍번쩍 광채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코타이 시대의 한 왕이 버마의 침략으로부터 이 황금불을 보호하기 위에 회반죽칠을 입혀 두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전혀 모르다가 공사 도중 불상을 옮길 일이 있었는데 그만 실수로 불상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근데 그 귀퉁이에서 번득이는 황금빛을 보고서야 황금불상인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녹은 오후에 학교 수업이 있다고 하며 우리를 맛사지샵에 데려다 주었다. 타이의 전통 맛사지는 그 명성이 유명하여 실로 호기심이 생겼다. 녹의 친구가 일한다는 그 가게는 실롬로드 주변에 있었다. 한 시간에 300바트인데 원래 2시간이 정통코스라 2시간짜리를 받아 보라고 권했다. 우리를 녹을 많이 신뢰하였으므로 그녀의 말대로 2시간짜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 가게는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지 입구에 한국말로 '맛사지'라고 씌여 있었다. 규모가 꽤 큰 가게였다.녹은 헤어지기 전에 태국 말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감사합니다’는 "컵쿤카(남자는 컵쿤캅)"-태국의 언어는 남녀가 약간 다르다-, “얼마예요?”는 "타우어라이", ‘비싸요’는 "팽" 등등-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공책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흑. 녹과는 작별을 고했다.- 녹이 먼저 메일을 주었으면 한다. 주소 쓰인 공책을 잃어버렸어요~~!
먼저 발부터 씻겨 주었다. 다른 사람이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꽤 기분이 괜찮았다. 발 맛사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곤 커텐이 처 있는 방으로 안내하며 겉옷을 벗고 가운을 입으라고 했다. 그리곤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옆에는 관영씨가 누웠다. 한두 시간 잠을 자라고 권했다. 불빛이 약간 어두웠고 에어콘 바람이 시원했다. 곧 2명의 맛사지사가 들어와 발부터 맛사지, 아니 지압, 경락맛사지 같은 것을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아팠으나 정말 시원했다. 나는 좀 젊은 아가씨가, 관영씨는 약간 나이 든 사람이 맛사지를 했는데, 이 맛사지는 아무나 할 수 없고 반드시 따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까 그 와불이 있던 사원에 맛사지 스쿨이 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발과 다리 부분이 끝났을 때 느낌이 정말 근육이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타이 맛사지를 받으면 보폭이 5cm 넓어진다고 하더니 정말 나긋나긋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맛사지 해주던 아가씨는 약간 덩치가 있고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내가 약간씩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손, 팔, 어깨, 허리,- 이 부분은 뒤로 돌아 누우라고 했다- 정말 시원했는데, 특히 나는 요즘 자고 일어나면 목 언저리 부분이 아팠는데, 그 부분을 맛사지 할 때는 한번 더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머리 속 얼굴 부분의 모든 경락을 눌러 주고 펴주었다. 2시간 코스는 실제로는 1시간 40분 정도 되었다. 끝나자 중국차를 한잔 갖다 주었다. 우리는 아주 흡족했다. 기분이 좋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마워- 정말 힘들 것 같았다- 두 사람에게 팁을 100바트씩 주었다.(우리 돈으로 3000원씩) 가게를 나올 때에는 녹의 친구라는 예쁜 아가씨가 따라 나와 갈 길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실롬 로드를 걸었다. 태국의 중심가인 듯, 번화하였다. 방콕 제일의 비지니스 거리라고 한다. 서울에서 보던 패스트 푸드점들이 즐비하였고 방콕에서 제일 크다는 백화점들도 눈에 띄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한잔 사서 먹으며, 아까 수상시장에서 산 바나나와 아침에 싸온 달걀을 먹었다. 원래는 저녁에 앰버서더 호텔에서 하는 칼립소쇼를 보기로 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라 예약이 다 찼다고 하여 관영씨는 무척 아쉬워 했다. 방콕에 와서는 그 쇼를 꼭 봐야 하는 유명한 쇼라고 한다. 뭐 남장 여자 아니 여장 남성들의 쇼라나? 그럼 오늘밤 뭘 할까 했더니, 사람들이 아까 녹도 파트퐁 거리를 구경하라고 권했다. 근데 10시 이후에 문을 연다고 했다. 녹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일단 시간이 남았으므로 우리는 일단 숙소에 가기로 했다. 실롬 로드에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면서 파트퐁 거리를 확인했다. 어제의 식당 아저씨가 환불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날 정도로 거기엔 환전소가 많았다.
호텔까지 걸어가며 여기저기를 구경했는데 짐 톰슨의 타이실크 가게도 있었다. 우리가 가게를 바라보고 있으니깐 지나가는 아저씨가 여기가 타이실크가 최고라고 사라고 하였다. 우리는 호객꾼인가 싶었는데, 그런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면서 말해준 것이었다. 또 맛사지 가게도 몇 있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특이했다. 밖에서 안을 전혀 볼 수 없게 해 놓았고 문 밖에 건장한 남자와 야릇한 분위기의 아가씨가 나와 앉아 있었다. 아까 우리가 맛사지 받은 가게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우리가 지나가며 자꾸 그 가게를 쳐다 보자, 또 지나가는 아저씨가 저기는 안좋은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 보고 일본인이냐며 타이는 보석이 유명한데 보석 샀냐고 했다. 우리는 안샀다고 하니까 우리 보고 정말 좋은 보석가게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우리는 호객꾼이거니 하여 망설이는데- 사실 보석 살 맘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특별세일을 한다고 한번 가보라고 권했다. 어쩔까 하는데 바로 골목 어귀라 한번 들러 보았다. 그 아저씨는 잘 가라고 인사하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아마 호객꾼은 아닌 듯 싶었다.
그 가게는 약간 골목 안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진짜 크리스마스 특별할인(50%나)이었다. 우리가 오자 물을 내왔는데 마시지 않았다. 별로 살 마음이 없었고 그냥 둘러만 봐야지 했다. 그 가게의 아줌마는 태국 사람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영어를 꽤 하였다. 그냥 어쩌다 보니 자수정 반지와 셋트인 목걸이를 흥정하게 되었다. 50% 세일해서 2600바트라고 나한테 무지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한 배낭여행족, 앞으로 싱가폴과 홍콩도 가야 하고 어제 오늘 가이드- 가이드비 1000바트 주었다-니 관광이니 해서 지출이 심했기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나 관영씨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하여 나는 흥정을 했다. 1800바트에 줄 수 있냐구.. 좀 너무 했나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깐 안되면 나가야지 싶었다. 그 가게에선 좀 망설였다. 한참만에 2000바트는 어떻겠댜구 했다. 우리는 1900바트에서 물러설 수 없었고 나는 막 나갈려고 하는데, 자기네 보스한테 물어보겠다고 하더니 1900바트에 주었다. 우리는 정말 안살려고 한건데 실로 엉겁결에 사게 되었다. 물론 카드로 샀다. 우리 돈으로 58,000원 정도. 그러나 그 가게는 정말 신뢰감이 들었다. 고객 주소도 쓰고 보증서로 써 주고 하였다. 혹 방콕에서 보석을 사길 원한다면 라마4세거리에서 맨더린 호텔 쪽 골목에 있는 unitrade center를 추천하고 싶다. 나중에 서울에서 보니 반지와 목걸이가 정말 맘에 들었다. 싸게 산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조용하였고 오히려 사원이 붐볐다. 우리 호텔 옆에 교회가 있었는데 구유를 꾸며 놓은 건 보였는데 조용하고 문도 닫혀져 있었다. 왜 조용한지 궁금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조금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쉬다가 - 호텔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예쁜 쿠키를 방마다 가져다 놓았다-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파트퐁 거리로 나섰다. 아까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가는 것이었다. 밤의 파트퐁 거리는 진짜 불야성이었다. 파트퐁 거리는 제1거리와 제 2거리, 그리고 포장마차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1거리는 그야말로 뭐랄까 술집, 아가씨들의 천국이었다. 술집으로 보이는 화려한 네온사인 앞에 섹시한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나와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빨간 모자를 쓰기도 하고 공주 같은 옷을 입기도 하였다. 관광객들이 입을 벌리고 다들 구경하였으나, 침을 흘리는 것이 분명한 우리 남편 때문에 걸음을 빨리 재촉하여 걸었다. 제2거리는 우리나라 남대문 아니 도깨비시장 비슷한 조그만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다. 밤에만 열린다고 하더니 낮에는 다 철수하는 모양새였다. 구경거리가 무궁무진하고 여기에도 술집이 있었는데 아까의 술집에도 조금 더 격이 낮아 보였다. 요번엔 덩치 큰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짐작되었다. 우리는 눈을 핑핑 돌리며 구경을 하다 물가가 싼 태국에서 선물을 사기로 하였다. 하고 보니 'naraya' 가게가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누빈 가방 아니 큰 리본 달린 가방으로 유명한 그 상표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가게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많았다. 노원역에도 이 가게가 있는데 환산을 해보니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는 싼 가격이었다. 우리는 화장품 넣는 작은 지갑을 몇개 샀다. 그리곤 큰 길에 잇는 포장마차에서 여러 물건들을 구경하다 관영씨가 먹고 싶다던 야자수에 빨대 꽂아주는 것을 사먹고 -아주 싸다 2바트-앉아 쉬기도 했다. 어떤 서양여자는 인형을 하나 사다 포장마차 밑에서 놀고 있던 가난한 어린아이에게 선물하였다. 크리스마스라서인지 인종을 초월한 넉넉한 마음이 보기 좋았다. 돌아 다니다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어떤 깨끗한 누들 전문점에 들어갔다. 그림만 보고 대충 시켰더니 뭐랄까... 태국 특유의 이상한 향이 났다. 관영씨는 그 향이 어떤 풀에서 나는 거라며 그 풀을 가려내고 먹으라고 했으나 영 입에 맞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아주 피곤하였다. 낮에 받았던 맛사지를 한번 더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텔에 와서 내일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 보았다. 안내데스크에서 택시를 타거나 호텔 앞에서 길 건너 29번 버스를 타라고 했다. 방에 오자 약간 짐 정리를 하고 곧 잠이 들었다.
25일 아침, 일어나 씻고 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었다. 맨더린 호텔은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호텔 아저씨가 아주 인상적이다. 항상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면 거수를 하며 태국말로 인사를 하는데 아주 인상이 좋았다. 우리는 좀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짐을 꼼꼼히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하였다.
길 건너에서 29번 에어컨 버스를 타며, 올 때도 이걸 탔으면 많이 절약할 수 있었을텐데.. 왜 아무도 이 호텔앞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에어콘 버스는 빠르기도 하고 값도1인당 20바트가 조금 안되었다. 태국의 버스는 일단 타면 안내양이 요금을 받으러 다가온다. 대나무통 같은 요금통을 들고 말이다.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 일단 동전들을 보여주면 자기가 알아서 가져간다. 내리는 곳이 문제인데 공항 같은 곳은 눈에 금방 띄지만 다른 곳이라면 방송이나 표지도 영어로 쓰여있지 않다. 이럴 때는 주위를 둘러 대학생 교복 - 흰 상의 검은 하의-입은 사람을 찾아 부탁하면 된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쳤다. 싱가폴까지는 3시간 정도. 비즈니스 클래스이다. 우리는 공항의 면세점을 천천히 구경하고 비즈니스 클래스만이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에서 맥주도 마시고 신문도 보고- 한국신문이 있었다- 빵도 먹고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도 있었는데 따로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더욱이 초고속이 아니라 속도도 느리다고. 나는 서울의 초등학교 동창 중 방콕에 사는 친구가 생각나 연락을 하고 싶었으나 주소를 몰랐다. 우리 동호회에 접속만 함 알 수 있을텐데.. 아쉬웠지만 그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방콕에 적응했는데 방콕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순박한 사람들과 매연냄새를 뒤로하고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