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기억 속에서 바래져 가는 어릴 적 고향의 먼 옛날 추억이나 당장 치러야 하는 성묘와 차례 등 가까이에 있는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다른 추석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해산하러 내려오면 신세지겠다는 속셈이긴 하지만, 서울의 둘째 딸 내외의 배려로, 몇 년 전 추석 전날 오후 생전 처음으로 가보게 되는 북녘 땅의 여행길에 올랐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자와 다대포 임시 국제여객 부두에 도착하니 배의 입구에서는 낮선 남녀 외국인 승무원들이 도열하여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트윈 침대에다 TV와 냉장고 그리고 응접 셋트에 과일 바구니 등이 있는 객실까지 필리핀인 승무원이 안내를 하여 주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자주 눈에 띄는 러브호텔을 연상하며 조금은 들뜬 기분이 되었다.
얼마 후 선내 방송에 따라 강당으로 가보니 비상시 대처 요령과 풍악호의 홍보 비디오 등을 보여주었다. 몇 번의 일본 여행에서 타본 배들보다 훨씬 규모와 시설이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승선시 적어낸 코스별로 조를 구성하였다. 상팔담, 만물상 그리고 해금강의 세 코스가 있는데 이틀 동안 그중 두 곳을 조별로 선택하여 보게 되었다. 우리는 상팔담과 만물상 코스를 택하였다. 각 코스별로 20명 내외의 승객이 타는 버스 15대 가량이 배정되어 각 버스마다 현대해상의 인솔자가 동승한다고 하였다.
어두워 질 무렵 시작된 저녁 식사는 한식 뷔페로, 옆자리의 사람들과 얘기해보니 부산 사람들은 300여 명의 승객 중에 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경인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동해항까지의 불편한 교통편이 원인인 사람도 있었고 금강호나 봉래호의 표를 예약할 수 없어서 부산까지 왔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충청도, 전라도, 경북 등지에서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같은 규모의 선실인데도 내고 온 요금이 관광회사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저녁 후 캄캄한 바다 멀리 보이는 아련한 육지의 불빛과 오징어 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을 관망하다가 쇼를 한다는 방송에 이끌려 공연장으로 가보았다. 이런 저런 너스레 끝에 북한말 공부를 한다고 한다.
먼저 전구를 북한에서 뭐라 하는지 아느냐부터 시작되었다. 불이 켜지는 유리알이니 불알이라 하며 형광등은 긴불알, 두줄 형광등은 쌍불알, 두줄 형광등에서 하나가 없는 것은 짝(외)불알, 가로등의 아래위로 길게 설치된 형광등은 선불알 등등.
그 다음엔 상데리아는 뭐라는지 맞추어 보라는 퀴즈 문제가 나왔다. 답은 때불알(때낀불알)이 아닌 '떼불알'이었다.
다음 날 추석의 일출을 보고자 카메라와 켐코더를 메고 갑판으로 나가니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뻔 하였다.
서둘러 카메라에 몇 장 담았다. 그리고 켐코드로 일출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데 뒤에서 '큰일납니다'는 소리가 났다. 놀라 돌아보니 승무원이 이곳은 장전항에 가까운 북한 영해이기 때문에 모든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니 모두 선실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고 보니 북한 땅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객실내의 욕실에서 더운물로 기분 내어 샤워를 하고 식당의 창 너머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하였다. 차례 상을 차려 놓았으니 원하는 사람은 차례를 지내라는 방송을 듣고 구경 삼아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있었다. 북한의 바다 위에서 북한 땅을 보고 지내는 추석 차례라 감회가 새로웠다.
승무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내려선 북한 땅,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부두 시설을 지나 셔틀버스로 500m 거리의 입국 심사장으로 갔다.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정복 입은 북한 사람, 그들은 무표정하긴 하였지만 얼굴이 붉지도 머리에 뿔도 나지 않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한 조 20여 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들의 앞뒤로 북한의 안내 및 감시인을 태운 버스 등 20여 대의 버스들이 줄을 지었다. 길 양쪽에 2m 정도 높이의 철조망이 쳐진 새로이 포장된 도로를 따라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이 사이 일정한 간격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추석 음식을 머리에 이고 산으로 성묘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버스 속에서 인솔자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동 중 촬영은 일절 금지며 내려서도 북쪽의 사람과 건물의 촬영도 안되며 위반 시에는 촬영기기를 압수 당한다고 하였다. 휴지를 버려서도 침을 뱉아서도 담배를 피워서도,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너무 금지사항만 강조하여 인솔자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금강산의 네 가지 이름을 설명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봄에는 경치 아름답기로 금강석과 같다 하여 금강산(金剛山)이라 하고, 여름에는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사는 곳에 견주어 봉래산(蓬萊山)이라 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하여 풍악산(楓嶽山)이라 한다 하였다. 그리고 개골산(皆骨山)은 눈 덮인 산세가 동물의 갈비뼈와 같다 하여 붙여진 겨울 이름이라 하였다.
온정리 마을의 개울 건너편에 금강산 관광의 전진 기지인 온정각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금강산 문화회관을 비롯해서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북측의 상품들을 살 수 있는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틀 동안 둘러 본 금강산에는 그림으로만 보던 구룡폭포도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상팔담도 노래로만 듣던 일만이천봉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남도 북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남은 상드리에라 하고, 우스게 말이긴 하지만 북은 떼불알이라 하는 말에서와 같이 양쪽 사이의 패어진 골의 깊이를 실감한 여행이었다.
추석이 되면 떠올리게 되는 '떼불알'의 기억이 묘한 여운을 남기곤 한다.
첫댓글 문유사회의 앙코르왓 답사여행 갑니다. 9월 26(월)일 출발하여 30일 돌아 옵니다.
언제나 연구회를 위하여 유익하고 풍부한 자료를 많이 올려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앙코르 왓 답사 여행 무사히 다녀 오십시오. 많은 사진 자료 갖고 오셔서 보여 주십시오
사모님이랑 참 많이 닮으셨네요. 아름다운 산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